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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한비교 간추린 사회교리

 

 

 

      

PART ONE / 1

 

 

 

 

“The theological dimension is needed both

for interpreting and for solving

present day problems in human society”.

(Centesimus Annus, 55)

 

이러한 신학적 차원은

인간 사회의 현대 문제들을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백주년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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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ONE / 1

 

GOD'S PLAN OF LOVE FOR HUMANITY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의 계획

 

 

 

I. GOD'S LIBERATING ACTION IN THE HISTORY OF ISRAEL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느님의 해방 활동

 

a. God's gratuitous presence / 하느님의 무상의 현존

 

20. Every authentic religious experience, in all cultural traditions, leads to an intuition of the Mystery that, not infrequently, is able to recognize some aspect of God's face. On the one hand, God is seen as the origin of what exists, as the presence that guarantees to men and women organized in a society the basic conditions of life, placing at their disposal the goods that are necessary. On the other hand, he appears as the measure of what should be, as the presence that challenges human action both at the personal and at the social levels regarding the use of those very goods in relation to other people. In every religious experience, therefore, importance attaches to the dimension of gift and gratuitousness, which is seen as an underlying element of the experience that the human beings have of their existence together with others in the world, as well as to the repercussions of this dimension on the human conscience, which senses that it is called to manage responsibly and together with others the gift received. Proof of this is found in the universal recognition of the golden rule, which expresses on the level of human relations the injunction addressed by the Mystery to men and women: “Whatever you wish that men should do to you, do so to them” (Mt 7:12)[23].

20. 모든 문화 전통에서, 모든 진정한 종교적 체험은 흔히 하느님 모습의 일부 측면을 인식할 수 있는 신비를 직관할 수 있게 한다. 한편으로, 하느님께서는 모든 존재의 기원으로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며 사회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재화를 사용할 수 있게 하심으로써 기본적인 생활 조건을 보장해 주시는 분으로 나타나신다. 다른 한편으로, 하느님께서는 당위(當爲) 척도로서, 곧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련하여 그 재화를 사용할 때 인간 행동에 영향을 주는 존재로서 나타나신다. 따라서 모든 종교적 체험에서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남과 더불어 살아가며 겪는 체험의 밑바탕이 되는 요소로 여겨지는 은총무상성의 차원, 그리고 그러한 차원이 인간 양심에 미치는 영향에 중요성을 부여한다. 곧 인간의 양심이 자기가 받은 은총을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책임감 있게 관리하도록 부름 받았음을 느끼도록 영향을 미치는 것에 중요성을 부여한다. 이에 대한 증거는, 인간관계와 관련하여 신비께서 인간에게 내리신 명령,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하신 황금률을 보편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21. Against the background of universal religious experience, in which humanity shares in different ways, God's progressive revelation of himself to the people of Israel stands out. This revelation responds to the human quest for the divine in an unexpected and surprising way, thanks to the historical manner striking and penetrating in which God's love for man is made concrete. According to the Book of Exodus, the Lord speaks these words to Moses: “I have seen the affliction of my people who are in Egypt, and have heard their cry because of their taskmasters; I know their sufferings, and I have come down to deliver them out of the hand of the Egyptians, and to bring them up out of that land to a good and broad land, 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Ex 3:7-8). The gratuitous presence of God to which his very name alludes, the name he reveals to Moses, “I am who I am” (Ex 3:14) is manifested in the freeing from slavery and in the promise. These become historical action, which is the origin of the manner in which the Lord's people collectively identify themselves, through the acquisition of freedom and the land that the Lord gives them.

21. 인류가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종교적 체험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점진적으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신 일이 단연 두드러진다. 이 계시는 신성한 것에 대한 인간의 추구에 역사의 힘을 빌려 예상치 못한 놀라운 방식으로 응답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역사적으로 놀랍고도 예리한 방식으로 구현된 것이다. 탈출기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러한 말씀을 하신다. “나는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나 이제 내려가서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그 땅에서 이끌어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넓은 땅으로 데려가고자 한다”(탈출 3,7-8). 하느님의 이러한 무상의 현존은 나는 곧 나다.”(탈출 3,14)라고 모세에게 밝히신 당신 이름 자체가 암시하듯이, 이집트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신 일과 당신 약속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이러한 역사적 행위에서 시작하여 주님의 백성은 주님께서 주신 자유을 얻음으로써 집단적으로 일체감을 갖게 되는 것이.

 

22. The gratuitousness of this historically efficacious divine action is constantly accompanied by the commitment to the covenant, proposed by God and accepted by Israel. On Mount Sinai, God's initiative becomes concrete in the covenant with his people, to whom is given the Decalogue of the commandments revealed by the Lord (cf. Ex 19-24). The “ten commandments” (Ex 34:28; cf. Deut 4:13; 10:4) “express the implications of belonging to God through the establishment of the covenant. Moral existence is a response to the Lord's loving initiative. It is the acknowledgment and homage given to God and a worship of thanksgiving. It is cooperation with the plan God pursues in history”[24].

22. 이처럼 역사적으로 효력을 지닌 하느님의 무상 행위에는 언제나, 하느님께서 제안하시고 이스라엘이 받아들인 계약에 대한 의무가 따른다. 하느님의 주도하심은 시나이 산에서 주님께서 내리신 십계명(탈출 19-24장 참조)을 받은 당신 백성과 맺으신 계약으로 구체화된다. “십계명”(탈출 34,28; 신명 4,13; 10,4 참조)계약의 성립으로 하느님께 속한 인간 조건을 말해 주고 있다. 윤리적인 삶은 주도적인 하느님의 충만한 사랑에 대한 응답이다. 그것은 하느님을 알아 뵙고 그분께 바치는 충성이며, 감사의 예배 행위이고, 하느님께서 역사를 통해 추진하시는 계획에 협력하는 것이다.”

 

The Ten Commandments, which constitute an extraordinary path of life and indicate the surest way for living in freedom from slavery to sin, contain a privileged expression of the natural law. They “teach us the true humanity of man. They bring to light the essential duties, and therefore, indirectly, the fundamental rights inherent in the nature of the human person”[25]. They describe universal human morality. In the Gospel, Jesus reminds the rich young man that the Ten Commandments (cf. Mt 19:18) “constitute the indispensable rules of all social life”[26].

계명은 삶의 훌륭한 지침이며 죄의 예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을 알려주는 것으로서 자연법을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다. 십계명은 우리에게 참다운 인간성도 가르쳐 준다. 십계명은 기본적인 의무를 명확하게 밝혀 줌으로써, 간접적으로는, 인간 본성에 속하는 기본 권리들도 명확하게 밝혀 준다.” 십계명은 보편적인 인간 윤리를 설명한다. 복음에서(마태 19,18 참조)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십계명은 모든 사회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기본 규율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신다.

 

23. There comes from the Decalogue a commitment that concerns not only fidelity to the one true God, but also the social relations among the people of the Covenant. These relations are regulated, in particular, by what has been called the right of the poor: “If there is among you a poor man, one of your brethren, ... you shall not harden your heart or shut your hand against your poor brother, but you shall open your hand to him, and lend him sufficient for his need” (Deut 15:7-8). All of this applies also to strangers: “When a stranger sojourns with you in your land, you shall not do him wrong. The stranger who sojourns with you shall be to you as the native among you, and you shall love him as yourself; for you were strangers in the land of Egypt: I am the Lord your God” (Lev 19:33-34). The gift of freedom and the Promised Land, and the gift of the Covenant on Sinai and the Ten Commandments are therefore intimately linked to the practices which must regulate, in justice and solidarity, the development of Israelite society.

23. 한 분이신 참 하느님께 충실하고 또 계약의 백성들이 서로 사회관계에 충실하여야 할 의무는 십계명에서 나온다. 이러한 관계는 특히 이른바 가난한 이들의 권리로써 규정된다. “동족으로서 가난한 사람이 있거든 너희는 인색한 마음으로 돈을 움켜잡거나 그 가난한 형제를 못 본 체하지 마라. 손을 펴서 그가 필요한 만큼 넉넉하게 꾸어 주어라”(신명 15,7-8). 이 모든 것은 이방인들에게도 적용된다. “너의 땅에 함께 사는 외국인을 괴롭히지 마라. 너에게 몸붙여 사는 외국인을 네 나라 사람처럼 대접하고 네 몸처럼 아껴라. 너희도 이집트 나라에 몸 붙이고 살지 않았느냐? 나는 너희의 주 하느님이다”(레위 19,33-34). 따라서 자유와 약속된 땅, 그리고 시나이 산의 계약과 십계명의 선물은 정의와 연대로 이스라엘 사회의 발전을 규정하여야 하는 관행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24. Among the many norms which tend to give concrete expression to the style of gratuitousness and sharing in justice which God inspires, the law of the sabbatical year (celebrated every seven years) and that of the jubilee year (celebrated every fifty years) [27] stand out as important guidelines unfortunately never fully put into effect historically for the social and economic life of the people of Israel. Besides requiring fields to lie fallow, these laws call for the cancellation of debts and a general release of persons and goods: everyone is free to return to his family of origin and to regain possession of his birthright.

