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영한비교 간추린 사회교리

 

 

제4장 (160~208항) - 교회의 사회 교리 원리들

조회 수 2510 추천 수 0 2016.05.23 12:35:29

 

CHAPTER FOUR / 4

 

PRINCIPLES OF THE CHURCH'S SOCIAL DOCTRINE

교회의 사회 교리 원리들

 

 

I. MEANING AND UNITY

I. 의미와 일치

 

160. The permanent principles of the Church's social doctrine [ 341] constitute the very heart of Catholic social teaching. These are the principles of: the dignity of the human person, which has already been dealt with in the preceding chapter, and which is the foundation of all the other principles and content of the Church's social doctrine; [342] the common good; subsidiarity; and solidarity. These principles, the expression of the whole truth about man known by reason and faith, are born of “the encounter of the Gospel message and of its demands summarized in the supreme commandment of love of God and neighbour in justice with the problems emanating from the life of society”.[343] In the course of history and with the light of the Spirit, the Church has wisely reflected within her own tradition of faith and has been able to provide an ever more accurate foundation and shape to these principles, progressively explaining them in the attempt to respond coherently to the demands of the times and to the continuous developments of social life.

160. 교회의 사회 교리의 항구한 원리들이 가톨릭 사회 교리의 핵심을 이룬다. 이 원리들 가운데에서 이미 앞 장에서 다룬 인간 존엄성 원리는 교회의 사회 교리의 다른 모든 원리와 내용을 이루는 바탕이다. 이와 함께 공동선, 보조성, 연대성의 원리들이 있다. 이 원리들은 이성과 신앙이 밝혀 주는 인간에 대한 온전한 진리를 표현한 것으로서, “복음 메시지와, 정의 안에서 실천되어야 하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최고 계명으로 요약되는 복음의 요청이 사회생활에서 생기는 문제들과 마주치는 데에서 발생한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성령의 빛을 받아, 교회는 자기 고유의 신앙 전통 안에서 깊은 성찰을 거듭하면서, 시대의 요구와 끊임없이 발전하는 사회생활에 꾸준히 부응하고자 노력하면서 이 원리들을 조금씩 설명해 주는 가운데 이 원리들에 더욱 확고한 토대와 형태를 마련해 줄 수 있었다.

 

161. These are principles of a general and fundamental character, since they concern the reality of society in its entirety: from close and immediate relationships to those mediated by politics, economics and law; from relationships among communities and groups to relations between

peoples and nations. Because of their permanence in time and their universality of meaning, the Church presents them as the primary and fundamental perameters of reference for interpreting and evaluating social phenomena, which is the necessary source for working out the criteria for the discernment and orientation of social interactions in every area.

161. 이 원리들은 사회라는 실재 전체와 관련된 것이므로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특성을 지닌다. , 이 원리들은 가깝고 직접적인 관계에서부터 정치와 경제와 법을 매개로 하는 관계들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와 단체들의 관계에서부터 민족들과 국가들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사회 실재 전체와 관련되어 있다. 이 원리들은 시간상 영속적이고 의미상 보편적이므로, 교회는 이 원리들을 사회 현상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기본적이고 으뜸가는 준거 변수로 제시한다. 이 준거 변수는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의 상호 작용을 식별하고 지도하는 기준을 정립하는 데 필요한 근거이다.

 

162. The principles of the Church's social doctrine must be appreciated in their unity, interrelatedness and articulation. This requirement is rooted in the meaning that the Church herself attributes to her social doctrine, as a unified doctrinal corpus that interprets modern social realities in a systematic manner.[344] Examining each of these principles individually must not lead to using them only in part or in an erroneous manner, which would be the case if they were to be invoked in a disjointed and unconnected way with respect to each of the others. A deep theoretical understanding and the actual application of even just one of these social principles clearly shows the reciprocity, complementarities and interconnectedness that is part of their structure. These fundamental principles of the Church's social doctrine, moreover, represent much more than a permanent legacy of reflection, which is also an essential part of the Christian message, since they indicate the paths possible for building a good, authentic and renewed social life.[345]

162. 교회의 사회 교리 원리들은 통일성, 연계성, 명료성 안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이러한 요구는, 교회가 자신의 사회 교리를 현대 사회의 실재를 체계적으로 해석하는 하나의 교리적 총체로 여긴다는 의미에서 생겨난다. 하나의 원리를 다른 원리와 연관 없이 따로 따로 인용하는 경우처럼, 각각의 원리들을 개별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이 원리들의 일부만 사용하거나 잘못 사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사회적 원리들 가운데 단 하나라도 이론적으로 깊이 이해하거나 실제로 적용해 보면, 이 원리가 전체 구조의 일부로서 상호 작용하고 상호 보완하며 상호 연계되어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나아가, 교회의 사회 교리의 이 기본 원리는 지속적인 성찰거리 그 이상이며,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본질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이 원리들이 올바르고 참되며 새로운 사회생활을 이룩할 수 있는 길을 가리켜 주기 때문이다.

 

163. The principles of the social doctrine, in their entirety, constitute that primary articulation of the truth of society by which every conscience is challenged and invited to interact with every other conscience in truth, in responsibility shared fully with all people and also regarding all people. In fact, man cannot avoid the question of freedom and of the meaning of life in society, since society is a reality that is neither external nor foreign to his being.

163. 사회 교리 원리들은 전체가 사회적 진리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진리에 입각하여 모든 양심은 모든 사람과 또 동시에 다른 모든 사람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공유하며 참되고 책임감 있게 다른 모든 양심과 상호 관계를 맺도록 요구받고 있다. 실제로, 인간은 사회 안에서 자유와 삶의 의미에 대한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다. 사회는 인간의 삶을 벗어나거나 인간과 무관하지 않은 실재이기 때문이다.

 

These principles have a profoundly moral significance because they refer to the ultimate and organizational foundations of life in society. To understand them completely it is necessary to act in accordance with them, following the path of development that they indicate for a life worthy of man. The ethical requirement inherent in these pre-eminent social principles concerns both the personal behaviour of individuals in that they are the first and indispensable responsible subjects of social life at every level and at the same time institutions represented by laws, customary norms and civil constructs, because of their capacity to influence and condition the choices of many people over a long period of time. In fact, these principles remind us that the origins of a society existing in history are found in the interconnectedness of the freedoms of all the persons who interact within it, contributing by means of their choices either to build it up or to impoverish it.

이 원리들은 사회생활의 궁극적이고 구조적인 토대와 관련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커다란 중요성을 지닌다. 이 원리들을 완전하게 이해하려면, 이 원리들이 인간에게 합당한 삶을 위하여 제시하는 발전 행로를 따라가며 그 원리들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여야 한다. 이 탁월한 사회 원리들에 내재된 윤리적 요구는, 모든 단계에서 사회생활의 일차적이고 필요불가결한 책임 주체인 개인들의 사적 행위와 관련되고, 또한 동시에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쳐왔고 그 선택을 좌우할 수 있는 법률, 관습 규범, 사회 규약으로 대표되는 제도들과 관련된다. 사실 이 원리들은, 사회 안에서 선택을 통해 사회의 흥망에 기여하며 상호 영향을 주는 모든 인간이 지닌 자유의 상호연관성에서 역사 안에 존재하는 사회의 기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II. THE PRINCIPLE OF THE COMMON GOOD

II. 공동선의 원리

 

a. Meaning and primary implications

. 주된 함축적 의미

 

164. The principle of the common good, to which every aspect of social life must be related if it is to attain its fullest meaning, stems from the dignity, unity and equality of all people. According to its primary and broadly accepted sense, the common good indicates “the sum total of social conditions which allow people, either as groups or as individuals, to reach their fulfilment more fully and more easily”.[346]

164.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이 완전한 의미를 가지려면 연관을 맺어야 하는 공동선의 원리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 일치, 평등에 근거한다. 근본적이고 또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의미에서, 공동선이란 집단이든 구성원 개인이든 더욱 충만하고 더욱 용이하게 자기완성을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 조건의 총화를 가리킨다.

 

The common good does not consist in the simple sum of the particular goods of each subject of a social entity. Belonging to everyone and to each person, it is and remains “common”, because it is indivisible and because only together is it possible to attain it, increase it and safeguard its effectiveness, with regard also to the future. Just as the moral actions of an individual are accomplished in doing what is good, so too the actions of a society attain their full stature when they bring about the common good. The common good, in fact, can be understood as the social and community dimension of the moral good.

공동선은 사회적 실체에 속하는 모든 주체의 개별적 선을 단순히 종합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이와 각 개인에게 속하는 공동선은 나뉠 수 없고, 함께 해야만 달성할 수 있고 증대할 수 있으며 미래에도 그 효력을 보존할 수 있으므로 공동의것이다. 한 개인의 도덕적 행위는 선을 행함으로써 성취되는 것처럼, 한 사회의 행위도 공동선을 이루는 것일 때 완전한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다. 실제로 공동선은 도덕적 선의 사회적 공동체적 차원으로 이해될 수 있다.

 

165. A society that wishes and intends to remain at the service of the human being at every level is a society that has the common good the good of all people and of the whole person [347] as its primary goal. The human person cannot find fulfilment in himself, that is, apart from the fact that he exists “with” others and “for” others. This truth does not simply require that he live with others at various levels of social life, but that he seek unceasingly in actual practice and not merely at the level of ideas the good, that is, the meaning and truth, found in existing forms of social life. No expression of social life from the family to intermediate social groups, associations, enterprises of an economic nature, cities, regions, States, up to the community of peoples and nations can escape the issue of its own common good, in that this is a constitutive element of its significance and the authentic reason for its very existence[348].

165. 언제나 모든 차원에서 인간에게 봉사하기를 바라고 또 이를 지향하는 사회는 공동선, 곧 모든 인간과 전() 인간의 선을 그 으뜸 목표로 삼는 사회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 안에서 완성을 얻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다른 인간과 더불어다른 인간을 위하여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진리는 그저 인간이 다양한 차원의 사회생활에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이 생각에만 그치지 말고 실질적인 실천을 통하여, 기존의 사회생활에서 발견되는 의미와 진리, 곧 선을 끊임없이 추구하기를 요구한다. 가족에서부터 중간 사회 집단, 협회, 기업체, 도시, 지역, 국가, 그리고 민족 공동체와 국가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형태의 사회생활도 공동선의 문제를 회피할 수는 없다. 공동선이야말로 사회생활의 의미를 이루는 요소이며 사회 자체가 존재하는 참된 이유이기 때문이다.

 

 

b. Responsibility of everyone for the common good

. 공동선에 대한 모든 인간의 책임

 

166. The demands of the common good are dependent on the social conditions of each historical period and are strictly connected to respect for and the integral promotion of the person and his fundamental rights[349]. These demands concern above all the commitment to peace, the organization of the State's powers, a sound juridical system, the protection of the environment, and the provision of essential services to all, some of which are at the same time human rights: food, housing, work, education and access to culture, transportation, basic health care, the freedom of communication and expression, and the protection of religious freedom[350]. Nor must one forget the contribution that every nation is required in duty to make towards a true worldwide cooperation for the common good of the whole of humanity and for future generations also[351].

