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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위 강론자료 및 기고

 

[강론]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미사

사무국, 2014-10-23 17: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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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와 교회

20141022(수요일)

세월호를 기억하며 바치는 미사

명동 가톨릭회관

 

 

세월호는 교회의 교회다움의 표지가 되어야 합니다

 

 

1. 공개적으로 내버려진 수많은 생명

(인간을 내다 버리는 문화-복음의 기쁨53항 참조)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일어난 사고가 아니었다.

창공에서 일어난 사고도 아니었다.

아무도 손을 수 없는 곳에서,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사고가 아니었다.

오히려 가까운 곳에서, 그것도 방송을 통해 오랫동안 지켜본 사고였다.

배 밖으로 나온 사람 말고는 아무도 구하지 못했음을 지켜만 보아야 했다.

지금 저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를 생각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바라보기만 한 사건이 과연 있었던가?

아마도 이런 일은 인류 역사에서 처음일 것이다.

 

2. 국가의 존재이유에 대한 심각한 의문(국가는 무엇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국가는 시민의 생명을 보호할 재원(인적, 물적)과 제도와 조직,

그리고 수단(경찰력과 군사력 - 오로지 국가만이 갖고 있는 합법적 폭력이다)을 갖고 있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최상의 힘을 갖고 있다.

그 힘으로 내세워 매일 같이 안보를 외친 정부 아니었던가?

 

지금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민 행복의 필수적인 요건이므로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도,

여성이나 장애인 또는 그 누구라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정부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정부 역량을 집중할 그 자리, 그 시간,

정작 안보가 가장 필요한 그 때, ‘국가,

좀 더 정직하게는 정부는 어디에 있었으며, 또 무엇을 했는가?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깊고’, ‘앞이 보이지 않아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

정부의 역량을 집중하지 못할 이유가 될 수 있는가?

민간인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용감한 시민으로서 영웅이 되어 칭송을 받거나, 그냥 시민이거나...

 

(사실 친구를 먼저 내보낸 학생, 선생님, 선원이 있었다.

제자의 죽음에 괴로워하시던 교감 선생님은 스스로 제자들 곁으로 가셨다.

다른 때 같으면, 이들의 영웅적 행위가 사람들을 그나마 위로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들 영웅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보일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숨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돋보이면 돋보일수록, 사람들은 물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를 말이다.)

 

그러나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합법적 폭력 수단

곧 경찰력과 군사력까지 지닌 국가는 그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오히려 물살이 빠른그곳에서, ‘수심이 깊은그곳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그곳에서, 말하자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 받는 그곳에서,

그 합법적 폭력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배 안에 갇힌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최소한 그것만이라도 하라고, 민간인(?)은 국가에 그 권력을 위임한 것 아닌가?

그래서 묻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역량이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동안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며 구축했던 그 막강한 군사력과 경찰력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혹은 역량은 있는데, 역량을 집중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 정부는 무엇을 기준으로 역량의 집중 여부를 결정한 것인가?

그 군사력과 경찰력이 지키려 했던 생명과 안전은 누구의 생명과 안전을 말하는 것인가?

 

3. 참사 이후 시민사회가 보인 우리의 자화상

 

정치 분야를 보자. 시민을 위한 정치권력,

국가와 시민에 봉사할 수 있도록 권력을 달라고 읍소했던,

거대 정당들과 정치인들은 이 참사를 이기적으로활용했다.(지방선거, 보궐선거)

공권력은 참사의 원인, 곧 국가의 역량집중부재 대신에 유병언에 관심을 돌리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사실 성공한 듯하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도록 참사세월호 특별법에 관한 논란 정도로 환원되었다.

 

경제 분야는 무절제한 탐욕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흘리면서 참사를 이용했다.

 

여기에 대부분의 대중매체는 정론직필의 언론의 역할을 버리고,

스스로 혹은 타의로 기레기가 되어버린 지경에 이르렀다.

소비주의의 문화는 자극적 정보를 소비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마침내 다수의 시민은 참사를 외면하거나 잊으려 하고,

심지어 조롱하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세월호 참사는, 곧 수백 명의 죽음은

정치 공동체인 국가의 최고 합법적 권력인 정부가 무능하고 무책임함을 드러냈고,

그 진짜 존재이유에 대해 심각한 물음을 제기했으며,

또 시민사회가 과연 인간의 사회인지를 묻고 있다.

 

 

4. 이 상황에서 교회의 길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교회가 위선에 빠질 수도 있고,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될 수 있는 표지가 될 것이다.(루카 10,29-37 참조)

 

사제와 레위는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나 모든 것을 빼앗기고,

뭇매를 맞아 초주검이 되어 길에 내버려진 어떤 사람을 보고

왜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을까?

초주검이 된 그 사람보다 하느님이 더 중요한 분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제와 레위는 정당함을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 곧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위해서는

가엾지만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위로했을 지도 모른다.

 

사마리아 사람 역시 그를 보았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는 사제와 레위와는 달리, 자기 할 일, 여행을 멈췄다.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버린 사제와 레위와는 달리,

그에게 다가갔고,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맸다.

자기 노새를 태웠다. 여관까지 데려가 돌보아 주었다.

자기 비용을 들여서 그렇게 했다.

지금 정부의 부재 혹은 무능으로, 시민사회의 무관심과 탐욕 같은 부조리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초주검이 되어 길로 내쫓기고 있는가?

 

한국천주교회는 기도생활과 영성생활 혹은 교회생활을 내세워

초주검이 된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린 사제와 레위가 되려하는가?

 

일면식도 없는 이의 고통에 공감하고 동행하며, 지지하고, 일으켜 세우고,

스스로 걷게 하기 위해 자기 비용을 아낌없이 지출한 사마리아 사람이 될 것인가?

 

얼마 전 다녀가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사람을 만나지 않거나, 사회적 약자와 형제애로 연대하지 않거나,

사회에 투신하지 않는, 그런 교회의 기도생활과 영성생활을 두고

자아도취자기만족이라고, ‘정신적 소비주의에 불과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는 충만하고 존엄한 삶도 아니고, 하느님의 뜻도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에서 흘러나오는 성령 안의 삶도 아니라고 하셨다.

한마디로 하느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야 하고,

하나도 남김없이 참사의 원인을 밝은 곳으로 드러내야 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구조적 장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했듯이, 교회도 가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공동체가 정치공동체다움을

시민사회가 시민사회다움을 회복하는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교회의 교회다움(“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수백명의 생명을 앗아간 우리의 죄를 조금이라도 씻을 수 있다.

 

20137월 람페두사를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무관심의 세계화를 회개하며 바친 미사에서 다음과 같은 기도로 강론을 마치셨다.

 

주님, 저희 그리스도인이 많은 형제자매들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에 용서를 청합니다.(교회의 위선에 대해 용서를 청한 것으로 해석한다.)

아버지, 자기만족과 자신만의 행복에 갇혀있었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던 이들에 대해 용서를 청합니다.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용서를 청한 것이다.)

자신들의 결정이 세계적 차원에서 이러한 비극으로 이끈 상황을 만든

모든 사람들을 위해 용서를 청합니다.

(국가, 혹은 지도자들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청한 것이다.)

우리를 용서하소서. 주님!

주님, 오늘 저희는 당신이 주신 물음을 들었습니다.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 “네 형제의 흘린 피가 어디에 있느냐?”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루카 12,47) 아멘.

 

잠시 침묵가운데 마음을 가다듬읍시다.

 

 

세월호와 교회 미사 강론(2014102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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