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영한비교 간추린 사회교리



제3장 (105~159항) - 인간과 인권

조회 수 2744 추천 수 0 2016.05.23 12:33:43






인간과 인권





105. The Church sees in men and women, in every person, the living image of God himself. This image finds, and must always find anew, an ever deeper and fuller unfolding of itself in the mystery of Christ, the Perfect Image of God, the One who reveals God to man and man to himself. It is to these men and women, who have received an incomparable and inalienable dignity from God himself, that the Church speaks, rendering to them the highest and most singular service, constantly reminding them of their lofty vocation so that they may always be mindful of it and worthy of it. Christ, the Son of God, “by his incarnation has united himself in some fashion with every person”[197]; for this reason the Church recognizes as her fundamental duty the task of seeing that this union is continuously brought about and renewed. In Christ the Lord, the Church indicates and strives to be the first to embark upon the path of the human person[198], and she invites all people to recognize in everyone near and far, known and unknown, and above all in the poor and the suffering a brother or sister “for whom Christ died” (1 Cor 8:11; Rom 14:15)[199].

105. 교회는 모든 인간 안에서 하느님의 생생한 모습을 본다. 이 모습은, 하느님의 완전한 모상으로서 인간에게 하느님을, 그리고 인간을 인간 자신에게 드러내 보여 주시는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더욱 깊고 충만하게 드러나며, 또 언제나 그래야 한다. 교회는 하느님께 비교할 수 없고 양도할 수 없는 존엄을 부여받은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말하며, 이들 인간에게 가장 뛰어난 봉사를 하고, 그들의 드높은 소명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줌으로써 언제나 그 소명을 명심하고 그에 합당한 사람들이 되도록 한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강생으로 당신을 모든 사람과 어느 모로 결합시키셨다.” 이러한 연유로 교회는 이 결합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새로워지도록 할 임무를 자신의 근본 의무로 인식한다. 주님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는 인간이 따라야 할 길을 가르쳐 주고 가장 먼저 그 길을 가고자 노력한다. 교회는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알든 모르든, 모든 사람, 무엇보다 가난한 이들과 고통 받는 이들이 자기 형제자매라는 것을 깨닫도록 권유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형제를 위해서도 목숨을 바치셨다”(1코린 8,11; 로마 14,15).


106. All of social life is an expression of its unmistakable protagonist: the human person. The Church has many times and in many ways been the authoritative advocate of this understanding, recognizing and affirming the centrality of the human person in every sector and expression of society: “Human society is therefore the object of the social teaching of the Church since she is neither outside nor over and above socially united men, but exists exclusively in them and, therefore, for them”[200]. This important awareness is expressed in the affirmation that “far from being the object or passive element of social life” the human person “is rather, and must always remain, its subject, foundation and goal”[201]. The origin of social life is therefore found in the human person, and society cannot refuse to recognize its active and responsible subject; every expression of society must be directed towards the human person.

106. 모든 사회생활은 그 명백한 주역인 인간을 표현한다. 교회는 여러 번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의 모든 분야와 표현의 중심은 인간이라고 인정하고 단언하며, 이러한 생각을 권위 있게 옹호해왔다. “따라서 인간 사회는 교회의 사회 교리의 대상이다. 교회는 사회적으로 일치되어 있는 인간들 밖에도 위에도 있지 않고, 오직 인간들 안에 있고 인간들을 위해서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요한 인식은, 인간이 결코 사회생활의 대상이거나 수동적 요소가 아니라, 반대로 그 주체이고 토대이며 목적이고 또 언제나 그러하여야 한다.”는 단언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사회생활의 기원은 인간이며, 사회는 자신의 능동적이고 책임 있는 주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의 모든 표현은 인간을 지향하여야 한다.


107. Men and women, in the concrete circumstances of history, represent the heart and soul of Catholic social thought[202]. The whole of the Church's social doctrine, in fact, develops from the principle that affirms the inviolable dignity of the human person[203]. In her manifold expressions of this knowledge, the Church has striven above all to defend human dignity in the face of every attempt to redimension or distort its image; moreover she has often denounced the many violations of human dignity. History attests that it is from the fabric of social relationships that there arise some of the best possibilities for ennobling the human person, but it is also there that lie in wait the most loathsome rejections of human dignity.

107.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에서 인간은 사회 문제에 관한 가톨릭 사상의 중심이며 핵심을 이룬다. 사실, 교회의 사회 교리 전체는 침해할 수 없는 인간 존엄을 천명하는 원칙에서 발전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내면서 교회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모습을 변형하거나 왜곡하려는 모든 시도에 맞서 인간 존엄성을 수호하려고 노력해 왔다. 또한 교회는 인간 존엄성이 수없이 침해받는 것을 여러 번 고발해왔다. 인간을 품위 있게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가능성들은 사회관계 구조에서 생겨나지만, 그 구조 안에는 인간 존엄을 거부하는 가장 불쾌한 행위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역사가 입증해 준다.






a. Creatures in the image of God /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피조물들


108. The fundamental message of Sacred Scripture proclaims that the human person is a creature of God (cf. Ps 139:14-18), and sees in his being in the image of God the element that characterizes and distinguishes him: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he created him; male and female he created them” (Gen 1:27). God places the human creature at the centre and summit of the created order. Man (in Hebrew, “adam”) is formed from the earth (“adamah”) and God blows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cf. Gen 2:7). Therefore, “being in the image of God the human individual possesses the dignity of a person, who is not just something, but someone. He is capable of self-knowledge, of self-possession and of freely giving himself and entering into communion with other persons. Further, he is called by grace to a covenant with his Creator, to offer him a response of faith and love that no other creature can give in his stead”[204].

108. 성경의 근본 메시지는 인간이 하느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시편 138<139>,14-18 참조) 선포하는 것이며, 하느님을 닮은 인간 존재 안에서 인간을 특징짓고 구분하는 요소를 살펴보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셨다”(창세 1,27). 하느님께서는 피조물인 인간을 창조 질서의 중심이자 정점에 두셨다. 하느님께서는 사람(히브리 말로 아담’)을 진흙(‘아다마’)으로 빚어 만드시고 코에 생명의 입김을 불어 넣어 주셨다(창세 2,7 참조). 따라서 인간 하나하나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녔으므로, 존엄한 인격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단순히 어떤 것이 아니라 어떤 인격이다. 인간은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의 주체가 되며, 자유로이 자신을 내어 주고 다른 인격들과 친교를 이룰 수 있다. 은총을 통하여 인간은 자신의 창조주와 계약을 맺고,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신앙과 사랑의 응답을 드리도록 부름을 받았다.”


109. The likeness with God shows that the essence and existence of man are constitutively related to God in the most profound manner.[205] This is a relationship that exists in itself, it is therefore not something that comes afterwards and is not added from the outside. The whole of man's life is a quest and a search for God. This relationship with God can be ignored or even forgotten or dismissed, but it can never be eliminated. Indeed, among all the world's visible creatures, only man has a “capacity for God” (“homo est Dei capax”).[206] The human being is a personal being created by God to be in relationship with him; man finds life and self-expression only in relationship, and tends naturally to God.[207 ]

109. 하느님을 닮은 모습은 인간의 본질과 존재가 가장 심오한 방식으로 하느님과 구조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이 관계는 본래부터 있던 관계이므로 나중에 생겨나거나 밖에서 첨부된 것이 결코 아니다. 인간은 삶 전체에 걸쳐 하느님을 찾고 추구한다. 하느님과 맺은 이 관계를 간과하거나 잊거나 등한시할 수는 있어도 결코 없애버릴 수는 없다. 사실, 세상의 모든 눈에 보이는 피조물들 가운데에서 오로지 인간만이 하느님을 향한 갈망”("homo est Dei capax")을 품고 있다. 인간은 하느님께서 당신과 관계를 맺도록 창조한 인격체이므로 인간은 관계 안에서만 생명을 얻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으며 본성적으로 하느님께 이끌리는 것이다.


110. The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man is reflected in the relational and social dimension of human nature. Man, in fact, is not a solitary being, but “a social being, and unless he relates himself to others he can neither live nor develop his potential”[208]. In this regard the fact that God created human beings as man and woman (cf. Gen 1:27) is significant[209]: “How very significant is the dissatisfaction which marks man's life in Eden as long as his sole point of reference is the world of plants and animals (cf. Gen 2:20). Only the appearance of the woman, a being who is flesh of his flesh and bone of his bones (cf. Gen 2:23), and in whom the spirit of God the Creator is also alive, can satisfy the need for interpersonal dialogue, so vital for human existence. In one's neighbour, whether man or woman, there is a reflection of God himself, the definitive goal and fulfilment of every person”[210].

110.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인간이 본성적으로 지닌 관계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 안에 반영된다. 실제로, 인간은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이므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도 없고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도 없다.” 이와 관련하여, 하느님께서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셨다는 사실이(창세 1,27 참조) 중요하다.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라고는 식물과 동물 세계밖에 없던 에덴에서 살던 인간의 삶에서, 그의 삶을 얼룩지게 했던 불만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창세 2,20 참조). 오직, 남자의 뼈에서 나온 뼈요, 살에서 나온 살이며(창세 2,23 참조), 그 안에 역시 창조주 하느님의 영이 살아 계신 여자가 나타남으로써, 인간 실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격간의 대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상대방이 남자이건 여자이건 다른 사람들 안에, 모든 사람들의 최종 목적이며 완성인 하느님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111. Man and woman have the same dignity and are of equal value[211], not only because they are both, in their differences, created in the image of God, but even more profoundly because the dynamic of reciprocity that gives life to the “we” in the human couple, is an image of God[212]. In a relationship of mutual communion, man and woman fulfil themselves in a profound way, rediscovering themselves as persons through the sincere gift of themselves[213]. Their covenant of union is presented in Sacred Scripture as an image of the Covenant of God with man (cf. Hos 1-3; Is 54; Eph 5:21-33) and, at the same time, as a service to life[214]. Indeed, the human couple can participate in God's act of creation: “God blessed them, and God said 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earth and subdue it' “ (Gen 1:28).

111.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존엄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남녀가 서로 다르지만 둘 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고, 또 더 심오한 의미로는 남녀가 한 쌍의 우리가 되어 서로에게 생명을 주는 상호 보완의 역동적인 힘이 하느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남녀는 상호 일치의 관계 안에서 진심으로 상대에게 자신을 내어 줌으로써 인격체로서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며 심오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완성해 나간다. 남녀가 맺은 일치의 서약이 성경에서는 하느님께서 인간과 맺은 계약의 형태로 나타나고(호세 1-3; 이사 54; 에페 5,21-33 참조), 동시에 생명에 대한 봉사로 제시된다. 실제로, 부부는 하느님의 창조 활동에 동참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창세 1,28).


112. Man and woman are in relationship with others above all as those to whom the lives of others have been entrusted[215]. “For your lifeblood I will surely require a reckoning, ... I will require it ... of man [and] of every man's brother” (Gen 9:5), God tells Noah after the flood. In this perspective, the relationship with God requires that the life of man be considered sacred and inviolable[216]. The fifth commandment, “Thou shalt not kill” (Ex 20:13; Deut 5:17), has validity because God alone is Lord of life and death[217]. The respect owed to the inviolability and integrity of physical life finds its climax in the positive commandment: “You shall love your neighbour as yourself” (Lev 19:18), by which Jesus enjoins the obligation to tend to the needs of one's neighbour (cf. Mt 22:37-40; Mk 12:29-31; Lk 10:27-28).

