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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한비교 간추린 사회교리

 

 

제6장 (255~322항) - 인간 노동

조회 수 2128 추천 수 0 2016.05.23 12:39:26

 

CHAPTER SIX / 6

 

HUMAN WORK

인간 노동

 

I. BIBLICAL ASPECTS+-

I. 성경적 관점

 

a. The duty to cultivate and care for the earth

. 지상을 가꾸고 돌볼 의무

 

255. The Old Testament presents God as the omnipotent Creator (cf. Gen 2:2; Job 38-41; Ps 104; Ps 147) who fashions man in his image and invites him to work the soil (cf. Gen 2:5-6), and cultivate and care for the garden of Eden in which he has placed him (cf. Gen 2:15). To the first human couple God entrusts the task of subduing the earth and exercising dominion over every living creature (cf. Gen 1:28). The dominion exercised by man over other living creatures, however, is not to be despotic or reckless; on the contrary he is to “cultivate and care for” (Gen 2:15) the goods created by God. These goods were not created by man, but have been received by him as a precious gift that the Creator has placed under his responsibility. Cultivating the earth means not abandoning it to itself; exercising dominion over it means taking care of it, as a wise king cares for his people and a shepherd his sheep.

255. 구약은 하느님을 전능하신 창조주로 제시한다(창세 2,2; 3841; 시편 104; 시편 147 참조). 하느님께서는 당신 모습대로 인간을 지어내시고 땅에서 일하게 시키시며(창세 2,5-6 참조) 에덴동산으로 데려와 그 곳을 가꾸고 돌보도록 하신다(창세 2,15 참조). 최초의 인간인 아담 내외에게 하느님께서는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지배할 임무를 맡기신다(창세 1,28 참조). 그러나 인간은 다른 모든 생물을 함부로 다루거나 무분별하게 지배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인간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재화를 가꾸고 돌보아야”(창세 2,15) 한다. 이러한 재화는 인간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창조주께서 인간의 책임에 맡기신 소중한 선물이다. 땅을 돌본다는 것은 그냥 버려둔다는 뜻이 아니다. 땅을 부린다는 것은, 현명한 왕이 자기 백성을 돌보고 목자가 자기 양들을 돌보듯이 땅을 돌본다는 것을 뜻한다.

 

In the Creator's plan, created realities, which are good in themselves, exist for man's use. The wonder of the mystery of man's grandeur makes the psalmist exclaim: “What is man that you are mindful of him, and the son of man that you care for him? Yet you have made him little less than god, and crown him with glory and honour. You have given him dominion over the works of your hands; you have put all things under his feet” (Ps 8:5-7).

창조주의 계획으로 창조된 실재들은 그 자체로 선하며 인간이 사용하도록 존재한다. 시편 저자는 위대한 인간의 신비에 대한 놀라움을 이렇게 노래한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나이까. 그 종락 무엇이기에 따뜻이 돌보시나이까. 천사들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주셨나이다.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삼라만상을 그의 발아래 두시었으니”(시편 8,5-7).

 

256. Work is part of the original state of man and precedes his fall; it is therefore not a punishment or curse. It becomes toil and pain because of the sin of Adam and Eve, who break their relationship of trust and harmony with God (cf. Gen 3:6-8). The prohibition to ea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Gen 2:17) reminds man that he has received everything as a gift and that he continues to be a creature and not the Creator. It was precisely this temptation that prompted the sin of Adam and Eve: “you will be like God” (Gen 3:5). They wanted absolute dominion over all things, without having to submit to the will of the Creator. From that moment, the soil becomes miserly, unrewarding, sordidly hostile (cf. Gen 4:12); only by the sweat of one's brow will it be possible to reap its fruit (cf. Gen 3:17,19). Notwithstanding the sin of our progenitors, however, the Creator's plan, the meaning of His creatures and among these, man, who is called to cultivate and care for creation remain unaltered.

256. 노동은 인간의 본래 상태에 속하는 것이며, 인간이 타락하기 전부터 있었으므로 형벌이나 저주가 아니다. 노동은 하느님과 신뢰와 일치의 관계를 깬 아담과 하와의 죄 때문에 고생스럽고 힘든 것이 된다(창세 3,6-8 참조).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창세 2,17)를 먹지 못하게 하신 것은 인간이 받은 모든 것은 무상의 선물이며 인간은 여전히 피조물일 뿐 창조주가 아님을 인간에게 일깨우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죄를 부추긴 것은 바로 하느님처럼 될 것”(창세 3,5)이라는 이러한 유혹이었다. 그들은 창조주의 뜻에 복종할 필요 없이 모든 것을 완전히 지배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 순간부터 땅은 인간에게 고통스럽고 척박하며 치사한 것이 되었다(창세 4,12 참조). 이마에 땀을 흘려야만 땅에서 수확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창세 3,17.19 참조). 그러나 우리 원조들의 죄에도, 창조주의 계획에서 피조물을 가꾸고 돌보도록 부름 받은 인간을 포함한 피조물의 의미는 변하지 않았다.

 

257. Work has a place of honour because it is a source of riches, or at least of the conditions for a decent life, and is, in principle, an effective instrument against poverty (cf. Pr 10:4). But one must not succumb to the temptation of making an idol of work, for the ultimate and definitive meaning of life is not to be found in work. Work is essential, but it is God and not work who is the origin of life and the final goal of man. The underlying principle of wisdom in fact is the fear of the Lord. The demand of justice, which stems from it, precedes concerns for profit: “Better is a little with the fear of the Lord than great treasure and trouble with it” (Pr 15:16). “Better is a little with righteousness than great revenues with injustice” (Pr 16:8).

257. 노동은 부의 원천이고 적어도 품위 있는 생활을 위한 조건이기 때문에 명예로운 것이며 원칙적으로 빈곤을 막는(잠언 10,4 참조) 효과적인 도구이다. 그러나 노동을 숭배하려는 유혹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삶의 궁극적이고 결정적인 의미를 노동에서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노동은 필수적이지만 생명의 기원과 인간의 최종 목적은 노동이 아니라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사실 지혜의 기본 원리는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여기서 비롯되는 정의의 요구는 이익 추구에 대한 관심보다 우선한다. “재산을 쌓아 놓고 다투며 사는 것보다 가난해도 주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이 낫다”(잠언 15,16). “정직하게 살아 적게 버는 것이 불의하게 재산을 쌓는 것보다 낫다”(잠언 16,8).

 

258. The apex of biblical teaching on work is the commandment of the Sabbath rest. For man, bound as he is to the necessity of work, this rest opens to the prospect of a fuller freedom, that of the eternal Sabbath (cf. Heb 4:9-10). Rest gives men and women the possibility to remember and experience anew God's work, from Creation to Redemption, to recognize themselves as his work (cf. Eph 2:10), and to give thanks for their lives and for their subsistence to him who is their author.