166. 공동선의 요구는 역사적 시기의 사회적 조건에 달려 있고, 인간과 인간의 기본권을 존중하고 온전히 발전시키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러한 요구는 무엇보다도 평화에 대한 노력, 국가 권력 기구, 건전한 사법 체계, 환경 보호, 모든 이에 대한 기본적인 편의 제공과 같은 것이며, 그 가운데 일부는 음식, 주거, 노동, 교육, 문화와 교통, 기본적인 의료 혜택, 커뮤니케이션과 표현의 자유, 그리고 종교 자유의 수호와 같은 인간의 권리들이다. 또한 모든 국가는 온 인류의 공동선과 미래 세대를 위한 전 세계의 진정한 협력에 이바지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167. The common good therefore involves all members of society, no one is exempt from cooperating, according to each one's possibilities, in attaining it and developing it[352]. The common good must be served in its fullness, not according to reductionist visions that are subordinated by certain people to their advantages; own rather it is to be based on a logic that leads to the assumption of greater responsibility. The common good corresponds to the highest of human instincts[353], but it is a good that is very difficult to attain because it requires the constant ability and effort to seek the good of others as though it were one's own good.

167. 공동선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포함한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자신의 능력에 따라 공동선을 이루고 증진하는 데에 협력할 의무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공동선은, 특정인의 이익에 종속되는 환원주의 관점보다는 책임을 더욱 크게 받아들이게 하는 논리에 바탕을 두어 충실히 실행되어야 한다. 공동선은 고결한 인간 본능에 부응하는 것이지만, 타인의 선익을 마치 자기 자신의 것처럼 추구하려는 꾸준한 노력과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다.

 

Everyone also has the right to enjoy the conditions of social life that are brought about by the quest for the common good. The teaching of Pope Pius XI is still relevant: “the distribution of created goods, which, as every discerning person knows, is labouring today under the gravest evils due to the huge disparity between the few exceedingly rich and the unnumbered propertyless, must be effectively called back to and brought into conformity with the norms of the common good, that is, social justice”[354].

또한 모든 사람은 공동선의 추구로 얻는 사회생활의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다. 교황 비오 11세의 다음과 같은 가르침은 여전히 매우 의미심장하다. “창조된 재화의 분배는 공동선과 사회 정의의 요청에 합치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실한 관찰자는 누구나 지나친 부를 소유한 소수와 궁핍하게 사는 다수 사이의 큰 차이가 현대 사회에서 심각한 해악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c. Tasks of the political community

. 정치 공동체의 과제

 

168. The responsibility for attaining the common good, besides falling to individual persons, belongs also to the State, since the common good is the reason that the political authority exists[355]. The State, in fact, must guarantee the coherency, unity and organization of the civil society of which it is an expression[356], in order that the common good may be attained with the contribution of every citizen. The individual person, the family or intermediate groups are not able to achieve their full development by themselves for living a truly human life. Hence the necessity of political institutions, the purpose of which is to make available to persons the necessary material, cultural, moral and spiritual goods. The goal of life in society is in fact the historically attainable common good[357].

168. 공동선을 달성하여야 할 책임은 개개인뿐 아니라, 국가에게도 있다. 공동선은 정치 권력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가는 전 국민이 공동선을 달성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도록 시민 사회의 공동선의 표현인 시민 사회의 결속, 일치, 질서를 보장하여야 한다. 개인과 가정과 단체는 혼자서는 참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온전한 발전에 이를 수 없다. 따라서 사람들이 필요한 물질적 문화적 도덕적 정신적 재화를 이용할 수 있게 해 주기 위한 정치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실현 가능한 공동선이야말로 사회생활의 목표이다.

 

169. To ensure the common good, the government of each country has the specific duty to harmonize the different sectoral interests with the requirements of justice[358]. The proper reconciling of the particular goods of groups and those of individuals is, in fact, one of the most delicate tasks of public authority. Moreover, it must not be forgotten that in the democratic State, where decisions are usually made by the majority of representatives elected by the people, those responsible for government are required to interpret the common good of their country not only according to the guidelines of the majority but also according to the effective good of all the members of the community, including the minority.

169. 공동선을 보장하기 위하여, 각국 정부는 각 분야마다 다른 이익들을 정의의 요구와 조화시켜야 하는 각별한 의무가 있다. 집단의 특정한 이익과 개인의 특정한 이익을 올바로 조정하는 일이 사실상 공권력이 맡은 과제 가운데 가장 힘든 일이다. 더욱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개 국민이 뽑은 다수의 대표자들로 결정이 이루어지므로, 통치를 책임진 사람들은 다수의 노선을 따르면서도 소수를 포함하여 그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의 실질적 선에 따라 자국의 공동선을 판단하여야 한다.

 

170. The common good of society is not an end in itself; it has value only in reference to attaining the ultimate ends of the person and the universal common good of the whole of creation. God is the ultimate end of his creatures and for no reason may the common good be deprived of its transcendent dimension, which moves beyond the historical dimension while at the same time fulfilling it[359]. This perspective reaches its fullness by virtue of faith in Jesus' Passover, which sheds clear light on the attainment of humanity's true common good. Our history the personal and collective effort to elevate the human condition begins and ends in Jesus: thanks to him, by means of him and in light of him every reality, including human society, can be brought to its Supreme Good, to its fulfilment. A purely historical and materialistic vision would end up transforming the common good into a simple socio-economic well-being, without any transcendental goal, that is, without its most intimate reason for existing.

170. 사회의 공동선은 그 자체로는 하나의 목적이 되지 않는다. 공동선은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고 피조물 전체의 보편적 공동선을 실현하는 것일 때에야 비로소 가치가 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피조물의 궁극적 목적이시다. 따라서 역사적 차원을 초월하는 동시에 그것을 실현하는 공동선의 초월적 차원은 어떤 이유에서든 없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전망은 예수님의 파스카에 대한 믿음에 힘입어 완전해지며, 인류의 진정한 공동선 실현에 밝은 빛을 비추어 준다. 인간의 조건을 향상시키려는 개인과 집단의 노력인 인류 역사의 시작과 끝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분 덕분에, 그분을 통하여, 그분께 비추어, 인간 사회를 포함한 모든 실재는 최고선이시자 그 완성이신 분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다. 순전히 역사적이고 유물론적인 시각으로만 보게 되면, 공동선은 아무런 초월적 목적도 없는, 곧 가장 본질적인 존재 이유도 없는 단순한 사회 경제적 행복이 되어버리고 만다.

 

 

 

III. THE 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III. 재화의 보편적 목적

 

a. Origin and meaning

. 기원과 의미

 

171. Among the numerous implications of the common good, immediate significance is taken on by the principle of the 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God destined the earth and all it contains for all men and all peoples so that all created things would be shared fairly by all mankind under the guidance of justice tempered by charity”[360]. This principle is based on the fact that “the original source of all that is good is the very act of God, who created both the earth and man, and who gave the earth to man so that he might have dominion over it by his work and enjoy its fruits (Gen 1:28-29). God gave the earth to the whole human race for the sustenance of all its members, without excluding or favouring anyone.

171. 공동선이 지닌 무수한 함축적 의미 가운데에서도 재화의 보편적 목적은 직접적인 의미를 갖는다.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사용하도록 창조하셨다. 따라서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따라 공정하게 모든 사람에게 풍부히 돌아가야 한다.” 이 원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모든 선한 것의 기원은 땅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땅을 주시어 자신의 노동으로 땅을 지배하고 그 열매를 따먹도록 하신(창세 1,28-29 참조) 하느님의 행위 자체이다. 하느님께서는 온 인류에게 차별과 편애 없이 땅을 주시어 그 모든 구성원들이 생명을 유지하게 하셨다.

 

This is the foundation of the universal destination of the earth's goods. The earth, by reason of its fruitfulness and its capacity to satisfy human needs, is God's first gift for the sustenance of human life”[361]. The human person cannot do without the material goods that correspond to his primary needs and constitute the basic conditions for his existence; these goods are absolutely indispensable if he is to feed himself, grow, communicate, associate with others, and attain the highest purposes to which he is called[362].

이것이 지상 재화의 보편적 목적의 바탕이다. 땅은 열매를 맺고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 유지를 위한 하느님의 첫 번째 선물이다.” 인간은 자신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고 기본적인 생활 여건을 조성하는 물질 재화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인간이 먹고 성장하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사귀며 또한 인간 소명의 가장 숭고한 목적을 달성하려면 이러한 재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172. The universal right to use the goods of the earth is based on the principle of the 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Each person must have access to the level of well-being necessary for his full development. The right to the common use of goods is the “first principle of the whole ethical and social order” [363] and “the characteristic principle of Christian social doctrine”[364]. For this reason the Church feels bound in duty to specify the nature and characteristics of this principle. It is first of all a natural right, inscribed in human nature and not merely a positive right connected with changing historical circumstances; moreover it is an “inherent” [365] right. It is innate in individual persons, in every person, and has priority with regard to any human intervention concerning goods, to any legal system concerning the same, to any economic or social system or method: “All other rights, whatever they are, including property rights and the right of free trade must be subordinated to this norm [the 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they must not hinder it, but must rather expedite its application. It must be considered a serious and urgent social obligation to refer these rights to their original purpose”[366].

172. 지상 재화의 사용에 대한 보편적인 권리는 재화의 보편 목적의 원칙에 근거한다. 모든 사람은 충만한 자기 발전에 필요한 복지 수준을 누려야 한다. 재화의 공동 사용권은 모든 윤리적 사회적 질서의 제1 원칙이고 그리스도교 사회 교리의 특수한 원칙이다. 따라서 교회는 이 원칙의 성격과 특성을 열거하여야 할 의무를 느낀다. 이 권리는 무엇보다도 인간 본성에 새겨져 있는 자연권이고, 변화하는 역사적 상황과 결부된 실질적인 권리일 뿐만 아니라, “천부의 권리이기도 하다. 이는 개개인과 모든 사람의 타고난 권리이고, 재화에 대한 모든 인간적 개입과 모든 법적 체계, 모든 경제 사회적 체계나 수단에 우선하는 권리이다. “사유재산권과 자유로운 상거래의 권리를 포함한 모든 권리는 이 원칙[재화의 보편적 목적]에 종속되어야 한다. 이런 권리들은 이러한 원칙들의 실현을 촉진하여야지 방해하여서는 결코 안 된다. 이런 권리들의 본 목적을 되찾아 주는 일이야말로 중대하고도 긴급한 사회적 의무라 하겠다.”

 

173. Putting the principal of the 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into concrete practice, according to the different cultural and social contexts, means that methods, limits and objects must be precisely defined. Universal destination and utilization of goods do not mean that everything is at the disposal of each person or of all people, or that the same object may be useful or belong to each person or all people. If it is true that everyone is born with the right to use the goods of the earth, it is likewise true that, in order to ensure that this right is exercised in an equitable and orderly fashion, regulated interventions are necessary, interventions that are the result of national and international agreements, and a juridical order that adjudicates and specifies the exercise of this right.

173. 재화의 보편적 목적의 원칙을 각기 다른 문화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구체적으로 실천할 때 그 방법과 한도와 대상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재화의 보편적 목적과 이용이란 말은, 각 개인이나 모든 사람이 만물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거나 또는 편리한대로 이용하거나 소유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지상 재화를 사용할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사실이라면, 이 권리가 균등하고 질서 있게 행사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국제적 합의를 통하여 권리를 규제하는 개입과 법질서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174. The principle of the 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is an invitation to develop an economic vision inspired by moral values that permit people not to lose sight of the origin or purpose of these goods, so as to bring about a world of fairness and solidarity, in which the creation of wealth can take on a positive function. Wealth, in effect, presents this possibility in the many different forms in which it can find expression as the result of a process of production that works with the available technological and economic resources, both natural and derived. This result is guided by resourcefulness, planning and labour, and used as a means for promoting the well-being of all men and all peoples and for preventing their exclusion and exploitation.