112. 남자와 여자는 무엇보다도 생명을 맡아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는다. 너희 생명인 피를 흘리게 하는 자에게 나도 앙갚음을 하리라. …… 사람이 같은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에게도 앙갚음을 하리라.”(창세 9,5) 하고 하느님께서는 홍수 이후에 노아에게 말씀하신다. 이러한 전망에서 볼 때, 하느님과 맺는 관계는 인간의 생명을 신성하고 침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도록 한다. 다섯째 계명 살인하지 못한다.”(탈출 20,13; 신명 5,17)는 하느님만이 홀로 생명과 죽음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효력을 지닌다. 육체적 생명의 불가침성과 온전함에 대한 존중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아껴라.”(레위 19,18)는 분명한 명령으로 절정에 이른다. 예수님께서도 이웃의 필요를 돌보라는 의무에 대하여 당부하셨다(마태 22,37-40; 마르 12,29-31; 루카 10,27-28 참조).


113. With this specific vocation to life, man and woman find themselves also in the presence of all the other creatures. They can and are obliged to put them at their own service and to enjoy them, but their dominion over the world requires the exercise of responsibility, it is not a freedom of arbitrary and selfish exploitation. All of creation in fact has value and is “good” (cf. Gen 1:4,10,12,18,21,25) in the sight of God, who is its author. Man must discover and respect its value. This is a marvellous challenge to his intellect, which should lift him up as on wings [218] towards the contemplation of the truth of all God's creatures, that is, the contemplation of what God sees as good in them. The Book of Genesis teaches that human dominion over the world consists in naming things (cf. Gen 2:19-20). In giving things their names, man must recognize them for what they are and establish with each of them a relationship of responsibility[219].

113. 남녀는 생명에 대한 이 특별한 소명을 지니고 다른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살아간다. 인간은 다른 피조물을 마음껏 이용하고 향유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하지만, 세상에 대한 인간의 지배에는 자유의 남용이나 이기적인 착취가 있어서는 안 되며, 책임 수행이 요구된다. 실제로 창조된 것은 모두 가치가 있고 그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창세 1, 참조) 것이다. 인간은 그 가치를 발견하고 존중하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인간 지성에 대한 놀라운 도전이다. 인간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의 진리, 곧 모든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을 바라보도록, 인간의 지성은 인간의 두 날개가 되어 인간을 들어 높여야 한다. 창세기는 세상에 대한 인간의 지배는 피조물에게 이름을 붙여 주는 데에 있다고 가르친다(창세 2,19-20 참조). 피조물에게 고유의 이름을 붙여 줌으로써, 인간은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각각의 피조물과 책임 관계를 수립하여야 한다.


114. Man is also in relationship with himself and is able to reflect on himself. Sacred Scripture speaks in this regard about the heart of man. The heart designates man's inner spirituality, what distinguishes him from every other creature. God “has made everything beautiful in its time; also he has put eternity into man's mind, yet so that he cannot find out what God has done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Eccles 3:11). In the end, the heart indicates the spiritual faculties which most properly belong to man, which are his prerogatives insofar as he is created in the image of his Creator: reason, the discernment of good and evil, free will[220]. When he listens to the deep aspirations of his heart, no person can fail to make his own the words of truth expressed by Saint Augustine: “You have made us for yourself, O Lord, and our hearts are restless until they rest in you”[221].

114. 또한 인간은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자신에 대하여 성찰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성경은 인간의 마음에 대하여 말한다. 마음은 인간 내면의 영성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 때문에 인간은 다른 모든 피조물과 구별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이 제 때에 알맞게 맞아 들어가도록 만드셨더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고 싶은 마음을 주셨지만, 하느님께서 어떻게 일을 시작하여 어떻게 일을 끝내실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코헬 3,11). 결국, 마음은, 인간이 자기 창조주의 모습대로 창조되었으므로 부여받은 이성, 선악 구별, 자유 의지와 같은 인간의 고유한 특권들인 정신적 능력을 가리킨다. 자기 마음의 깊은 열망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누구든지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말한 진리의 말씀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다. “주님, 주님을 위하여 저희를 내셨기에, 주님 안에 쉬기까지는 저희 마음이 찹찹하지 않삽나이다.”



b. The tragedy of sin / 죄의 비극


115. This marvellous vision of man's creation by God is inseparable from the tragic appearance of original sin. With a clear affirmation the Apostle Paul sums up the account of man's fall contained in the first pages of the Bible: “Sin came into the world through one man and death through sin” (Rom 5:12). Man, against God's prohibition, allows himself to be seduced by the serpent and stretches out his hand to the tree of life, falling prey to death. By this gesture, man tries to break through his limits as a creature, challenging God, his sole Lord and the source of his life. It is a sin of disobedience (cf. Rom 5:19) that separates man from God[222].

115. 하느님의 인간 창조에 대한 이 놀라운 전망은 비극적인 원죄의 출현과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바오로 사도는 성경의 첫 장에 실린 인간의 타락 이야기를 간단명료하게 단언한다. “한 사람이 죄를 지어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죄는 또한 죽음을 불러들였다”(로마 5,12). 하느님의 금령을 거슬러, 인간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생명나무에 손을 뻗침으로써 죽음을 불러들였다. 이러한 행위로, 인간은 자신의 유일한 주님이시며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도전하고 피조물인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고자 한다. 바로 불순종의 죄가(로마 5,19 참조) 인간을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한 것이다.


From revelation we know that Adam, the first man, transgresses God's commandment and loses the holiness and justice in which he was made, holiness and justice which were received not only for himself but for all of humanity: “By yielding to the tempter, Adam and Eve committed a personal sin, but this sin affected the human nature that they would then transmit in a fallen state. It is a sin which will be transmitted by propagation to all mankind, that is, by the transmission of a human nature deprived of original holiness and justice”[223].

첫 인간 아담이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하여 받은 거룩함과 의로움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우리는 계시를 통하여 알고 있다. 아담과 하와가 유혹자에게 굴복함으로써 지은 죄는 개인의 죄이지만, 그 죄가 타락한 상태로 전달될 인간 본성에 영향을 미쳤다. 이 죄는 인간 번식을 통하여, 곧 원초적인 거룩함과 의로움을 상실한 인간 본성의 전달을 통하여 모든 인류에게 전해질 것이다.”


116. At the root of personal and social divisions, which in differing degrees offend the value and dignity of the human person, there is a wound which is present in man's inmost self. “In the light of faith we call it sin: beginning with original sin, which all of us bear from birth as an inheritance from our first parents, to the sin which each one of us commits when we abuse our own freedom”[224]. The consequences of sin, insofar as it is an act of separation from God, are alienation, that is, the separation of man not only from God but also from himself, from other men and from the world around him. “Man's rupture with God leads tragically to divisions between brothers. In the description of the ‘first sin', the rupture with Yahweh simultaneously breaks the bond of friendship that had united the human family. Thus the subsequent pages of Genesis show us the man and the woman as it were pointing an accusing finger at each other (cf. Gen. 3:12). Later we have brother hating brother and finally taking his brother's life (cf. Gen 4:2-16). According to the Babel story, the result of sin is the shattering of the human family, already begun with the first sin and now reaching its most extreme form on the social level”[225]. Reflecting on the mystery of sin, we cannot fail to take into consideration this tragic connection between cause and effect.

116. 인간의 가치와 존엄을 여러 모로 침해하는 개인적 사회적 분열의 뿌리에는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자리한 상처가 있다. 신앙 안에서 우리는 이를 죄라고 부른다. 우리의 조상에게서 물려받아 태어나면서 이미 지니게 되는 원죄에서부터 우리가 스스로 자유를 남용함으로써 범하게 되는 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많은 죄를 안고 있다.” 죄는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행위이니만큼 죄의 결과는 소외, 곧 인간을 하느님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주변 세계와 멀어지게 하는 분리이다.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단절되면 그것이 필연적으로 형제들과의 분열까지 초래한다. ‘첫 죄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야훼로부터 단절은 인간 가족을 결속시켜주었던 우정의 끈마저 동시에 끊어놓고 만다. 그래서 창세기의 그 다음 장면들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상대방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듯한 모습을 보여 준다(창세 3,12 참조). 이어서 형제가 자기 형제를 미워하고 결국 그를 죽이기까지 하는 장면이 나온다(창세 4,2-16 참조). 성경 이야기에 따르면, 죄의 결과는 인간 가족의 붕괴인 바, 이 현상은 첫죄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은 사회적으로 가장 극단적인 형태를 취해 나타난다.” 죄의 신비를 성찰하는 사람이라면 이 원인과 결과 사이의 비극적 연계 관계를 모르는 채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117. The mystery of sin is composed of a twofold wound, which the sinner opens in his own side and in the relationship with his neighbour. That is why we can speak of personal and social sin. Every sin is personal under a certain aspect; under another, every sin is social, insofar as and because it also has social consequences. In its true sense, sin is always an act of the person, because it is the free act of an individual person and not properly speaking of a group or community. The character of social sin can unquestionably be ascribed to every sin, taking into account the fact that “by virtue of human solidarity which is as mysterious and intangible as it is real and concrete, each individual's sin in some way affects others”[226]. It is not, however, legitimate or acceptable to understand social sin in a way that, more or less consciously, leads to a weakening or the virtual cancellation of the personal component by admitting only social guilt and responsibility. At the bottom of every situation of sin there is always the individual who sins.

117. 죄의 신비는 죄인이 자기 자신 안에 그리고 이웃 관계에 끼치는 이중의 상처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개인적 죄와 사회적 죄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볼 때, 모든 죄는 개인적이지만, 다른 면에서 볼 때에 모든 죄가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모든 죄는 사회적이라고 할 수 있다. 죄란 한 인간이 개인으로서 자유로이 저지르는 행동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는 한 집단이나 공동체의 행위가 아니라 언제나 개인적 행위이다. “사람들 사이의 연대 관계가 신비스럽고 쉽게 잡혀지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맺어져 있어서, 모든 개인적 죄가 어떤 식으로든지 타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사회적 죄의 특징은 의심할 여지없이 모든 죄에 해당된다. 그러나 사회적 죄와 책임만을 인정하여 개인적 죄는 은근슬쩍 넘어가거나 거의 없애버리는 식으로 사회적 죄를 이해하는 것은 정당하지도 않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죄가 저질러지는 모든 상황의 저변에는 언제나 죄를 짓는 인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118. Certain sins, moreover, constitute by their very object a direct assault on one's neighbour. Such sins in particular are known as social sins. Social sin is every sin committed against the justice due in relations between individuals, between the individual and the community, and also between the community and the individual. Social too is every sin against the rights of the human person, starting with the right to life, including that of life in the womb, and every sin against the physical integrity of the individual; every sin against the freedom of others, especially against the supreme freedom to believe in God and worship him; and every sin against the dignity and honour of one's neighbour. Every sin against the common good and its demands, in the whole broad area of rights and duties of citizens, is also social sin. In the end, social sin is that sin that “refers to the relationships between the various human communities. These relationships are not always in accordance with the plan of God, who intends that there be justice in the world and freedom and peace between individuals, groups and peoples”[227].

118. 나아가, 어떤 죄들은 그 목적 자체가 자기 이웃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된다. 특별히 그러한 죄들은 사회적 죄로 알려져 있다. 사회적 죄는 개인 간의 관계에서든,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에서든, 또는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에서든, 인간관계에 합당한 정의에 거슬러 자행되는 모든 죄를 말한다. 또 태아의 생명을 포함한 생명권에서 시작하여 인권을 침해하는 모든 범죄, 개인의 육체적 온전함을 해치는 모든 죄는 사회적 죄이다. 그뿐 아니라, 타인의 자유, 특히 하느님을 믿고 공경하는 지고의 자유를 침해하는 죄도 모두 사회적 죄이다. 그리고 이웃의 존엄과 명예를 손상시키는 죄, 공동선과 시민들의 모든 권리와 의무에서 공동선의 요구들을 짓밟는 모든 죄도 사회적 죄이다. 결국, 사회적 죄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인간 공동체들 간의 관계에 적용된다. 세상에 정의가 지배하고, 개인, 단체, 백성들 사이에 자유와 평화가 늘 보장되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본래 의도에 비추어볼 때, 이 여러 등급에 실재하는 관계들이 항상 거기에 부합하지는 않음이 사실이다.”