258. 노동에 대한 성경 가르침의 정점은 안식일의 휴식에 대한 계명이다. 인간은 노동의 숙명에 묶여있기는 하지만, 이 휴식은 더 충만한 자유와 영원한 안식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히브 4,9-10 참조). 휴식은 인간이 창조에서 구원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활동을 기억하고 새롭게 경험하며, 자신들을 하느님의 작품으로 인식하며(에페 2,10 참조) 생명을 주시고 양식을 주시는 주인께 감사드릴 수 있게 한다.

 

The memory and the experience of the Sabbath constitute a barrier against becoming slaves to work, whether voluntarily or by force, and against every kind of exploitation, hidden or evident. In fact, the Sabbath rest, besides making it possible for people to participate in the worship of God, was instituted in defence of the poor. Its function is also that of freeing people from the antisocial degeneration of human work. The Sabbath rest can even last a year; this entails the expropriation of the fruits of the earth on behalf of the poor and the suspension of the property rights of landowners: “For six years you shall sow your land and gather in its yield; but the seventh year you shall let it rest and lie fallow, that the poor of your people may eat; and what they leave the wild beasts may eat. You shall do likewise with your vineyard, and with your olive orchard” (Ex 23:10-11). This custom responds to a profound intuition: the accumulation of goods by some can sometimes cause others to be deprived of goods.

안식일을 기념하고 지키는 것은 자의로든 강제로든 일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고, 드러나거나 감추어진 모든 종류의 착취에서 인간을 막아주는 방패이다. 사실, 안식일은 사람들을 하느님 예배에 참여하도록 이끌 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보호하고자 제정되었다. 안식일의 역할은 또한 사람들을 인간 노동의 반사회적 타락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안식일 휴식은 일년 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 이때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땅의 소출을 거두고 땅 주인들의 재산권을 유보한다. “너희는 육 년 동안은 밭에 씨를 뿌려 그 소출을 거두어들이고, 칠 년째 되는 해에는 땅을 놀리고 소출을 그대로 두어 너희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고 남은 것은 들짐승이나 먹게 하여라. 너희 포도원도, 올리브 밭도 그렇게 하여라.”(탈출 23,10-11) 이러한 관습은 일부 사람의 재산 축적이 때로는 다른 이들의 재산 결핍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심오한 직관에 따른 것이다.

 

 

b. Jesus, a man of work

. 노동자 예수님

 

259. In his preaching, Jesus teaches that we should appreciate work. He himself, having “become like us in all things, devoted most of the years of his life on earth to manual work at the carpenter's bench” [ 573] in the workshop of Joseph (cf. Mt 13:55; Mk 6:3), to whom he was obedient (cf. Lk 2:51). Jesus condemns the behaviour of the useless servant, who hides his talent in the ground (cf. Mt 25:14-30) and praises the faithful and prudent servant whom the Master finds hard at work at the duties entrusted to him (cf. Mt 24:46). He describes his own mission as that of working: “My Father is working still, and I am working” (Jn 5:17), and his disciples as workers in the harvest of the Lord, which is the evangelization of humanity (cf. Mt 9:37-38). For these workers, the general principle according to which “the labourer deserves his wages” (Lk 10:7) applies. They are therefore authorized to remain in the houses in which they have been welcomed, eating and drinking what is offered to them (cf. Lk 10:7).

259. 예수님께서는 설교에서 우리에게 노동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그분께서도 우리와 똑같이 인간이 되시어 지상 생활의 대부분을 목수의 작업대에서 육체노동을 하면서 보내시고 요셉의 작업실에서 일하시며(마태 13,55; 마르 6,3 참조) 요셉에게 순종하셨다(루카 2,51 참조).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둔 쓸모없는 종의 행동을 비난하시고(마태 25,14-30 참조)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충성스럽고 슬기로운 종을 칭찬하신다(마태 24,46 참조).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라고 하시며 당신 사명은 일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시고 제자들은 주님의 수확, 곧 인류 복음화를 위한 일꾼이라고 설명하신다(마태 9,37-38 참조). 이러한 일꾼들에게는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루카 10,7)이라는 일반적인 원칙이 적용된다. 그러므로 일꾼들은 그들을 받아준 곳에서 주는 것을 먹고 마시며 그 곳에 머물 자격이 있다(루카 10,7 참조).

 

260. In his preaching, Jesus teaches man not to be enslaved by work. Before all else, he must be concerned about his soul; gaining the whole world is not the purpose of his life (cf. Mk 8:36). The treasures of the earth, in fact, are consumed, while those in heaven are imperishable. It is on these latter treasures that men and women must set their hearts (cf. Mt 6:19-21). Work, then, should not be a source of anxiety (cf. Mt 6:25,31,34). When people are worried and upset about many things, they run the risk of neglecting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cf. Mt 6:33), which they truly need. Everything else, work included, will find its proper place, meaning and value only if it is oriented to this one thing that is necessary and that will never be taken away (cf. Lk 10:40-42).

260. 예수님께서는 설교를 통해, 인간은 일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신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자신의 영혼을 돌보아야 한다. 온 세상을 얻는 것이 삶의 목적은 아니다(마르 8,36 참조). 사실 지상의 재화는 쓰면 없어지는 것이지만, 천상의 보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이 마음을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천상의 보화이다(마태 6,19-21 참조). 그러므로 일은 걱정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마태 6,25.31.34 참조). 사람들이 갖가지 일을 걱정하고 마음을 쓸 때,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소홀히 할 위험이 있다(마태 6,33 참조). 일을 포함한 다른 모든 것은 정말 필요하고 결코 사라지지 않을 이 한 가지를 지향할 때에만 그 올바른 자리와 의미, 가치를 찾을 것이다(루카 10,40-42참조).

 

261. During his earthly ministry Jesus works tirelessly, accomplishing powerful deeds to free men and women from sickness, suffering and death. The Sabbath which the Old Testament had put forth as a day of liberation and which, when observed only formally, lost its authentic significance is reaffirmed by Jesus in its original meaning: “The Sabbath was made for man, not man for the Sabbath” (Mk 2:27). By healing people on this day of rest (cf. Mt 12:9-14; Mk 3:1-6; Lk 6:6-11, 13:10-17, 14:1-6), he wishes to show that the Sabbath is his, because he is truly the Son of God, and that it is the day on which men should dedicate themselves to God and to others. Freeing people from evil, practising brotherhood and sharing: these give to work its noblest meaning, that which allows humanity to set out on the path to the eternal Sabbath, when rest will become the festive celebration to which men and women inwardly aspire. It is precisely in orienting humanity towards this experience of God's Sabbath and of his fellowship of life that work is the inauguration on earth of the new creation.