24. 하느님께서 보여 주시는 무상의 행위와 정의로운 나눔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많은 규정들 가운데에서, (7년마다 거행되는) 안식년 규정과 (50년마다 거행되는) 희년의 규정은, 불행히도 역사적으로 온전히 실천된 적은 없지만 , 이스라엘 민족의 사회 경제 생활을 위한 중요한 지침들이다. 이 규정들은 땅을 묵혀 두기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빚을 탕감해 주고 사람과 재화를 놓아주기를, 곧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자기 가족에게로 돌아가고 상속받은 재산은 되찾을 수 있도록 해 주기를 요구한다.

 

This legislation is designed to ensure that the salvific event of the Exodus and fidelity to the Covenant represents not only the founding principle of Israel's social, political and economic life, but also the principle for dealing with questions concerning economic poverty and social injustices. This principle is invoked in order to transform, continuously and from within, the life of the people of the Covenant, so that this life will correspond to God's plan. To eliminate the discrimination and economic inequalities caused by socio-economic changes, every seven years the memory of the Exodus and the Covenant are translated into social and juridical terms, in order to bring the concepts of property, debts, loans and goods back to their deepest meaning.

이러한 법은 구원을 가져다 준 이집트 탈출 사건과 계약에 대한 충실성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사회 정치 경제 생활의 기본 원리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불의 문제를 다루는 원리임을 확실히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원리에 호소하는 것은 계약의 백성의 삶을 지속적으로 또 내부로부터 변화시켜 하느님 계획에 부응하는 삶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사회 경제적 변화에서 기인하는 차별과 경제적 불평등을 없애고자 이집트 탈출과 계약에 대한 기억을 사회적 법률적 용어로 옮겨 칠 년마다 기념함으로써, 재산, , 대부, 재화의 가장 깊은 의미를 되새기려 한 것이다.

 

25. The precepts of the sabbatical and jubilee years constitute a kind of social doctrine in miniature[28]. They show how the principles of justice and social solidarity are inspired by the gratuitousness of the salvific event wrought by God, and that they do not have a merely corrective value for practices dominated by selfish interests and objectives, but must rather become, as a prophecy of the future, the normative points of reference to which every generation in Israel must conform if it wishes to be faithful to its God.

25. 안식년과 희년의 규정은 일종의 축소된 사회 교리이다. 이들 규정은 하느님께서 거저 베풀어 주신 구원 사건이 정의와 사회적 연대의 원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 준다. 또한 안식년과 희년의 규정은, 정의와 사회적 연대의 원리가 이기적인 이해관계나 목적에 지배되는 관습을 바로잡는 힘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예언으로서 이스라엘의 모든 세대가 하느님께 충실하고자 한다면 따라야 하는 준거 규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These principles become the focus of the Prophets' preaching, which seeks to internalize them. God's Spirit, poured into the human heart the Prophets proclaim will make these same sentiments of justice and solidarity, which reside in the Lord's heart, take root in you (cf. Jer 31:33 and Ezek 36:26-27). Then God's will, articulated in the Decalogue given on Sinai, will be able to take root creatively in man's innermost being. This process of internalization gives rise to greater depth and realism in social action, making possible the progressive universalization of attitudes of justice and solidarity, which the people of the Covenant are called to have towards all men and women of every people and nation.

이러한 원리들은 이를 받아들여 고착시키려는 예언자들의 설교의 핵심이 된다. 예언자들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부어주신 성령께서 주님 안에 자리한 정의와 연대 의식을 인간의 마음에 새겨주실 것이라고 선포한다(예레 31,33; 에제 36,26-27 참조). 따라서 시나이 산에서 주신 십계명 안에 명료하게 표현된 하느님의 뜻은 인간 존재의 가장 내밀한 곳에 독창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내면화 과정은 사회 활동을 통하여 깊이와 현실성을 더하면서, 계약의 백성이 부름 받은 대로 모든 민족과 국가의 사람들에 대해 지녀야 할 정의와 연대의 자세를 점진적으로 보편화할 수 있게 한다.

 

 

b. The principle of creation and God's gratuitous action / 창조 원리와 하느님의 무상 행위

 

26. The reflection of the Prophets and that found in the Wisdom Literature, in coming to the formulation of the principle that all things were created by God, touch on the first manifestation and the source itself of God's plan for the whole of humanity. In Israel's profession of faith, to affirm that God is Creator does not mean merely expressing a theoretical conviction, but also grasping the original extent of the Lord's gratuitous and merciful action on behalf of man. In fact, God freely confers being and life on everything that exists. Man and woman, created in his image and likeness (cf. Gen 1:26-27), are for that very reason called to be the visible sign and the effective instrument of divine gratuitousness in the garden where God has placed them as cultivators and custodians of the goods of creation.

26. 예언서들과 지혜 문학은 만물이 하느님에게서 창조되었다는 원리를 표명하면서 전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가장 먼저 드러내는 것과 그 계획의 원천 자체를 성찰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창조주이시라는 이스라엘의 신앙 고백은 단지 이론적인 확신을 표명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인간에게 거저 베풀어 주신 자비로운 행위가 본래 어느 정도였는지를 인식한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하느님께서는 존재하는 만물에게 본성과 생명을 거저 베풀어 주신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신(창세 1,26-27 참조) 남자와 여자는, 하느님께서 창조 재화를 돌보고 지키게 데려다 놓으신 그 정원에서, 하느님의 무상 행위를 보여 주는 표지이자 효과적인 도구가 되도록 부름 받았다.

 

27. It is in the free action of God the Creator that we find the very meaning of creation, even if it has been distorted by the experience of sin. In fact, the narrative of the first sin (cf. Gen 3:1-24) describes the permanent temptation and the disordered situation in which humanity comes to find itself after the fall of its progenitors. Disobedience to God means hiding from his loving countenance and seeking to control one's life and action in the world. Breaking the relation of communion with God causes a rupture in the internal unity of the human person, in the relations of communion between man and woman and of the harmonious relations between mankind and other creatures[29]. It is in this original estrangement that are to be sought the deepest roots of all the evils that afflict social relations between people, of all the situations in economic and political life that attack the dignity of the person, that assail justice and solidarity.

27. 우리는 바로 창조주 하느님의 자유로운 행위 안에서, 비록 죄로 일그러지기는 했지만 창조의 의미 자체를 발견한다. 사실 원죄 이야기(창조 3,1-24 참조)는 인류의 첫 조상의 타락으로 인류가 겪게 되는 끝없는 유혹과 무질서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하느님께 불복종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의 모습을 등지고 세상에서 자신의 생활과 활동을 자기 뜻대로 조종하려 하는 것을 뜻한다. 하느님과 친교 관계를 단절함으로써 인간 내면의 일치도, 남녀의 친교도, 인간과 다른 피조물의 조화도 파괴되어 버렸다. 사회에서 인간관계를 악화시키는 모든 악과, 경제 정치 생활에서 인간 존엄을 침해하며 정의와 연대를 해치는 모든 상황의 근본 원인은 바로 이러한 태초의 불화에서 찾아야 한다.

 

 

 

II. JESUS CHRIST THE FULFILMENT OF THE FATHER'S PLAN OF LOVE

성부의 사랑의 계획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

 

a. In Jesus Christ the decisive event of the history of God with mankind is fulfilled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과 함께하시는 하느님 역사의 결정적인 사건이 달성된다.

 

28. The benevolence and mercy that inspire God's actions and provide the key for understanding them become so very much closer to man that they take on the traits of the man Jesus, the Word made flesh. In the Gospel of Saint Luke, Jesus describes his messianic ministry with the words of Isaiah which recall the prophetic significance of the jubilee: “The Spirit of the Lord is upon me, because he has anointed me to preach the good news to the poor. He has sent me to proclaim release to the captives and recovering of sight to the blind, to set at liberty those who are oppressed, to proclaim the acceptable year of the Lord” (Lk 4:18-19; cf. Is 61:1-2). Jesus therefore places himself on the frontline of fulfilment, not only because he fulfils what was promised and what was awaited by Israel, but also in the deeper sense that in him the decisive event of the history of God with mankind is fulfilled. He proclaims: “He who has seen me has seen the Father” (Jn 14:9). Jesus, in other words, is the tangible and definitive manifestation of how God acts towards men and women.