119. The consequences of sin perpetuate the structures of sin. These are rooted in personal sin and, therefore, are always connected to concrete acts of the individuals who commit them, consolidate them and make it difficult to remove them. It is thus that they grow stronger, spread and become sources of other sins, conditioning human conduct[228]. These are obstacles and conditioning that go well beyond the actions and brief life span of the individual and interfere also in the process of the development of peoples, the delay and slow pace of which must be judged in this light[229]. The actions and attitudes opposed to the will of God and the good of neighbour, as well as the structures arising from such behaviour, appear to fall into two categories today: “on the one hand, the all-consuming desire for profit, and on the other, the thirst for power, with the intention of imposing one's will upon others. In order to characterize better each of these attitudes, one can add the expression: ‘at any price”'[230].

119. 죄의 결과로 죄의 구조가 영속된다. 죄의 결과는 개인적인 죄 안에 뿌리내리고 있어서 죄를 저지르고 고질화하여 결국 이를 끊지 못하는 개인들의 구체적인 범죄 행위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죄의 결과는 점점 커지고 확산되어 인간의 행동을 제약함으로써 또 다른 죄의 원천이 된다. 죄의 결과는 개인의 행위나 짧은 수명을 초월하고 인류의 발전 과정에 개입하여 그 과정을 지연시키고 저하시키는 장애물이며 제약이다. 이 과정의 지연과 저하는 이러한 관점에서 판단하여야 한다. 하느님의 뜻과 상반되고 이웃의 선익에 위배되는 행동과 태도들, 또 그러한 행동들에서 비롯되는 구조들은 오늘날 두 가지 범주로 나타난다. “한편에서는 이득을 위해 무엇이든 소모하는 욕망이며, 다른 편에서는 자기의 의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부과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오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다. 이러한 태도 하나하나의 특성을 더욱 정확히 밝히는 뜻에서 혹자는 여기에 무슨 수를 다해서라도라는 한 마디를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c. The universality of sin and the universality of salvation / 죄의 보편성과 구원의 보편성


120. The doctrine of original sin, which teaches the universality of sin, has an important foundation: “If we say we have no sin, we deceive ourselves, and the truth is not in us” (1 Jn 1:8). This doctrine encourages men and women not to remain in guilt and not to take guilt lightly, continuously seeking scapegoats in other people and justification in the environment, in heredity, in institutions, in structures and in relationships. This is a teaching that unmasks such deceptions.


The doctrine of the universality of sin, however, must not be separated from the consciousness of the universality of salvation in Jesus Christ. If it is so separated it engenders a false anxiety of sin and a pessimistic view of the world and life, which leads to contempt of the cultural and civil accomplishments of mankind.

120. 죄의 보편성을 가르치는 원죄 교리에는 중요한 근거가 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진리를 저버리는 것이 됩니다”(1요한 1,8). 이 교리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다른 이들에게 죄를 전가시킨다거나 환경이나 유전, 제도, 구조, 관계 탓을 하며 자신을 정당화함으로써, 죄 중에 머물러 있거나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권장하며, 그러한 기만을 폭로하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죄의 보편성에 대한 교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보편성에 대한 의식과 별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죄에 대한 그릇된 불안에 사로잡히게 되고 세상과 에 대한 비관적인 시각을 갖게 되어서, 인류가 이룩해 놓은 문화와 문명을 업신여기기 마련이다.


121. Christian realism sees the abysses of sin, but in the light of the hope, greater than any evil, given by Jesus Christ's act of redemption, in which sin and death are destroyed (cf. Rom 5:18-21; 1 Cor 15:56-57): “In him God reconciled man to himself”[231]. It is Christ, the image of God (cf. 2 Cor 4:4; Col 1:15), who enlightens fully and brings to completion the image and likeness of God in man. The Word that became man in Jesus Christ has always been mankind's life and light, the light that enlightens every person (cf. Jn 1:4,9). God desires in the one mediator Jesus Christ, his Son, the salvation of all men and women (cf. 1 Tim 2:4-5). Jesus is at the same time the Son of God and the new Adam, that is, the new man (cf. 1 Cor 15:47-49; Rom 5:14): “Christ the new Adam, in the very revelation of the mystery of the Father and of his love, fully reveals man to himself and brings to light his most high calling”[232]. In him we are, by God, “predestined to be conformed to the image of his Son, in order that he might be the first-born among many brethren” (Rom 8:29).

121. 그리스도교 실재론은, 오로지 죄와 죽음을 쳐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행위로 얻은 희망, 다른 어떤 악보다 위대한 희망에 비추어(로마 5,18-21; 1코린 15,56-57 참조) 죄의 나락을 이해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분 안에서 인간을 당신과 화해시키셨다.” 바로 하느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께서(2코린 4,4; 골로 1,15 참조) 인간 안에 있는 하느님의 모습을 충만히 밝혀주시고 완전하게 해 주신다. 사람이 되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인류의 생명과 빛이시고, 그 빛이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요한 1,4.9 참조). 하느님께서는 유일한 중재자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게 되기를 바라신다(1디모 2,4-5 참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동시에 새 아담, 곧 새 사람이시다(1코린 15,47-49; 로마 5,14 참조). “새 아담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신비와 그 사랑의 신비를 알려 주는 바로 그 계시 안에서 인간을 바로 인간에게 완전히 드러내 보여 주시고 인간에게 그 지고의 소명을 밝혀 주신다.” 하느님께서는 그분 안에서 우리가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미리 정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셨다”(로마 8,29).


122. The new reality that Jesus Christ gives us is not grafted onto human nature nor is it added from outside: it is rather that reality of communion with the Trinitarian God to which men and women have always been oriented in the depths of their being, thanks to their creaturely likeness to God. But this is also a reality that people cannot attain by their own forces alone. Through the Spirit of Jesus Christ, the incarnate Son of God, in whom this reality of communion has already been brought about in a singular manner, men and women are received as children of God (cf. Rom 8:14-17; Gal 4:4-7). By means of Christ, we share in the nature of God, who gives us infinitely more “than all that we ask or think” (Eph 3:20). What mankind has already received is nothing more than a token or a “guarantee” (2 Cor 1:22; Eph 1:14) of what it will receive in its fullness only in the presence of God, seen “face to face” (1 Cor 13:12), that is, a guarantee of eternal life: “And this is eternal life, that they know you the only true God, and Jesus Christ whom you have sent” (Jn 17:3).

122.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실재는 인간 본성에 접목된 것이거나 밖에서 첨부된 것이 아니다, 오리려 그것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이 언제나 존재 깊은 곳에서 지향하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맺는 친교라는 실재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이 자기 혼자 힘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실재이기도 하다.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을 통하여,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로마 8,14-17; 갈라 4,4-7 참조), 그분 안에서 언제나 이러한 친교의 실재가 독특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본성에 동참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바라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에페 3,20) 한없이 베풀어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늘 받아온 것은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1코린 13,12) 볼 때에 비로소 완전히 받게 될 상속에 대한 징표나 보증”(2코린 1,22; 에페 1,14), 곧 영원한 생명에 대한 보증이다.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


123. The universality of this hope also includes, besides the men and women of all peoples, heaven and earth: “Shower, O heavens, from above, and let the skies rain down righteousness; let the earth open, that salvation may sprout forth, and let it cause righteousness to spring up also; I the Lord have created it” (Is 45:8). According to the New Testament, all creation, together indeed with all humanity, awaits the Redeemer: subjected to futility, creation reaches out full of hope, with groans and birth pangs, longing to be freed from decay (cf. Rom 8:18-22).

123. 이 희망의 보편성은 온 민족의 모든 사람은 물론이고 하늘과 땅도 망라한다. 하늘아, 높은 곳에서 정의를 이슬처럼 내려라. 구원이 피어나게, 정의도 함께 싹트게, 땅아, 열려라. 이 모든 것을 창조한 것은 나 주님이다”(이사 45,8). 신약 성경에 따르면, 실제로 온 인류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이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다. 제구실을 못하는 피조물은 신음하고 진통을 겪으면서도 충만한 희망을 품고 멸망에서 풀려나기를 고대한다(로마 8,18-22 참조).






124. Prizing highly the marvellous biblical message, the Church's social doctrine stops to dwell above all on the principal and indispensable dimensions of the human person. Thus it is able to grasp the most significant facets of the mystery and dignity of human beings. In the past there has been no lack of various reductionist conceptions of the human person, many of which are still dramatically present on the stage of modern history. These are ideological in character or are simply the result of widespread forms of custom or thought concerning mankind, human life and human destiny. The common denominator among these is the attempt to make the image of man unclear by emphasizing only one of his characteristics at the expense of all the others[233].

124. 교회의 사회 교리는 성경의 놀라운 메시지를 높이 평가하면서, 무엇보다도 인간의 중요하고 필수불가결한 차원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신비와 인간의 존엄성의 가장 중요한 측면들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과거에는 인간에 대한 환원주의적 개념들이 적지 않았고, 그 가운데 상당수의 개념이 아직도 현대사의 무대에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들은 이념의 특성을 지니거나, 단순히 인간이나 인간의 삶이나 인간의 운명과 관련하여 통용되는 관습이나 사고의 소산이다. 이러한 개념들의 공통된 특징은 인간이 지닌 다른 모든 특성들은 무시하고 그 가운데에서 한 가지 특성만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모습을 모호하게 만들려고 시도한다는 것이다.


125. The human person may never be thought of only as an absolute individual being, built up by himself and on himself, as if his characteristic traits depended on no one else but himself. Nor can the person be thought of as a mere cell of an organism that is inclined at most to grant it recognition in its functional role within the overall system. Reductionist conceptions of the full truth of men and women have already been the object of the Church's social concern many times, and she has not failed to raise her voice against these, as against other drastically reductive perspectives, taking care to proclaim instead that “individuals do not feel themselves isolated units, like grains of sand, but united by the very force of their nature and by their internal destiny, into an organic, harmonious mutual relationship”[234]. She has affirmed instead that man cannot be understood “simply as an element, a molecule within the social organism”[235], and is therefore attentive that the affirmation of the primacy of the person is not seen as corresponding to an individualistic or mass vision.

125.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만 의지하는 것이 인간의 특성인 냥, 인간을 혼자 힘으로 자신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절대적인 개체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인간을, 유기체를 형성하는 세포 하나에 불과하다고 보아 전체 조직 안에서 기껏 그 기능적 역할만을 인정하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인간의 온전한 진리에 대한 환원주의적 개념들은 이미 여러 번 교회의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교회는 언제나 목소리를 높여 이러한 개념들과 다른 모든 급진적인 환원주의적 관점에 반대해 왔다. 이에 맞서서 교회는 신중하게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개인은 자신을 마치 모래알처럼 각기 고립된 존재로 생각하지 말고, 인간 본성의 힘과 그 내적 숙명을 통해 유기적이고 조화로운 상호 관계 안에 결합되어 있음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인간을 단순히 사회 유기체의 한 가지 요소와 분자로만 볼 수는 없다고 단언하고, 따라서 인간의 우월성에 대한 천명을 개인주의적 시각이나 집단주의적 시각과 일치하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126. Christian faith, while inviting that whatever is good and worthy of man should be sought out wherever it may be found (cf. 1 Thes 5:21), “is above and is sometimes opposed to the ideologies, in that it recognizes God, who is transcendent and the Creator, and who, through all the levels of creation, calls on man as endowed with responsibility and freedom”[236].

126. 그리스도교 신앙은 인간에게 좋고 가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어디서든 이를 발견하면 꼭 붙들라고(1테살 5,21 참조) 권유하는 동시에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초월하시고 창조하셨으며 창조의 모든 차원을 통해 자유와 책임을 지닌 인간을 부르신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그러한 이념들을 초월할뿐더러 때로는 반대 입장을 취한다.