261. 예수님께서는 지상생활 동안 끊임없이 일하시며 인간을 병과 고통, 죽음에서 해방시키는 놀라운 일들을 이루신다. 구약에서 해방의 날로 제시한, 형식적으로만 지켜져 그 참된 의미를 잃은 안식일의 본래 의미를 예수님께서 재확인해 주신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마르 2,27). 안식일에 사람들을 고쳐 주시면서(마태 12,9-14; 마르 3,1-6l 루카 6,6-11;13,10-17; 14,1-6 참조)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므로 안식일은 당신의 날이며 이 날은 인간이 하느님과 다른 이들에게 온전히 헌신해야 하는 날임을 보여주고자 하셨다. 사람들을 악에서 벗어나게 하고 형제애와 나눔을 실천할 때 노동은 그 가장 숭고한 의미를 얻게 되며, 휴식이 인간이 내적으로 갈망하는 축제의 거행이 될 때 인류는 영원한 안식일을 향한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이처럼 인간에게 하느님의 안식일을 체험하게 하고 생명에 동참하도록 이끌 때에 노동은 지상에서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262. Human activity aimed at enhancing and transforming the universe can and must unleash the perfections which find their origin and model in the uncreated Word. In fact, the Pauline and Johannine writings bring to light the Trinitarian dimension of creation, in particular the link that exists between the SonWord the Logos and creation (cf. Jn 1:3; 1 Cor 8:6; Col 1:15-17). Created in him and through him, redeemed by him, the universe is not a happenstance conglomeration but a “cosmos”.[574] It falls to man to discover the order within it and to heed this order, bringing it to fulfilment: “In Jesus Christ the visible world which God created for man the world that, when sin entered, ‘was subjected to futility' (Rom 8:20; cf. ibid. 8:19-22) recovers again its original link with the divine source of Wisdom and Love”.[575] In this way that is, bringing to light in ever greater measure “the unsearchable riches of Christ” (Eph 3:8), in creation, human work becomes a service raised to the grandeur of God.

262. 세상을 풍요롭게 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인간의 활동은, 창조되지 않은 말씀을 기원과 모범으로 하는 완덕을 드러낼 수 있으며 또 그래야 한다. 사실, 바오로와 요한 사도의 글들은 창조의 삼위일체적 차원, 특히 성자 - 말씀 로고스 와 피조물의 관련성을 밝혀 준다(요한 1,3; 1코린 8,6; 골로 1,15-17 참조). 그분 안에서 그분을 통하여 창조되고 그분의 구원을 받은 세상은 우연의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의 우주이다. 그 안에서 질서를 발견하고 이 질서를 따르며 완성시키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위해 만드신 세계, 죄가 들어오자 제 구실을 못하게 된’(로마 8,20; 8,19-22 참조) 눈에 보이는 세계는 본래 지녔던 지혜와 사랑이신 신적 원천과 맺는 유대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회복하였다.” 이렇게 하여,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풍요”(에페 3,8)- 더욱더 잘 드러냄으로써, 인간 노동은 하느님의 영광에 바쳐지는 봉사가 된다.

 

263. Work represents a fundamental dimension of human existence as participation not only in the act of creation but also in that of redemption. Those who put up with the difficult rigours of work in union with Jesus cooperate, in a certain sense, with the Son of God in his work of redemption and show that they are disciples of Christ bearing his cross, every day, in the activity they are called to do. In this perspective, work can be considered a means of sanctification and an enlivening of earthly realities with the Spirit of Christ.[576] Understood in this way, work is an expression of man's full humanity, in his historical condition and his eschatological orientation. Man's free and responsible action reveals his intimate relationship with the Creator and his creative power. At the same time, it is a daily aid in combating the disfigurement of sin, even when it is by the sweat of his brow that man earns his bread.

263. 노동은 창조 행위뿐 아니라 구원 행위에도 참여하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 차원을 나타낸다. 예수님과 일치하여 노동의 수고를 견디는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하느님 아드님의 구원 활동에 협력하는 것이며, 그들이 부름 받고 있는 노동을 통하여 날마다 그분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노동은 성화의 한 수단이며 세상사에 그리스도의 정신을 불어넣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렇게 이해되는 노동은 역사적 조건을 타고 나며 종말을 지향하는 인간의 충만한 인간성을 드러내는 한 표현이다. 인간의 자유롭고 책임 있는 행동은 인간이 창조주와 또 그분의 창조 권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와 동시에, 이러한 행동은 인간이 자신의 수고로 일용할 양식을 얻을 때에도 날마다 추악한 죄를 물리칠 수 있는 도움이 된다.

 

c. The duty to work

. 노동의 의무

 

264. The awareness that “the form of this world is passing away” (1 Cor 7:31) is not an exoneration from being involved in the world, and even less from work (cf. 2 Thes 3:7-15), which is an integral part of the human condition, although not the only purpose of life. No Christian, in light of the fact that he belongs to a united and fraternal community, should feel that he has the right not to work and to live at the expense of others (cf. 2 Thes 3:6-12). Rather, all are charged by the Apostle Paul to make it a point of honour to work with their own hands, so as to “be dependent on nobody” (1 Thes 4:12), and to practise a solidarity which is also material by sharing the fruits of their labour with “those in need” (Eph 4:28). Saint James defends the trampled rights of workers: “Behold, the wages of the labourers who mowed your fields, which you kept back by fraud, cry out; and the cries of the harvesters have reached the ears of the Lord of hosts” (Jas 5:4). Believers are to undertake their work in the style of Christ and make it an occasion for Christian witness, commanding “the respect of outsiders” (1 Thes 4:12).

264. 이 세상은 사라져가고 있다.”(1코린 7,31)는 것을 인식하다고 해서 세상일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거나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2테살 3,7-15 참조). 노동은 삶의 유일한 목표는 아니지만 인간 조건의 필수적인 한 부분이다. 그리스도인은 일치된 형제 공동체에 속해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어떤 그리스도인도 일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치며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2테살 3,6-12 참조). 바오로 사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남에게 신세지지 않고”(1테살 4,12) 자신의 노동의 열매를 가난한 사람들”(에페 4,28)과 나눔으로써 물질적인 것을 포함한 연대를 실천할 수 있도록 자신의 손으로 노동을 하는 것을 영예롭게 여기도록 장려하고 있다. 야고보 성인은 노동자들의 짓밟힌 권리를 옹호한다. “잘 들으시오. 당신들은 당신들의 밭에서 곡식을 거두어들인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지 않고 가로챘습니다. 그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또 추수할 일꾼들의 아우성이 반군의 주님의 귀에 들렸습니다”(야고 5,4).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것처럼 자신의 일을 하고 노동을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기회로 삼아 교회 밖의 사람들의 존경”(1테살 4,12)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265. The Fathers of the Church do not consider work as an “opus servile” although the culture of their day maintained precisely that such was the case but always as an “opus humanum”, and they tend to hold all its various expressions in honour. By means of work, man governs the world with God; together with God he is its lord and accomplishes good things for himself and for others. Idleness is harmful to man's being, whereas activity is good for his body and soul.[577] Christians are called to work not only to provide themselves with bread, but also in acceptance of their poorer neighbours, to whom the Lord has commanded them to give food, drink, clothing, welcome, care and companionship [578] (cf. Mt 25:35-36). Every worker, Saint Ambrose contends, is the hand of Christ that continues to create and to do good.[579]

265. 교회 교부들은 노동을 노예의 일- 비록 그 시대의 문화가 그렇게 주장했다 하더라도 - 여기지 않고 언제나 인간의 일로 간주하며, 다양하게 표현되는 모든 노동을 존중한다. 노동을 통하여 인간은 하느님과 더불어 세상을 다스린다. 하느님과 함께 인간은 세상의 주인이 되고,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하여 유익한 것들을 성취한다. 게으름은 인간 존재에 해로운 반면, 활동은 몸과 정신에 모두 유익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먹을 양식을 마련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더욱 가난한 이웃들에게 먹고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주고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 보살피며 친구가 되어주라 하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마태 25,35-36 참조) 그들을 받아들이도록 노동을 요구받는다. 암브로시오 성인이 말하듯, 모든 노동자는 그리스도의 손이 되어 창조와 선행을 계속해 나간다.