174. 재화의 보편 목적의 원칙은, 인간이 이 재화들의 기원과 목적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도덕 원칙들에 입각한 경제관을 키워나감으로써 공평한 세상, 연대하는 세상을 실현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세상에서 부의 창출은 긍정적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실제로, 부는 여러 모로 이러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곧 부는 천연 자원이든 파생 자원이든 이용 가능한 기술적 경제적 자원으로 이루어지는 생산 과정의 산물로 표현될 수 있다. 풍부한 자원, 계획, 노동을 통하여 얻어지는 이러한 산물은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의 행복을 증진하고 어느 누구도 소외되거나 착취당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175. The 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requires a common effort to obtain for every person and for all peoples the conditions necessary for integral development, so that everyone can contribute to making a more humane world, “in which each individual can give and receive, and in which the progress of some will no longer be an obstacle to the development of others, nor a pretext for their enslavement”[367]. This principle corresponds to the call made unceasingly by the Gospel to people and societies of all times, tempted as they always are by the desire to possess, temptations which the Lord Jesus chose to undergo (cf. Mk 1:12-13; Mt 4:1-11; Lk 4:1-13) in order to teach us how to overcome them with his grace.

175. 재화의 보편적 목적은 모든 사람이 더욱 인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모든 개인과 모든 민족의 완전한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조건들을 얻기 위한 공동 노력을 요구한다. 그러한 세상에서는 모든 사람이 서로 주고받을 수 있고, 일부인의 진보가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발전에 장애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예속하는 구실이 되지 않아야 한다.” 이 원칙은, 언제나 소유욕의 유혹을 받는 모든 시대의 인간과 사회에 복음이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는 요구와 일치한다. 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은총으로 유혹을 이겨내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기꺼이 유혹을 받으셨다(마르 1,12-13; 마태 4,1-11; 루카 4,1-13 참조).

 

 

b. The 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and private property

. 재화의 보편적 목적과 사유 재산

 

176. By means of work and making use of the gift of intelligence, people are able to exercise dominion over the earth and make it a fitting home: “In this way, he makes part of the earth his own, precisely the part which he has acquired through work; this is the origin of individual property”[368]. Private property and other forms of private ownership of goods “assure a person a highly necessary sphere for the exercise of his personal and family autonomy and ought to be considered as an extension of human freedom ... stimulating exercise of responsibility, it constitutes one of the conditions for civil liberty”[369]. Private property is an essential element of an authentically social and democratic economic policy, and it is the guarantee of a correct social order. The Church's social doctrine requires that ownership of goods be equally accessible to all[370], so that all may become, at least in some measure, owners, and it excludes recourse to forms of “common and promiscuous dominion”[371].

176. 인간은 노동을 통하여 그리고 선물

로 받은 지성을 사용하여 땅을 지배하고 이를 자신의 합당한 거처로 만들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얻은 땅의 일부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여기에 사유 재산의 기원이 있다. 사유 재산과 재화에 대한 다른 형태의 사적 소유권은 개인과 가정의 자립에 반드시 필요한 공간을 각 개인에게 제공하는 것이며, 이는 인간 자유의 신장으로 여겨야 한다. …… 이는 책임을 이행하도록 자극을 주므로 시민 자유의 한 조건을 이룬다.” 사유 재산은 진정한 사회적 민주적 경제 정책의 핵심 요소이고, 올바른 사회 질서의 보증이다. 교회의 사회 교리는 모든 이가 재화에 대한 소유권을 공평하게 누림으로써 무차별적인 공동 지배 형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어느 모로는 모든 이가 주인이 되기를 요구한다.

 

177. Christian tradition has never recognized the right to private property as absolute and untouchable: “On the contrary, it has always understood this right within the broader context of the right common to all to use the goods of the whole of creation: the right to private property is subordinated to the right to common use, to the fact that goods are meant for everyone”[372]. The principle of the 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is an affirmation both of God's full and perennial lordship over every reality and of the requirement that the goods of creation remain ever destined to the development of the whole person and of all humanity[373]. This principle is not opposed to the right to private property[374] but indicates the need to regulate it. Private property, in fact, regardless of the concrete forms of the regulations and juridical norms relative to it, is in its essence only an instrument for respecting the principle of the 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in the final analysis, therefore, it is not an end but a means[375].

177. 그리스도교 전통은 사유 재산권을 절대적이고 침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인정한 적이 없다. 반대로, 창조된 모든 재화를 사용하는 것은 모든 이의 공동 권리라는 넓은 의미에서 항상 이해해 왔다. , 사유 재산권은 재화가 만민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에서 공동 사용권에 예속된다.” 재화의 보편 목적의 원칙은 하느님께서 모든 실재의 완전하고 영원한 주인이심을 천명하고, 창조된 재화는 예정된 대로 언제나 전() 인간과 온 인류의 발전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언한다. 이 원칙은 사유 재산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 재산권을 규제할 필요성을 제시한다. 사실, 사유 재산은, 그것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과 법 규범에 상관없이, 본질적으로는 재화의 보편 목적의 원칙을 존중하는 도구에 불과하므로, 결국 목적이 아니라 수단인 것이다.

 

178. The Church's social teaching moreover calls for recognition of the social function of any form of private ownership [376] that clearly refers to its necessary relation to the common good[377]. Man “should regard the external things that he legitimately possesses not only as his own but also as common in the sense that they should be able to benefit not only him but also others”[378]. The 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entails obligations on how goods are to be used by their legitimate owners. Individual persons may not use their resources without considering the effects that this use will have, rather they must act in a way that benefits not only themselves and their family but also the common good. From this there arises the duty on the part of owners not to let the goods in their possession go idle and to channel them to productive activity, even entrusting them to others who are desirous and capable of putting them to use in production.

178. 나아가 교회의 사회 교리는, 명백히 공동선과 필연적 관계가 있는 모든 형태의 사적 소유권이 지닌 사회적 기능을 인정하기를 요구한다. 인간은 합법적으로 소유하는 외적 사물을 자기 사유물만이 아니라 공유물로도 여겨야 하며, 그러한 의식에서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재화의 보편적 목적은 그 합법적 소유자가 자기 재화를 사용하는 방식에 의무를 부과한다. 개인들은 자기가 가진 자원을 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고 써버리기보다는, 자신과 자기 가족만이 아니라 공동선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방식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재화 소유자의 의무가 생긴다. 그는 자기가 소유한 재화를 방치해서는 안 되고 이 재화를 생산에 활용하기를 바라고 활용할 수 있는 다른 사람에게 위탁해서라도 생산 활동에 이 재화를 이용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179. The present historical period has placed at the disposal of society new goods that were completely unknown until recent times. This calls for a fresh reading of the principle of the universal destination of the goods of the earth and makes it necessary to extend this principle so that it includes the latest developments brought about by economic and technological progress. The ownership of these new goods the results of knowledge, technology and know-how becomes ever more decisive, because “the wealth of the industrialized nations is based much more on this kind of ownership than on natural resources”[379].

179. 현대 사회에는 최근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재화가 등장하였다. 따라서 지상 재화의 보편 목적의 원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또한 경제적 기술적 진보로 이루어진 최근의 발전을 포괄할 수 있도록 이 원칙을 확대할 필요도 있다. 지식과 기술과 경험의 산물인 이 새로운 재화의 소유권은 한층 더 중요해졌다. “산업화된 나라들의 부가 자연적 재원보다는 그러한 종류의 소유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New technological and scientific knowledge must be placed at the service of mankind's primary needs, gradually increasing humanity's common patrimony. Putting the principle of the 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into full effect therefore requires action at the international level and planned programmes on the part of all countries. “It is necessary to break down the barriers and monopolies which leave so many countries on the margins of development, and to provide all individuals and nations with the basic conditions which will enable them to share in development”[380].

새로운 기술과 과학 지식은 인류의 공동 유산을 점진적으로 늘리면서 인간의 기본 욕구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따라서 재화의 보편 목적의 원칙을 온전히 실천하려면 국제적 차원의 활동이 필요하고 모든 나라에서 체계적인 계획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수많은 민족들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과 독점을 분쇄하여야 하며, 모든 개인과 나라들에 발전에 참여할 수 있는 주요 조건들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180. If forms of property unknown in the past take on significant importance in the process of economic and social development, nonetheless, traditional forms of property must not be forgotten. Individual property is not the only legitimate form of ownership. The ancient form of community property also has a particular importance; though it can be found in economically advanced countries, it is particularly characteristic of the social structure of many indigenous peoples. This is a form of property that has such a profound impact on the economic, cultural and political life of those peoples that it constitutes a fundamental element of their survival and well-being. The defence and appreciation of community property must not exclude, however, an awareness of the fact that this type of property also is destined to evolve. If actions were taken only to preserve its present form, there would be the risk of tying it to the past and in this way compromising it[381].

180. 과거에 알려지지 않은 소유의 형태들이 경제 사회의 발전 과정에 중요하다 하더라도, 전통적인 소유 형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소유만이 합법적인 형태의 소유권은 아니다. 오래된 공동 소유의 형태도 특별히 중요하다. 이 형태는 경제 선진국에서도 찾아 볼 수 있지만, 특히 여러 토착 민족들의 사회 구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러한 공동 소유 형태는 이들 토착 민족들의 생존과 안녕을 위한 기본 요소가 될 만큼 경제 문화 정치 생활에 깊은 영향을 준다. 그러나 공동 소유를 수호하고 존중한다고 하여, 그러한 소유 형태도 발전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의 현재 형태만 고수하려 하면 과거에 집착해서 오히려 그것을 훼손시킬 위험이 있다.

 

An equitable distribution of land remains ever critical, especially in developing countries and in countries that have recently changed from systems based on collectivities or colonization[382]. In rural areas, the possibility of acquiring land through opportunities offered by labour and credit markets is a necessary condition for access to other goods and services. Besides constituting an effective means for safeguarding the environment, this possibility represents a system of social security that can be put in place also in those countries with a weak administrative structure.

특히 개발도상국들과 최근 집단주의 체제나 식민주의 체제에서 벗어난 국가들에서는 토지의 균등 분배가 여전히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다. 농촌 지역에서는, 고용 시장과 신용 시장이 제공하는 기회를 통하여 토지를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이야말로 다른 재화와 용역을 얻을 수 있는 필수 조건이다. 환경 보호를 위한 효과적인 수단을 마련하는 외에도, 그러한 가능성은 취약한 행정 구조를 가진 이들 나라들에서도 정착될 수 있는 사회 보장 제도의 하나로 나타난다.

 

181. To the subjects, whether individuals or communities, that exercise ownership of various types of property accrue a series of objective advantages: better living conditions, security for the future, and a greater number of options from which to choose. On the other hand, property may also bring a series of deceptive promises that are a source of temptation. Those people and societies that go so far as to absolutize the role of property end up experiencing the bitterest type of slavery. In fact, there is no category of possession that can be considered indifferent with regard to the influence that it may have both on individuals and on institutions. Owners who heedlessly idolize their goods (cf. Mt 6:24, 19:21-26; Lk 16:13) become owned and enslaved by them[383]. Only by recognizing that these goods are dependent on God the Creator and then directing their use to the common good, is it possible to give material goods their proper function as useful tools for the growth of individuals and peoples.