The Church's social doctrine strives to indicate the different dimensions of the mystery of man, who must be approached “in the full truth of his existence, of his personal being and also of his community and social being”[237], with special attention so that the value of the human person may be readily perceived.

교회의 사회 교리는 인간 신비의 여러 차원을 지적해 주고자 애쓴다. 인간의 가치를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 인간 실존과 인간 존재, 또 인간 공동체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관한 충만한 진리 안에서 인간에게 접근하여야 한다.





127. Man was created by God in unity of body and soul[238]. “The spiritual and immortal soul is the principle of unity of the human being, whereby it exists as a whole corpore et anima unus as a person. These definitions not only point out that the body, which has been promised the resurrection, will also share in glory. They also remind us that reason and free will are linked with all the bodily and sense faculties. The person, including the body, is completely entrusted to himself, and it is in the unity of body and soul that the person is the subject of his own moral acts”[239].

127. 하느님께서는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진 단일체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영적이고 불멸하는 영혼은 인간의 단일성의 원리이다. 그로써 인간은 일체로,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진 단일체(corpore et anima unus)로 존재한다. 이러한 정의는, 부활을 약속받은 육체가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줄 뿐 아니라, 이성과 자유 의지가 모든 육체적, 감각적 기능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준다. 육체를 포함하는 전 인격체는 인간에게 완전히 맡겨져 있으며 인간이 그 윤리 행위의 주체가 되는 것은 영혼과 육체의 단일성 안에서이다.


128. Through his corporeality man unites in himself elements of the material world; these “reach their summit through him, and through him raise their voice in free praise of the Creator”[240]. This dimension makes it possible for man to be part of the material world, but not as in a prison or in exile. It is not proper to despise bodily life; rather “man ... is obliged to regard his body as good and honourable since God has created it and will raise it up on the last day”[241]. Because of this bodily dimension, however, following the wound of sin, man experiences the rebellion of his body and the perverse inclinations of his heart; he must always keep careful watch over these lest he become enslaved to them and become a victim of a purely earthly vision of life.

128. 인간은 자신의 육체를 통하여 물질세계의 요소들을 자기 안에 결합시킨다. 이러한 요소들은 인간을 통하여 그 정점에 이르며 창조주께 소리 높여 자유로운 찬미를 드린다.” 이러한 차원에서 인간은 물질세계에 갇히거나 유배된 것이 아니라 그 물질세계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육체적 생활을 천시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오히려 반대로 인간은 하느님께 창조되고 마지막 날에 부활할 자기 육체를 좋게 여기고 존중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육체적 차원 때문에 죄로 상처받은 인간은 자기 육체의 반역과 마음의 악한 성향을 체험하게 된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이 육체나 마음의 악한 성향에 사로잡히거나 순전히 세속적인 인생관의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 깊게 경계하여야 한다.


Through his spirituality man moves beyond the realm of mere things and plunges into the innermost structure of reality. When he enters into his own heart, that is, when he reflects on his destiny, he discovers that he is superior to the material world because of his unique dignity as one who converses with God, under whose gaze he makes decisions about his life. In his inner life he recognizes that the person has “a spiritual and immortal soul” and he knows that the person is not merely “a speck of nature or a nameless constituent of the city of man”[242].

인간은 자신의 정신을 통하여 단순한 사물의 영역을 초월하여 실재의 내적 구조 안으로 깊이 들어가 볼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때, 곧 자기 운명에 대하여 성찰할 때, 자신이 물질세계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자기 삶을 결정하고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는 존재로서 유일한 존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내적 생활을 통하여 인격체가 영적인 불멸의 영혼을 지니고 있고 단지 자연의 한 조각이거나 인간 사회의 한 무명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129. Therefore, man has two different characteristics: he is a material being, linked to this world by his body, and he is a spiritual being, open to transcendence and to the discovery of “more penetrating truths”, thanks to his intellect, by which “he shares in the light of the divine mind”[243]. The Church affirms: “The unity of soul and body is so profound that one has to consider the soul to be the ‘form' of the body: i.e., it is because of its spiritual soul that the body made of matter becomes a living, human body; spirit and matter, in man, are not two natures united, but rather their union forms a single nature”[244]. Neither the spiritualism that despises the reality of the body nor the materialism that considers the spirit a mere manifestation of the material do justice to the complex nature, to the totality or to the unity of the human being.

129. 따라서 인간에게는 두 가지 서로 다른 특성이 있다. 인간은 자기 육체를 통하여 이 세상과 유대를 맺는 물질적인 존재이다. 하느님의 지성의 빛을 나누어 받은인간은 자기 지성으로 언제나 더욱 심오한 진리를 발견하고 초월성으로 열려 있는 영적인 존재이다. 교회는 이렇게 단언한다. “영혼과 육체의 단일성은 영혼을 육체의 형상으로 생각해야 할 만큼 심오하다. 말하자면 물질로 구성된 육체가 인간 육체로서 살아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은 영혼 때문이다. 인간 안의 정신과 물질은 결합된 두 개의 본성이 아니라, 그 둘의 결합으로 하나의 단일한 본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육체의 실재를 경시하는 유심론이든 정신을 단지 물질의 발현으로 여기는 유물론이든 인간의 복잡한 본성이나 인간의 전체성, 또는 인간의 단일성을 제대로 나타내지 않고 있다.





a. Open to transcendence / 초월성에 대한 개방


130. Openness to transcendence belongs to the human person: man is open to the infinite and to all created beings. He is open above all to the infinite God because with his intellect and will he raises himself above all the created order and above himself, he becomes independent from creatures, is free in relation to created things and tends towards total truth and the absolute good. He is open also to others, to the men and women of the world, because only insofar as he understands himself in reference to a “thou” can he say “I”. He comes out of himself, from the self-centred preservation of his own life, to enter into a relationship of dialogue and communion with others.

130. 인간은 초월성으로 열려 있다. 인간은 무한한 것과 모든 피조물을 향하여 열려 있다. 무엇보다, 인간은 무한한 것, 곧 하느님을 향하여 열려 있다. 자기 지성과 의지로 모든 창조 질서와 자신을 초월하여 자신을 드높임으로써 피조물과 맺는 관계에서 독립적이고 자유로우며, 완전한 진리와 절대 선을 향하여 나아가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타인,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향하여 열려 있다. 인간은 에 대하여 라고 말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자신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에 인간은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고, 자기 삶만 돌보는 자기중심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친교를 맺는 관계 안으로 들어간다.


The human person is open to the fullness of being, to the unlimited horizon of being. He has in himself the ability to transcend the individual particular objects that he knows, thanks effectively to his openness to unlimited being. In a certain sense the human soul is because of its cognitive dimension all things: “all immaterial things enjoy a certain infiniteness, insofar as they embrace everything, or because it is a question of the essence of a spiritual reality that functions as a model and likeness of everything, as is the case with God, or because it has a likeness to everything or is ‘in act' like the Angels or ‘in potential' like souls”[245].

인간은 존재의 충만함, 존재의 무한한 지평으로 열려 있다. 인간은 실질적으로 무한한 존재에 열려 있어서 자기가 알고 있는 개별적인 개개의 물체들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영혼은 그것의 인식적 차원 때문에 모든 것을 내포한다. 곧 모든 비물질적인 것은 모든 것을 내포하므로 어느 정도의 무한성을 누리기 때문이거나, 하느님의 경우에 그러하듯이 모든 것의 모형이며 모든 것의 모상으로 작용하는 영적 실재의 본질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거나 모든 것과 닮거나 천사와 같이 현 실태이거나 영혼과 같이 가능태이기 때문이다.



b. Unique and unrepeatable / 되풀이 될 수 없는 유일무이함


131. Man exists as a unique and unrepeatable being, he exists as an “I” capable of self-understanding, self-possession and self-determination. The human person is an intelligent and conscious being, capable of reflecting on himself and therefore of being aware of himself and his actions. However, it is not intellect, consciousness and freedom that define the person, rather it is the person who is the basis of the acts of intellect, consciousness and freedom. These acts can even be absent, for even without them man does not cease to be a person.

131. 인간은 되풀이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자신을 이해하고 통제하고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있는 로서 살아간다. 인간은 지성과 의식이 있는 존재이고 자기 자신을 성찰할 능력이 있으므로 자신과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알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지성과 의식과 자유가 인간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지적이고 의식적이며 자유로운 행위를 하게 되는 바탕인 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행위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행위를 하지 않아도 인간은 한 인격체로 계속 존재하기 때문이다.


The human person, must always be understood in his unrepeatable and inviolable uniqueness. In fact, man exists above all as a subjective entity, as a centre of consciousness and freedom, whose unique life experiences, comparable to those of no one else, underlie the inadmissibility of any attempt to reduce his status by forcing him into preconceived categories or power systems, whether ideological or otherwise. This entails above all the requirement not only of simple respect on the part of others, especially political and social institutions and their leaders with regard to every man and woman on the earth, but even more, this means that the primary commitment of each person towards others, and particularly of these same institutions, must be for the promotion and integral development of the person.

인간은 언제나 되풀이될 수 없고 침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이해되어야 한다. 실제로, 인간은 무엇보다도 주관적 존재로서, 의식자유의 중심으로서, 다른 누구의 삶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삶을 체험하므로, 인간을 강압적으로 이념이든 그 무엇이든 기존의 틀이나 권력 체계에 귀속시킴으로써 인간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될 수 없다. 이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 특히 정치 사회 제도와 그 지도자들이 지상의 모든 인간을 존중할 것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모든 인간의 일차적 의무, 특히 정치 사회 제도가 우선해야 할 의무는 인간 증진과 전인적 발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c. Respect for human dignity / 인간 존엄성의 존중


132. A just society can become a reality only when it is based on the respect of the transcendent dignity of the human person. The person represents the ultimate end of society, by which it is ordered to the person: “Hence, the social order and its development must invariably work to the benefit of the human person, since the order of things is to be subordinate to the order of persons, and not the other way around”[246]. Respect for human dignity can in no way be separated from obedience to this principle. It is necessary to “consider every neighbour without exception as another self, taking into account first of all his life and the means necessary for living it with dignity”[247]. Every political, economic, social, scientific and cultural programme must be inspired by the awareness of the primacy of each human being over society[248].

132. 정의로운 사회는 인간의 초월적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할 때에야 비로소 실현된다. 인간은 사회의 궁극적 목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다음과 같은 요구를 받는다. 그러므로 사회 질서와 그 발전은 언제나 인간의 행복을 지향하여야 한다. 사물의 안배는 인간 질서에 종속되어야 하며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은 이 원칙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이웃을 어떠한 예외도 없이 또 하나의 자신으로 여겨야 하고 무엇보다도 이웃의 생활을 고려하여 그 생활을 품위 있게 영위하는 데에 필요한 수단들을 보살펴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과학, 그리고 문화에 대한 모든 계획은 사회에 대한 인간의 우위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133. In no case, therefore, is the human person to be manipulated for ends that are foreign to his own development, which can find complete fulfilment only in God and his plan of salvation: in fact, man in his interiority transcends the universe and is the only creature willed by God for itself[249]. For this reason neither his life nor the development of his thought, nor his good, nor those who are part of his personal and social activities can be subjected to unjust restrictions in the exercise of their rights and freedom.

133. 따라서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은 자기 자신의 발전과 무관한 목적을 위해서 조종당할 수 없다. 인간은 하느님과 그분의 구원 계획 안에서만 완전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실제로 인간은 자기 내면에서 우주를 초월하고 하느님께서 그 자체로 바라신 유일한 피조물이다. 이러한 연유로, 생명, 사고의 발전, 재화, 개인 활동, 사회 활동 등과 관련하여 인간이 권리와 자유를 수행할 때 부당한 제약을 받아서는 안 된다.


