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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위 강론자료 및 기고

 

[강론]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미사

사무국, 2016-04-19 17:5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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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2주기추모미사(박동호신부).jpg



사진출처: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세월호참사 2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에서 세월호 참사 추모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2016.04.15.


 

2016415

세월호사건 2

명동성당

 

우리는 세월호 사고 희생자와 미수습자를 기억하며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봉헌하십니다.

이 미사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살‘295명의 생명

아홉 분의 미수습자를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고창석, 양승진, 권재근, 권재근, 이영숙님)

하느님께 봉헌하며, 주님의 자비하심으로 참 평화의 안식을 간절히 청합니다.

 

그리고 염치없고 부끄럽지만 또 기도합니다.

그 누구보다 주님의 자비를 희망하는 유족들에게

저희가 자비의 도구가 되어줄 수 있는 은총과 용기를 청합니다.

 

교회는 자비의 특별희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2000년에 대희년을 지냈으니, 2050년에 희년을 지내야 하는데,

2016년에 희년을, 그것도 자비의 특별희년을 보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무수한 사람과 약한 존재를 죽음으로 내몰 정도로 무자비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힘없고 약한 사람과, 약한 민족과, 자연까지 그 무자비함 앞에서

속절없이 죽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무자비함이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무자비하고, 그 무자비함을 무심하게 지켜만 봤기 때문입다.

 

2년 전 세월호 사건은 그 무자비와 무관심이 불러온 사람과 사회의 재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자비함과 무관심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믿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자비는 점점 더 또렷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우리 사이에서 관심은 높아지고 있습니까?

그리하여 우리는 재앙에서 벗어나고 있습니까?

 

누가 무자비했고, 누가 지금도 무자비한가?

 

우리 사회교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경제적 이익을 향한 욕망과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세상을 휩쓸고 있는 죄의 구조’(119)

사적 이익이나 이념적 목적을 위한 폐쇄적 지배집단(406)을 고발합니다.

그 죄의 구조와 폐쇄적 지배집단 한 가운데에 무자비한 돈이라는 우상

우뚝 서 있습니다.

돈을 신으로(god-money) 섬기는 이 폐쇄 집단과 죄의 구조는

그 앞에 절을 하지 않으면, 사람도 내다버립니다.

가정이건 학교건, 사회건 국가공동체건 해체 붕괴시켜버립니다.

하늘이건 땅이건 물이건, 식물이든 동물이든 죽여 버립니다.

그들에게는 두 부류만 존재합니다.

돈을 벌어 갖다 바치는 부류, 혹은 돈이 되는 부류와

돈이 드는 부류(노인과 청년이하의 세대)가 그 두 부류입니다.

 

무자비함이 초래한 재앙과 비극을 고통스럽게 자각한

프란치스코 교종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우리의 공동의 가정에 벌어지고 있는 일

맑은 정신으로 똑바로 바라보고,

그 고통의 자각을 나의 인격적 고통으로 전환시키고,

행동하자고 호소합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나는 어떻고, 우리 교회는 또 어떤가요?

우리는 무관심합니다.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듯이,

그 재앙과 비극은 우리 가운데 누군가 그랬겠지만, 나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특히 우리 교회는 모든 이를 위한’ ‘사제와 레위의 임무와

하느님을 섬겨야 한다는 그 경건함을 내세우며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과 창조세계가 겪는 재앙비극을 보고도

길 반대쪽으로 지나갑니다.

성당에 들어가서 해야 할 거룩한 일이 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사회 곳곳에 있어야 할 하느님의 누룩이나 소금이 되기보다는,

어둠을 비춰야 할 빛이 되기보다는,

하느님 자비를 가장 목말라하는 끝자락에 가 있기 보다는,

‘another part of society’ 곧 사회의 여러 조직이나 비정부기구 가운데

하나라고 여기며,

그 조직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그 안에서 안전하게 자족하거나

조직의 번영을 이루어 세상에서 중심의 자리를 차지하려 합니다.

 

교회의 사람들은 양의 냄새를 몸에 바르기보다는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입니다.

신발에 흙을 묻히며 길을 나서 상처입고 다치기보다는

잔칫집과 회당에서 윗자리에 앉아 있으려 합니다.

상처 난 그리스도의 살을 만지기보다는

성전의 금과 제단 위에 놓인 예물을 놓고 한 맹세를 지키려 합니다.

 

견고한 담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바라보려 하지 않고,

그 담 밖에서 하늘을 향해 보복을 절규하는 신음소리를 들으려하지 않습니다.