 

266. By his work and industriousness, man who has a share in the divine art and wisdom makes creation, the cosmos already ordered by the Father, more beautiful[580]. He summons the social and community energies that increase the common good[581], above all to the benefit of those who are neediest. Human work, directed to charity as its final goal, becomes an occasion for contemplation, it becomes devout prayer, vigilantly rising towards and in anxious hope of the day that will not end. “In this superior vision, work, a punishment and at the same time a reward of human activity, involves another relationship, the essentially religious one, which has been happily expressed in the Benedictine formula: ora et labora! The religious fact confers on human work an enlivening and redeeming spirituality. Such a connection between work and religion reflects the mysterious but real alliance, which intervenes between human action and the providential action of God”[582].

266. 하느님의 솜씨와 지혜를 나누어 받은 인간은 자신의 노동과 근면함으로, 성부께서 이미 세워 놓으신 우주인 피조물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인간은 공동선을 증진하는 사회와 공동체의 역량을 모아 무엇보다도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사랑의 실천을 최종 목표로 삼는 인간의 노동은 관상의 기회가 되며, 영원한 날을 간절히 염원하며 부단히 깨어 바치는 신실한 기도가 된다. “이러한 뛰어난 관점에서, 형벌인 동시에 인간 활동에 대한 보상인 노동은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또 다른 관계와 관련된다. 베네딕토 성인의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라는 말은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종교적 요소는 인간 활동에 활기를 불어넣는 구원의 영성을 부여한다. 노동과 종교의 이러한 관계는 인간 활동과 하느님 섭리의 활동 사이에 있는 신비롭고도 실제적인 결합을 반영한다.”

 

 

II. THE PROPHETIC VALUE OF RERUM NOVARUM

II. 새로운 사태의 예언적 가치

 

267. The course of history is marked by the profound transformation and the exhilarating conquests of work, but also by the exploitation of so many workers and an offence to their dignity. The Industrial Revolution presented for the Church a critical challenge to which her social Magisterium responded forcefully and prophetically, affirming universally valid and perennially relevant principles in support of workers and their rights.

267. 역사의 흐름은 노동의 근본적 변화와 힘찬 승리,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많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그들의 존엄성 침해를 보여준다. 산업 혁명은 교회에 중대한 도전을 제기하였으며, 이에 교회의 사회 교도권은 강력하고도 예언자적으로 대응하면서, 노동자와 그들의 권리를 지지하는 보편적으로 정당하고 영구히 타당한 원칙들을 강조하였다.

 

For centuries the Church's message was addressed to agricultural societies, characterized by regular cyclical rhythms. Now the Gospel had to be preached and lived in a new “areopagus”, in the tumult of social events in a more dynamic society, taking into account the complexities of new phenomena of the unimaginable transformations brought about by mechanization. At the centre of the Church's pastoral concern was the ever urgent worker question, that is, the problem of the exploitation of workers brought about by the new industrial organization of labour, capitalistically oriented, and the problem, no less serious, of ideological manipulation socialist and communist of the just claims advanced by the world of labour. The reflections and warnings contained in the Encyclical Rerum Novarum of Pope Leo XIII are placed in this historical context.

수세기 동안 교회의 메시지는 규칙적이고 주기적인 순환을 특징으로 하는 농촌 사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기계화 덕분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화한 새롭고 복잡한 현상을 고려하며, 새로운 아레오파고안에서, 더욱 역동적인 사회의 갖가지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실천하여야 한다. 교회의 사목적 관심의 중심에는 더욱 시급한 노동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곧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새로운 노동 산업 구조는 노동자 착취 문제를 야기하였으며, 노동계의 정당한 요구들에 대한 -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 이념적 조작도 이에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였다.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의 성찰과 경고들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268. Rerum Novarum is above all a heartfelt defence of the inalienable dignity of workers, connected with the importance of the right to property, the principle of cooperation among the social classes, the rights of the weak and the poor, the obligations of workers and employers and the right to form associations.

268. 새로운 사태는 무엇보다도 노동자의 양도할 수 없는 존엄을 진심으로 옹호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재산권, 사회 계층 간 협력 원칙, 약자와 가난한 이들의 권리, 노동자와 고용주의 의무와 단체 결성권의 중요성을 다룬다.

 

The orientation of ideas expressed in the Encyclical strengthened the commitment to vitalize Christian social life, which was seen in the birth and consolidation of numerous initiatives of high civic profile: groups and centres for social studies, associations, worker organizations, unions, cooperatives, rural banks, insurance groups and assistance organizations. All of this gave great momentum to labour-related legislation for the protection of workers, above all children and women; to instruction and to the improvement of salaries and cleanliness in the work environment.

이 회칙의 사상들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생활을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을 더욱 강화하였으며, 뛰어난 시민 의식을 지닌 수많은 활동들이 생겨나고 결집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사회학 연구 모임과 센터, 단체, 노동자 기구, 노동조합, 협동조합, 농협, 보험 단체와 지원 기구들이 그것이다. 이 모든 것은 노동자들, 특히 어린이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노동 관련법 제정과, 교육, 임금 인상과 노동 환경 개선에 큰 힘을 실어 주었다.

 

269. Starting with Rerum Novarum, the Church has never stopped considering the problems of workers within the context of a social question which has progressively taken on worldwide dimensions.[583] The Encyclical Laborem Exercens enhances the personalistic vision that characterized previous social documents, indicating the need for a deeper understanding of the meaning and tasks that work entails. It does this in consideration of the fact that “fresh questions and problems are always arising, there are always fresh hopes, but also fresh fears and threats, connected with this basic dimension of human existence: man's life is built up every day from work, from work it derives its specific dignity, but at the same time work contains the unceasing measure of human toil and suffering, and also of the harm and injustice which penetrate deeply into social life within individual nations and on the international level”.[584] In fact, work is the “essential key” [585] to the whole social question and is the condition not only for economic development but also for the cultural and moral development of persons, the family, society and the entire human race.

