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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위 강론자료 및 기고

 

[강론] 강정 생명평화 미사(2015.9.8)

사무국, 2015-09-10 15: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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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8(), 박동호 신부

강정 생명평화 미사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입니다.

아마 사람들은 마리아라는 인물보다는

그 인물을 수식하는 동정이란 생물학적 현상에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다.

그리고 고개를 갸우뚱할 것입니다.

아기 예수를 잉태하여 출산을 한 여인에게

어떻게 동정이란 수식어를 갖다 붙일 수 있는가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동정 마리아를 공경하는 우리의 신심을 가벼이 여길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가운데에도 그 같은 태도를 갖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그리스도인에게 전하고 싶었던 진심은

생물학적사실 여부가 아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오늘날 현대인이 맹신하는 경험 과학적 진실로 밝혀지지 않은 그 무엇을

말하고 있느니, 일단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공관복음이건 제4복음이건 복음사가가 전하려 했던 진리

작은 것이 위대하다(less is more)’는 역설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마리아는 당시의 귀족 출신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자수성가한 집안의 규수도 아니었습니다.

평범하다면 지극히 평범한 집안의 한 여성이었으며,

어쩌면 평범하지도 못한 가난한 집안의 한 소녀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지극히 평범하고 보잘 것 없다면 보잘 것 없는 한 가녀린 여인을 통해서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이 시작된다는 것을 복음사가는 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복음은 말 그대로 기쁜 소식입니다.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짓밟힌 이들에게,

식민 지배를 받는 백성에게, 게다가 로마라는

현실 권력에 부역하는 동족의 지도자들에게 또 다시 억눌리고 있는

절대 다수의 백성에게,

희망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착한 목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 길 잃은 양 떼처럼 측은한 그 백성에게

하느님께서는 무명의 한 여인을 통해 다가오십니다.

이는 지도자 행세하는 이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불쾌함이고 모독이겠지만,

신음하고 있는 백성에게는 통쾌한 반전입니다.

 

마리아라는 한 여인을 통해 하느님의 놀라운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을 독점하려던 종교권력과 금력과 무력을 독점하던 지배 권력에 대한

가장 적나라한 부정이며 단호한 거부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일제 강점기에 이 땅의 이천만 백성에게 희망은 사회 명망가가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이승만 독재 정권하에서 이 땅의 시민에게 희망은 무명의 학생들이었습니다.

그 이후 오랜 군부독재 시절 이 땅의 시민에게 희망은 노동자와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분들 모두 역사책에조차 이름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역사 책에 이름을 올린 이들은 다른 이들이었습니다. 아마도 기축권력에게는 불편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평범한 우리 시민의 기억부재와 무관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불의한 권력이 집요하게 요구하는 것은 굴종입니다.

그것이 무력이 되었든, 금력이 되었든, 명예가 되었든

그 힘 앞에 무릎을 꿇고 복종하기를 바랍니다.

그 점에서 한 여인 마리아는 그 집요한 요구에 대한 단호하고 분명한 거부의 표지가 됩니다.

 

이는 1독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유다 부족 가운데에서 가장 보잘 것 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미카 예언자의 선언을 듣습니다.

고대 근동지역의 역사를 이끌었던 대국은 에집트, 앗시라아, 페르시아, 그리고 훗날 로마 제국이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그 강함속에 누룩(겨자씨)’ 같은 존재로서, 약소, 소수 부족이었습니다.

그 이스라엘 유다 부족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베들레헴이 희망의 근거로 존재합니다.

 

오늘의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봅니다.

더 많이 가지려고 버둥거려 고달픔의 끝이 보이지 않지만

멈추지 못하도록 우리는 내몰리고 있습니다.

마치 무거운 짐을 지고 비탈길을 오르지만,

잠시도 쉬지 못하도록 뒤에서 채찍질 당하는 형국입니다.

그걸 경제성장이라고 미화하지만, 사람과 사회는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극단적 표현이겠습니다만,

오늘의 젊은 세대, 미래 세대를 표현하는 수식어에서 그 황폐함과 절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처음 88만원 세대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곧 백수세대라 불렀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삼포세대가 등장합니다. 연애를 포기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그리고 출산을 포기해야 하는 세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몇 해도 지나지 않아, ‘오포세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내 집 마련뿐만 아니라 마침내 인간관계까지 포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칠포세대가 등장합니다.

꿈과 희망을 갖는 것조차 포기해야한다는 겁니다.

없는 것이 없는 풍요로움을 요란하게 노래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람과 사회가 얼마나 황폐해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더 큰 무력을 갖추려고 수십 년간 버둥거렸지만, 결국엔 더 나약해졌고

더 힘 센 집단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매는 형국입니다.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서 바로 서지 못하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을 보려다,

간을 빼주고, 쓸개를 빼주고, 마침내 까지 빼줘야 할 형국입니다.

마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주변의 패권들에 기대 덕을 보려다,

멸망과 함께 하느님 백성을 고통으로 내몰았던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리아 같은 작은이를 우습게 여겼고,

베들레헴 같은 작은 고을을 하찮게 여긴 대가입니다.

 

해군기지가 아니라 베들레헴 같은 강정마을이 위대합니다.

총칼로 세상을 호령하는 이들이 아니라 마리아 같은 강정의 사람이 위대합니다.

강정마을과 사람이 평화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해군기지에 계시지 않고 강정마을에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총과 칼을 든 사람이 아니라 강정의 사람과 함께 계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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