28. 하느님 활동의 특성이며 그 활동을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하는 선의와 자비는 사람이 되신 말씀이신 인간 예수님의 특성이 됨으로써 훨씬 더 인간적이 된다.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예언자적 사명을 희년의 예언적 의미를 상기시키는 이사야의 말로 설명하신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이사 61,1-2 참조).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성취에 앞장 서신다. 그분께서는 예언된 것과 이스라엘이 기다려 왔던 것을 성취하셨을 뿐만 아니라, 더 깊은 의미에서 그분을 통하여 인간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 역사의 결정적인 사건이 달성되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 14,9) 하고 선포하신다. 다른 말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드러내 보이시는 분이시다.

 

29. The love that inspires Jesus' ministry among men is the love that he has experienced in his intimate union with the Father. The New Testament allows us to enter deeply into the experience, that Jesus himself lives and communicates, the love of God his Father “Abba” and, therefore, it permits us to enter into the very heart of divine life. Jesus announces the liberating mercy of God to those whom he meets on his way, beginning with the poor, the marginalized, the sinners. He invites all to follow him because he is the first to obey God's plan of love, and he does so in a most singular way, as God's envoy in the world.

29. 예수님께서 당신 직무로 인간에게 펼치신 사랑은 그분께서 아버지와 긴밀한 친교를 이루시는 가운데 체험하신 사랑이다. 신약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께서 친히 실천하시고 전달해 주신 하느님의 사랑, 아빠’(Abba) 아버지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따라서 하느님 생명의 중심으로 들어가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길에서 만나신 가난한 이들이나 소외된 이들, 죄인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해방의 자비를 선포하신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초대하신다. 그분께서는 하느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사절로서 유일무이한 방식으로 하느님의 사랑의 계획에 복종하신 첫 번째 분이시기 때문이다.

 

Jesus' self-awareness of being the Son is an expression of this primordial experience. The Son has been given everything, and freely so, by the Father: “All that the Father has is mine” (Jn 16:15). His in turn is the mission of making all men sharers in this gift and in this filial relationship: “No longer do I call you servants, for the servant does not know what his master is doing; but I have called you friends, for all that I have heard from my Father I have made known to you” (Jn 15:15).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성자로 인식하심은 이러한 사실을 근본적으로 느끼고 계시다는 것을 나타낸다. 성자께서는 성부에게서 모든 것을, 그것도 거저 받으셨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다 나의 것이다”(요한 16,15). 또한 이제 그분의 사명은 모든 사람이 이 은총과 자녀 관계를 함께 누리게 하는 것이다.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다 알려 주었다”(요한 15,15).

 

For Jesus, recognizing the Father's love means modelling his actions on God's gratuitousness and mercy; it is these that generate new life. It means becoming by his very existence the example and pattern of this for his disciples. Jesus' followers are called to live like him and, after his Passover of death and resurrection, to live also in him and by him, thanks to the superabundant gift of the Holy Spirit, the Consoler, who internalizes Christ's own style of life in human hearts.

예수님에게 성부의 사랑을 인정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무상 행위와 자비 행위를 본받는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행위는 새로운 삶의 원천이 된다. 곧 당신 자신의 삶을 통하여 당신 제자들에게 모범과 귀감이 된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그분처럼 살도록 부름 받았고, 또한 그분께서 죽음에서 부활로 옮아가신 파스카 이후에는 그리스도의 삶의 방식을 인간 마음 안에 새겨주시는 위로자이신 성령의 풍성한 은총을 받아 그분 안에서 그분을 통하여 살아가도록 부름 받았다.

 

 

b. The revelation of Trinitarian love / 삼위일체 사랑의 계시

 

30. With the unceasing amazement of those who have experienced the inexpressible love of God (cf. Rom 8:26), the New Testament grasps, in the light of the full revelation of Trinitarian love offered by the Passover of Jesus Christ, the ultimate meaning of the Incarnation of the Son and his mission among men and women. Saint Paul writes: “If God is for us, who is against us? He who did not spare his own Son but gave him up for us all, will he not also give us all things with him?” (Rom 8:31-32). Similar language is used also by Saint John: “In this is love, not that we loved God but that he loved us and sent his Son to be the expiation for our sins” (1 Jn 4:10).

30. 신약성경은, 하느님의 형용할 수 없는 사랑을 체험한 이들의 몸소 말로 다할 수 없는 탄식과 함께(로마 8,26 참조),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가 가져다 준 삼위일체 사랑의 완전한 계시에 비추어, 성자의 강생과 사람들 가운데에서 그분의 사명이 지니는 궁극적인 의미를 파악한다. 바오로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 되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겠습니까?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느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시지 않겠습니까?”(로마 8,31-32) 요한 성인 역시 비슷한 말을 한다. “내가 말하는 사랑은 하느님에게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1요한 4,10).

 

31. The Face of God, progressively revealed in the history of salvation, shines in its fullness in the Face of Jesus Christ crucified and risen from the dead. God is Trinity: Father, Son, and Holy Spirit; truly distinct and truly one, because God is an infinite communion of love. God's gratuitous love for humanity is revealed, before anything else, as love springing from the Father, from whom everything draws its source; as the free communication that the Son makes of this love, giving himself anew to the Father and giving himself to mankind; as the ever new fruitfulness of divine love that the Holy Spirit pours forth into the hearts of men (cf. Rom 5:5).

31. 구원 역사 안에서 점진적으로 계시되는 하느님의 모습은,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완전하게 드러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끝없는 사랑의 친교이시기 때문에 참으로 구별되시고 참으로 하나이시다.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거저 베푸시는 사랑은, 무엇보다 먼저 모든 것의 원천이신 성부에게서 흘러나온 사랑으로, 또 성자께서 성부께 당신 자신을 새롭게 바치시고 인류에게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며 아낌없이 전해주신 사랑으로, 또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부어 주신 하느님 사랑(로마 5,5 참조)의 더욱 새로운 결실로 드러난다.

 

By his words and deeds, and fully and definitively by his death and resurrection[30], Jesus reveals to humanity that God is Father and that we are all called by grace to become his children in the Spirit (cf. Rom 8:15; Gal 4:6), and therefore brothers and sisters among ourselves. It is for this reason that the Church firmly believes that “the key, the centre and the purpose of the whole of man's history is to be found in her Lord and Master”[31].

예수님께서는 말씀과 행동으로, 그리고 완전하고 결정적으로는 당신 죽음과 부활로써

인류에게 하느님께서 아버지이시고, 우리 모두 성령 안에서 은총을 통해 그분의 자녀가 되도록(로마 8,15; 갈라 4,6 참조), 따라서 우리 서로 형제자매가 되도록 부름 받았다는 것을 계시하신다. 바로 이러한 연유로 교회는 인류 역사 전체의 관건과 중심과 목적을 자신의 스승이신 주님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확고히 믿는다.

 

32. Meditating on the gratuitousness and superabundance of the Father's divine gift of the Son, which Jesus taught and bore witness to by giving his life for us, the Apostle John grasps its profound meaning and its most logical consequence. “Beloved, if God so loves us, we also ought to love one another. No man has ever seen God; if we love one another, God abides in us and his love is perfected in us” (1 Jn 4:11-12). The reciprocity of love is required by the commandment that Jesus describes as “new” and as “his”: “that you love one another; even as I have loved you, that you also love one another” (Jn 13:34). The commandment of mutual love shows how to live in Christ the Trinitarian life within the Church, the Body of Christ, and how to transform history until it reaches its fulfilment in the heavenly Jerusalem.

32. 요한 사도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생명을 내어주심으로써 가르쳐 주시고 증언하신 사실, 곧 성자를 당신의 선물로 주신 성부의 넘치도록 풍부한 무상의 은총을 묵상하며, 그 심오한 의미와 지극히 논리적인 결과를 깨닫는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1요한 4,11-12). 상호 호혜적인 사랑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새로운계명이라고 설명하신 그 계명이 요구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사랑하여라”(요한 13,34).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 안에서 삼위일체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법과, 천상 예루살렘에서 완성될 때까지 역사를 변모시키는 법을 보여 준다.

 

33. The commandment of mutual love, which represents the law of life for God's people[32], must inspire, purify and elevate all human relationships in society and in politics. “To be human means to be called to interpersonal communion”[33], because the image and the likeness of the Trinitarian God are the basis of the whole of “human ‘ethos', which reaches its apex in the commandment of love”[34]. The modern cultural,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phenomenon of interdependence, which intensifies and makes particularly evident the bonds that unite the human family, accentuates once more, in the light of Revelation, “a new model of the unity of the human race, which must ultimately inspire our solidarity. This supreme model of unity, which is a reflection of the intimate life of God, one God in three Persons, is what we Christians mean by the word 'communion'”[35].