269. 새로운 사태를 시작으로, 교회는 점점 더 세계적인 차원을 띠게 된 사회 문제의 맥락 안에서 노동 문제를 꾸준히 고려해 왔다. 회칙 노동하는 인간(Laborem Exercens)은 이전의 사회 문서들의 특징이었던 인격적인 시각을 강화하고, 노동의 의미와 이에 따르는 임무들을 더욱 깊이 이해할 필요성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려하고 있다. “새로운 질문들과 문제들이 늘 솟아나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운 희망이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인간 실존의 기본 영역에 따르는 새로운 두려움과 위협도 있다. 인간의 생활은 매일 노동으로 이루어지며, 노동에서 인간은 그 독특한 존엄성을 얻는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은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의 노고와 고통을 동반하고, 또한 개별 국가와 국제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생활 속에 깊이 침투해 들어오는 해악과 불의도 안고 있다.” 사실 노동은 사회 문제 전체에 대한 관건이며 경제 발전뿐만 아니라 개인과 가정, 사회, 인류 전체의 문화적 도덕적 진보를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III. THE DIGNITY OF WORK

III. 노동의 존엄성

 

a. The subjective and objective dimensions of work

. 노동의 주관적 객관적 차원

 

270. Human work has a twofold significance: objective and subjective. In the objective sense, it is the sum of activities, resources, instruments and technologies used by men and women to produce things, to exercise dominion over the earth, in the words of the Book of Genesis. In the subjective sense, work is the activity of the human person as a dynamic being capable of performing a variety of actions that are part of the work process and that correspond to his personal vocation: “Man has to subdue the earth and dominate it, because as the ‘image of God' he is a person, that is to say, a subjective being capable of acting in a planned and rational way, capable of deciding about himself, and with a tendency to self-realization. As a person, man is therefore the subject of work”[586].

270. 인간의 노동은 객관적 의미와 주관적 의미를 지닌다. 객관적 의미에서 노동은 인간이 창세기에서 말하듯 땅을 다스리고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데에 사용하는 활동과 자원, 도구와 기술의 총체이다. 주관적 의미에서 노동은 노동 과정의 일부이며 자신의 개인적 소명에 부합하는 다양한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역동적 존재인 개인의 활동이다. “인간은 땅을 정복하고 다스려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으로서 하나의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천부적인 이성적 방법으로 행동할 수 있고 또 자신에 대해 결정을 할 수 있으며 자기완성을 위해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Work in the objective sense constitutes the contingent aspect of human activity, which constantly varies in its expressions according to the changing technological, cultural, social and political conditions. Work in the subjective sense, however, represents its stable dimension, since it does not depend on what people produce or on the type of activity they undertake, but only and exclusively on their dignity as human beings. This distinction is critical, both for understanding what the ultimate foundation of the value and dignity of work is, and with regard to the difficulties of organizing economic and social systems that respect human rights.

객관적 의미의 노동은 인간 활동의 부수적인 측면을 이루며, 기술과 문화, 사회 정치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그 표현이 달라진다. 그러나 주관적 의미의 노동은 안정된 차원을 보여준다. 노동은 사람들이 생산해내는 것, 또는 그들이 하는 일의 유형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들의 인간적 존엄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분은 노동이 지니는 가치와 존엄의 궁극적 토대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나, 인권을 존중하는 경제적 사회적 제도를 마련하는 일의 어려움과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271. This subjectivity gives to work its particular dignity, which does not allow that it be considered a simple commodity or an impersonal element of the apparatus for productivity. Cut off from its lesser or greater objective value, work is an essential expression of the person, it is an “actus personae”. Any form of materialism or economic tenet that tries to reduce the worker to being a mere instrument of production, a simple labour force with an exclusively material value, would end up hopelessly distorting the essence of work and stripping it of its most noble and basic human finality. The human person is the measure of the dignity of work: “In fact there is no doubt that human work has an ethical value of its own, which clearly and directly remains linked to the fact that the one who carries it out is a person”[587].

271. 이러한 주관성은 노동에 특별한 존엄을 부여하며, 노동을 단순한 상품이나 비인격적인 생산 도구로 간주될 수 없게 한다. 노동은 객관적 가치의 크고 적음과는 별도로, 개인의 본질적인 표현이며, ‘인격적인 행위’(actus personae)이다. 노동자를 단순한 생산 도구, 물질적 가치만을 지닌 단순한 노동력으로 격하시키려는 모든 경제적 신조나 물질주의는 노동의 본질을 왜곡할 뿐더러 노동에서 그것의 가장 숭고하고 근본적인 인간적 합목적성을 빼앗게 될 것이다. 인간은 노동의 존엄성을 재는 척도이다. “인간의 노동이 고유한 윤리적 가치를 지닌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노동의 고유한 윤리적 가치를 성취하는 것이 인격체라는 사실과 명백하게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The subjective dimension of work must take precedence over the objective dimension, because it is the dimension of the person himself who engages in work, determining its quality and consummate value. If this awareness is lacking, or if one chooses not to recognize this truth, work loses its truest and most profound meaning. In such cases which are unfortunately all too frequent and widespread work activity and the very technology employed become more important than the person himself and at the same time are transformed into enemies of his dignity.

노동의 주관적 차원은 객관적 차원에 우선해야 한다. 노동은 몸소 일하면서 노동의 질과 완전한 가치를 결정하는 개인의 차원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이러한 진리를 인정하지 않으려 할 때, 노동의 가장 진정하고 심오한 의미는 상실된다. 현재 안타깝게도 너무나 빈번하고 만연되어 있는 이러한 경우에, 노동 활동과 사용된 기술 자체가 인간보다 더 중요해지고 동시에 인간 존엄을 해치는 것이 되어 버린다.

 

272. Human work not only proceeds from the person, but it is also essentially ordered to and has its final goal in the human person. Independently of its objective content, work must be oriented to the subject who performs it, because the end of work, any work whatsoever, always remains man. Even if one cannot ignore the objective component of work with regard to its quality, this component must nonetheless be subordinated to the self-realization of the person, and therefore to the subjective dimension, thanks to which it is possible to affirm that work is for man and not man for work. “It is always man who is the purpose of work, whatever work it is that is done by man even if the common scale of values rates it as the merest ‘service', as the most monotonous, even the most alienating work”[588].

272. 인간의 노동은 인간에서 비롯될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인간을 지향하며 인간을 최종 목적으로 삼는다. 그 객관적 내용과는 별도로, 노동은 그것을 수행하는 주체를 지향하여야 한다. 어떠한 일이든 노동의 목적은 언제나 인간이기 때문이다. 노동의 질과 관련하여 노동의 객관적 요소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 요소는 개인의 자아실현, 따라서 주체적 차원에 종속되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노동은 인간을 위한 것이지 인간이 노동을 위한 것이 아님을 단언할 수 있게 된다. “어떤 노동이든 인간이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사회 통념상으로 단지 서비스로서의 가치밖에 없거나 대단히 단조로워서 소외된 노동으로서의 가치밖에 없다 하더라도 노동의 목적은 항상 인간인 것이다.”