181. 개인이든 공동체든 다양한 형태의 재산 소유권을 행사하는 주체에게는 더 나은 생활 조건, 안정된 미래, 무수한 선택의 기회와 같은 일련의 객관적인 이득이 주어진다. 다른 한편으로, 재화는 유혹을 야기하는 기만적인 약속만 가져다 줄 수도 있다. 재산의 역할을 지나치게 절대시하는 민족이나 사회는 결국 가장 가혹한 예속화를 겪기 마련이다. 실재로, 개인과 제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 소유란 없다. 분별없이 자기가 가진 재화를 우상시하는 사람은(마태 6,24; 19,21-26; 루카 16,13 참조) 그 재화에 예속되고 그 노예가 되어버린다. 이 재화가 창조주 하느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공동선을 위하여 이 재화를 사용하게 될 때야 비로소, 물질 재화는 개인과 민족을 성장시키는 유용한 도구로서 올바로 기능할 수 있다.

 

 

c. The 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and the preferential option for the poor

3. 재화의 보편적 목적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182. The principle of the 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requires that the poor, the marginalized and in all cases those whose living conditions interfere with their proper growth should be the focus of particular concern. To this end, the preferential option for the poor should be reaffirmed in all its force[384]. “This is an option, or a special form of primacy in the exercise of Christian charity, to which the whole tradition of the Church bears witness. It affects the life of each Christian inasmuch as he or she seeks to imitate the life of Christ, but it applies equally to our social responsibilities and hence to our manner of living, and to the logical decisions to be made concerning the ownership and use of goods. Today, furthermore, given the worldwide dimension which the social question has assumed, this love of preference for the poor, and the decisions which it inspires in us, cannot but embrace the immense multitudes of the hungry, the needy, the homeless, those without health care and, above all, those without hope of a better future”[385].

182. 재화의 보편 목적의 원칙은 가난한 이들, 소외받는 이들, 어느 모로든 자신의 올바른 성장을 방해하는 생활 조건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다시 한 번 강력히 확언하여야 한다.이것은 그리스도교 사랑의 실천에서 우선하는 특별한 형태의 선택을 말하는 것으로, 교회의 전통 전체가 이를 증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각자가 그리스도의 삶을 모방하고도록 영향을 끼치지만, 우리의 사회적 책임에도, 따라서 우리의 생활 방식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재화의 소유와 사용에 관한 논리적인 결정에도 적용된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는 사회 문제가 전 세계적인 차원을 지닌다는 점에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과 거기서 영감을 받아 내리는 결정은 당연히 수많은 굶주리는 사람들과 곤궁한 사람들, 집 없는 사람들,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다.”

 

183. Human misery is a clear sign of man's natural condition of frailty and of his need for salvation[386]. Christ the Saviour showed compassion in this regard, identifying himself with the “least” among men (cf. Mt 25:40,45). “It is by what they have done for the poor that Jesus Christ will recognize his chosen ones. When ‘the poor have the good news preached to them' (Mt 11:5), it is a sign of Christ's presence”[387].

183. 인간의 비참은 인간의 타고난 나약한 조건과 구원의 필요성을 명백히 드러내는 표지이다. 구세주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을 당신 자신과 동일시하시며 이에 대한 연민을 보여주셨다(마태 25,40.45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해 준 것으로써 선택된 사람들을 알아보실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질’(마태 11,5) ,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는 표징이 된다.”

 

Jesus says: “You always have the poor with you, but you will not always have me” (Mt 26:11; cf. Mk 14:7; Jn 12:8). He makes this statement not to contrast the attention due to him with service of the poor. Christian realism, while appreciating on the one hand the praiseworthy efforts being made to defeat poverty, is cautious on the other hand regarding ideological positions and Messianistic beliefs that sustain the illusion that it is possible to eliminate the problem of poverty completely from this world. This will happen only upon Christ's return, when he will be with us once more, for ever. In the meantime, the poor remain entrusted to us and it is this responsibility upon which we shall be judged at the end of time (cf. Mt 25:31-46): “Our Lord warns us that we shall be separated from him if we fail to meet the serious needs of the poor and the little ones who are his brethren”[388].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 곁에 있겠지만 나는 너희와 언제까지나 함께 있지는 않을 것이다”(마태 26,11; 마르 14,7; 요한 12,8 참조).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보여야 할 관심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를 따로 생각하지 말라고 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교 현실주의는, 한편으로는 가난을 물리치려는 칭찬할 만한 노력을 가상히 여기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서 빈곤 문제를 완전히 뿌리뽑아버릴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게 하는 이념적 입장과 메시아 신앙을 경계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어 다시 한 번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실 그 날에야 비로소 실현될 것이다. 그 때까지, 가난한 이들은 우리에게 맡겨져 있고, 우리에게 맡겨진 이 책임은 세상 끝날 심판받게 될 것이다(마태 25,31-46 참조). “우리 주님께서는 만일 우리가 그분의 형제들인 가난한 사람들과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 절박하게 필요한 것들을 도와주기를 소홀히 한다면 당신과 갈라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184. The Church's love for the poor is inspired by the Gospel of the Beatitudes, by the poverty of Jesus and by his attention to the poor. This love concerns material poverty and also the numerous forms of cultural and religious poverty[389]. The Church, “since her origin and in spite of the failing of many of her members, has not ceased to work for their relief, defence and liberation through numerous works of charity which remain indispensable always and everywhere”[390]. Prompted by the Gospel injunction, “You have received without paying, give without pay” (Mt 10:8), the Church teaches that one should assist one's fellow man in his various needs and fills the human community with countless works of corporal and spiritual mercy. “Among all these, giving alms to the poor is one of the chief witnesses to fraternal charity: it is also a work of justice pleasing to God”[391], even if the practice of charity is not limited to alms-giving but implies addressing the social and political dimensions of the problem of poverty. In her teaching the Church constantly returns to this relationship between charity and justice: “When we attend to the needs of those in want, we give them what is theirs, not ours. More than performing works of mercy, we are paying a debt of justice”[392]. The Council Fathers strongly recommended that this duty be fulfilled correctly, remembering that “what is already due in justice is not to be offered as a gift of charity”[393]. Love for the poor is certainly “incompatible with immoderate love of riches or their selfish use” [394] (cf. Jas 5:1-6).

184. 가난한 이들에 대한 교회의 사랑은 참 행복의 복음, 예수님의 가난,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그분의 관심에서 영감을 받는다. 또한 이 사랑은 물질적 가난뿐 아니라 수많은 형태의 문화적 종교적 가난과 연관된다. 교회는 그 초기부터 많은 지체들의 과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들을 구제하고, 보호하고, 해방시키려고 노력해 왔다. 교회는 갖가지 자선 사업을 통해서 이 일을 해왔다. 자선 사업은 지금도 여전히 어느 곳에서나 필수적인 일이다.”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는 복음의 명령을 실행하도록 재촉 받는 교회는, 사람은 궁핍한 자기 형제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가르치며, 인간 공동체 안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육체적 영신적 자비 활동을 수행한다. “이러한 행위들 가운데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자선은 형제애의 중요한 증거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이는 또한 정의를 실천하는 일이며,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도 하다.” , 애덕의 실천은 자선 행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빈곤 문제의 사회적 정치적 차원들에 대처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 교회는 자신의 가르침을 통하여 사랑과 정의의 관계로 끊임없이 되돌아간다. “가난한 이들의 필요를 돌볼 때,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을 돌려주는 것이다. 우리는 자비의 행위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의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공의회 교부들은 정의에 따라 이미 주었어야 할 것을 마치 사랑의 선물처럼 베풀어서는 안 된다.”고 상기시키며 이 의무를 올바로 수행하여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하였다. 가난한 이들을 향한 사랑은 분명 재물에 지나친 애착을 갖거나 재물을 이기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야고 5,1-6 참조).

 

 

 

IV. THE PRINCIPLE OF SUBSIDIARITY

IV. 보조성의 원리

 

a. Origin and meaning

. 기원과 의미

 

185. Subsidiarity is among the most constant and characteristic directives of the Church's social doctrine and has been present since the first great social encyclical[395]. It is impossible to promote the dignity of the person without showing concern for the family, groups, associations, local territorial realities; in short, for that aggregate of economic, social, cultural, sports-oriented, recreational, professional and political expressions to which people spontaneously give life and which make it possible for them to achieve effective social growth[396]. This is the realm of civil society, understood as the sum of the relationships between individuals and intermediate social groupings, which are the first relationships to arise and which come about thanks to “the creative subjectivity of the citizen”[397]. This network of relationships strengthens the social fabric and constitutes the basis of a true community of persons, making possible the recognition of higher forms of social activity[398].

185. 위대한 첫 사회 회칙이 나온 이래, 보조성은 교회의 사회 교리에서 가장 지속적이고 특징적인 지침들 가운데 하나로 제시되어 왔다. 가정, 단체, 연합체, 지역 단체들, 요컨대, 사람들이 사회에서 효과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고 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생명을 불어넣는 경제, 사회, 문화, 체육, 여가, 직업, 정치 단체들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서는 인간의 존엄성이 신장될 수 없다. 이는 개인과 중간 집단들이 시민의 창조적 주체성으로 맺는 일차적 관계들의 총합으로 이해되는 시민 사회의 영역이다. 이러한 관계망을 통하여 더 고차원적 형태의 사회 활동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사회 조직이 강화되고 진정한 인간 공동체의 기초가 형성된다.

 

186. The necessity of defending and promoting the original expressions of social life is emphasized by the Church in the Encyclical Quadragesimo Anno, in which the principle of subsidiarity is indicated as a most important principle of “social philosophy”. “Just as it is gravely wrong to take from individuals what they can accomplish by their own initiative and industry and give it to the community, so also it is an injustice and at the same time a grave evil and disturbance of right order to assign to a greater and higher association what lesser and subordinate organizations can do. For every social activity ought of its very nature to furnish help to the members of the body social, and never destroy and absorb them”[399].

186. 교회는 회칙 사십주년을 통하여 사회생활의 독창적인 표현들을 수호하고 신장하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 회칙에서는 보조성의 원리를 사회 철학의 주요 원칙 가운데 하나로 제시한다. 개인의 창의와 노력으로 완수될 수 있는 것을 개인에게서 빼앗아 사회에 맡길 수 없는 것처럼, 한층 더 작은 하위의 조직체가 수행할 수 있는 기능과 역할을 더 큰 상위의 집단으로 옮기는 것은 불의이고 중대한 해악이며, 올바른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이다. 모든 사회 활동은 본질적으로 사회 구성체의 성원을 돕는 것이므로 그 성원들을 파괴하거나 흡수해서는 안 된다.”

 

On the basis of this principle, all societies of a superior order must adopt attitudes of help (“subsidium”) therefore of support, promotion, development with respect to lower-order societies. In this way, intermediate social entities can properly perform the functions that fall to them without being required to hand them over unjustly to other social entities of a higher level, by which they would end up being absorbed and substituted, in the end seeing themselves denied their dignity and essential place.