33. 하느님 백성의 삶의 법칙인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사회적 정치적으로 모든 인간관계에 영감을 불어넣고 이 관계를 정화하며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인격체가 된다는 것은 인격 상호간의 친교로 부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인간 정신의 기초는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닮은 모습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계명이 바로 이 정신의 발전 과정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 가족의 유대를 강화하고 분명히 드러내는 현대의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상호 의존 현상은 계시의 빛 안에서 인류 일치의 새로운 모형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인류 일치의 새로운 모형은 우리의 연대성을 불러일으키는 궁극의 근거가 된다. 일치의 이 최고 모형, 한 분 하느님께서 삼위 안에 계시다는, 하느님의 내밀한 생명을 반영하는 모형을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은 친교라는 어휘로 표현한다.”

 

 

 

III. THE HUMAN PERSON IN GOD'S PLAN OF LOVE / 하느님 사랑의 계획 안에 있는 인간

 

a. Trinitarian love, the origin and goal of the human person / 인간의 기원과 목적인 삼위일체의 사랑

 

34. The revelation in Christ of the mystery of God as Trinitarian love is at the same time the revelation of the vocation of the human person to love. This revelation sheds light on every aspect of the personal dignity and freedom of men and women, and on the depths of their social nature. “Being a person in the image and likeness of God ... involves existing in a relationship, in relation to the other ‘I'”[36], because God himself, one and triune, is the communion of the Father,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34. 그리스도 안에서 삼위일체의 사랑으로 드러난 하느님 신비의 계시는 또한 사랑으로 부름 받은 인간 소명의 계시이기도 하다. 이 계시는 인간의 존엄성과 남녀의 자유의 모든 측면과 인간의 사회적 본성의 깊이를 밝혀 준다. 하느님의 모상과 닮은꼴로서 인격체가 된다는 것은 하나의 관계 안에서, 곧 또 다른 와의 관계 안에서 누리는 실존까지도 포함된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신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친교이시기 때문이다.

 

In the communion of love that is God, and in which the Three Divine Persons mutually love one another and are the One God, the human person is called to discover the origin and goal of his existence and of history. The Council Fathers, in the Pastoral Constitution Gaudium et Spes, teach that “the Lord Jesus Christ, when praying to the Father ‘that they may all be one ... as we are one' (Jn 17:21-22), has opened up new horizons closed to human reason by implying that there is a certain parallel between the union existing among the divine Persons and the union of the children of God in truth and love. It follows, then, that if man is the only creature on earth that God has willed for its own sake, man can fully discover his true self only in a sincere giving of himself (cf. Lk 17:33)”[37].

서로 사랑하시며 한 분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의 친교 안에서, 인간은 자기 존재와 역사의 기원과 목표를 발견하도록 부름 받는다. 공의회 교부들은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21-22) 하시며 성부께 기도하실 때 인간 이성이 미치지 못하는 시야를 열어 주셨으며, 진리와 사랑 안에 있는 하느님 자녀들의 결합과 신적 위격의 결합이 지닌 어떤 유사성을 가리켜 주셨다. 이 유사성은 지상에서 그 자체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바라신 유일한 피조물인 인간이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주지 않으면 자신을 완전히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루카 17,33 참조).”

 

35. Christian revelation shines a new light on the identity, the vocation and the ultimate destiny of the human person and the human race. Every person is created by God, loved and saved in Jesus Christ, and fulfils himself by creating a network of multiple relationships of love, justice and solidarity with other persons while he goes about his various activities in the world. Human activity, when it aims at promoting the integral dignity and vocation of the person, the quality of living conditions and the meeting in solidarity of peoples and nations, is in accordance with the plan of God, who does not fail to show his love and providence to his children.

35. 그리스도교의 계시는 인간과 인류의 신원과 소명과 궁극적 운명에 새로운 빛을 비추어 준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랑받고 구원받은 모든 인간은 세상 안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사랑과 정의와 연대의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자신을 완성한다. 인간의 활동은, 그 목적이 인간의 온전한 품위와 소명을 증진하고, 삶의 질을 향상하며, 민족과 국가의 연대를 통한 만남을 촉진하는 것일 때, 언제나 당신 자녀들에 대한 사랑과 섭리를 보여 주시는 하느님의 계획에 부합하는 것이다.

 

36. The pages of the first book of Sacred Scripture, which describe the creation of man and woman in the image and likeness of God (cf. Gen 1:26-27), contain a fundamental teaching with regard to the identity and the vocation of the human person. They tell us that the creation of man and woman is a free and gratuitous act of God; that man and woman, because they are free and intelligent, represent the “thou” created by God and that only in relationship with him can they discover and fulfil the authentic and complete meaning of their personal and social lives; that in their complementarities and reciprocity they are the image of Trinitarian Love in the created universe; that to them, as the culmination of creation, the Creator has entrusted the task of ordering created nature according to his design (cf. Gen 1:28).

36. 인간이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것을 이야기하는 성경의 첫 장은(창세 1,26-27 참조) 인간의 신원과 소명에 관한 근본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 이야기는 남녀의 창조는 하느님께서 거저 베풀어 주신 자유 행위임을 말해 준다. 곧 남자와 여자는 자유와 지성을 지녔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너희를 대표하고, 오로지 그분과 맺는 관계 속에서 자신의 개인적 사회적 생활의 진정하고 완전한 의미를 발견하고 성취할 수 있다. 남녀의 상호 보완성으로 그들은 창조된 세상 안에서 삼위일체의 사랑의 표상이 된다. 창조의 정점인 그들에게 창조주께서는 당신 계획에 따라 창조된 자연을 다스리는 임무를 맡기셨다(창세 1,28 참조).

 

37. The Book of Genesis provides us with certain foundations of Christian anthropology: the inalienable dignity of the human person, the roots and guarantee of which are found in God's design of creation; the constitutive social nature of human beings, the prototype of which is found in the original relationship between man and woman, the union of whom “constitutes the first form of communion between persons”[38]; the meaning of human activity in the world, which is linked to the discovery and respect of the laws of nature that God has inscribed in the created universe, so that humanity may live in it and care for it in accordance with God's will. This vision of the human person, of society and of history is rooted in God and is ever more clearly seen when his plan of salvation becomes a reality.

37. 창세기는 그리스도교 인간학의 확실한 근거를 제시한다. 그 근거란 하느님의 창조 계획에 근원을 두고 그것이 보장해 주는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존엄과, 남녀의 최초의 관계, 인간 사회의 최초 형태를 이룬 남녀의 결합을 그 원형으로 삼는 인간의 구조적 사회적 본성, 하느님께서 창조된 세상 안에 새겨 주신 자연법을 발견하고 존중하며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 안에서 살아가고 그것을 보호하는 인간의 현세 활동이 지닌 의미이다. 인간과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이러한 전망은 하느님 안에 근원을 두고 그분의 구원 계획이 실현될 때 더욱 명확히 드러나게 된다.

 

 

b. Christian salvation: for all people and the whole person / 모든 인간과 인간 전체(全人)를 위한 그리스도의 구원

 

38. The salvation offered in its fullness to men in Jesus Christ by God the Father's initiative, and brought about and transmitted by the work of the Holy Spirit, is salvation for all people and of the whole person: it is universal and integral salvation. It concerns the human person in all his dimensions: personal and social, spiritual and corporeal, historical and transcendent. It begins to be made a reality already in history, because what is created is good and willed by God, and because the Son of God became one of us[39]. Its completion, however, is in the future, when we shall be called, together with all creation (cf. Rom 8), to share in Christ's resurrection and in the eternal communion of life with the Father in the joy of the Holy Spirit. This outlook shows quite clearly the error and deception of purely immanentistic visions of the meaning of history and in humanity's claims to self-salvation.

38. 하느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충만히 베풀어 주시고 성령의 활동으로 이루어지고 전달된 구원은 모든 인간과 인간 전체(全人)를 위한 구원, 곧 보편적이고 완전한 구원이다. 이는 개인적 사회적, 정신적 육체적, 역사적 초월적인 인간의 모든 차원을 포함하는 구원이다. 이 구원은 역사 안에서 이미 실현되기 시작했다. 창조된 것은 모두 좋은 것이고 하느님께서 바라신 것이며,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우리 가운데 사람이 되어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구원은 미래에 완성될 것이다. 그 때 우리는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로마 8장 참조) 성령의 기쁨을 누리며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고 성부와 영원한 생명의 친교를 이루도록 부름 받을 것이다. 이러한 전망은 역사적 의미에 대한 순전히 내재론적인 시각과 인간이 자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주장에 담긴 오류와 기만을 매우 명확하게 보여 준다.

 

39. The salvation offered by God to his children requires their free response and acceptance. It is in this that faith consists, and it is through this that “man freely commits his entire self to God”[40], responding to God's prior and superabundant love (cf. 1 Jn 4:10) with concrete love for his brothers and sisters, and with steadfast hope because “he who promised is faithful” (Heb 10:23). In fact, the divine plan of salvation does not consign human creatures to a state of mere passivity or of lesser status in relation to their Creator, because their relationship to God, whom Jesus Christ reveals to us and in whom he freely makes us sharers by the working of the Holy Spirit, is that of a child to its parent: the very relationship that Jesus lives with the Father (cf. Jn 15-17; Gal 4:6-7).