 

273. Human work also has an intrinsic social dimension. A person's work, in fact, is naturally connected with that of other people. Today “more than ever, work is work with others and work for others. It is a matter of doing something for someone else”[589]. The fruits of work offer occasions for exchange, relationship and encounter. Work, therefore, cannot be properly evaluated if its social nature is not taken into account: “For man's productive effort cannot yield its fruits unless a truly social and organic body exists, unless a social and juridical order watches over the exercise of work, unless the various occupations, being interdependent, cooperate with and mutually complete one another, and, what is still more important, unless mind, material things, and work combine and form as it were a single whole. Therefore, where the social and individual nature of work is neglected, it will be impossible to evaluate work justly and pay it according to justice”[590].

273. 인간의 노동은 또한 고유한 사회적 차원을 지닌다. 사실 한 개인의 노동은 자연히 다른 사람의 노동과 관련된다. 오늘날 노동은 다른 이들과 더불어 일하는 것이고, 다른 이들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며, 다른 누군가를 위하여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노동의 열매는 교환과 관계와 만남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노동의 사회적 본질을 고려하지 않고는 노동을 적절하게 평가할 수 없다. “만일 인간 사회가 진정 사회적이고 유기적인 조직체가 되지 못하고, 노동이 사회적이고 법적인 질서에 의해 보호되지 않는다면, 또한 상호 의존 관계에 있는 인간 노력의 다양한 형태가 상호 보완과 조화 가운데 결합되지 않는다면, 특히 지식과 자본과 노동이 공동보조로 결합되지 않는다면, 인간의 수고는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인간 노동의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성격이 간과된다면, 노동의 정의에 따라 평가될 수 없고 형평에 따른 보수도 받을 수 없다.”

 

274. Work is also “an obligation, that is to say, a duty on the part of man”[591]. Man must work, both because the Creator has commanded it and in order to respond to the need to maintain and develop his own humanity. Work is presented as a moral obligation with respect to one's neighbour, which in the first place is one's own family, but also the society to which one belongs, the nation of which one is son or daughter, the entire human family of which one is member. We are heirs of the work of generations and at the same time shapers of the future of all who will live after us.

274. 노동은 또한 하나의 의무, 말하자면 인간의 임무이다. 인간은 노동을 하여야 한다. 창조주께서 그것을 명령하셨기 때문이며, 자신의 인성을 보존하고 발전시킬 필요성에 응답하기 위해서이다. 노동은 우선은 자기 가족, 그리고 자신이 속한 사회, 자신의 조국, 나아가 온 인류 가족을 포함하는 이웃과 관련된 하나의 도덕적 의무로 제시된다. 우리는 수세대에 걸친 노동의 상속자인 동시에 우리 후손의 미래를 형성하는 사람들이다.

 

275. Work confirms the profound identity of men and women created in the image and likeness of God: “As man, through his work, becomes more and more the master of the earth, and as he confirms his dominion over the visible world, again through his work, he nevertheless remains in every case and at every phase of this process within the Creator's original ordering. And this ordering remains necessarily and indissolubly linked with the fact that man was created, as male and female, ‘in the image of God”'[592]. This describes human activity in the universe: men and women are not its owner, but those to whom it is entrusted, called to reflect in their own manner of working the image of him in whose likeness they are made.

275. 노동은 하느님 모습대로 하느님을 닮게 창조된 인간의 심오한 정체성을 확인한다. “인간은 자신의 노동을 통하여 점점 더 땅의 주인이 되며 또 자신의 노동을 통하여 볼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지배력을 굳혀가지만, 인간은 이러한 과정이 어떠한 경우에나 어떠한 단계에서 이루어지든 창조주의 원초적인 명령 안에 속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명령은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사실과 필수 불가분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이는 세상 안의 인간 활동을 설명한다. 인간은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 관리자이며, 자기 나름의 노동 방식을 통하여 그들의 원형이신 분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부름 받는다.

 

 

b. The relationship between labour and capital

. 노동과 자본의 관계

 

276. Work, because of its subjective or personal character, is superior to every other factor connected with productivity; this principle applies, in particular, with regard to capital. The term “capital” has different meanings today. Sometimes it indicates the material means of production in a given enterprise, sometimes the financial resources employed to bring about production or used in stock market operations. One can also speak of “human capital” to refer to human resources, that is, to man himself in his capacity to engage in labour, to make use of knowledge and creativity, to sense the needs of his fellow workers and a mutual understanding with other members of an organization. The term “social capital” is also used to indicate the capacity of a collective group to work together, the fruit of investments in a mutually-binding fiduciary trust. This variety of meanings offers further material for reflecting on what the relationship between work and capital may be today.

276. 노동은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특징 때문에 생산성과 관련된 다른 모든 요소보다 우위에 있으며, 이러한 원칙은 특히 자본과 관련하여 적용된다. ‘자본이라는 말은 오늘날 여러 의미를 지닌다. 이 말은 기업의 물질적 생산 수단을 가리키기도 하고, 생산에 사용되거나 주식 시장 운용에 쓰이는 금융 자원을 가리키기도 한다. 또한 인적 자원, 곧 노동에 참여하여 지식과 창의력을 발휘하고 동료 노동자들의 요구를 인식하며 조직의 다른 구성원들과 상호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간을 인간 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 자본이라는 말은 집단의 협동 능력, 곧 상호 신탁 투자의 결실을 일컫는다. 이러한 다양한 의미는 오늘날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풍부한 성찰 거리를 제공한다.

 

277. The Church's social doctrine has not failed to insist on the relationship between labour and capital, placing in evidence both the priority of the first over the second as well as their complementarities.

277. 교회의 사회 교리는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강조해 왔으며, 이 둘의 상호보완성은 물론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를 분명히 밝혔다.

 

Labour has an intrinsic priority over capital. “This principle directly concerns the process of production: in this process labour is always a primary efficient cause, while capital, the whole collection of means of production, remains a mere instrument or instrumental cause. This principle is an evident truth that emerges from the whole of man's historical experience”[593]. This “is part of the abiding heritage of the Church's teaching”[594].

노동은 자본보다 본질적으로 우위에 있다. 이 원칙은 생산 과정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것이다. 생산 과정에서 노동은 항상 주요 동인이 되지만, 생산 수단의 총합인 자본은 다만 하나의 도구 또는 도구인이 될 뿐이다. 이 원칙은 인간의 역사적 체험 전체에서 얻은 명백한 진리이다.” 이것은 교회의 가르침이 남긴 유산의 일부이다.

 

There must exist between work and capital a relationship of complementarities: the very logic inherent within the process of production shows that the two must mutually permeate one another and that there is an urgent need to create economic systems in which the opposition between capital and labour is overcome[595]. In times when “capital” and “hired labour”, within a less complicated economic system, used to identify with a certain precision not only two elements of production but also and above all two concrete social classes, the Church affirmed that both were in themselves legitimate[596]: “Capital cannot stand without labour, nor labour without capital”[597]. This is a truth that applies also today, because “it is altogether false to ascribe either to capital alone or to labour alone what is achieved by the joint work of both; and it is utterly unjust that the one should arrogate unto itself what is being done, denying the effectiveness of the other”[598].