이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모든 상위 질서의 사회는 하위 질서의 사회들에 대하여 도움의 자세(보조성), 따라서 지원과 증진과 발전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회 중간 단체들은 그들 고유의 임무를 다른 상위 단체들에게 부당하게 양도하도록 강요받지 않고 제 임무를 적절히 수행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 중간 단체들은 결국 상위 단체들에 흡수되거나 대치되어 고유의 품위와 본연의 위치를 스스로 부인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Subsidiarity, understood in the positive sense as economic, institutional or juridical assistance offered to lesser social entities, entails a corresponding series of negative implications that require the State to refrain from anything that would de facto restrict the existential space of the smaller essential cells of society. Their initiative, freedom and responsibility must not be supplanted.

사회 하위 단체들에 대한 경제적 제도적 사법적 지원이라는 긍정적 의미로 이해되는 보조성은, 그에 상응하여, 사회를 구성하는 더 작은 기본 세포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사실상 제한하는 모든 행위를 중단하도록 국가에 요구하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한 기본 세포들의 활동과 자유와 책임은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b. Concrete indications

2. 구체적 지침

 

187. The principle of subsidiarity protects people from abuses by higher-level social authority and calls on these same authorities to help individuals and intermediate groups to fulfil their duties. This principle is imperative because every person, family and intermediate group has something original to offer to the community. Experience shows that the denial of subsidiarity, or its limitation in the name of an alleged democratization or equality of all members of society, limits and sometimes even destroys the spirit of freedom and initiative.

187. 보조성의 원리는 사회의 고위 권력의 남용에서 사람들을 보호하고, 개인들과 중간 단체들이 자신의 의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고위 권력들이 도와주기를 요구한다. 모든 사람과 가족과 중간 단체들은 공동체에 나름대로 기여해야 하므로 이 원리는 필수적이다. 경험으로 알 수 있듯이, 보조성을 부인하거나, 이른바 민주화나 사회 모든 구성원의 평등이라는 미명 아래 보조성을 제한하면, 자유와 창의의 정신이 제약을 받고 때로는 훼손되기도 한다.

 

The principle of subsidiarity is opposed to certain forms of centralization, bureaucratization, and welfare assistance and to the unjustified and excessive presence of the State in public mechanisms. “By intervening directly and depriving society of its responsibility, the Social Assistance State leads to a loss of human energies and an inordinate increase of public agencies, which are dominated more by bureaucratic ways of thinking than by concern for serving their clients, and which are accompanied by an enormous increase in spending”[400]. An absent or insufficient recognition of private initiative in economic matters also and the failure to recognize its public function, contribute to the undermining of the principle of subsidiarity, as monopolies do as well.

보조성의 원리는 특정 형태의 중앙집권화와 관료화와 복지 지원을 반대하고 또 공적 기능에 대한 국가의 부당하고 과도한 개입을 반대한다. “원조 국가는 직접 간섭하면서 그리고 사회에 대한 책임 의식을 제거하면서 사회적 인간적인 역량을 감소시키고 흔히 시민들에게 해야 할 봉사에 대한 관심보다는 오히려 관료주의적인 이유로 움직이는 공공 기구를, 대단히 많은 비용을 지출하면서 확대하고 있다.” 경제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로 민간 주도에 대한 인식 결여나 인식 부족, 그리고 그 공적 기능에 대한 불인정은 독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보조성의 원리를 훼손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In order for the principle of subsidiarity to be put into practice there is a corresponding need for: respect and effective promotion of the human person and the family; ever greater appreciation of associations and intermediate organizations in their fundamental choices and in those that cannot be delegated to or exercised by others; the encouragement of private initiative so that every social entity remains at the service of the common good, each with its own distinctive characteristics; the presence of pluralism in society and due representation of its vital components; safeguarding human rights and the rights of minorities; bringing about bureaucratic and administrative decentralization; striking a balance between the public and private spheres, with the resulting recognition of the social function of the private sphere; appropriate methods for making citizens more responsible in actively “being a part” of the political and social reality of their country.

보조성의 원리를 실천에 옮길 때에는 응분의 요구가 있기 마련이다. , 인간과 인류 가족을 존중하고 실질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며, 연합체와 중간 단체들의 기본적인 선택과 다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선택들을 더욱 높이 평가하여야 하며, 모든 사회 조직이 각기 고유의 특징을 가지고 공동선에 봉사하도록 민간 주도를 장려하여야 한다. 또한 사회의 다원주의를 인정하고 그 주요 구성원들을 올바로 대변하며, 인권과 소수의 권리를 수호하고, 관료와 행정의 집중화를 피하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에 균형을 이루어 사적 영역의 사회적 기능을 인정하여야 한다. 나아가, 국민들이 자국의 정치 사회 현실에 적극 참여함으로써더욱 책임 있는 국민이 되게 하는 적절한 수단이 필요하다.

 

188. Various circumstances may make it advisable that the State step in to supply certain functions[401]. One may think, for example, of situations in which it is necessary for the State itself to stimulate the economy because it is impossible for civil society to support initiatives on its own. One may also envision the reality of serious social imbalance or injustice where only the intervention of the public authority can create conditions of greater equality, justice and peace. In light of the principle of subsidiarity, however, this institutional substitution must not continue any longer than is absolutely necessary, since justification for such intervention is found only in the exceptional nature of the situation. In any case, the common good correctly understood, the demands of which will never in any way be contrary to the defence and promotion of the primacy of the person and the way this is expressed in society, must remain the criteria for making decisions concerning the application of the principle of subsidiarity.

188.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국가가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국가가 경제를 부흥시켜야 하는 상황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시민 사회가 단독으로 추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공권력의 개입만이 더 큰 평등과 정의와 평화의 조건을 창출할 수 있는 사회의 심각한 불균형이나 불의의 현실을 그려볼 수 있다. 그러나 보조성의 원리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제도적 대행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간 이상으로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개입은 상황의 예외적 성격 안에서만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모든 경우에, 올바른 의미의 공동선은 언제나 보조성의 원리를 적용하는 결정적 기준이 되어야 하며, 인간의 탁월성에 대한 수호와 증진, 그리고 그 사회적 표출 방식은 공동선에 대한 요구에 추호도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V. PARTICIPATION

V. 참여

 

a. Meaning and value

1. 의미와 가치

 

189. The characteristic implication of subsidiarity is participation[402], which is expressed essentially in a series of activities by means of which the citizen, either as an individual or in association with others, whether directly or through representation, contributes to the cultural, economic, political and social life of the civil community to which he belongs[403]. Participation is a duty to be fulfilled consciously by all, with responsibility and with a view to the common good[404].

189. 보조성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참여이다. 이 참여는 본질적으로, 국민들이 개인으로든 다른 사람과 연합해서든 직접으로든 대표를 통해서든 자기가 몸담고 있는 시민 공동체의 문화, 경제, 정치, 사회 생활에 이바지하게 하는 일련의 활동들을 통하여 표현된다. 참여는 모든 사람이 책임을 가지고 공동선을 위하여 의식적으로 이행하여야 할 의무이다.

 

This cannot be confined or restricted to only a certain area of social life, given its importance for growth above all human growth in areas such as the world of work and economic activity, especially in their internal dynamics[405]; in the sectors of information and culture; and, more than anything else, in the fields of social and political life even at the highest levels. The cooperation of all peoples and the building of an international community in a framework of solidarity depends on this latter area[406]. In this perspective it becomes absolutely necessary to encourage participation above all of the most disadvantaged, as well as the occasional rotation of political leaders in order to forestall the establishment of hidden privileges. Moreover, strong moral pressure is needed, so that the administration of public life will be the result of the shared responsibility of each individual with regard to the common good.

이러한 참여는 사회생활의 특정 영역에만 제한되거나 국한될 수 없다. 이는 노동과 경제 활동의 영역 특히 그 활동의 내적 역학 관계 안에서, 정보와 문화 분야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차원적인 사회 정치 생활 분야에서 성장, 특히 온 인류의 성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연대 체제 안에서 모든 민족의 협력과 국제 공동체 건설은 이 사회 정치 생활 분야에 좌우된다. 이러한 전망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의 참여를 장려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은밀한 특권의 고착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정치 지도자들의 교체도 이따금 필요하다. 더 나아가 공공 생활의 관리가 모든 개인의 공동선에 대한 연대 책임의 결과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도덕적 압력이 필요하다.

 

 

b. Participation and democracy

2. 참여와 민주주의

 

190. Participation in community life is not only one of the greatest aspirations of the citizen, called to exercise freely and responsibly his civic role with and for others[407], but is also one of the pillars of all democratic orders and one of the major guarantees of the permanence of the democratic system. Democratic government, in fact, is defined first of all by the assignment of powers and functions on the part of the people, exercised in their name, in their regard and on their behalf. It is therefore clearly evident that every democracy must be participative[408]. This means that the different subjects of civil community at every level must be informed, listened to and involved in the exercise of the carried-out functions.

190. 공동체 생활에 대한 참여는, 타인과 함께 타인을 위하여 국민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자유로이 책임 있게 수행하도록 부름 받은 국민들의 가장 커다란 열망일 뿐만 아니라, 모든 민주주의 질서를 이루는 주축 가운데 하나이고 민주주의 체제의 영속성을 보장하는 것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실제로, 민주 정부란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과 관련하여 국민을 위하여 행사되는 권한과 역할을 얼마나 부여받는지에 따라 규정된다. 따라서 모든 민주주의가 참여 민주주의여야 한다 것은 자명하다. 이 의미는 시민 공동체의 여러 주체들이 자신들이 수행하는 역할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하고 이에 귀 기울여야 하며 이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191. Participation can be achieved in all the different relationships between the citizen and institutions: to this end, particular attention must be given to the historical and social contexts in which such participation can truly be brought about. The overcoming of cultural, juridical and social obstacles that often constitutes real barriers to the shared participation of citizens in the destiny of their communities' calls for work in the areas of information and education[409]. In this regard, all those attitudes that encourage in citizens an inadequate or incorrect practice of participation or that cause widespread disaffection with everything connected with the sphere of social and political life are a source of concern and deserve careful consideration. For example, one thinks of attempts by certain citizens to “make deals” with institutions in order to obtain more advantageous conditions for themselves, as though these institutions were at the service of their selfish needs; or of the practice of citizens to limit their participation to the electoral process, in many cases reaching the point where they even abstain from voting[410].

191. 참여는 국민과 제도들 사이의 온갖 다양한 관계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려면 그러한 참여가 진정으로 실현될 수 있는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소속 공동체의 운명에 대한 국민들의 공동 참여에 흔히 실질적 장벽이 되는 문화적 법적 사회적 장애를 극복하려면 정보와 교육 분야의 연구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국민들에게 부적절하거나 잘못된 참여 관행을 부추긴다거나, 사회 정치 생활 영역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거부하는 분위기를 널리 조장하는 모든 태도에 관심을 기울이고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일부 국민들이 마치 이들 제도들이 자신의 이기적 욕구를 위해 존재하는 양 자신들에게 더 이득이 되는 조건을 얻고자 이 제도들과 타협을 시도하는 경우를 상정해 볼 수 있다. 또는 선거 과정에 대한 국민들의 참여에 제한을 두어서 많은 경우에 국민들이 투표하는 것을 꺼리기까지 하는 관행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In the area of participation, a further source of concern is found in those countries ruled by totalitarian or dictatorial regimes, where the fundamental right to participate in public life is denied at its origin, since it is considered a threat to the State itself[411]. In some countries where this right is only formally proclaimed while in reality it cannot be concretely exercised while, in still other countries the burgeoning bureaucracy de facto denies citizens the possibility of taking active part in social and political life[412].