39.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들에게 베푸시는 구원은 자녀들의 아낌없는 응답과 수용을 요구한다. 믿음이란 바로 이러한 것이며, 인간은 이러한 믿음을 통하여 자기를 온전히 하느님께 자유로이 맡기며”, 자기 형제자매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랑과 우리에게 약속을 주신 분은 진실한 분”(히브 10,23)이시므로 흔들리지 않는 희망으로 하느님께서 먼저 베풀어 주시는 풍성한 사랑에 응답한다(1요한 4,10 참조). 실제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피조물인 인간을 그저 수동적이거나 창조주에 비해 열등한 상태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고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기꺼이 우리도 하느님의 공동 상속자가 되게 해주신 대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 곧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바로 그 관계(요한 15,17; 갈라 4,6-7 참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40. The universality and integrality of the salvation wrought by Christ makes indissoluble the link between the relationship that the person is called to have with God and the responsibility he has towards his neighbour in the concrete circumstances of history. This is sensed, though not always without some confusion or misunderstanding, in humanity's universal quest for truth and meaning, and it becomes the cornerstone of God's covenant with Israel, as attested by the tablets of the Law and the preaching of the Prophets.

40.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원의 보편성과 완전성은 인간이 하느님과 맺도록 부름 받은 관계와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에서 자기 이웃에 대한 책임감 사이의 유대를 확고하게 한다. 혼동이나 오해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유대는 인류의 보편적인 진리와 의미 추구에서 느낄 수 있으며, 또 율법이 새겨진 석판과 예언자들의 설교로 입증되었듯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계약의 초석이 된다.

 

This link finds a clear and precise expression in the teaching of Jesus Christ and is definitively confirmed by the supreme witness of the giving of his life, in obedience to the Father's will and out of love for his brothers and sisters. To the scribe who asks him “Which commandment is the first of all?” (Mk 12:28), Jesus answers: “The first is: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the Lord is one; and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and with all your strength'. The second is this: ‘You shall love your neighbour as yourself'. There is no other commandment greater than these” (Mk 12:29-31).

이러한 유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분명하고 명확하게 표현되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당신의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써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고 당신의 형제자매들을 향한 사랑을 실천하신 그 숭고한 증거로 입증된다. 한 율법학자가 모든 계명 중에 어느 것이 첫째가는 계명입니까?”(마르 12,28)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신다. “첫째가는 계명은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또 둘째가는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마르 12,29-31).

 

Inextricably linked in the human heart are the relationship with God recognized as Creator and Father, the source and fulfilment of life and of salvation and openness in concrete love towards man, who must be treated as another self, even if he is an enemy (cf. Mt 5:43-44). In man's inner dimension are rooted, in the final analysis, the commitment to justice and solidarity, to the building up of a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life that corresponds to God's plan.

인간의 마음 안에는, 창조주이시며 아버지이시고 생명과 구원의 원천이며 완성이신 하느님과 맺는 관계와, 원수까지 포함하여(마태 5,43-44 참조)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처럼 대하는 인간에 대하여 열려 있는 구체적인 사랑이 서로 풀리지 않는 끈으로 얽혀 있다. 결국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정의와 연대에 대한 의무와 하느님 계획에 부합하는 사회 경제 정치 생활을 성장시킬 의무가 뿌리박혀 있다.

 

 

c. The disciple of Christ as a new creation / 새로 태어난 그리스도의 제자들

 

41. Personal and social life, as well as human action in the world, is always threatened by sin. Jesus Christ, however, “by suffering for us ... not only gave us an example so that we might follow in His footsteps, but He also opened up a way. If we follow this path, life and death are made holy and acquire a new meaning”[41]. Christ's disciple adheres, in faith and through the sacraments, to Jesus' Paschal Mystery, so that his old self, with its evil inclinations, is crucified with Christ. As a new creation he is then enabled by grace to “walk in newness of life” (Rom 6:4). This “holds true not for Christians alone but also for all people of good will in whose hearts grace is active invisibly. For since Christ died for all, and since all men are in fact called to one and the same destiny, which is divine, we must hold that the Holy Spirit offers to all the possibility of being made partners, in a way known to God, in the Paschal Mystery”[42].

41. 개인적 사회적 생활은 인간의 현세 활동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죄의 위협을 받게 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수난하심으로써 …… 우리가 당신 발자취를 따르도록 모범을 보여 주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다. 우리가 그 길을 따른다면, 삶과 죽음이 거룩하게 되고 새로운 뜻을 가지게 된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신앙으로 또 성사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에 결합됨으로써, 악으로 기우는 성향이 있던 그의 옛 자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다. 그리하여 새로 태어난 그는 은총으로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로마 6,4)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만이 아니라 그 마음에서 은총이 보이지 않게 움직이고 있는 선의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들어맞는 말이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또 인간의 궁극 소명도 참으로 하나 곧 신적인 소명이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하느님만이 아시는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이 파스카 신비에 동참할 가능성을 주신다고 믿어야 한다.”

 

42. The inner transformation of the human person, in his being progressively conformed to Christ, is the necessary prerequisite for a real transformation of his relationships with others. “It is necessary, then, to appeal to the spiritual and moral capacities of the human person and to the permanent need for his inner conversion, so as to obtain social changes that will really serve him. The acknowledged priority of the conversion of heart in no way eliminates but on the contrary imposes the obligation of bringing the appropriate remedies to institutions and living conditions when they are an inducement to sin, so that they conform to the norms of justice and advance the good rather than hinder it”[43].

42. 인간이 점진적으로 그리스도와 동화됨으로써 일어나는 인간의 내적 변화는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의 참된 변화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따라서 실제로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적 변화를 가져오려면 인간의 정신적, 도덕적 능력과 그의 끊임없는 내적 회개가 필요하다. 마음의 회개에 최우선을 두는 것은 죄를 유발시키는 제도와 생활 여건을 적절히 개선할 의무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제도와 생활 여건들은 정의의 규범에 맞아야 하고, 선에 해를 끼치지 않고 도움이 되도록 개선되어야 한다.”

 

43. It is not possible to love one's neighbour as oneself and to persevere in this conduct without the firm and constant determination to work for the good of all people and of each person, because we are all really responsible for everyone[44]. According to the Council's teaching, “they also have a claim on our respect and charity that think and act differently from us in social, political and religious matters. In fact the more deeply we come to understand their ways of thinking through kindness and love, the more easily will we be able to enter into dialogue with them”[45]. This path requires grace, which God offers to man in order to help him to overcome failings, to snatch him from the spiral of lies and violence, to sustain him and prompt him to restore with an ever new and ready spirit the network of authentic and honest relationships with his fellow men[46].

43.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또 모든 사람의 선익과 각 개인의 선익을 위하여 일하려는 확고하고 지속적인 결단 없이 이를 꾸준히 실천하기란 불가능하다.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사회, 정치, 종교 문제에서 우리와 달리 생각하고 달리 행동하는 사람들까지도 우리는 존경하고 사랑하여야 한다. 우리가 참으로 친절과 사랑으로 그들의 사고방식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그들과 더욱 쉽게 대화를 할 수 있다.” 이 길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총이 필요하다. 인간이 좌절을 극복하고, 거짓과 폭력의 악순환에서 헤쳐 나오며, 더욱 새롭고 준비된 마음으로 타인과 참되고 성실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으려면 이러한 은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44. Even the relationship with the created universe and human activity aimed at tending it and transforming it, activity which is daily endangered by man's pride and his inordinate self-love, must be purified and perfected by the cross and resurrection of Christ. “Redeemed by Christ and made a new creature by the Holy Spirit, man can, indeed he must, love the things of God's creation: it is from God that he has received them, and it is as flowing from God's hand that he looks upon them and reveres them. Man thanks his divine benefactor for all these things, he uses them and enjoys them in a spirit of poverty and freedom. Thus he is brought to a true possession of the world, as having nothing yet possessing everything: ‘All [things] are yours; and you are Christ's; and Christ is God's' (1 Cor 3:22-23)”[47].

44. 창조된 세상과 맺는 관계와, 창조된 세상을 다스리고 변화시키려는 인간의 활동, 곧 오만과 지나친 자기애로 날마다 위기에 봉착하는 인간의 활동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정화되고 완성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 구원을 받고 성령 안에서 새 사람이 된 인간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사랑할 수 있고 또 사랑하여야 한다. 하느님에게서 그 피조물들을 넘겨받아, 이를테면 하느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으로 여기고 존중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복을 내려 주신 분께 그 피조물에 대하여 감사하고 청빈과 자유의 정신으로 피조물을 사용하고 누리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으로서 세상의 진정한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1코린 3,22-23).”