노동과 자본 사이에는 상호 보완 관계가 존재하여야 한다. 생산 과정에 내재된 논리 자체를 보면, 노동과 자본은 서로 얽혀 있어야 하며 자본과 노동 사이의 대립을 극복할 경제 체제를 시급히 만들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덜 복잡한 경제 체제 안에서 자본고용된 노동이 생산의 두 요소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두 사회 계층을 분명히 구분하였던 시대에, 교회는 노동과 자본 모두 그 자체로 정당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자본은 노동 없이 있을 수 없고 노동은 자본 없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진리이다. “자본과 노동의 협력으로 얻어진 것을 어느 한편에만 귀속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그릇된 것이며, 또한 어느 한편이 다른 편의 노력을 무시하고 모든 이익을 독점한다는 것은 정의에 크게 어긋난다.”

 

278. In considering the relationship between labour and capital, above all with regard to the impressive transformations of our modern times, we must maintain that the “principal resource” and the “decisive factor” [599] at man's disposal is man himself, and that “the integral development of the human person through work does not impede but rather promotes the greater productivity and efficiency of work itself”[600]. In fact, the world of work is discovering more and more that the value of “human capital” is finding expression in the consciences of workers, in their willingness to create relationships, in their creativity, in their industriousness in promoting themselves, in their ability consciously to face new situations, to work together and to pursue common objectives. These are strictly personal qualities that belong to the subject of work more than to the objective, technical, or operational aspects of work itself. All of this entails a new perspective in the relationship between labour and capital. We can affirm that, contrary to what happened in the former organization of labour in which the subject would end up being less important than the object, than the mechanical process, in our day the subjective dimension of work tends to be more decisive and more important than the objective dimension.

278. 무엇보다도 우리 시대의 놀라운 변화와 관련하여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고려할 때, 우리는 인간이 쓸 수 있는 주요 자원결정적 요인은 인간 자신임을 잊지 않아야 하며, “노동을 통한 인간의 전체적 발전은, [……] 노동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기여한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사실, 노동계는 인적 자본의 가치가 노동자들의 인식과 관계 형성 의지, 창의성,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근면성, 새로운 상황에 의식적으로 직면하여 협력하고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능력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을 점점 더 깨달아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노동의 객관적, 전문적 또는 운영적인 측면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노동의 주체에 속하는 엄밀히 개인적인 자질들이다. 이 모든 것은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노동의 주체가 객체보다, 기계적 과정보다 덜 중요하게 여겨졌던 이전의 노동 구조 상황과는 반대로, 우리 시대에는 노동의 주관적 차원이 객관적 차원보다 더욱 결정적이고 중요하게 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279. The relationship between labour and capital often shows traits of antagonism that take on new forms with the changing of social and economic contexts. In the past, the origin of the conflict between capital and labour was found above all “in the fact that the workers put their powers at the disposal of the entrepreneurs, and these, following the principle of maximum profit, tried to establish the lowest possible wages for the work done by the employees”.[601] In our present day, this conflict shows aspects that are new and perhaps more disquieting: scientific and technological progress and the globalization of markets, of themselves a source of development and progress, expose workers to the risk of being exploited by the mechanisms of the economy and by the unrestrained quest for productivity.[602]

279. 노동과 자본의 관계는 흔히 적대적 특징을 보이며, 이는 사회적 경제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형태를 띤다. 과거에, 자본과 노동의 대립 원인은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힘을 기업주들의 자의에 맡긴 반면, 기업주들은 최대 이윤 추구의 원리에 따라 고용인들의 노동에 대해 가능한 한 최저 임금을 책정하려고 하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오늘날, 이러한 대립은 새롭고 더욱 불안한 측면을 보인다. 그 자체로 발전과 진보의 원천인 과학기술의 발전과 시장의 세계화는 노동자들을 경제 구조와 무절제한 생산성 추구에 착취당할 위험으로 내몬다.

 

280. One must not fall into the error of thinking that the process of overcoming the dependence of work on material is of itself capable of overcoming alienation in the workplace or the alienation of labour. The reference here is not only to the many pockets of non-work, concealed work, child labour, underpaid work, exploitation of workers all of which still persist today but also to new, much more subtle forms of exploitation of new sources of work, to over-working, to work-as-career that often takes on more importance than other human and necessary aspects, to excessive demands of work that makes family life unstable and sometimes impossible, to a modular structure of work that entails the risk of serious repercussions on the unitary perception of one's own existence and the stability of family relationships. If people are alienated when means and ends are inverted, elements of alienation can also be found in the new contexts of work that is immaterial, light, qualitative more than quantitative, “either through increased sharing in a genuinely supportive community or through increased isolation in a maze of relationships marked by destructive competitiveness and estrangement”.[603]

280. 노동이 물질에 의존하는 것을 극복하는 과정 자체가 일터에서 소외되거나 노동에서 소외되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여러 형태의 비노동(non-work), 비밀 노동, 어린이 노동, 저임금 노동, 노동자 착취뿐만 아니라, 새로운 노동 자원에 대한 새롭고 더욱 미묘한 형태의 착취, 과로, 흔히 다른 필요한 인간적 측면들보다 더 큰 중요성을 띠는 직업 중심의 노동, 가정생활을 불안정하게 하거나 때로는 불가능하게 하는 과도한 노동의 요구, 자신의 삶에 대한 획일적 인식과 가족 관계의 안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위험이 따르는 규격화된 노동 구조까지도 포함한다. 수단과 목적이 전도될 때 인간은 소외되며, 또한 진정한 공동체의 연대 참여가 증가하거나 또는 치열한 경쟁과 상호 배타성의 관계가 증가함으로써 비물질적이고 가벼우며 양적이기보다는 질적인 새로운 노동 환경 안에서도 소외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c. Work, the right to participate

. 노동과 참여권

281. The relationship between labour and capital also finds expression when workers participate in ownership, management and profits. This is an all-too-often overlooked requirement and it should be given greater consideration. “On the basis of his work each person is fully entitled to consider himself a part-owner of the great workbench where he is working with everyone else. A way towards that goal could be found by associating labour with the ownership of capital, as far as possible, and by producing a wide range of intermediate bodies with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purposes. These would be bodies enjoying real autonomy with regard to public authorities, pursuing their specific aims in honest collaboration with each other and in subordination to the demands of the common good. These would be living communities both in form and in substance, as members of each body would be looked upon and treated as persons and encouraged to take an active part in the life of the body”.[604] The new ways that work is organized, where knowledge is of greater account than the mere ownership of the means of production, concretely shows that work, because of its subjective character, entails the right to participate. This awareness must be firmly in place in order to evaluate the proper place of work in the process of production and to find ways of participation that are in line with the subjectivity of work in the distinctive circumstances of different concrete situations.[605]

281. 노동과 자본의 관계는 또한 노동자들이 소유권과 경영, 이익에 참여할 때 드러난다. 이러한 요구는 흔히 간과되기 때문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다. “각자는 자신의 노동을 근거로 다른 모든 사람과 함께 노동하는 커다란 일터에서 자신도 공동 소유자라고 온전히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할 수 있는 한 노동을 자본의 소유에 연관시키는 일이며, 가능한 한 경제, 사회, 문화적인 목적을 지닌 광범위한 중간 집단들을 형성시키는 일이다. 이러한 중간 집단들은 공권력에 대해서 진정한 자율성을 누려야 하고, 상호간의 진정한 협력과 공동선의 요구에 따라 그들 고유의 목적을 추구해야 한다. 또한 이 집단들은 각기 집단의 구성원들이 인격체로서 대우받고, 그 집단의 활동에 적극 참여하도록 고무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명실상부한 살아 있는 공동체들이 되어야 한다.”