참여와 관련하여,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대상은 전체주의나 독재주의 체재의 지배를 받는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에서는 공공 생활 참여에 대한 기본권이 국가 자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므로 이를 원천적으로 부정한다. 어떤 국가에서는 이 권리가 형식적으로만 선포될 뿐이지 실제로는 구체적으로 실행되지 않는다. 또 다른 국가들에서는 관료주의가 싹터 실제로 사회 정치 생활에 대한 국민들의 능동적인 참여 가능성을 부인하기도 한다.

 

 

 

VI. THE PRINCIPLE OF SOLIDARITY

VI. 연대성의 원리

 

a. Meaning and value

. 의미와 가치

 

192. Solidarity highlights in a particular way the intrinsic social nature of the human person, the equality of all in dignity and rights and the common path of individuals and peoples towards an ever more committed unity. Never before has there been such a widespread awareness of the bond of interdependence between individuals and peoples, which is found at every level[413]. The very rapid expansion in ways and means of communication “in real time”, such as those offered by information technology, the extraordinary advances in computer technology, the increased volume of commerce and information exchange all bear witness to the fact that, for the first time since the beginning of human history, it is now possible at least technically to establish relationships between people who are separated by great distances and are unknown to each other.

192. 연대성은 인간의 타고난 사회적 본성, 모든 인간의 평등한 존엄과 권리, 그리고 일치를 향한 개인과 민족의 공동 노선을 특별히 강조한다. 개인들과 민족들 사이의 상호 의존의 유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널리 인식되어 있고 모든 단계에서 발견된다. 정보 기술, 컴퓨터 기술의 놀라운 진보, 무역과 정보 교류의 양적 증가에 힘입은 실시간커뮤니케이션 방식과 수단이 급속도로 신장됨으로써,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우리는 적어도 기술적으로나마 멀리 떨어져 있고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끼리도 관계 형성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목격한다.

 

In the presence of the phenomenon of interdependence and its constant expansion, however, there persist in every part of the world stark inequalities between developed and developing countries, inequalities stoked also by various forms of exploitation, oppression and corruption that have a negative influence on the internal and international life of many States. The acceleration of interdependence between persons and peoples needs to be accompanied by equally intense efforts on the ethical-social plane, in order to avoid the dangerous consequences of perpetrating injustice on a global scale. This would have very negative repercussions even in the very countries that are presently more advantaged[414].

그러나 상호 의존 현상과 이의 지속적 확산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선진국과 개발 도상국 간의 심각한 불균형이 전 세계 모든 분야에 걸쳐 고착되고 있으며, 또한 수많은 국가의 국내외적 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온갖 형태의 착취와 억압과 부패로 인한 불평등도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개인과 민족들 간의 상호의존의 확산에는 전 세계적 차원에서 불의가 지속되는 위험한 결과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윤리적 사회적 차원의 더 강력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 더 많은 이득을 누리고 있는 나라들에도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b. Solidarity as a social principle and a moral virtue

. 사회 원리이며 도덕적 덕목인 연대성

 

193. The new relationships of interdependence between individuals and peoples, which are de facto forms of solidarity, have to be transformed into relationships tending towards genuine ethical-social solidarity. This is a moral requirement inherent within all human relationships. Solidarity is seen therefore under two complementary aspects: that of a social principle[ 415] and that of a moral virtue[416].

193. 사실상의 연대성의 형태인 개인 간 민족들 간의 새로운 상호 의존 관계는 진정한 사회 윤리적 연대를 지향하는 관계로 바뀌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인간관계에 내재된 도덕적 요구이다. 그러므로 연대성은 상호 보완적인 두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사회 원리도덕 덕목이다.

 

Solidarity must be seen above all in its value as a moral virtue that determines the order of institutions. On the basis of this principle the “structures of sin”[417] that dominate relationships between individuals and peoples must be overcome. They must be purified and transformed into structures of solidarity through the creation or appropriate modification of laws, market regulations, and juridical systems.

연대성은 무엇보다도 제도의 질서를 결정하는 도덕 덕목으로서의 가치 안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이 원리를 바탕으로, 개개인과 민족들의 관계를 지배하는 죄의 구조를 극복하여야 한다. 죄의 구조는 법률, 시장의 법칙, 사법 체계의 수립과 적절한 개정을 통하여 연대성의 구조로 정화되고 전환되어야 한다.

 

Solidarity is also an authentic moral virtue, not a “feeling of vague compassion or shallow distress at the misfortunes of so many people, both near and far. On the contrary, it is a firm and persevering determination to commit oneself to the common good. That is to say to the good of all and of each individual, because we are all really responsible for all”[418]. Solidarity rises to the rank of fundamental social virtue since it places itself in the sphere of justice. It is a virtue directed par excellence to the common good, and is found in “a commitment to the good of one's neighbour with the readiness, in the Gospel sense, to ‘lose oneself' for the sake of the other instead of exploiting him, and to ‘serve him' instead of oppressing him for one's own advantage (cf. Mt 10:40-42, 20:25; Mk 10:42-45; Lk 22:25-27)”[419].

또한 연대성은 진정한 도덕 덕목 가운데 하나이다. 연대성은 가깝든 멀든 수많은 사람들의 불행을 보고서 막연한 동정심 내지 피상적인 근심을 느끼는 무엇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공동선에 투신하겠다는 강력하고 항속적인 결의이다. 우리 모두가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만큼, 만인의 선익과 각 개인의 선익에 투신함을 뜻한다.” 연대성은 정의의 영역 안에 자리하므로 근본적인 사회적 덕목 가운데 하나이다. 이것은 탁월하게 공동선을 지향하는 덕목이고 타인을 착취하는 대신에 이웃의 선익에 투신하고 복음의 뜻 그대로 남을 위하여 자기를 잃는각오로 임하는 것이다. 자기 이익을 위하여 남을 억압하는 대신에 그를 섬기는것이다(마태 10,40-42; 20,25; 마르 10,42-45; 루카 22,25-27 참조).”

 

 

c. Solidarity and the common growth of mankind

. 연대성과 인류 공동의 성장

 

194. The message of the Church's social doctrine regarding solidarity clearly shows that there exists an intimate bond between solidarity and the common good, between solidarity and the 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between solidarity and equality among men and peoples, between solidarity and peace in the world[420]. The term “solidarity”, widely used by the Magisterium[421], expresses in summary fashion the need to recognize in the composite ties that unite men and social groups among themselves, the space given to human freedom for common growth in which all share and in which they participate. The commitment to this goal is translated into the positive contribution of seeing that nothing is lacking in the common cause and also of seeking points of possible agreement where attitudes of separation and fragmentation prevail. It translates into the willingness to give oneself for the good of one's neighbour, beyond any individual or particular interest[422].

194. 연대성에 관한 교회의 사회 교리 메시지는 연대성과 공동선, 연대성과 재화의 보편적 목적, 연대성과 만민 평등, 연대성과 세계 평화 사이에 긴밀한 유대가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교도권에서 널리 사용하는 연대성이라는 용어는 인간과 사회 집단 사이를 이어주는 복합적인 유대를 인정하여야 할 필요성, 그리고 모든 사람이 공유하고 참여함으로써 함께 성장하기 위한 인간 자유의 필요성을 집약적으로 나타낸다. 이러한 목적에 대한 헌신은 공동 대의를 위해 부족한 것이 없도록 하고, 분열과 분리의 태도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합의점을 찾는 데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는 방향으로 바뀔 것이며, 또한 개인의 이해나 특정 이해를 넘어 이웃의 선익을 위하여 헌신하려는 의지로 바뀔 것이다.

 

195. The principle of solidarity requires that men and women of our day cultivate a greater awareness that they are debtors of the society of which they have become part. They are debtors because of those conditions that make human existence liveable, and because of the indivisible and indispensable legacy constituted by culture, scientific and technical knowledge, material and immaterial goods and by all that the human condition has produced. A similar debt must be recognized in the various forms of social interaction, so that humanity's journey will not be interrupted but remain open to present and future generations, all of them called together to share the same gift in solidarity.

195. 연대성의 원리는, 우리 시대의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이 속한 사회에 빚을 지고 있다는 인식을 기를 것을 요구한다. 인간 생활을 더욱 살기 좋게 해 주는 조건들과 문화, 과학과 기술 지식, 물질 재화와 비물질 재화, 또 인간 조건이 만든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불가분적이고 필수적인 유산 때문에 인간은 사회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에서 상호 작용하고 있는 다른 여러 형태들도 이와 유사한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인류의 여정은 결코 중단됨이 없이 현대와 미래 세대들에게 활짝 열려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은 모두 연대를 통해 같은 선물을 공유하도록 다함께 부름 받고 있다.

 

 

d. Solidarity in the life and message of Jesus Christ

.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메시지에 참여하는 연대성

 

196. The unsurpassed apex of the perspective indicated here is the life of Jesus of Nazareth, the New Man, who is one with humanity even to the point of “death on a cross” (Phil 2:8). In him it is always possible to recognize the living sign of that measureless and transcendent love of God-with-us, who takes on the infirmities of his people, walks with them, saves them and makes them one[423]. In him and thanks to him, life in society too, despite all its contradictions and ambiguities, can be rediscovered as a place of life and hope, in that it is a sign of grace that is continuously offered to all and because it is an invitation to ever higher and more involved forms of sharing.

196. 여기에서 제시된 전망은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필리 2,8) 인류와 하나가 되신 새 인간, 나자렛 예수의 생명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당신 백성의 나약함을 취하시고 그들과 함께 걸어가시며 그들을 구원해 주시고 하나가 되게 해 주시는 분의 측량할 길 없는 초월적인 사랑의 생생한 징표를 언제나 깨달을 수 있다. 그분을 통하여 그분 덕분에, 사회생활도 그것이 아무리 모호하고 모순투성이라 하더라도 생명과 희망의 장소로 재발견될 수 있다. 거기에서 모든 이는 끊임없이 은총의 표지를 받고 더욱 고귀하고 더욱 참여적인 형태의 나눔으로 초대받고 있기 때문이다.

 

Jesus of Nazareth makes the connection between solidarity and charity shine brightly before all, illuminating the entire meaning of this connection[424]: “In the light of faith, solidarity seeks to go beyond itself, to take on the specifically Christian dimensions of total gratuity, forgiveness and reconciliation. One's neighbour is then not only a human being with his or her own rights and a fundamental equality with everyone else, but becomes the living image of God the Father, redeemed by the blood of Jesus Christ and placed under the permanent action of the Holy Spirit. One's neighbour must therefore be loved, even if an enemy, with the same love with which the Lord loves him or her; and for that person's sake one must be ready for sacrifice, even the ultimate one: to lay down one's life for the brethren (cf. 1 Jn 3:16)”[425].