 

 

d. The transcendence of salvation and the autonomy of earthly realities / 구원의 초월성과 현세 사물의 자율성

 

45. Jesus Christ is the Son of God made man in whom and thanks to whom the world and man attain their authentic and full truth. The mystery of God's being infinitely close to man brought about in the Incarnation of Jesus Christ, who gave himself on the cross, abandoning himself to death shows that the more that human realities are seen in the light of God's plan and lived in communion with God, the more they are empowered and liberated in their distinctive identity and in the freedom that is proper to them. Sharing in Christ's life of sonship, made possible by the Incarnation and the Paschal gift of the Spirit, far from being a mortification, has the effect of unleashing the authentic and independent traits and identity that characterize human beings in all their various expressions.

4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세상과 인간은 그분 안에서, 그분 덕분에 참되고 완전한 진리에 이른다. 인간에게 한없이 가까이 다가오시는 하느님 존재의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드러났으며, 하느님 계획에 비추어 또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 안에서 인간 실재를 바라볼수록, 인간 실재는 그 고유한 정체성과 자유에서 더욱 큰 힘과 해방을 얻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강생과 성령의 파스카 은총 덕분에 우리가 자녀 신분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에 동참할 수 있게 된 것은 굴욕적인 일이기보다는 오히려 지극히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인간의 독립적인 속성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효과가 있다.

 

This perspective leads to a correct approach to earthly realities and their autonomy, which is strongly emphasized by the teaching of the Second Vatican Council: “If by the autonomy of earthly affairs we mean that created things and societies themselves enjoy their own laws and values which must be gradually deciphered, put to use and regulated by men, then it is entirely right to demand that autonomy. This ... harmonizes also with the will of the Creator. For by the very circumstance of their having been created, all things are endowed with their own stability, truth, goodness, proper laws and order. Man must respect these as he isolates them by the appropriate methods of the individual sciences or arts”[48].

이러한 관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서 강조한 현세 사물과 그 자율성에 대한 올바른 접근으로 이끈다. “현세 사물의 자율성을, 피조물과 사회 자체가 고유의 법칙과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인간이 점차 이를 분별하고 이용하고 안배한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와 같은 자율성을 요구하는 것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그것은 …… 창조주의 뜻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사실 만물은 창조의 조건 자체에서 고유의 안정성과 진리와 선, 또 고유의 법칙과 질서를 갖추고 있으므로 인간은 이를 존중하여야 하고, 학문이나 기술의 각기 고유한 방법을 인정하여야 한다.”

 

46. There is no state of conflict between God and man, but a relationship of love in which the world and the fruits of human activity in the world are objects of mutual gift between the Father and his children, and among the children themselves, in Christ Jesus; in Christ and thanks to him the world and man attain their authentic and inherent meaning. In a universal vision of God's love that embraces everything that exists, God himself is revealed to us in Christ as Father and giver of life, and man as the one who, in Christ, receives everything from God as gift, humbly and freely, and who truly possesses everything as his own when he knows and experiences everything as belonging to God, originating in God and moving towards God. In this regard, the Second Vatican Council teaches: “If the expression ‘the autonomy of earthly affairs' is taken to mean that created things do not depend on God, and that man can use them without any reference to their Creator, anyone who acknowledges God will see how false such a meaning is. For without the Creator, the creature would disappear”[49].

46. 하느님과 인간의 사이는 결코 갈등상태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이다. 이 사랑의 관계 안에서 세상과 그 세상 속에서 펼치는 인간 활동의 결실은, 하느님 아버지와 자녀가 또 자녀들 서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주고받는 선물이 된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덕분에 세상과 인간은 본연의 참 의미를 발견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끌어안는 하느님 사랑의 보편적 전망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아버지로 또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신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에게서 오는 모든 것을 겸손한 태도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존재로, 또 모든 것이 하느님께 속하고 하느님 안에 기원을 두며 하느님을 향하여 나아간다는 것을 알고 체험함으로써 모든 것을 진정 자기 것으로 소유하는 존재로 계시하신다. 이와 관련하여,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게 가르친다. “만일 현세 사물의 자율성이란 말이, 피조물들이 하느님께 의존하지 않는다거나 인간이 피조물을 창조주께 돌려 드리지 않고 멋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면, 하느님을 인정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러한 생각이 몹시 그릇된 것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창조주가 없으면 피조물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47. The human person, in himself and in his vocation, transcends the limits of the created universe, of society and of history: his ultimate end is God himself[50], who has revealed himself to men in order to invite them and receive them into communion with himself[51]. “Man cannot give himself to a purely human plan for reality, to an abstract ideal or to a false utopia. As a person, he can give himself to another person or to other persons, and ultimately to God, who is the author of his being and who alone can fully accept his gift”[52]. For this reason, “a man is alienated if he refuses to transcend himself and to live the experience of self-giving and of the formation of an authentic human community oriented towards his final destiny, which is God. A society is alienated if its forms of social organization, production and consumption make it more difficult to offer this gift of self and to establish this solidarity between people”[53].

47. 인간의 존재와 인간의 소명은 창조된 세계와 사회와 역사의 경계를 초월한다. 인간의 궁극 목적은 바로 하느님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심으로써 인간을 부르시어 당신과 친교를 이루게 하고자 하셨다. 인간은 다만 현실에 대한 계획, 어떤 추상적인 이상이나 그릇된 유토피아에 자신을 봉헌할 수 없다. 인간은 인격체로서 다른 사람 또는 다른 사람들 그리고 결국은 인간 존재의 창조주이시며 홀로 인간의 봉헌을 받으실 수 있는 하느님께 자신을 바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을 초월하기를 거절하며, 자신의 헌신을, 그리고 진정으로 인간적이며 궁극 목적이신 하느님을 향한 공동체의 형성을 경험하며 살기를 거부하는 하는 인간은 소외된다. 사회 조직, 생산 그리고 소비의 형태들이 그러한 봉헌의 실현과 인간들 간의 연대성 형성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사회는 소외된다.”

 

48. The human person cannot and must not be manipulated by social, economic or political structures, because every person has the freedom to direct himself towards his ultimate end. On the other hand, every cultural,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accomplishment, in which the social nature of the person and his activity of transforming the universe are brought about in history, must always be considered also in the context of its relative and provisional reality, because “the form of this world is passing away” (1 Cor 7:31). We can speak here of an eschatological relativity, in the sense that man and the world are moving towards their end, which is the fulfilment of their destiny in God; we can also speak of a theological relativity, insofar as the gift of God, by which the definitive destiny of humanity and of creation will be attained, is infinitely greater than human possibilities and expectations. Any totalitarian vision of society and the State, and any purely intra-worldly ideology of progress are contrary to the integral truth of the human person and to God's plan in history.

48. 인간은 사회나 경제, 정치 구조의 조종을 받을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모든 인간은 자기의 궁극 목적을 지향할 자유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사회적 본성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간의 활동을 역사 안에 드러나게 하는 모든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성취도 언제나 상대적이고 잠정적인 현실 상황 안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1코린 7,31).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과 세상이 하느님 안에서 자기 운명의 완성을 이루는 종말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는 의미에서, 종말론적 상대주의에 대해 말할 수 있으며, 또한 인류와 피조물의 최후의 운명을 완성시킬 하느님의 은총이 인간의 가능성과 기대보다 훨씬 더 크다는 의미에서, 신학적 상대주의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사회와 국가에 대한 모든 전체주의적 시각이나 진보에 대한 순전히 세속적인 이념은 인간에 대한 온전한 진리와 역사 속에서 펼치시는 하느님의 계획에 반대된다.

 

 

 

IV. GOD'S PLAN AND THE MISSION OF THE CHURCH / 하느님의 계획과 교회의 사명

 

a. The Church, sign and defender of the transcendence of the human person / 인간 초월성의 표지이며 수호자인 교회

 

49. The Church, the community of those who have been brought together by the Risen Christ and who have set out to follow him, is “the sign and the safeguard of the transcendent dimension of the human person”[54]. She is “in Christ a kind of sacrament a sign and instrument, that is, of communion with God and of unity among all men”[55]. Her mission is that of proclaiming and communicating the salvation wrought in Jesus Christ, which he calls “the Kingdom of God” (Mk 1:15), that is, communion with God and among men. The goal of salvation, the Kingdom of God embraces all people and is fully realized beyond history, in God. The Church has received “the mission of proclaiming and establishing among all peoples the Kingdom of Christ and of God, and she is, on earth, the seed and the beginning of that Kingdom”[56].

49.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한데 모아 당신을 따르게 하신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인간 초월성의 표지이며 보루이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와 같다. 교회는 곧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이다.” 교회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나라”(마르 1,15)라고 부르시며 이루어 주신 구원을 선포하고 전하는 사명, 곧 하느님과 또 인간들 사이에 친교를 이루는 일이다. 구원의 목표인 하느님 나라는 모든 사람을 끌어안고 역사를 뛰어 넘어 하느님 안에서 완전히 실현된다. 교회는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나라를 선포하고 모든 민족 가운데에 이 나라를 세울 사명을 받았으며 또 지상에서 이 나라의 싹과 시작이 된 것이다.”