The person cannot be a means for carrying out economic, social or political projects imposed by some authority, even in the name of an alleged progress of the civil community as a whole or of other persons, either in the present or the future. It is therefore necessary that public authorities keep careful watch so that restrictions placed on freedom or any onus placed on personal activity will never become harmful to personal dignity, thus guaranteeing the effective practicability of human rights. All this, once more, is based on the vision of man as a person, that is to say, as an active and responsible subject of his own growth process, together with the community to which he belongs.

현재에서든 미래에서든 인간은 일부 공권력이 이른바 사회 공동체 전체의 발전과 타인의 발전을 명분으로 강요하는 경제 사회 정치 계획의 수단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공권력은 자유에 대한 규제나 개인 활동에 대한 의무가 결코 인간의 존엄성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인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인간을 하나의 인격체로, 곧 자기가 속한 공동체와 더불어 성장하는 능동적이고 책임감 있는 주체로 보는 인간관이 자리 잡고 있다.


134. Authentic social changes are effective and lasting only to the extent that they are based on resolute changes in personal conduct. An authentic moralization of social life will never be possible unless it starts with people and has people as its point of reference: indeed, “living a moral life bears witness to the dignity of the person”[250]. It is obviously the task of people to develop those moral attitudes that are fundamental for any society that truly wishes to be human (justice, honesty, truthfulness, etc.), and which in no way can simply be expected of others or delegated to institutions. It is the task of everyone, and in a special way of those who hold various forms of political, judicial or professional responsibility with regard to others, to be the watchful conscience of society and the first to bear witness to civil social conditions that are worthy of human beings.

134. 진정한 사회 변화의 효과와 지속성은 개개인의 행동이 얼마나 확고하게 변화되었는가에 달려있다. 참으로 도덕적인 사회생활은 인간에서 출발하고 인간을 준거로 삼지 않고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실제로, “도덕적인 삶을 실천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증명한다.” 참으로 인간다운 사회(정의롭고 성실하고 정직한 사회)의 기본이 되는 그러한 도덕적 태도를 키우는 일은, 단순히 남에게 기대할 수 있거나 제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명백히 인간이 맡은 과업이다. 모든 사람, 특히 타인에 대하여 정치적으로든 사법적으로든 직업적으로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사회를 지키는 양심이 되고 인간에게 합당한 시민 사회의 조건들을 앞장서서 증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과업이 있다.





a. The value and limits of freedom / 자유의 가치와 한계


135. Man can turn to good only in freedom, which God has given to him as one of the highest signs of his image[251]: “For God has willed that man remain ‘under the control of his own decisions' (Sir 15:14), so that he can seek his Creator spontaneously, and come freely to utter and blissful perfection through loyalty to Him. Hence man's dignity demands that he act according to a knowing and free choice that is personally motivated and prompted from within, neither under blind internal impulse nor by mere external pressure”[252].

135. 인간은 자유 안에서만 선을 지향할 수 있다. 이 자유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보여 주는 탁월한 표징의 하나로 인간에게 베풀어 주신 것이다.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제 의지의 손에’(집회 15,14 참조) 맡겨 두고자 하셨다. 그것은 인간이 자유 의지로 자신의 창조주를 찾아 그분을 따르며 자유로이 충만하고 복된 완전성에 이르도록 바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엄성은 의식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행동하도록 요구한다. 곧 맹목적인 내부 충동이나 순전한 외부 강박 아래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Man rightly appreciates freedom and strives for it passionately: rightly does he desire and must form and guide, by his own free initiative, his personal and social life, accepting personal responsibility for it[253]. In fact, freedom not only allows man suitably to modify the state of things outside of himself, but it also determines the growth of his being as a person through choices consistent with the true good[254]. In this way man generates himself, he is father of his own being[255], he constructs the social order[256].

인간이 자유를 높이 평가하고 이를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곧 자신이 자유로이 주도하여 개인 생활과 사회생활을 이루고 이끌어가며 이에 대한 개인적 책임을 지는 것은 인간의 올바른 바람이며 의무이다. 실제로, 인간은 자유를 통하여 외부 사물들의 상태를 알맞게 바꾸기도 하고, 또 참된 선에 부합하는 선택을 함으로써 한 인격체로 성장해 가게 된다. 인간은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을 생성하고, 자기 존재의 아버지가 되며 사회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


136. Freedom is not contrary to man's dependence as a creature on God[257]. Revelation teaches that the power to decide good and evil does not belong to man but to God alone (cf. Gen 2:16-17). “Man is certainly free, inasmuch as he can understand and accept God's commands. And he possesses an extremely far-reaching freedom, since he can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But his freedom is not unlimited: it must halt before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for it is called to accept the moral law given by God. In fact, human freedom finds its authentic and complete fulfilment precisely in the acceptance of that law”[258].

136. 자유는 인간이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하느님께 의존하는 것에 모순되지 않는다. 선과 악을 결정하는 권능은 인간이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께 속한다는 사실을 계시를 통해 알 수 있다(창세, 2,16-17 참조). “인간은 하느님의 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만큼 자유롭다. 그리고 인간은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따먹을 수 있는 만큼, 드넓게 뻗어나가는 자유를 지니고 있다 하겠다. 그렇지만 그 자유는 무한정이지는 않다. 그것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앞에서 저지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유는 하느님께서 주신 윤리법을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실로 인간 자유는 그 법을 받아들임으로써 진정하고 완전한 완성을 이루게 된다.”


137. The proper exercise of personal freedom requires specific conditions of an economic, social, juridic, political and cultural order that “are too often disregarded or violated. Such situations of blindness and injustice injure the moral life and involve the strong as well as the weak in the temptation to sin against charity. By deviating from the moral law man violates his own freedom, becomes imprisoned within himself, disrupts neighbourly fellowship and rebels against divine truth”[259]. Removing injustices promotes human freedom and dignity: nonetheless, “the first thing to be done is to appeal to the spiritual and moral capacities of the individual and to the permanent need for inner conversion, if one is to achieve the economic and social changes that will truly be at the service of man”[260].

137. 인간이 자유를 올바로 행사하려면 경제, 사회, 사법, 정치, 문화 질서의 특수한 조건들이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들은 너무도 자주 무시되고 침해되고 있다. 이러한 맹목적이고 불의한 상황들은 도덕적 삶을 짓누르며, 사랑을 어기고 죄를 짓도록 강자와 약자를 모두 유혹한다. 인간은 윤리적 규범에서 벗어남으로써 자신의 자유를 손상시키고, 자신을 속박하며, 이웃에 대한 우애를 파괴하고, 하느님의 진리를 거역하게 된다.” 불의가 제거될 때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 증진된다.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 개인의 정신적 도덕적 역량과 끊임없는 내적 회개의 필요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러할 때 참으로 인간에게 봉사하는 경제적 사회적 변혁이 성취될 것이다.”



b. The bond uniting freedom with truth and the natural law / 자유를 진리와 이어 주는 끈, 자연법


138. In the exercise of their freedom, men and women perform morally good acts that are constructive for the person and for society when they are obedient to truth, that is, when they do not presume to be the creators and absolute masters of truth or of ethical norms[261]. Freedom in fact does not have “its absolute and unconditional origin ... in itself, but in the life within which it is situated and which represents for it, at one and the same time, both a limitation and a possibility. Human freedom belongs to us as creatures; it is a freedom which is given as a gift, one to be received like a seed and to be cultivated responsibly”[262]. When the contrary is the case, freedom dies, destroying man and society[263].

138. 진리에 복종할 때, 다시 말해 감히 자신이 진리나 윤리 규범의 창시자나 절대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 모든 사람은 자유의 행사를 통해 개인과 사회에 이바지하는 도덕적으로 선한 행동을 한다. 실제로 자유의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기원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 삶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동시에 삶은 자유가 지닌 한계성과 가능성을 드러낸다. 인간의 자유는 피조물인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자유는 선물로 주어진 것이며, 마치 한 알의 씨처럼 받아들여 책임감을 가지고 키워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자유는 인간과 사회를 파괴하면서 소멸한다.


139. The truth concerning good and evil is recognized in a practical and concrete manner by the judgment of conscience, which leads to the acceptance of responsibility for the good accomplished and the evil committed. “Consequently in the practical judgment of conscience, which imposes on the person the obligation to perform a given act, the link between freedom and truth is made manifest. Precisely for this reason conscience expresses itself in acts of ‘judgment' which reflect the truth about the good, and not in arbitrary ‘decisions'. The maturity and responsibility of these judgments and, when all is said and done, of the individual who is their subject are not measured by the liberation of the conscience from objective truth, in favour of an alleged autonomy in personal decisions, but, on the contrary, by an insistent search for truth and by allowing oneself to be guided by that truth in one's actions”[264].

139. 선과 악에 관한 진리는 사람이 행한 선과 악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하는 양심의 판단을 통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인식되며, 따라서 인간에게 어떤 행위를 하도록 명하는 양심의 실천적 판단에서 자유와 진리의 관계가 드러나게 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양심은 판단이라는 행위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것은 자의적인 결정이 아닌 선에 대한 진리를 보여 준다. 이 판단들의 성숙성과 책임성은 - 결론적으로 말해 그 주체인 개인의 성숙성과 책임성은 - 개인이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이른바 자율성을 누리기 위해 양심이 객관적 진리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확고히 진리를 추구하고 그 진리에 따라 행동하는지로 측정된다.”


140. The exercise of freedom implies a reference to a natural moral law, of a universal character, that precedes and unites all rights and duties[265]. The natural law “is nothing other than the light of intellect infused within us by God. Thanks to this, we know what must be done and what must be avoided. This light or this law has been given by God to creation”[266]. It consists in the participation in his eternal law, which is identified with God himself[267]. This law is called “natural” because the reason that promulgates it is proper to human nature. It is universal, it extends to all people insofar as it is established by reason. In its principal precepts, the divine and natural law is presented in the Decalogue and indicates the primary and essential norms regulating moral life[268]. Its central focus is the act of aspiring and submitting to God, the source and judge of everything that is good, and also the act of seeing others as equal to oneself. The natural law expresses the dignity of the person and lays the foundations of the person's fundamental duties[269].

140. 자유의 행사는 모든 권리와 의무에 앞서고 이들을 결합하는, 보편적 특성을 지닌 윤리적 자연법에 의거한다. 자연법은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넣어 주신 지성의 빛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빛을 통해서 해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을 인식한다. 이 빛, 곧 이 법은 하느님께서 창조 때에 인간에게 주신 것이다.” 하느님과 동일시되는 영원 법에 참여하는 가운데 자연법이 성립한다. 이 법을 자연법이라 부르는 이유는, 이 법을 선포하는 이성이 인간 본성에 고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법은 이성에 의해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것이다. 신법인 자연법의 근본 원리는 십계명에 나타나 있으며, 도덕적 삶을 규정하는 중요하고 핵심적인 규범이다. 선한 모든 것의 원천이며 심판관이신 하느님을 열망하고 그분께 복종하는 행위, 또한 다른 사람을 자신처럼 대하는 행위에 십계명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자연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표현하고 인간의 기본 의무들의 기초가 된다.


141. In the diversity of cultures, the natural law unites peoples, enjoining common principles. Although its application may require adaptations to the many different conditions of life according to place, time and circumstances,[270] it remains immutable “under the flux of ideas and customs and supports their progress ... Even when it is rejected in its very principles, it cannot be destroyed or removed from the heart of man. It always rises again in the life of individuals and societies”[271].

141. 자연법은 다양한 문화 안에 공통 원칙들을 제시하여 민족들을 결합시킨다. 자연법은 장소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생활 조건에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연법은 불변하고, “사상과 풍속의 흐름 속에서도 존속하며, 그 사상과 풍속의 진보를 뒷받침한다. …… 설령 자연법의 원리들을 부인한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그것을 파기할 수는 없으며, 인간의 마음에서 제거해 버릴 수도 없다. 자연법은 개인 생활과 사회생활 안에서 언제나 되살아난다.”