나자렛 예수님께서는 연대와 애덕의 관계를 모든 사람 앞에 밝게 비추어 주심으로써 이 관계의 온전한 의미를 밝혀 주신다.신앙에 비추어 볼 때에, 연대성은 그 자체를 초월하여, 전적인 무상성, 용서, 그리고 화해와 같은 각별히 그리스도교적인 차원을 띠고자 한다. 그렇게 될 때에, 이웃은 단지 자신의 권리를 지니고 있고 다른 이와 근본적으로 평등한 인간으로만 비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았고 성령의 항속적인 활동을 입고 있는 아버지 하느님의 살아있는 모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웃이 비록 원수라 하더라도, 주님께서 그를 사랑하신 것과 똑같은 사랑으로 사랑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희생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며, 궁극적인 희생, 곧 형제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1요한 3,16 참조) 희생까지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VII. THE FUNDAMENTAL VALUES OF SOCIAL LIFE

VII. 사회생활의 근본 가치

 

a. The relationship between principles and values

. 원리들과 가치들의 관계

 

197. Besides the principles that must guide the building of a society worthy of man, the Church's social doctrine also indicates fundamental values. The relationship between principles and values is undoubtedly one of reciprocity, in that social values are an expression of appreciation to be attributed to those specific aspects of moral good that these principles foster, serving as points of reference for the proper structuring and ordered leading of life in society. These values require, therefore, both the practice of the fundamental principles of social life and the personal exercise of virtue, hence of those moral attitudes that correspond to these very values[426].

197. 인간다운 사회 건설을 이끌어야 할 원리들과 더불어, 교회의 사회 교리는 근본적인 가치들도 제시한다. 원리들과 가치들 사이의 관계는 두말 할 나위 없이 상호적인 관계이다. 사회 가치들은, 그러한 원리들이 사회생활을 올바로 조직하고 질서 있게 이끌어나가는 준거로 작용하면서 촉진하는 도덕적 선의 구체적 측면들을 높이 평가한다는 한 표현이다. 따라서 이러한 가치들은 사회생활의 기본 원리들을 실천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개인적 덕의 실천과 그에 따라 이러한 가치들에 부합하는 도덕적 자세의 실천도 요구한다.

 

All social values are inherent in the dignity of the human person, whose authentic development they foster. Essentially, these values are: truth, freedom, justice, love[427]. Putting them into practice is the sure and necessary way of obtaining personal perfection and a more human social existence. They constitute the indispensable point of reference for public authorities, called to carry out “substantial reforms of economic, political, cultural and technological structures and the necessary changes in institutions”[428]. Respect for the legitimate autonomy of earthly realities prompts the Church not to claim specific competence of a technical or temporal order[429], but it does not prevent her from intervening to show how, in the different choices made by men and women, these values are either affirmed or denied[430].

사회의 모든 가치는 인간의 존엄성 안에 내재되어 있으며 인간의 진정한 발전을 도모한다. 이러한 가치들은 근본적으로 진리, 자유, 정의, 사랑이다. 이 가치들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자기 완성을 이루고 더욱 인간다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확실한 길이다. 그러한 가치들은 경제, 정치, 문화, 기술의 본질적 개혁과 필요한 제도 개혁을 이루도록 부름 받은 공권력의 필수적인 준거가 된다. 현세 실재의 정당한 자율성을 존중하여 교회는 법률상의 질서나 현세 질서에 대한 특별한 권한을 주장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내린 여러 가지 결정들 안에 이러한 가치들이 어떻게 수용되고 배척되는지 보여주기 위하여 현세 질서에 개입한다.

 

 

b. Truth

. 진리

 

198. Men and women have the specific duty to move always towards the truth, to respect it and bear responsible witness to it[431]. Living in the truth has special significance in social relationships. In fact, when the coexistence of human beings within a community is founded on truth, it is ordered and fruitful, and it corresponds to their dignity as persons[432]. The more people and social groups strive to resolve social problems according to the truth, the more they distance themselves from abuses and act in accordance with the objective demands of morality.

198. 모든 사람은 언제나 진리를 추구하고 존중하며 책임 있게 증언하여야 할 특별한 의무가 있다.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사회관계에서 특별히 중요하다. 실제로, 한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공존은 진리를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질서를 잡고 풍요로워지며 인간 존엄성에 부응하게 된다. 사람들과 사회 집단들이 진리에 따라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할수록 그들은 악습에서 더욱 멀어지고 객관적 도덕 요구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Modern times call for an intensive educational effort [433] and a corresponding commitment on the part of all so that the quest for truth cannot be ascribed to the sum of different opinions, nor to one or another of these opinions will be encouraged in every sector and will prevail over every attempt to relativize its demands or to offend it[434]. This is an issue that involves the world of public communications and that of the economy in a particular way. In these areas, the unscrupulous use of money raises ever more pressing questions, which necessarily call for greater transparency and honesty in personal and social activity.

현대는 진리를 다양한 의견들의 종합이라든가 이들 의견 가운데 어느 하나로 여기지 않도록 교육에 진력할 것과, 모든 사람이 이에 상응하는 노력을 할 것을 요구한다. 그럴 때에 모든 분야에서 진리 추구가 장려되고 진리의 요구를 상대화하거나 진리를 해치려는 모든 시도가 극복될 것이다. 이는 특별히 대중 커뮤니케이션 분야와 경제 분야에 관련된 문제이다. 이들 분야에서, 금전의 부도덕한 사용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하므로 개인과 사회의 활동에 더 큰 투명성과 정직성이 필히 요구된다.

 

 

c. Freedom

. 자유

 

199. Freedom is the highest sign in man of his being made in the divine image and, consequently, is a sign of the sublime dignity of every human person[435]. “Freedom is exercised in relationships between human beings. Every human person, created in the image of God, has the natural right to be recognized as a free and responsible being. All owe to each other this duty of respect. The right to the exercise of freedom, especially in moral and religious matters, is an inalienable requirement of the dignity of the human person”[436]. The meaning of freedom must not be restricted, considering it from a purely individualistic perspective and reducing it to the arbitrary and uncontrolled exercise of one's own personal autonomy: “Far from being achieved in total self-sufficiency and the absence of relationships, freedom only truly exists where reciprocal bonds, governed by truth and justice, link people to one another”[437]. The understanding of freedom becomes deeper and broader when it is defended, even at the social level, in all of its various dimensions.

199. 자유는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 존재의 탁월한 표징이고, 따라서 모든 인간이 지닌 최상의 존엄성의 표징이다. 자유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행사된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책임 있는 존재로 인정받을 타고난 권리를 지니고 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이러한 권리를 존중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자유를 행사할 권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분리될 수 없으며 도덕적,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특히 그러하다.” 자유를 순전히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생각한다거나 개인의 자율성을 멋대로 무절제하게 행사하여 자유를 축소함으로써 자유의 의미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자유는 관계의 단절과 전적인 자기 만족에서 성취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직 진리와 정의로 다스려지는 상호 유대가 사람들을 서로서로 이어주는 그 곳에, 자유는 참으로 존재한다.” 자유가 사회적으로 온갖 다양한 차원에서 수호될 때 자유에 대한 이해는 더욱 깊어지고 폭넓어진다.

 

200. The value of freedom, as an expression of the singularity of each human person, is respected when every member of society is permitted to fulfil his personal vocation; to seek the truth and profess his religious, cultural and political ideas; to express his opinions; to choose his state of life and, as far as possible, his line of work; to pursue initiatives of an economic, social or political nature. This must take place within a “strong juridical framework”[438], within the limits imposed by the common good and public order, and, in every case, in a manner characterized by responsibility.

200. 모든 인간의 독자성의 표현인 자유의 가치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각자 개인적 소명을 완수할 수 있을 때 존중된다. 곧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진리를 추구하고, 자신의 종교적 문화적 정치적 생각과 견해를 표현하고, 자기의 생활 신분을 선택하고, 자신의 직업 분야를 가능한 한 자기가 결정하며,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주도권을 추구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이것은 확고한 법적 테두리 안에서, 공동선과 공공질서가 정한 한계 안에서 모든 경우에 책임 있는 태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On the other hand, freedom must also be expressed as the capacity to refuse what is morally negative, in whatever guise it may be presented[439], as the capacity to distance oneself effectively from everything that could hinder personal, family or social growth. The fullness of freedom consists in the capacity to be in possession of oneself in view of the genuine good, within the context of the universal common good[440].

다른 한 편으로, 자유는 또한, 제아무리 그럴싸하게 포장된 것이라도 도덕적으로 그릇된 것은 무엇이든 거부할 수 있는 능력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이 능력은 개인이나 가족 또는 사회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효과적으로 멀리할 수 있는 자질이다. 충만한 자유는 보편적 공동선의 맥락 안에서 진정한 선을 위하여 개인이 스스로를 통제하는 능력이다.

 

 

d. Justice

. 정의

 

201. Justice is a value that accompanies the exercise of the corresponding cardinal moral virtue[441]. According to its most classic formulation, it “consists in the constant and firm will to give their due to God and neighbour”[442]. From a subjective point of view, justice is translated into behaviour that is based on the will to recognize the other as a person, while, from an objective point of view, it constitutes the decisive criteria of morality in the intersubjective and social sphere[443].

201. 정의는 그에 상응하는 사추덕의 행사를 수반하는 가치이다. 가장 고전적인 공식에 따르면, 정의는 마땅히 하느님께 드릴 것을 드리고 이웃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려는 지속적이고 확고한 의지이다.” 주관적인 기준에서, 정의가 다른 사람을 한 인격체로 인정하려는 의지에 바탕을 둔 행위라고 한다면, 객관적인 기준에서, 정의는 상호 주관적이고 사회적인 영역에 확고한 도덕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The Church's social Magisterium constantly calls for the most classical forms of justice to be respected: commutative, distributive and legal justice[444]. Ever greater importance has been given to social justice[445], which represents a real development in general justice, the justice that regulates social relationships according to the criterion of observance of the law. Social justice, a requirement related to the social question which today is worldwide in scope, concerns the social, political and economic aspects and, above all, the structural dimension of problems and their respective solutions[446].

교회의 사회 교도권은 가장 고전적인 정의의 형태인 교환 정의, 분배 정의, 그리고 법적 정의에 대한 존중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법 준수의 기준에 따라 사회 관계를 규정하는 정의인 일반 정의의 진정한 발전을 나타내는 사회 정의 더욱 큰 중요성이 부여되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적 차원의 사회 문제와 관련하여 요청되는 사회 정의는 사회 정치 경제적 측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의의 구조적 차원과 그 해결책과 관계된다.

 

202. Justice is particularly important in the present-day context, where the individual value of the person, his dignity and his rights despite proclaimed intentions are seriously threatened by the widespread tendency to make exclusive use of criteria of utility and ownership. Justice too, on the basis of these criteria, is considered in a reductionist manner, whereas it acquires a fuller and more authentic meaning in Christian anthropology. Justice, in fact, is not merely a simple human convention, because what is “just” is not first determined by the law but by the profound identity of the human being[447].

202. 정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특히 중요하다. 오늘날 인간과 인간이 지닌 존엄성과 권리의 개별적 가치는, 원래의 의도와는 반대로 효용성과 소유의 기준에 따라 배타적으로 이용되는 경향이 만연됨으로써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정의 역시 이러한 기준에 근거하여 환원주의적으로 해석된다. 반면에 그리스도교 인간학에서 정의는 더욱 충만하고 진정한 의미를 얻게 된다. 실제로 정의는 그저 단순히 인간의 협약이 아니다. “옳은것은 먼저 법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오한 본질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203. The full truth about man makes it possible to move beyond a contractualistic vision of justice, which is a reductionist vision, and to open up also for justice the new horizon of solidarity and love. “By itself, justice is not enough. Indeed, it can even betray itself, unless it is open to that deeper power which is love”[448]. In fact, the Church's social doctrine places alongside the value of justice that of solidarity, in that it is the privileged way of peace. If peace is the fruit of justice, “today one could say, with the same exactness and the same power of biblical inspiration (cf. Is 32:17; Jas 3:18): Opus solidaritatis pax, peace as the fruit of solidarity”[449]. The goal of peace, in fact, “will certainly be achieved through the putting into effect of social and international justice, but also through the practice of the virtues which favour togetherness, and which teach us to live in unity, so as to build in unity, by giving and receiving, a new society and a better world”[450].