 

50. The Church places herself concretely at the service of the Kingdom of God above all by announcing and communicating the Gospel of salvation and by establishing new Christian communities. Moreover, she “serves the Kingdom by spreading throughout the world the ‘Gospel values' which are an expression of the Kingdom and which help people to accept God's plan. It is true that the inchoate reality of the Kingdom can also be found beyond the confines of the Church among peoples everywhere, to the extent that they live ‘Gospel values' and are open to the working of the Spirit who breathes when and where he wills (cf. Jn 3:8). But it must immediately be added that this temporal dimension of the Kingdom remains incomplete unless it is related to the Kingdom of Christ present in the Church and straining towards eschatological fullness”[57]. It follows from this, in particular, that the Church is not to be confused with the political community and is not bound to any political system[58]. In fact, the political community and the Church are autonomous and independent of each other in their own fields, and both are, even if under different titles, “devoted to the service of the personal and social vocation of the same human beings”[59]. Indeed, it can be affirmed that the distinction between religion and politics and the principle of religious freedom constitute a specific achievement of Christianity and one of its fundamental historical and cultural contributions.

50. 교회는 무엇보다도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고 전달하며 새로운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구체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봉사한다. 더욱이, 교회는 하느님의 나라를 표현하고 하느님의 계획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주는 복음적 가치들을 세상에 전파함으로써 하느님의 나라에 봉사한다. 그러므로 이제 막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의 실재가 교회의 경계를 넘어서 온 인류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인류는 복음적 가치들을 삶에 구현하고, 어디서나 원하시는 대로 작용하시는 성령의 활동에(요한 3,8 참조) 열려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즉시 첨언할 것은 이러한 하느님의 나라의 현세적 차원은 교회 안에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나라와 연결되지 않거나 종말론적 완성을 지향하지 않으면 전혀 불충분한 것이다.” 이에 따라 특별히 교회는 정치 공동체와 혼동될 수 없으며, 결코 어떠한 정치 체제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실제로, 정치 공동체와 교회는 그 고유 영역에서 서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다. 그러나 이 둘은 모두, 자격은 다르지만, “동일한 인간들의 개인적 사회적 소명에 봉사한다.” 사실, 정교분리와 종교 자유의 원칙은 그리스도교가 세운 특수한 업적이며 그리스도교의 근본적인 역사적 문화적 기여 가운데 하나이다

 

51. According to the plan of God brought about in Christ, there corresponds to the identity and mission of the Church in the world “a saving and eschatological purpose which can be fully attained only in the next life”[60]. Precisely for this reason, the Church offers an original and irreplaceable contribution with the concern that impels her to make the family of mankind and its history more human, prompting her to place herself as a bulwark against every totalitarian temptation, as she shows man his integral and definitive vocation[61].

51.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이 세상에서 교회의 신원과 사명은 미래 세기에서만 완전히 성취될 수 있는 구원의 종말론적인 목적에 상응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교회는 인간의 온전하고 궁극적인 소명을 인간에게 보여 줌으로써 모든 전체주의의 유혹에서 인간을 지키는 보루가 되고 인류 가족과 그 역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데에 관심을 가지고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독자적인 공헌을 하는 것이다.

 

By her preaching of the Gospel, the grace of the sacraments and the experience of fraternal communion, the Church “heals and elevates the dignity of the human person, ... consolidates society and endows the daily activity of men with a deeper sense and meaning”[62]. At the level of concrete historical dynamics, therefore, 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 cannot be discerned in the perspective of a determined and definitive social, economic or political organization. Rather, it is seen in the development of a human social sense which for mankind is a leaven for attaining wholeness, justice and solidarity in openness to the Transcendent as a point of reference for one's own personal definitive fulfilment.

교회는 복음전파와 성사의 은총, 형제적 친교의 체험을 통하여, “인간의 존엄을 치유하고 향상시키며, …… 인류 사회의 결속을 강화하고, 인간의 일상 활동에 더욱 깊은 의미와 중요성을 부여한다.” 따라서 구체적인 역사의 역동성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한정적이고 확정된 사회 경제 정치 조직의 시각으로는 식별해낼 수 없다. 오히려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인간이 궁극적 개인적 완성의 준거인 초월자에게 마음을 열어 완전성과 정의와 연대에 도달하게 해 주는 힘인 인간의 사회 의식의 발전을 통하여 알아 볼 수 있다.

 

 

b. The Church, the Kingdom of God and the renewal of social relations / 하느님 나라이자 사회관계의 쇄신인 교회

 

52. God, in Christ, redeems not only the individual person but also the social relations existing between men. As the Apostle Paul teaches, life in Christ makes the human person's identity and social sense with their concrete consequences on the historical and social planes emerge fully and in a new manner: “For in Christ Jesus you are all children of God, through faith. For as many of you as were baptized into Christ have put on Christ. There is neither Jew nor Greek, neither slave nor free, there is neither male nor female; for you are all one in Christ” (Gal 3:26-28). In this perspective, Church communities, brought together by the message of Jesus Christ and gathered in the Holy Spirit round the Risen Lord (cf. Mt 18:20, 28:19-20; Lk 24:46-49), offer themselves as places of communion, witness and mission, and as catalysts for the redemption and transformation of social relationships.

52.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개별 인간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도 구원하신다.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대로,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삶이야말로 인간의 신원과 그 사회적 의미를 완전하고 새롭게 드러나게 한다. “여러분은 모두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삶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습니다.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갈라 3,26-28). 이러한 전망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따라 성령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중심으로 모인(마태 18,20; 28,19-20; 루카 24,46-49 참조) 교회 공동체들은 스스로를 친교와 증거와 선교의 자리이며 사회 관계의 구원과 변화를 위한 촉매로 드러난다.

 

53. The transformation of social relationships that responds to the demands of the Kingdom of God is not fixed within concrete boundaries once and for all. Rather, it is a task entrusted to the Christian community, which is to develop it and carry it out through reflection and practices inspired by the Gospel. It is the same Spirit of the Lord, leading the people of God while simultaneously permeating the universe[63], who from time to time inspires new and appropriate ways for humanity to exercise its creative responsibility[64]. This inspiration is given to the community of Christians who are a part of the world and of history, and who are therefore open to dialogue with all people of good will in the common quest for the seeds of truth and freedom sown in the vast field of humanity[65]. The dynamics of this renewal must be firmly anchored in the unchangeable principles of the natural law, inscribed by God the Creator in each of his creatures (cf. Rom 2:14-15), and bathed in eschatological light through Jesus Christ.

53. 하느님 나라의 요구에 맞게 사회 관계들을 변화시키는 일은 구체적인 경계 안에서 단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맡겨진 과제로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복음의 영감을 받아 성찰과 실천을 통하여 발전시키고 실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동시에 온 누리에 충만하신 주님의 성령께서는 때때로 인류가 창조의 책임을 수행하도록 새롭고 적절한 방식으로 영감을 주신다. 이러한 성령의 영감을 받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이 세상과 역사의 한 부분으로서, 드넓은 인간의 벌판에 뿌려진 진리와 자유의 씨앗을 함께 추구하는 선의의 모든 사람들과 마음을 열고 대화한다. 이러한 쇄신의 역동성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당신 피조물 각자에게 새겨주시고(로마 2,14-15 참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종말론적 빛 안에 아로새겨진 자연법의 변치 않는 원리에 확고한 기반을 두어야 한다.

 

54. Jesus Christ reveals to us that “God is love” (1 Jn 4:8) and he teaches us that “the fundamental law of human perfection, and consequently of the transformation of the world, is the new commandment of love. He assures those who trust in the love of God that the way of love is open to all people and that the effort to establish a universal brotherhood will not be in vain”[66]. This law is called to become the ultimate measure and rule of every dynamic related to human relations. In short, it is the very mystery of God, Trinitarian Love, that is the basis of the meaning and value of the person, of social relations, of human activity in the world, insofar as humanity has received the revelation of this and a share in it through Christ in his Spirit.

5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다.”(1요한 4,8)라는 것을 드러내 보여 주시며, “인간 완성과 세계 개혁의 근본 법칙은 사랑의 새 계명이라고 가르치신다. 따라서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이들에게 사랑의 길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으며 보편 형제애를 이룩하려는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확신을 가지게 하신다.” 이 법칙이 인간관계를 움직이는 모든 힘의 궁극적인 잣대와 규범이 되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바로 하느님의 신비, 곧 삼위일체의 사랑이야말로 인간과 인간의 사회적 관계, 인간의 지상 활동이 의미와 가치를 가지게 되는 근거이다. 인류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의 성령 안에서 이 신비를 계시 받았고 이 신비에 동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55. The transformation of the world is a fundamental requirement of our time also. To this need the Church's social Magisterium intends to offer the responses called for by the signs of the times, pointing above all to the mutual love between human beings, in the sight of God, as the most powerful instrument of change, on the personal and social levels. Mutual love, in fact, sharing in the infinite love of God, is humanity's authentic purpose, both historical and transcendent. Therefore, “earthly progress must be carefully distinguished from the growth of Christ's kingdom. Nevertheless, to the extent that the former can contribute to the better ordering of human society, it is of vital concern to the kingdom of God”[67].

