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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교회


-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

 


교회 5.18, 교회, 그리고 사회교리

2016.05.09 12:50

사무국 조회 수:1604

[의정부교구 주보] 2016.5.8


이달의 사건으로 풀어보는 사회교리


                                                                                                     5.18, 교회, 그리고 사회교리 

                                                                                                                                   박문수 프란치스코 박사, 사목연구소


1. 대주교의 회심

지금은 은퇴하신 전 광주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의 일화입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대교구청은 금남로에 있는 가톨릭회관에 있었습니다. 교구장 집무실은 금남로가 내려다보이는 센터 위쪽에 있었고요. 5.18 민주화운동의 한 복판이던 어느 날 금남로에서는 시위대와 이를 진압하려는 공수부대원들의 쫓고 쫓기는 살풍경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마침 윤 대주교가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쫓기던 시민 한 명이 그의 집무실 바로 아래서 공수부대원으로부터 곤봉에 맞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두려웠던지 초주검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차마 창문을 열고 소릴 지르지 못했습니다. 이 일은 두고두고 대주교를 괴롭혔습니다.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지 못했다는 양심의 가책 때문이지요. 그러나 윤 대주교는 이 부끄러운 기억을 딛고 이후 5.18의 진상을 밝히는 일에 앞장섭니다. 5.18을 기억할 때마다 윤공희 대주교가 가장 먼저 떠오를 만큼 그의 역할이 컸지요.


2. ‘5.18 민주화 운동의 진상

1997년 대법원에서 ‘1979년의 12.12사태와 19805.18 민주화 운동에 대하여 내린 판결문으로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대신하려 합니다.

-성공한 쿠데타라 하더라도 "피고인들이 정권장악을 통해 새로운 법질서를 수립한 것으로 볼 수 없고, 우리의 헌법 질서 하에서는 헌법에 의한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폭력에 의해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한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

-“피고인들이 국헌을 문란케 할 목적으로 시국수습 방안의 실행을 모의하고, 모의할 당시 그 실행에 대한 국민들의 큰 반발과 저항을 예상하고, 이에 대비해 '강력한 타격'의 방법으로 시위를 진압하도록 평소에 훈련된 공수부대 투입을 계획한 후, 이에 따라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진압봉이나 총 개머리판으로 시위자들을 가격하는 등으로 시위자에게 부상을 입히고 도망하는 시위자를 점포나 건물 안까지 추격해 대량으로 연행하는 강경한 진압작전을 감행하였으며, 이와 같은 난폭한 계엄군의 과잉진압에 분노한 시민들과의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나서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발포함으로써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그 후 일부 시민의 무장저항이 일어났으며, 나아가 계엄군이 광주시 외곽으로 철수한 이후 귀중한 국민의 생명을 희생하여서라도 시급하게 재진입작전을 강행하지 아니하면 안 될 상황이나 또는 광주시민들이 급박한 위기상황에 처하여 있다고도 볼 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시위를 조속히 진압하여 시위가 다른 곳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지 아니하면 내란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자, 계엄군에게 광주 재진입작전을 강행하도록 함으로써 다수의 시민을 사망하게 하였다.”


3. ‘5.18 민주화운동과 교회

1997년 이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진상을 밝히는 데만 무려 이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2009년 광주광역시는 5.18 민주화운동으로 사망자 163, 행불자 166, 부상 후 사망자 101, 부상자 3,139, 구속 및 구금 등의 기타 피해자 1,589, 무연고자 희생자 5명 등 총 5,189명의 시민이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습니다. 진압에 참여한 경찰 4, 군인 22명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토록 엄청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 왜 그리 오랜시간이 걸렸는지 의아하실 터입니다. 하지만 불과 2년 전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지금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현실을 보면 이해가 쉬우실 것입니다. 그나마 시절이 좋은 요즘이 이 정도인데 정치군인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이니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습니까? 사실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밝히는 일은 꽤 긴 시간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사정 탓에 진실규명 과정에서 교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언론이 철저히 통제되고, 이런 시도를하는 이들이 험한 꼴을 당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윤공희 대주교는 이 엄혹한 상황에서도 비밀리에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에게 5.18의 진실을 전합니다. 광주대교구 사제들도 목숨을 걸고 사건의 진상을 외부로 알렸습니다. 이들의 용기 덕에 여러 교구에 이 사건의 진상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민들도 진상에 점점 더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교회의 이런 숨은 노력이 없었다면 이 사건은 여전히 장막에 가려져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일부 사람들이 왜곡하는 바와 같이 남파된 북한 특수부대원들과 그에 동조한 일부 불순세력들이 일으킨 난동으로 기억했을지 모릅니다. 어떻든 고난을 각오한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교회는 다시 한번 국민들로부터 큰 신뢰를 얻게 됩니다.


4. 사회교리의 판단

사회교리를 기준으로 볼 때 이 사건을 일으킨 주역들의 잘못은 명백합니다. 국가를 사유물로 여기고, 국가의 존재이유인 공동선 실현의 임무를 수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공동선은 다수의 이익을 지키려는 공리주의와 다릅니다. 어떤 사람도 그 집단에서 소외시키지 않고 그들의 이익을 지켜주는 것이 공동선입니다. 그런데 내란을 주도한 정치군인들과 그들의 내란에 동조한 이들은 자신들의 그릇된 욕망만 실현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게다가 무고한 시민들에게 발포를 명령해 많은 이들을 죽게 하였으니 하느님 모상인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한 중범죄자들이기도 하지요. 대법원 판결문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은 내란을 일으켜 국가권력을 폭력으로 강탈한 강도들이었을 뿐입니다. 어떤 기준을 적용해도 이들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5. 역사를 배우는 이유

자신이 강도라도 자식들에게는 그 짓이 나쁘다고 가르치는 게 부모입니다. 자신이 그리 살지 못해도 자녀들에게는 바르게 살라 가르치는 것도 부모의 일입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교훈을 얻기 위해 공부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후손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지를 생각하며 오늘의 행동을 삼갔습니다. 그런데 일부 국민들은 과거사를 입맛대로 해석하려 합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심한 경우 희생자들에게 모욕에 가까운 언사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새롭게 읽어 보려는 것입니다. 착한 일은 못해도 최소한 악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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