203. 인간에 대한 온전한 진리는, 정의에 대한 일종의 환원주의적 관점인 계약주의적 관점을 뛰어넘어 정의를 위하여 연대성과 사랑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게 한다. “정의는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실 정의는 사랑이라는 더욱 깊은 힘에 열려 있지 않으면 스스로 배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회의 사회 교리는 정의의 가치를 연대의 가치와 나란히 둔다. 정의는 평화로 가는 우선적인 길이기 때문이다. 평화가 정의의 열매(Opus justitiae pax)라면, “오늘날에도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 똑같은 의미와 똑같은 힘으로(이사 32,17; 야고 3,18 참조), ‘평화는 연대의 열매’(Opus solidaritatis pax)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 사실 평화의 목표는 사회 정의와 국제 정의를 실현하고 인간이 공동생활을 선호하고 단결해서 살도록 가르쳐 주는 덕들을 실천함으로써 서로 주고받으며 단결하는 가운데 새로운 사회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VIII. THE WAY OF LOVE

VIII. 사랑의 길

 

204. Among the virtues in their entirety, and in particular between virtues, social values and love, there exists a deep bond that must be ever more fully recognized. Love, often restricted to relationships of physical closeness or limited to merely subjective aspects of action on behalf of others, must be reconsidered in its authentic value as the highest and universal criterion of the whole of social ethics. Among all paths, even those sought and taken in order to respond to the ever new forms of current social questions, the “more excellent way” (cf. 1 Cor 12:31) is that marked out by love.

204. 모든 덕들 사이에는, 특히 사회적 가치와 사랑이라는 덕 사이에는 더욱 온전하게 인식되어야 할 깊은 유대가 있다. 흔히 육체적으로 친밀한 관계로 국한되거나 단순히 다른 사람들을 위한 주관적인 측면의 행동으로 한정되어버리고 마는 사랑은 사회 윤리 전체의 가장 높고 보편적인 기준인 그것의 진정한 가치 안에서 재인식되어야 한다. 더욱 새로운 형태의 현대의 사회 문제들에 대처하고자 추구하고 선택하는 모든 길 가운데에서 가장 위대한 길’(1코린 12,31 참조)사랑의 길이다.

 

205. It is from the inner wellspring of love that the values of truth, freedom and justice are born and grow. Human life in society is ordered, bears fruits of goodness and responds to human dignity when it is founded on truth; when it is lived in justice, that is, in the effective respect of rights and in the faithful carrying out of corresponding duties; when it is animated by selflessness, which makes the needs and requirements of others seem as one's own and intensifies the communion of spiritual values and the concern for material necessities; when it is brought about in the freedom that befits the dignity of men and women, prompted by their rational nature to accept responsibility for their actions[451]. These values constitute the pillars which give strength and consistency to the edifice of life and deeds: they are values that determine the quality of every social action and institution.

205. 바로 사랑의 깊은 샘에서 진리와 자유와 정의의 가치들이 생겨나고 자라는 것이다. 인간의 사회생활이 진리를 바탕으로 할 때, 또한 실질적으로 권리를 존중하고 그에 상응하는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면서 정의 안에서 이루어질 때, 그리고 다른 이의 요구와 필요를 자기 것처럼 여기고, 영적 가치의 친교와 물질적 필요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켜 주는 이기심 없는 태도로 활기를 얻을 때,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이성적 본성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모든 사람의 인간 존엄성을 드높여주는 자유 안에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질서가 잡히고 선의 결실을 맺고 인간의 존엄성에 부응하게 된다. 이러한 가치들은 삶과 행동이라는 건물이 튼튼하고 오래갈 수 있도록 하는 기둥 역할을 한다. 곧 이러한 가치들이 모든 사회 활동과 제도의 질을 결정짓는 것이다.

 

206. Love presupposes and transcends justice, which “must find its fulfilment in charity”[452]. If justice is “in itself suitable for ‘arbitration' between people concerning the reciprocal distribution of objective goods in an equitable manner, love and only love (including that kindly love that we call ‘mercy') is capable of restoring man to himself”[453]. Human relationships cannot be governed solely by the measure of justice: “The experience of the past and of our own time demonstrates that justice alone is not enough, that it can even lead to the negation and destruction of itself ... It has been precisely historical experience that, among other things, has led to the formulation of the saying: summum ius, summa iniuria”[454]. In fact, “in every sphere of interpersonal relationships justice must, so to speak, be ‘corrected' to a considerable extent by that love which, as St. Paul proclaims, ‘is patient and kind' or, in other words, possesses the characteristics of that merciful love which is so much of the essence of the Gospel and Christianity”[455].

206. 사랑은 정의를 전제로 하는 동시에 정의를 초월한다. 정의는 사랑 안에서 완성되어야 한다.” 만일 정의가 객관적인 재화를 공평하게 나누는 것과 관련하여 인간들 사이를 중재하는 데에 적절하다고 한다면, (‘자비라고 일컫는 친절한 사랑을 비롯한) 사랑, 오직 사랑만이 인간을 본래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한다.” 인간관계는 정의의 척도로만 다스려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와 우리 시대에 걸친 이 같은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정의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 정의라는 것이 곧 정의 자체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그래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최고의 정의는 최고의 불의다(summum ius, summa iniuria).’라는 격언이 나오기까지 하는 것이다.” 실제로, “모든 인간관계에서는 정의가 사랑을 통해서 상당한 정도로 교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랑은 바오로 성인께서 공언하시는 대로 오래 참고 친절하며’, 달리 말하자면 복음과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이루는 자비로운 사랑의 특성들을 띤다

 

 

207. No legislation, no system of rules or negotiation will ever succeed in persuading men and peoples to live in unity, brotherhood and peace; no line of reasoning will ever be able to surpass the appeal of love. Only love, in its quality as “form of the virtues”[456], can animate and shape social interaction, moving it towards peace in the context of a world that is ever more complex. In order that all this may take place, however, it is necessary that care be taken to show love not only in its role of prompting individual deeds but also as a force capable of inspiring new ways of approaching the problems of today's world, of profoundly renewing structures, social organizations, legal systems from within. In this perspective love takes on the characteristic style of social and political charity: “Social charity makes us love the common good”[457], it makes us effectively seek the good of all people, considered not only as individuals or private persons but also in the social dimension that unites them.

207. 어떠한 법이나 법 체계도, 어떠한 협상도 사람과 민족들이 일치와 형제애, 평화를 누리며 살게 해 줄 수는 없다. 어떤 이성적 사고도 사랑의 호소를 능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특성으로 하는 사랑만이 사회적 상호 작용에 활력과 형태를 불어넣어 예전보다 더욱 복잡해진 세상 속에 평화를 구축하는 데 이바지하게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려면, 개별 행동을 재촉하는 사랑의 역할뿐만 아니라, 현대 세계의 문제들에 새롭게 접근하는 방식을 가르쳐 줄 수 있고 사회 구조들과 사회 조직, 법적 체계들을 내부로부터 쇄신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을 보여 주도록 하여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랑은 사회적 정치적 애덕이라는 특징적인 형태를 띤다. “사회의 애덕으로 우리는 공동선을 사랑하게 되며,” 또한 개인이나 민간뿐 아니라 그들을 결합시켜 주는 사회적 차원에서 모든 사람의 선익을 효과적으로 추구하게 된다.

 

208. Social and political charity is not exhausted in relationships between individuals but spreads into the network formed by these relationships, which is precisely the social and political community; it intervenes in this context seeking the greatest good for the community in its entirety. In so many aspects the neighbour to be loved is found “in society”, such that to love him concretely, assist him in his needs or in his indigence may mean something different than it means on the mere level of relationships between individuals. To love him on the social level means, depending on the situations, to make use of social mediations to improve his life or to remove social factors that cause his indigence. It is undoubtedly an act of love, the work of mercy by which one responds here and now to a real and impelling need of one's neighbour, but it is an equally indispensable act of love to strive to organize and structure society so that one's neighbour will not find himself in poverty, above all when this becomes a situation within which an immense number of people and entire populations must struggle, and when it takes on the proportions of a true worldwide social issue.

208. 사회적 정치적 애덕은 개인 간의 관계 안에서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관계들을 통하여 형성된 관계망, 바로 사회 정치 공동체 안으로 확산되며, 공동체 전체를 위한 최고의 선을 추구하는 이러한 배경 안에 놓인다. 여러 측면에서, 사랑받아야 할 이웃은 사회 안에있으며, 따라서 이웃을 구체적으로 사랑하고 궁핍하고 곤궁한 이웃을 도와주는 것은 개인 간의 관계라는 단순한 차원과는 다른 무엇을 의미할 수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사회의 중개를 활용해 이웃의 삶을 개선하고 이웃의 가난을 초래하는 사회적 요인들을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사랑의 행위, 자비 행위를 통하여 인간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자기 이웃의 실재적이고 절박한 필요에 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이웃이 가난에 빠지지 않도록 사회를 구성하고 조직하기 위해 애쓰는 사랑의 행위도 마찬가지로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무엇보다도 수많은 사람들과 국민 전체가 가난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거나 실제로 가난이 전 세계적 차원의 사회 문제일 때에 특히 그러하다.

 


  영한편집 작업 : 김광진(요셉)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간추린 사회교리』 영한비교 자료, 웹 & 모바일 검색서비스 안내 file 박경수 2016-05-26 1614
16 표지와 목차, 주요 문헌집 명칭과 성서 약어 박경수 2016-05-23 2446
15 교황청 국무원장 서한, 교황청 정의평화 평의회 소개글 박경수 2016-05-23 2789
14 서문 (1~19항) - 통합적이고 연대적인 인도주의 박경수 2016-05-23 2698
13 제1부, 제1장 (20~59항) - 인류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계획 박경수 2016-05-23 2616
12 제2장 (60~104항) - 교회의 사명과 사회교리 박경수 2016-05-23 2394
11 제3장 (105~159항) - 인간과 인권 박경수 2016-05-23 2770
» 제4장 (160~208항) - 교회의 사회 교리 원리들 박경수 2016-05-23 2510
9 제2부, 제5장 (209~254항) - 사회의 기본 세포인 가정 박경수 2016-05-23 1307
8 제6장 (255~322항) - 인간 노동 박경수 2016-05-23 2149
7 제7장 (323~376항) - 경제 생활 박경수 2016-05-23 1850
6 제8장 (377~427항) - 정치 공동체 박경수 2016-05-23 1446
5 제9장 (428~450항) - 국제 공동체 박경수 2016-05-23 1302
4 제10장 (451~487항) - 환경 보호 박경수 2016-05-23 1584
3 제11장 (488~520항) - 평화 증진 박경수 2016-05-23 1477
2 제3부, 제12장 (521~574항) - 사회 교리와 교회 활동 박경수 2016-05-23 1353
1 결론 (575~583항) - 사랑의 문명을 위하여 박경수 2016-05-23 1220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