Its precepts, however, are not clearly and immediately perceived by everyone. Religious and moral truths can be known “by everyone with facility, with firm certainty and without the admixture of error”[272] only with the help of Grace and Revelation. The natural law offers a foundation prepared by God for the revealed law and Grace, in full harmony with the work of the Spirit[273].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연법의 규범들을 명료하고 즉각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어렵지 않게, 흔들리지 않는 확실성을 가지고, 오류의 혼동 없이 종교적이며 도적적인 진리들을 인식할 수 있으려면 은총과 계시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연법은 성령의 활동에 완전히 일치한 가운데 하느님께서 계시된 법과 은총을 위해 마련하신 토대를 제공해 준다.


142. The natural law, which is the law of God, cannot be annulled by human sinfulness[274]. It lays the indispensable moral foundation for building the human community and for establishing the civil law that draws its consequences of a concrete and contingent nature from the principles of the natural law[275]. If the perception of the universality of the moral law is dimmed, people cannot build a true and lasting communion with others, because when a correspondence between truth and good is lacking, “whether culpably or not, our acts damage the communion of persons, to the detriment of each”[276]. Only freedom rooted in a common nature, in fact, can make all men responsible and enable them to justify public morality. Those who proclaim themselves to be the sole measure of realities and of truth cannot live peacefully in society with their fellow men and cooperate with them[277].

142. 하느님의 법인 자연법은 인간의 죄악으로 지워질 수 없다. 자연법은 인간 공동체 건설과 국법 수립에 필수적인 도덕적 토대가 된다. 국법은 자연법의 원리들에서 구체적이고 우연적인 특성을 지닌 결과들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도덕률의 보편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 없이 인간은 타인과 참되고 지속적인 친교를 쌓을 수 없다. 진리와 선이 완전히 일치되지 않을 때 탓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법을 모르고 있을 때에 우리 행위는 개인을 해치고 인류의 친교에 손상을 입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류의 공통 본성 안에 뿌리박고 있는 자유만이 모든 인간에게 책임감을 형성할 수 있고 공중 도덕을 정당화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실재들과 진리의 유일한 척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회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 수 없고 그들과 협력할 수 없다.


143. Freedom mysteriously tends to betray the openness to truth and human goodness, and too often it prefers evil and being selfishly closed off, raising itself to the status of a divinity that creates good and evil: “Although he was made by God in a state of holiness, from the very onset of his history man abused his liberty, at the urging of the Evil One. Man set himself against God and sought to attain his goal apart from God ... Often refusing to acknowledge God as his beginning, man has disrupted also his proper relationship to his own ultimate goal as well as his whole relationship toward himself and others and all created things”[278]. Human freedom needs therefore to be liberated. Christ, by the power of his Paschal Mystery, frees man from his disordered love of self[279], which is the source of his contempt for his neighbour and of those relationships marked by domination of others. Christ shows us that freedom attains its fulfilment in the gift of self[280]. By his sacrifice on the cross, Jesus places man once more in communion with God and his neighbour.

143. 불가사의하게도 자유는 진리와 인간 선에 열려 있기를 거부하고, 자주 악을 선호하며 이기적으로 자기 안에만 갇혀 있거나 스스로를 선과 악을 창조하는 신적 지위로 격상시키는 경향이 있다. 하느님께서 의롭게 창조하신 인간은 그러나 악의 유혹에 넘어가 역사의 시초부터 제 자유를 남용하여, 하느님께 반항하고 하느님을 떠나서 제 목적을 달성하려 하였다. …… 인간은 흔히 하느님을 자기 자신의 근원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며, 자신의 궁극 목적을 지향하는 당연한 질서마저 무너뜨리고 동시에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과 이루는 조화를 깨트려 버렸다.” 따라서 인간의 자유는 해방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파스카 신비의 힘으로, 이웃을 멸시하고 다른 이들을 지배하려는 관계의 근원이 되는 무질서한 자기애의 굴레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유란 자신을 내어 줌으로써 완전해진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 희생 제사를 통하여 다시 한 번 인간이 하느님과 이웃과 친교를 맺게 하신다.





144. “God shows no partiality” (Acts 10:34; cf. Rom 2:11; Gal 2:6; Eph 6:9), since all people have the same dignity as creatures made in his image and likeness[281]. The Incarnation of the Son of God shows the equality of all people with regard to dignity: “There is neither Jew nor Greek, there is neither slave nor free, there is neither male nor female; for you are all one in Christ Jesus” (Gal 3:28; cf. Rom 10:12; 1 Cor 12:13, Col 3:11).

144.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으신다”(사도 10,34; 로마 2,11; 갈라 2,6; 에페 6,9 참조). 모든 사람은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피조물이니만큼 동등한 존엄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하느님 아드님의 강생은 모든 사람이 동등한 존엄성을 지녔음을 보여 준다.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갈라 3,28; 로마 10,12; 1코린 12,13; 골로 3,11 참조).


Since something of the glory of God shines on the face of every person, the dignity of every person before God is the basis of the dignity of man before other men[282]. Moreover, this is the ultimate foundation of the radical equality and brotherhood among all people, regardless of their race, nation, sex, origin, culture, or class.

하느님의 영광이 어느 정도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비치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 모든 사람이 지닌 존엄성은 인간이 다른 사람 앞에서 갖는 존엄성의 기초가 된다. 또한 이것은 인종, 국가, 성별, 출신, 문화, 계급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 사이의 근본적인 평등과 우애의 궁극적인 바탕이다.


145. Only the recognition of human dignity can make possible the common and personal growth of everyone (cf. Jas 2:1-9). To stimulate this kind of growth it is necessary in particular to help the least, effectively ensuring conditions of equal opportunity for men and women and guaranteeing an objective equality between the different social classes before the law[283].

145. 인간의 존엄성을 인식할 때에 비로소 모든 사람은 함께 또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야고 2,1-9 참조). 이러한 성장을 촉진하려면, 남자와 여자에게 균등한 기회 조건들을 실제적으로 보장하고, 여러 사회 계층이 법 앞에서 객관적으로 평등하도록 보장하면서, 특별히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Also in relations between peoples and States, conditions of equality and parity are prerequisites for the authentic progress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284]. Despite the steps taken in this direction, it must not forget that there still exist many inequalities and forms of dependence[285].

민족들 간의 관계에서나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국제 공동체가 진정한 발전을 이루려면 평등과 균형의 조건들이 미리 조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방향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불평등과 종속 형태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Together with equality in the recognition of the dignity of each person and of every people there must also be an awareness that it will be possible to safeguard and promote human dignity only if this is done as a community, by the whole of humanity. Only through the mutual action of individuals and peoples sincerely concerned for the good of all men and women can a genuine universal brotherhood be attained[286]; otherwise, the persistence of conditions of serious disparity and inequality will make us all poorer.

각 개인과 모든 사람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에는, 만민 평등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온 인류가 한 공동체로 일치단결 할 때에만 인간 존엄성을 수호하고 신장할 수 있다는 인식도 있어야 한다. 모든 인간의 선을 진심으로 위하는 개개인과 민족들의 상호 활동을 통해서만 진정한 보편적 형제애가 이루어질 수 있다. 심각한 불균형과 불평등의 조건들이 존속하는 한 우리는 모두 더 가난해질 것이다.


146. “Male” and “female” differentiate two individuals of equal dignity, which does not however reflect a static equality, because the specificity of the female is different from the specificity of the male, and this difference in equality is enriching and indispensable for the harmony of life in society: “The condition that will assure the rightful presence of woman in the Church and in society is a more penetrating and accurate consideration of the anthropological foundation for masculinity and femininity with the intent of clarifying woman's personal identity in relation to man, that is, a diversity yet mutual complementarily, not only as it concerns roles to be held and functions to be performed, but also, and more deeply, as it concerns her make-up and meaning as a person”[287].

146. ‘남자여자는 동등한 존엄성을 지닌 다른 두 개별 인간이다. 그러나 남녀의 평등한 존엄성이 단지 동등성을 나타내는 것만은 아니다. 여성의 특수성은 남성의 특수성과 다르고, 남녀의 평등 안에 자리한 이러한 차이점은 조화로운 사회 생활을 영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고 이를 더욱 풍요롭게 하기 때문이다. 교회와 사회 안에서 여성의 올바른 지위를 보장하기 위한 하나의 조건은 남성과 여성의 인간학적 토대를 더욱 깊고 정확하게 통찰하는 것이다. 그러한 고찰은 남성과의 관계, 곧 차이성과 상호 보완성 안에서 여성의 인격적 정체성을 명확히 밝히자는 것이다. 그러한 정체성은 여성의 역할 유지와 임무 수행에 관계될 뿐만 아니라 더욱 근본적으로는 인간으로서 여성의 인격 구조와 그 의미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147. Woman is the complement of man, as man is the complement of woman: man and woman complete each other mutually, not only from a physical and psychological point of view, but also ontologically. It is only because of the duality of “male” and “female” that the “human” being becomes a full reality. It is the “unity of the two”[288], or in other words a relational “uni-duality”, that allows each person to experience the interpersonal and reciprocal relationship as a gift that at the same time is a mission: “to this ‘unity of the two' God has entrusted not only the work of procreation and family life, but the creation of history itself”[289]. “The woman is ‘a helper' for the man, just as the man is ‘a helper' for the woman!”[290]: in the encounter of man and woman a unitary conception of the human person is brought about, based not on the logic of self-centredness and self-affirmation, but on that of love and solidarity.

147. 남자가 여자의 완성인 것처럼 여자는 남자의 완성이다. 곧 남자와 여자는 육체적 정신적 측면뿐만 아니라 존재론적으로도 서로가 서로를 완전하게 해 준다. 인간존재는 오로지 남자여자의 이원성 때문에 하나의 완전한 실재가 된다. “둘의 합일체, 또는 다른 말로 단일한 이원성”(uni-duality)의 관계 덕분에, 각 개인은 사람간의 상호 관계를 하나의 선물인 동시에 사명으로 인식할 수 있다. “둘의 합일에 하느님께서는 출산과 가정생활뿐 아니라, 역사를 창조하는 과업을 맡기신다.”남자가 여자의 거들 짝이듯 여자는 남자의 거들 짝이다!” 남자와 여자의 만남에서, 자기 본위나 독단의 논리가 아니라 사랑과 연대의 논리를 바탕으로 한, 인간에 대한 단일한 개념이 생겨난다.


148. Persons with disabilities are fully human subjects, with rights and duties: “in spite of the limitations and sufferings affecting their bodies and faculties, they point up more clearly the dignity and greatness of man”[291]. Since persons with disabilities are subjects with all their rights, they are to be helped to participate in every dimension of family and social life at every level accessible to them and according to their possibilities.

148. 장애인들은 권리와 의무를 지닌 온전한 인간 주체이다. 그들의 육체와 능력에 영향을 주는 어떠한 제약과 고통에도 그들은 더욱 분명히 인간의 존엄과 위대함을 드러낸다.” 장애인들도 모든 권리를 가진 주체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 능력에 따라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 최대한 참여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아야 한다.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need to be promoted with effective and appropriate measures: “It would be radically unworthy of man, and a denial of our common humanity, to admit to the life of the community, and thus admit to work, only those who are fully functional. To do so would be to practise a serious form of discrimination, that of the strong and healthy against the weak and sick”[292]. Great attention must be paid not only to the physical and psychological work conditions, to a just wage, to the possibility of promotion and the elimination of obstacles, but also to the affective and sexual dimension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They too need to love and to be loved, they need tenderness, closeness and intimacy”[293], according to their capacities and with respect for the moral order, which is the same for the non-handicapped and the handicapped alike.