55. 세상의 변화는 우리 시대에도 근본적으로 필요하다. 사회 교도권은 이러한 필요에 대하여 시대의 징표가 요구하는 해답을 제시하고자 하며,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시각에서 개인적 사회적 차원의 가장 강력한 변화의 도구인 사람들 사이의 상호 사랑을 강조한다. 실제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 동참하는 상호 사랑은 역사적 차원에서든 초월적 차원에서든 인류의 진정한 목적이다. 따라서 현세 진보는 그리스도 왕국의 발전과 신중하게 구별되어야 하지만, 그 진보가 인간 사회의 더 나은 개선에 이바지할 수 있는 그만큼, 하느님 나라에 커다란 중요성을 지닌다.”

 

 

c. New heavens and a new earth / 새 하늘과 새 땅

 

56. God's promise and Jesus Christ's resurrection raise in Christians the well-founded hope that a new and eternal dwelling place is prepared for every human person, a new earth where justice abides (cf. 2 Cor 5:1-2; 2 Pet 3:13). “Then, with death conquered, the children of God will be raised in Christ and what was sown in weakness and corruption will be clothed in incorruptibility: charity and its works will remain and all of creation, which God made for man, will be set free from its bondage to vanity”[68]. This hope, rather than weaken, must instead strengthen concern for the work that is needed in the present reality.

56. 하느님의 약속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 모든 인간을 위하여 마련되어 있는 새롭고 영원한 집, 정의가 깃든 새 땅에 대한 확고한 희망을 불러일으킨다(2코린 5,1-2; 2베드 3,13 참조). “그 때에 죽음은 패배하고 하느님의 자녀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할 것이며, 허약하고 썩을 몸에 심겨진 것이 불멸의 옷을 입을 것이다. 사랑과 그 업적은 남을 것이며,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창조하신 저 모든 피조물이 허무의 종살이에서 해방될 것이다.” 이러한 희망은 현세의 삶에 필요한 활동에 대한 관심을 약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강화시켜야 한다

 

57. The good things such as human dignity, brotherhood and freedom, all the good fruits of nature and of human enterprise that in the Lord's Spirit and according to his command have spread throughout the earth, having been purified of every stain, illuminated and transfigured, belong to the Kingdom of truth and life, of holiness and grace, of justice, of love and of peace that Christ will present to the Father, and it is there that we shall once again find them. The words of Christ in their solemn truth will then resound for all people: “Come, O blessed of my Father, inherit the kingdom prepared for you from the foundation of the world; for I was hungry and you gave me food, I was thirsty and you gave me drink, I was a stranger and you welcomed me, I was naked and you clothed me, I was sick and you visited me, I was in prison and you came to me ... as you did it to one of the least of my brethren, you did it to me” (Mt 25:34-36,40).

57. 인간 존엄, 형제애, 자유, 그 외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좋은 결실처럼, 주님의 성령 안에서 그분의 명령에 따라 이 지상에 널리 퍼져 있는 좋은 것들은 온갖 더러움에서 정화되고 광채가 더해지고 변모되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바치실 나라, 곧 진리와 생명, 거룩함과 은총, 정의, 사랑, 평화가 지배하는 나라에 속한 것으로서, 우리는 그 나라에서 다시 한 번 이 좋은 것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때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 장엄한 진리로 만민에게 다시 울려 퍼질 것이다. “너희는 내 아버지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니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 ……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34-36.40).

 

58. The complete fulfilment of the human person, achieved in Christ through the gift of the Spirit, develops in history and is mediated by personal relationships with other people, relationships that in turn reach perfection thanks to the commitment made to improve the world, in justice and peace. Human activity in history is of itself significant and effective for the definitive establishment of the Kingdom, although this remains a free gift of God, completely transcendent. Such activity, when it respects the objective order of temporal reality and is enlightened by truth and love, becomes an instrument for making justice and peace ever more fully and integrally present, and anticipates in our own day the promised Kingdom.

58.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은총을 통하여 달성되는 인간의 완전한 실현은 역사 안에서 전개되고, 다른 사람들과 맺는 인격적인 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한편 그 관계는 정의와 평화 안에서 세상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 덕분에 완전하게 된다. 하느님 나라는 언제나 전적으로 초월적인 하느님의 자유로운 선물이지만,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활동은 그 자체로 하느님 나라의 궁극적 건설에 이바지하는 의의와 효력을 지닌다. 그러한 활동이 현세 실재의 객관적인 질서를 존중하고 진리와 사랑으로 밝혀질 때, 정의와 평화를 더욱 완전하고 온전하게 현존시키는 도구가 되고 약속된 나라를 우리 시대에 선취시켜 준다.

 

Conforming himself to Christ the Redeemer, man perceives himself as a creature willed by God and eternally chosen by him, called to grace and glory in all the fullness of the mystery in which he has become a sharer in Jesus Christ[69]. Being conformed to Christ and contemplating his face [70] instil in Christians an irrepressible longing for a foretaste in this world, in the context of human relationships, of what will be a reality in the definitive world to come; thus Christians strive to give food, drink, clothing, shelter, care, a welcome and company to the Lord who knocks at the door (cf. Mt 25:35-37).

구세주 그리스도깨 동화됨으로써, 인간은 자신이 하느님께서 원하셨고 영원히 선택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나누게 된 충만한 신비 안에서 은총과 영광으로 부름 받은 피조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 동화되고 그분 얼굴을 바라봄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궁극적인 세계의 실재를 이 세상에서 여러 인간관계를 통하여 미리 맛보려는 무한한 갈망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께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쉴 곳을 제공하고 그분을 돌보며 환대하고 함께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마태 25,35-37 참조).

 

 

d. Mary and her “fiat” in God's plan of love / 성모님과 하느님 사랑의 계획에 대한 그분의 순명(fiat)

 

59. Heir to the hope of the righteous in Israel and first among the disciples of Jesus Christ is Mary, his Mother. By her “fiat” to the plan of God's love (cf. Lk 1:38), in the name of all humanity, she accepts in history the One sent by the Father, the Saviour of mankind. In her Magnificat she proclaims the advent of the Mystery of Salvation, the coming of the “Messiah of the poor” (cf. Is 11:4; 61:1). The God of the Covenant, whom the Virgin of Nazareth praises in song as her spirit rejoices, is the One who casts down the mighty from their thrones and raises up the lowly, fills the hungry with good things and sends the rich away empty, scatters the proud and shows mercy to those who fear him (cf. Lk 1:50-53).

59. 이스라엘의 의인들의 희망을 이어받은 상속자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서 으뜸이신 분은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이시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의 계획에 온 인류의 이름으로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순명하심으로써(루카 1,38 참조) 성부께서 보내신 유일한 인류의 구세주를 역사 안으로 받아 모신 것이다. 마니피캇(Magnificat)에서 성모님께서는 구원 신비의 도래, 가난한 자의 메시아’(이사 11,4; 61,1 참조)의 오심을 선포하신다. 나자렛의 처녀가 기뻐 용약하며 노래로 찬미하는 계약의 하느님께서는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시며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시다(루카 1,50-53 참조).

 

Looking to the heart of Mary, to the depth of her faith expressed in the words of the Magnificat, Christ's disciples are called to renew ever more fully in themselves “the awareness that the truth about God who saves, the truth about God who is the source of every gift, cannot be separated from the manifestation of his love of preference for the poor and humble, that love which, celebrated in the Magnificat, is later expressed in the words and works of Jesus”[71]. Mary is totally dependent upon God and completely directed towards him by the impetus of her faith. She is “the most perfect image of freedom and of the liberation of humanity and of the universe”[72].

마니피캇에 표현된 성모님의 마음, 그분의 깊은 믿음에 의지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구원하시는 하느님께 관한 진리, 모든 은혜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관한 진리가 마니피캇에서 찬양되었고, 뒤에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에서 표현된 그 사랑, 가난한 이들과 보잘것없는 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우선적인 사랑의 표현과 분리될 수 없다는 인식을 자신 안에 더욱 충만하고 새롭게 하도록 부름 받고 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시고, 당신 믿음에 이끌려 온전히 그분을 향하신다. 성모님께서는 가장 완전한 자유의 표상이시며, 인류와 우주의 가장 완전한 해방의 모습이시다.”



  영한편집 작업 : 임인선(베로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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