너희가 가서 상처에 너희의 기름을 발라주고, 너희의 나귀를 태워 여관을 데려가고, 너희의 돈을 지불하고, 보살펴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위선이라고 질타하셨고,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를 세속의 정신이라고 했고,

어떤 이는 이를 두고

교회의 사람들한테서 볼 수 있는 양심의 기억상실이라 했습니다.

 

사람과 사회에 착한 종이 되어야 할 이 무자비한 주인이 되었고,

그것도 모자라 우상이 되었고,

그 돈이란 우상을 충실히 섬기는 경제·정치권력과

우리의 무관심양심의 기억상실은 공범이 되어,

마치 헤로데가 그랬던 것처럼, 손에 피를 묻혀가며,

무수한 사회적 약자대지를 울부짖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그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다시 똑 같이 묻고 계십니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세월호 사건 2년을 맞습니다. 부끄럽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말씀을 소개합니다.

 

---------------------------------------------------------------------

이 재앙의 시대에 제발 자신 안에로 숨어들어가지 마십시오! 위험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 교회가 문을 닫아놓게 될 때 교회는 건전치 못한 교회가 되고 마침내 아프게 됩니다! ... 교회가 닫혀있을 때, 교회는 병이 듭니다. 일 년 동안 문을 닫아놓은 그런 방을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그 방에 들어가면 썩은 냄새가 납니다. 그 방에 있는 많은 것들이 방과 함께 엉망이 됩니다. 스스로 문들 닫아놓고 있는 그런 교회도 그와 똑 같습니다. 병든 교회 말입니다. 교회는 반드시 스스로 밖으로 나서야 합니다. 그러면 어디로 갈까요? 그것이 무엇이든 존재의 끝자락으로 가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스스로 밖으로 나가면 무슨 일이 생깁니까? 집에서 나와 거리에 나설 때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 사고가 일어납니다. 그렇지만 저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저는 문을 닫아놓고 있음으로써 병들어버린 그런 교회보다는, 몇 몇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길을 나서는 그런 교회를 훨씬 더 좋아한다고 말입니다. ...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문 앞에 서서 [제발] 들어가게 해달라고 그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 그렇지만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보십시오. 얼마나 자주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나가게 해달라고, 나가겠다고 [우리 안에서] 문을 두드리시는지를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그분을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밖으로 나서야 합니다. 다른 이들(존재들)과 만나야합니다. 신앙은 예수님과 만나느니 것이며, 그 예수님께서 하신 일, 곧 다른 이들(존재들)과의 만나는 것, 그것을 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스스로 밖으로 나선다면 우리는 [분명히] 빈곤을 [곧 강도 당해 모든 것을 빼앗기고 두들겨 맞아 초주검이 되어 내버려진 무수한 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태는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위엄을 부리며 점잖음이나 빼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조용히 차를 마시면서 신학적 문제들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잉 교육 받은 그런 그리스도인들(over-educated Christians)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정말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용감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그리스도의 살 자체인(the very flesh of Christ) 사람들(사회적 약자)을 찾아서 길을 나서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살인 사회적 약자를 찾아서 길을 나서야 합니다.

--------------------------------------------------------------------

 

오늘 하느님 말씀은 사울의 회심을 소개합니다.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를 내뿜던 사울이 자신이 박해하는 예수님을 만난 곳은,

편안한 곳이 아니라,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였습니다.또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길을 나서서 그리스도의 살,

손과 옆구리에 못 박혀 상처가 난 그 살을 만져야 합니다.

그래야 회심할 수 있고,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교회는 자비의 특별희년을 선포하면서 한 장의 그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깨에 들쳐 업은 모습니다.

두 사람이니까 눈이 네 개여야 하는데, 밀착한 두 얼굴에 눈이 세 개밖에 없습니다.

보시기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세월호 사건 2년을 맞아 저는 다음의 세 가지 의미를 성찰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강도를 만나 두들겨 맞아 초주검이 되어 내버려진

사회적 약자 한 사람을 힘겹게 들쳐 업으셨고,

그 둘의 절박한 하나의 눈길로 저를 바라보시며

제발 얼른 나와서 도와 달라.’고 애원하신다고 말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내가 이렇게 지금 한 사람 업고 왔는데,

저 밖에 이 친구의 형제와 누이와 부모가 수도 없이 많이 쓰러져 있으니,

제발 네가 얼른 나가서 한 명이라도 업고 오라.’고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께 은총과 용기를 청합니다.

 

주님! ‘를 들쳐 업으시어 당신 눈길과 저의 눈길을 하나로 모아주시고,

그 눈길로 초주검이 되어 내버려진 다른 이를 찾아

용감하게 길을 나서게 해주소서. 아멘.

 

주님,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주님,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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