실질적이고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여 장애인의 권리를 증진하여야 한다. 기능이 온전한 사람들에게만 공동체 생활을 허락하여 노동을 하게 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부당하며, 모든 사람의 공통된 인간성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는 강하고 건강한 사람이 약하고 병든 사람에게 심각한 차별 대우를 하는 것이 된다.” 장애인들의 육체적 정신적 노동 조건, 정당한 임금, 승진 가능성, 그리고 각종 장애 철폐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장애인들의 정서적 차원과 성적 차원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그리고 도덕 질서를 존중하는 가운데,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하며, 애정과 관심과 친밀감이 필요하다.”





149. The human person is essentially a social being [294] because God, who created humanity, willed it so[295]. Human nature, in fact, reveals itself as a nature of a being who responds to his own needs. This is based on a relational subjectivity, that is, in the manner of a free and responsible being who recognizes the necessity of integrating himself in cooperation with his fellow human beings, and who is capable of communion with them on the level of knowledge and love. “A society is a group of persons bound together organically by a principle of unity that goes beyond each one of them. As an assembly that is at once visible and spiritual, a society endures through time: it gathers up the past and prepares for the future”[296].

149.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존재이다. 인류의 창조주 하느님께서 이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간 본성은 자기 욕구에 부응하는 존재의 본성을 드러낸다. 이것은 관계적 주관성을 바탕으로 한다. , 인간은 자유와 책임을 지닌 존재로서 동료 인간과 협력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고, 그들과 지식과 사랑의 친교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사회는 인간 개개인을 초월하는 일치의 원리에 따라 유기적으로 연결된 인간의 총체이다. 가시적이며 동시에 정신적 집합체인 사회는 시간 안에 존속한다. 사회는 과거를 이어받아 미래를 준비한다.”


It is therefore necessary to stress that community life is a natural characteristic that distinguishes man from the rest of earthly creatures. Social activity carries in itself a particular sign of man and of humanity that of a person at work within a community of persons: this is the sign that determines man's interior traits and in a sense constitutes his very nature[297]. This relational characteristic takes on, in the light of faith, a more profound and enduring meaning. Made in the image and likeness of God (cf. Gen 1:26), and made visible in the universe in order to live in society (cf. Gen 2:20,23) and exercise dominion over the earth (cf. Gen 1:26,28- 30), the human person is for this reason called from the very beginning to life in society: “God did not create man as a ‘solitary being' but wished him to be a 'social being'. Social life therefore is not exterior to man: he can only grow and realize his vocation in relation with others”[298].

따라서 인간을 지상의 다른 피조물과 구분하는 특성 가운데 하나가 공동체 생활이라고 강조할 필요가 있다. 사회 활동은 인간 공동체 안에서 활동하는 한 개인의 특수한 표징을 담고 있다. 곧 이것은 인간의 내적 성향들을 결정짓고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본성 자체를 이루는 표지이다. 이러한 관계의 특성은 신앙에 비추어 볼 때 더욱 심오하고 지속적인 의미를 띤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만들어지고(창세 1,26 참조), 사회 안에서 살아가고(창세 2,20.23 참조) 땅을 지배하도록(창세 1,26.28-30 참조) 세상에 나타난 인간은 이러한 이유로 태초부터 사회 안에서 살아가도록 부름 받았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고립된 존재로 창조하시지 않았으며, 오직 사회적 존재가 되기를 바라셨다. 그러므로 사회생활이란 인간에게 외부적인 것이 아니며, 인간은 오직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만 성장할 수 있고 또 자신의 사명을 실현할 수 있다.”


150. The social nature of human beings does not automatically lead to communion among persons, to the gift of self. Because of pride and selfishness, man discovers in himself the seeds of asocial behaviour, impulses leading him to close himself within his own individuality and to dominate his neighbour[299]. Every society worthy of the name can be sure that it stands in the truth when all of its members, thanks to their ability to know what is good, are able to pursue it for themselves and for others. It is out of love for one's own good and for that of others that people come together in stable groups with the purpose of attaining a common good. The different human societies also must establish among themselves relationships of solidarity, communication and cooperation, in the service of man and the common good[300].

150. 인간의 사회적 본성이 자동적으로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람들 사이의 친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만과 이기심 때문에, 인간은 자신 안에 반사회적 행위의 씨앗이 있음을 발견하고, 자신의 개인적 성향 안에 갇혀 있으려 하고 자기 이웃을 지배하려는 충동을 느낀다. 모든 참다운 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선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바탕으로 자신과 이웃을 위해 선을 추구할 때 진리 편에 서게 된다. 자신의 선과 이웃의 선을 사랑함을 통해 인간은 공동선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안정된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또한 여러 인간 사회도 인간과 공동선에 봉사하며 연대와 대화와 협력의 상호 관계를 수립하여야 한다.


151. The social nature of human beings is not uniform but is expressed in many different ways. In fact, the common good depends on a healthy social pluralism. The different components of society are called to build a unified and harmonious whole, within which it is possible for each element to preserve and develop its own characteristics and autonomy. Some components such as the family, the civil community and the religious community respond more immediately to the intimate nature of man, while others come about more on a voluntary basis. “To promote the participation of the greatest number in the life of a society, the creation of voluntary associations and institutions must be encouraged ‘on both national and international levels, which relate to economic and social goals, to cultural and recreational activities, to sport, to various professions, and to political affairs'. This ‘socialization' also expresses the natural tendency for the sake of attaining objectives that exceed individual capacities. It develops the qualities of the person, especially the sense of initiative and responsibility, and helps guarantee his rights”[301].

151. 인간의 사회적 본성은 단일한 형태가 아니라 여러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다. 실제로, 공동선은 건전한 사회 다원주의에 의존한다. 사회를 형성하는 여러 요소들은 각자가 그 안에서 자신의 특성과 자율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를 이루어야 한다. 가족, 국가 공동체, 종교 공동체와 같은 요소들은 인간의 본성에 더욱 직접적으로 반응하고 이와 다른 요소들은 자발적인 토대 위에서 더 잘 형성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생활에 참여하도록 돕기 위해서는, ‘한 국가 안에서나 또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경제, 사회, 문화, 오락, 체육, 직업, 정치 등의 목적으로세워지는 자발적인 단체와 기구들을 장려하여야 한다. 이 같은 사회화는 또한 개인의 능력을 초월하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서로 연합하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자연적인 경향이기도 하다. 이 사회화는 인간의 장점들을 발전시키고, 특히 그 자발성과 책임감을 발달시킨다. 사회화는 인권을 지키도록 도와준다.”






a. The value of human rights / 인권의 가치


152. The movement towards the identification and proclamation of human rights is one of the most significant attempts to respond effectively to the inescapable demands of human dignity[302]. The Church sees in these rights the extraordinary opportunity that our modern times offer, through the affirmation of these rights, for more effectively recognizing human dignity and universally promoting it as a characteristic inscribed by God the Creator in his creature[303]. The Church's Magisterium has not failed to note the positive value of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adopted by the United Nations on 10 December 1948, which Pope John Paul II defined as “a true milestone on the path of humanity's moral progress”[304].

152. 인권을 확인하고 선포하려는 운동은 인간 존엄성의 피할 수 없는 요구에 실질적으로 부응하려는 가장 중요한 시도들 가운데 하나이다. 교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더욱 실질적으로 인식하고, 인간 존엄성이 창조주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새겨주신 특성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데에 인권 주장이야 말로 현대가 제공해 준 훌륭한 기회라고 본다. 교회 교도권은 언제나 19481210일 국제연합이 채택한 세계 인권 선언의 긍정적인 가치를 주목해 왔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를 인류의 도덕적 진보의 도정에서 진정한 이정표라고 정의하였다.


153. In fact, the roots of human rights are to be found in the dignity that belongs to each human being[305]. This dignity, inherent in human life and equal in every person, is perceived and understood first of all by reason. The natural foundation of rights appears all the more solid when, in

light of the supernatural, it is considered that human dignity, after having been given by God and having been profoundly wounded by sin, was taken on and redeemed by Jesus Christ in his incarnation, death and resurrection[306].

153. 실제로, 인권은 인간 각자가 지닌 존엄성에 뿌리내리고 있다. 인간 생명에 내재되어 있고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이 존엄성은 무엇보다도 이성으로 파악되고 이해된다. 하느님께서 부여하셨으나 인간의 죄로 깊이 상처받은 인간의 존엄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다시 회복되었다는 초자연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인권의 자연적 토대는 더욱 확고한 것으로 드러난다.


The ultimate source of human rights is not found in the mere will of human beings[307], in the reality of the State, in public powers, but in man himself and in God his Creator. These rights are “universal, inviolable, inalienable”[308]. Universal because they are present in all human beings, without exception of time, place or subject. Inviolable insofar as “they are inherent in the human person and in human dignity”[309] and because “it would be vain to proclaim rights, if at the same time everything were not done to ensure the duty of respecting them by all people, everywhere, and for all people”[310]. Inalienable insofar as “no one can legitimately deprive another person, whoever they may be, of these rights, since this would do violence to their nature”[311].

인권의 궁극적인 원천은, 인간의 단순한 의지나, 국가라는 실재나, 공권력이 아니라, 바로 인간 자체에서 그리고 그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인권은 보편적이고 침해할 수 없고 양도할 수 없다.” 인권은 시대나 장소나 그 주체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이 지니는 것이므로 보편적인 권리이다. “그 권리들은 인간과 인간 존엄에 내재되어 있고모든 사람이 모든 장소에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그 권리들을 존중하여야 하는 의무를 확실히 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권리들을 선포하는 것은 헛된 일이기 때문에 침해할 수 없는 권리이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 권리들을 정당하게 빼앗을 수 없다. 그러한 행위는 인간 본성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다.


154. Human rights are to be defended not only individually but also as a whole: protecting them only partially would imply a kind of failure to recognize them. They correspond to the demands of human dignity and entail, in the first place, the fulfilment of the essential needs of the person in the material and spiritual spheres. “These rights apply to every stage of life and to every political, social, economic and cultural situation. Together they form a single whole, directed unambiguously towards the promotion of every aspect of the good of both the person and society ... The integral promotion of every category of human rights is the true guarantee of full respect for each individual right”.[312] Universality and indivisibility are distinctive characteristics of human rights: they are “two guiding principles which at the same time demand that human rights be rooted in each culture and that their juridical profile be strengthened so as to ensure that they are fully observed”[313].

154. 인권은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수호되어야 한다. 부분적인 인권 수호는 인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권은 인간 존엄성의 요구에 해당하는 것이고, 가장 먼저 물질적 정신적인 면에서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과 관련된다. “이 권리들은 인생의 모든 단계와 모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상황에 적용된다. 이 권리들은 다 함께 단일한 전체를 형성하면서 명백히 인간과 사회의 선을 모든 측면에서 증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 모든 범주의 인권을 온전히 증진하는 것은 참으로 개별 인권에 대한 철저한 존중을 보장하는 것이다.” 인권의 두드러진 특징인 보편성과 불가분성은 모든 문화 속에 인권이 뿌리내리게 하는 동시에 인권의 온전한 준수를 보장하도록 법적 장치의 강화를 요구하는 두 가지 지도 원리이다.”



b. The specification of rights / 권리의 구체적 종류


155. The teachings of Pope John XXIII,[314] the Second Vatican Council,[315] and Pope Paul VI [316] have given abundant indication of the concept of human rights as articulated by the Magisterium. Pope John Paul II has drawn up a list of them in the Encyclical Centesimus Annus: “the right to life, an integral part of which is the right of the child to develop in the mother's womb from the moment of conception; the right to live in a united family and in a moral environment conducive to the growth of the child's personality; the right to develop one's intelligence and freedom in seeking and knowing the truth; the right to share in the work which makes wise use of the earth's material resources, and to derive from that work the means to support oneself and one's dependents; and the right freely to establish a family, to have and to rear children through the responsible exercise of one's sexuality. In a certain sense, the source and synthesis of these rights is religious freedom, understood as the right to live in the truth of one's faith and in conformity with one's transcendent dignity as a person”[317].

