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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위 강론자료 및 기고

 

[강론] 기억과 참회와 연대의 미사

사무국, 2015-01-05 10: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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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참회와 연대의 미사


박동호 신부(20141230일 정의평화위원회)

루카 2,36-40

성탄 팔일 축제 내 제6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기억· 참회· 연대의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파스카의 신비입니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파스카 신비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 이웃에게,

더 나아가 이 세상 모든 피조물에게 당신의 거룩한 생명을 나누어주셨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우리가 참회하는 것은 그분께서 주신 거룩한 생명을 훼손한 우리의 죄악입니다.

우리는 때로는 불의로, 때로는 탐욕으로, 그리고 때로는 무관심으로,

주님께서 주신 그 귀한 생명을 훼손하는 죄악을 범했습니다.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드러나신

하느님의 사랑으로 온갖 피조물과, 특히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과 연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대는 온갖 피조물과의 연대이며, 특히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웃과의 연대여야 합니다.

 

성탄 시기를 보내는 우리 교회는 루카 복음 말씀을 선포하며,

하느님의 백성은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복음은 예수님을 알아보는 길을 다시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을 받아들입니다.

엘리사벳과 그 배속의 요한도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목자들도 예수님의 출현을 알아봅니다.

시메온도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오늘 한나 역시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이렇게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의 출현을 알아본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가 힘없고 약하며,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제물로 산비둘기 한 쌍과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

바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젊은 부부였습니다.

엘리사벳은 산골 마을에 살았으며,

목자들은 그 추운 밤에도 들에서 남의 양을 돌봐야 할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시메온은 이스라엘이 위로 받을 때만을 기다리는 노인이었고,

한나 역시 수십년을 과부로 지낸 여든 네 살의 노인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마리아는 주님의 뜻에 온전하게 순종했습니다..

엘리사벳과 태중의 요한은 성령으로 가득 찼습니다.

목자는 주님께서 알려주신 그 일을가서 보기 위해 서둘렀으며,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했습니다.

시메온에게는 성령께서 머물러 계셨습니다.

한나는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습니다.

 

루카 복음 말씀은 비록 가난하고 무력하고 보잘 것 없지만,

하느님과 성령 안에서 사는 이들이

아기그리스도라고 알아보고 고백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째,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음을 드러내신 것은 바로

가난하고 무력하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통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난하고 무력하고 보잘 것 없는 이를 내버리는 사회는

하느님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 교회와 신앙인에게 역설입니다.

하느님을 알아보지 않거나, 하느님을 외면하는 불신앙을 드러내는 징표는

바로 가난하고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그들의 삶을 내다버리는 것입니다.

 

둘째, 하느님께서는 가장 무력한 예수님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셨다는 것입니다.

이 계시는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계속됩니다.

예수님께서 만나러 가신 이들은 하나 같이 당신처럼 무력한 이들이었고,

아예 이들을 당신과 동일시 하셨습니다.

마침내 십자가의 죽음으로 가장 무력한 모습으로 지상의 삶을 마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과 비움을 통해서, 박해와 멸시를 피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뚫고 지나가심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충실성을 완성하셨습니다.

이는 우리 교회와 신앙인에게 이는 피하고 싶은 도전이자 유혹이 됩니다.

세상의 무력함을 경멸하고 대신 세상의 부귀영화를 향해 달리고 싶은 유혹이 됩니다.

 

셋째, 그 보잘 것 없는 이들, 무력한 아기 예수와 대조하여

루카 복음이 소개하는 두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온 세상을 호령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그의 신하 시리아 총독 퀴리니우스입니다.

 

이쯤해서, 오늘의 우리의 현실을 성찰하게 됩니다.

첫째, 누가 요셉과 마리아, 엘리사벳과 요한, 목자들, 그리고 시메온과 한나인가?

이 땅에서 누가 구원과 해방의 기쁜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가?

수많은 정규, 비정규 노동자들, 그리고 해고 노동자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이야말로 그들이 아닌가?

하늘과 땅과 강과 바다와 뭇 생명이 아닌가?

감옥에 갇혀 사형을 기다리고 있는 분들과 그 피해자와 가족이 아닌가?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된 분들의 가족들이 아닌가?

인권을 박탈당한 이들이 아닌가?

이 땅의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가?

 

둘째, 구원과 해방은 비구원과 억압을 전제합니다.

그러면 누가 아구구스투스처럼 황제 행세를 하며 이들에게 호령하고,

그 호령에 충실했던 퀴리니우스 총독 행세를 하고 있는가?

경제적 이익과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폐쇄된 지배집단은 누구인가?

정치를 왜곡하여, 인간 존엄함과 공동선을 훼손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경제를 왜곡하여, 무수한 사람을

소수의 자본과 돈의 독재 하에 신음하게 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정보를 왜곡하여, 여론을 조작하고, 시민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 땅의 정치, 이 땅의 언론, 이 땅의 지식사회와 언론, 이 땅의 종교가

저마다 갖고 있는 권력으로

경제적 이익 혹은 자본에 충실히 봉사하면서,

폐쇄된 지배집단, 카르텔을 구축하여

아우구스투스와 퀴리니우스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셋째, 그러면 교회와 신앙인은 누구를 기억하며,

누구와 연대하며,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혹시 교회의 이름을 내걸고, 신앙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이 땅의 무수한 요셉과 마리아, 엘리사벳과 요한,

목자와 시메온과 한나를 외면하고, 심지어는 경멸하고,

그 대신 아우구스투스와 퀴리우니스와 동행하려는 것은 아닌가?

 

넷째, 그렇다면 용서를 청하고 참회해야 하며 아버지께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곧 성찬례를 거행합니다.

우리 죄의 용서와 구원을 위해 당신의 몸과 피를 희생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께서는

망신창이가 되어 당신께 돌아오고 있는 우리를 그곳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어주신 하느님께서는

이 자리의 우리를 세상에 파견하실 것입니다.

세상에 가서 참회하라고, 기억하라고, 연대하라고 우리를 파견하실 것입니다.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되신 분,

누추한 구유에 누워계신 예수님을 만나러 가라고 다시 우리를 파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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