155. 교황 요한 23세와2차 바티칸 공의회와 교황 바오로 6세의 가르침들은 교도권에서 단언한 인권의 개념을 충분히 제시하였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백주년에서 이를 열거하였다. “그 권리 중에는 생명이 잉태된 후부터 모체 내에서 발육할 수 있는 권리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생명에 대한 권리, 일치된 가정에서 그리고 인격의 발전에 적합한 장소에서 권리, 진리 추구와 인식을 통하여 자신의 지성과 자유를 발전시킬 권리, 그 외에 지상의 물질 재화를 올바르게 취득하여 자신과 식구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동할 권리, 끝으로 자유롭게 가정을 이루고 책임 있는 성생활을 함으로써 자녀를 낳고 기를 권리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권리들의 원천이며 종합적 이해는, 자기 신앙의 진리 안에서 살, 그리고 인간으로서 자신의 초월적 존엄성에 따라 살 권리로 이해되는 종교적 자유이다.”


The first right presented in this list is the right to life, from conception to its natural end,[318] which is the condition for the exercise of all other rights and, in particular, implies the illicitness of every form of procured abortion and of euthanasia.[319] Emphasis is given to the paramount value of the right to religious freedom: “all men are to be immune from coercion on the part of individuals or of social groups and of any human power, in such wise that no one is to be forced to act in a manner contrary to his own beliefs, whether privately or publicly, whether alone or in association with others, within due limits”.[320] The respect of this right is an indicative sign of “man's authentic progress in any regime, in any society, system or milieu”[321].

이 목록에 제시된 첫 번째 권리는 임신[受精]된 순간부터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지닌 생명권이다. 생명권은 다른 모든 권리의 행사를 위한 조건이고 특히 온갖 형태의 의도된 낙태와 안락사가 불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 자유의 권리가 지닌 탁월한 가치를 강조하여야 한다. 종교 자유는 모든 인간이 개인이나 사회단체의 강제, 온갖 인간 권력의 강제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곧 종교 문제에서 자기의 양심을 거슬러 행동하도록 강요받지 않아야 하고, 또한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개인으로든 집단으로든, 정당한 범위 안에서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데 방해받지 않아야 한다.” 이 권리에 대한 존중은 어느 정권, 어느 사회, 어느 체제와 환경에서도 그곳에 진정한 인간의 진보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표지 가운데 하나이다.



c. Rights and duties / 권리와 의무


156. Inextricably connected to the topic of rights is the issue of the duties falling to men and women, which is given appropriate emphasis in the interventions of the Magisterium. The mutual complementarities between rights and duties they are indissolubly linked are recalled several times, above all in the human person who possesses them.[322] This bond also has a social dimension: “in human society to one man's right there corresponds a duty in all other persons: the duty, namely, of acknowledging and respecting the right in question”.[323] The Magisterium underlines the contradiction inherent in affirming rights without acknowledging corresponding responsibilities. “Those, therefore, who claim their own rights, yet altogether forget or neglect to carry out their respective duties, are people who build with one hand and destroy with the other”.[324]

156. 권리에 대한 논의는 반드시 사람들이 지켜야 할 의무에 대한 문제로 이어지기 마련이고, 교도권의 문서들은 이러한 점을 적절히 강조하고 있다. 권리와 의무의 불가분적인 상호보완성을 무엇보다도 이 권리와 의무를 지닌 인간에게 자주 상기시켜야 한다. 이러한 유대에도 사회적 차원이 있다. “인간 사회에서 개인의 권리는 다른 사람들의 의무에 해당한다. , 그런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는 의무이다.” 교도권은 권리에 수반되는 책임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모순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그에 부과된 의무들을 잊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자들은, 한편으로는 집을 지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파괴하는 위험한 행동을 하는 자들이다.”



d. Rights of peoples and nations / 민족과 국가의 권리


157. The field of human rights has expanded to include the rights of peoples and nations: [325] in fact, “what is true for the individual is also true for peoples”.[326] The Magisterium points out that international law “rests upon the principle of equal respect for States, for each people's right to self-determination and for their free cooperation in view of the higher common good of humanity”.[327] Peace is founded not only on respect for human rights but also on respect for the rights of peoples, in particular the right to independence.[328]

157. 인권의 영역은 확장되어 민족과 국가의 권리까지도 포함한다. 실제로 개인에게 해당되는 진리는 인간 집단에도 역시 해당된다.” 교도권은 국제법이 각 국가와 각 민족의 자결권, 인류의 더 높은 공동선을 위한 자유로운 협력에 관한 공평한 존중의 원칙에 입각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평화는 인권 존중뿐만 아니라 민족들의 권리, 특히 자주 독립권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한다.


The rights of nations are nothing but “‘human rights' fostered at the specific level of community life”.[329] A nation has a “fundamental right to existence”, to “its own language and culture, through which a people expresses and promotes ... its fundamental spiritual ‘sovereignty”', to “shape its life according to its own traditions, excluding, of course, every abuse of basic human rights and in particular the oppression of minorities”, to “build its future by providing an appropriate education for the younger generation”.[330] The international order requires a balance between particularity and universality, which all nations are called to bring about, for their primary duty is to live in a posture of peace, respect and solidarity with other nations.

국가의 권리는 다름 아닌 공동체 생활의 특수한 차원에서 촉진되는 인권이다.” 한 국가의 기본적인 생존권에는 당연히 자국의 언어와 문화를 보전할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 언어와 문화를 통해서 한 민족은 그 민족 고유의 정신적 주권을 표현하고 증진한다. …… 모든 국가는 젊은 세대에게 적절한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그 국가의 미래를 건설할 권리가 있다.” 국제 질서는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의 균형을 요구하고, 모든 국가는 이러한 균형을 실현하여야 한다. 국가의 첫 번째 의무는 다른 국가들과 더불어 평화와 존중과 연대의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다.



e. Filling in the gap between the letter and the spirit / 말 자체와 그 말이 나타내는 정신 사이의 간격을 메우기


158. The solemn proclamation of human rights is contradicted by a painful reality of violations, wars and violence of every kind, in the first place, genocides and mass deportations, the spreading on a virtual worldwide dimension of ever new forms of slavery such as trafficking in human beings, child soldiers, the exploitation of workers, illegal drug trafficking, prostitution. “Even in countries with democratic forms of government, these rights are not always fully respected”.[331]

158. 인권에 대한 장엄한 선포는 인권이 침해받는 가슴 아픈 현실과 모순되는 것이다. 곧 전쟁과 각종 폭력을 비롯한 집단 학살과 집단 추방, 그리고 인신 매매, 소년병, 노동 착취, 불법 마약 거래, 매매춘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노예화가 전 세계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주의가 성행하는 나라들에서도 그러한 권리들이 언제나 완전하게 존중되는 것은 아니다.”


Unfortunately, there is a gap between the “letter” and the “spirit” of human rights,[332] which can often be attributed to a merely formal recognition of these rights. The Church's social doctrine, in consideration of the privilege accorded by the Gospel to the poor, repeats over and over that “the more fortunate should renounce some of their rights so as to place their goods more generously at the service of others” and that an excessive affirmation of equality “can give rise to an individualism in which each one claims his own rights without wishing to be answerable for the common good”.[333]

불행히도, 인권이라는 '자체와 그것이 나타내는 정신사이에는 간격이 있어서, 인권을 그저 형식적으로 인정해 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교회의 사회 교리는 복음에 나타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권을 고려하여 남보다 잘사는 사람들은 자기 재산을 남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너그러이 일정한 자기 권리를 양보해야 하고또한 지나친 평등 주장은 각자가 공동선에 대한 책임을 망각하고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개인주의에 떨어지기 쉽다.”고 되풀이하여 말한다.


159. The Church, aware that her essentially religious mission includes the defence and promotion of human rights,[334] “holds in high esteem the dynamic approach of today which is everywhere fostering these rights”.[335] The Church profoundly experiences the need to respect justice [336] and human rights [337] within her own ranks.

159. 교회는 근본적으로 인권의 수호와 증진이 종교적 사명에 포함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 권리를 어디에서나 증진하는 현대의 힘찬 움직임을 높이 평가한다.” 교회는 자체 내에서도 정의와 인권을 존중하여야 할 필요성을 깊이 체험한다.


This pastoral commitment develops in a twofold direction: in the proclamation of the Christian foundations of human rights and in the denunciation of the violations of these rights.[338] In any event, “proclamation is always more important than denunciation, and the latter cannot ignore the former, which gives it true solidity and the force of higher motivation”.[339] For greater effectiveness, this commitment is open to ecumenical cooperation, to dialogue with other religions, to all appropriate contacts with other organizations, governmental and non-governmental, at the national and international levels. The Church trusts above all in the help of the Lord and his Spirit who, poured forth into human hearts, is the surest guarantee for respecting justice and human rights, and for contributing to peace. “The promotion of justice and peace and the penetration of all spheres of human society with the light and the leaven of the Gospel have always been the object of the Church's efforts in fulfilment of the Lord's command”.[340]

이러한 사목적 투신은 인권의 그리스도교적 근거를 선포하고, 인권 침해를 단죄하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다. 어떠한 경우에도, “선포단죄보다 언제나 더 중요하며, 후자는 전자를 무시한 채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선포야말로 참다운 연대성을 간직하고 더 고상한 동기에서 온 힘을 갖추고 있는 까닭이다.” 이러한 투신이 더 큰 효과를 거두려면, 교회 일치를 위한 협력, 타종교와의 대화, 국가와 국제적 차원에서, 다른 정부나 비정부 기관들과 갖는 모든 적절한 교류에 열려 있어야 한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주님과 성령의 도우심에 의존한다. 주님께서 인간 마음에 부어주신 성령께서는 정의와 인권을 존중하고 평화에 이바지하도록 가장 확실하게 보장해 주시는 분이시다.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고 인간 사회의 모든 분야에 복음의 빛과 누룩으로 침투하는 일은 주님의 명을 받들어 교회가 항상 추구해온 노력의 목적이다.”



   영한편집 작업 : 오정화(도미니카)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간추린 사회교리』 영한비교 자료, 웹 & 모바일 검색서비스 안내 file 박경수 2016-05-26 1600
16 표지와 목차, 주요 문헌집 명칭과 성서 약어 박경수 2016-05-23 2420
15 교황청 국무원장 서한, 교황청 정의평화 평의회 소개글 박경수 2016-05-23 2762
14 서문 (1~19항) - 통합적이고 연대적인 인도주의 박경수 2016-05-23 2676
13 제1부, 제1장 (20~59항) - 인류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계획 박경수 2016-05-23 2598
12 제2장 (60~104항) - 교회의 사명과 사회교리 박경수 2016-05-23 2370
» 제3장 (105~159항) - 인간과 인권 박경수 2016-05-23 2744
10 제4장 (160~208항) - 교회의 사회 교리 원리들 박경수 2016-05-23 2485
9 제2부, 제5장 (209~254항) - 사회의 기본 세포인 가정 박경수 2016-05-23 1295
8 제6장 (255~322항) - 인간 노동 박경수 2016-05-23 2128
7 제7장 (323~376항) - 경제 생활 박경수 2016-05-23 1826
6 제8장 (377~427항) - 정치 공동체 박경수 2016-05-23 1419
5 제9장 (428~450항) - 국제 공동체 박경수 2016-05-23 1283
4 제10장 (451~487항) - 환경 보호 박경수 2016-05-23 1562
3 제11장 (488~520항) - 평화 증진 박경수 2016-05-23 1458
2 제3부, 제12장 (521~574항) - 사회 교리와 교회 활동 박경수 2016-05-23 1328
1 결론 (575~583항) - 사랑의 문명을 위하여 박경수 2016-05-23 1195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