생산 수단에 대한 단순한 소유권보다 지식이 더욱 중요시되는 새로운 노동 조직 방식들은, 노동이 그 주관적 특성 때문에 참여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생산 과정에서 노동의 적절한 위치를 평가하고 서로 다른 환경의 여러 구체적인 상황에서 노동의 주관성에 부합하는 참여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이러한 인식이 확실히 자리 잡아야 한다.

 

 

d. The relationship between labour and private property

. 노동과 사유재산의 관계

 

282. The Church's social Magisterium sees an express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labour and capital also in the institution of private property, in the right to and the use of private property. The right to private property is subordinated to the principle of the 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and must not constitute a reason for impeding the work or development of others. Property, which is acquired in the first place through work, must be placed at the service of work. This is particularly true regarding the possession of the means of production, but the same principle also concerns the goods proper to the world of finance, technology, knowledge, and personnel.

생산 수단은 노동을 거슬러 소유될 수 없고 한갓 소유를 위한 소유가 될 수는 없다.”노동과 사회적 부의 보편적 발전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것들의 억제에서, 착취에서, 투기에서, 그리고 노동 영역의 연대 단절에서 오는 이득을 얻기 위하여, 생산 수단의 소유 재산이 사용되지 않거나 다른 이의 노동을 방해하는 데 쓰이게 되면 부당한 것이 된다.

 

The means of production “cannot be possessed against labour, they cannot even be possessed for possession's sake”.[606] It becomes illegitimate to possess them when property “is not utilized or when it serves to impede the work of others, in an effort to gain a profit which is not the result of the overall expansion of work and the wealth of society, but rather is the result of curbing them or of illicit exploitation, speculation or the breaking of solidarity among working people”.[607]

282. 교회의 사회 교도권은 노동과 자본의 관계는 사유재산제, 사유재산권, 사유재산의 사용을 통해서도 드러난다고 본다. 사유재산권은 재화의 보편적 목적의 원칙에 종속되며 다른 사람들의 노동이나 발전을 저해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재산은 주로 노동을 통하여 획득되며 노동을 위하여 쓰여야 한다. 이는 특히 생산 수단의 소유와 관련해서 그러하지만, 금융이나 기술, 지식, 인력 분야의 고유 자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283. Private and public property, as well as the various mechanisms of the economic system, must be oriented to an economy of service to mankind, so that they contribute to putting into effect the principle of the 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The issue of ownership and use of new technologies and knowledge which in our day constitute a particular form of property that is no less important than ownership of land or capital [608] becomes significant in this perspective. These resources, like all goods, have a universal destination; they too must be placed in a context of legal norms and social rules that guarantee that they will be used according to the criteria of justice, equity and respect of human rights. The new discoveries and technologies, thanks to their enormous potential, can make a decisive contribution to the promotion of social progress; but if they remain concentrated in the wealthier countries or in the hands of a small number of powerful groups, they risk becoming sources of unemployment and increasing the gap between developed and underdeveloped areas.

283. 경제 체제의 다양한 장치들과 마찬가지로 사유재산과 공공재산은 재화의 보편 목적의 원칙을 이행하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인류에게 봉사하는 경제를 지향하여야 한다. 우리 시대에 토지나 자본의 소유권 못지않게 중요한 자산 형태를 구성하는 새로운 기술과 지식에 대한 소유권과 이용은 이러한 관점에서 중요하다. 이러한 자원들은 다른 모든 재화와 마찬가지로 보편적 목적을 지닌다. 이 자원들은 또한 정의와 공평, 인권 존중의 기준에 따라 쓰일 것을 보장하는 법규범과 사회 규칙의 배경 안에 놓여야 한다. 새로운 발견과 기술들은 그 거대한 잠재력으로 사회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지만, 부유한 국가들이나 소수의 권력 집단의 손에 집중된다면 실업과 선진 지역과 저개발 지역의 격차를 벌이는 원인이 될 것이다.

 

e. Rest from work

. 휴식

 

284. Rest from work is a right.[609] As God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the work which he had done” (Gen 2:2), so too men and women, created in his image, are to enjoy sufficient rest and free time that will allow them to tend to their family, cultural, social and religious life.[610] The institution of the Lord's Day contributes to this.[611] On Sundays and other Holy Days of Obligation, believers must refrain from “engaging in work or activities that hinder the worship owed to God, the joy proper to the Lord's Day, the performance of the works of mercy, and the appropriate relaxation of mind and body”.[612] Family needs and service of great importance to society constitute legitimate excuses from the obligation of Sunday rest, but these must not create habits that are prejudicial to religion, family life or health.

284. 노동 중간에 휴식을 하는 것은 하나의 권리이다. 하느님께서 엿샛날까지 하시던 일을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신”(창세 2,2) 것처럼,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도 충분한 휴식과 여가를 누림으로써 가정, 문화, 사회, 종교 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의 날이 제정된 것도 이를 위해서이다. 주일과 다른 의무축일에 신자들은 하느님께 드려야 할 예배, 주님의 날에 맛보는 고유한 기쁨, 자선의 실천, 정신과 육체의 적당한 휴식 등을 방해하는 일이나 활동을 삼가야 한다.” 가정의 요구나 사회에 대한 매우 중요한 봉사가 주일 휴식의 의무를 합당하게 면제할 수는 있지만, 그러한 것들이 종교나 가정생활, 건강에 해가 되는 습관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

 

285. Sunday is a day that should be made holy by charitable activity, devoting time to family and relatives, as well as to the sick, the infirm and the elderly. One must not forget the “brethren who have the same needs and the same rights, yet cannot rest from work because of poverty and misery”.[613] Moreover, Sunday is an appropriate time for the reflection, silence, study and meditation that foster the growth of the interior Christian life. Believers should distinguish themselves on this day too by their moderation, avoiding the excesses and certainly the violence that mass entertainment sometimes occasions.[614] The Lord's Day should always be lived as a day of liberation that allows us to take part in “the festal gathering and the assembly of the firstborn who are enrolled in heaven” (cf. Heb 12:22-23), anticipating thus the celebration of the definitive Passover in the glory of heaven.[615]

285. 주일은 자선 활동을 하고 가족과 친지들, 병자와 노약자들에게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거룩한 날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같은 필요와 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난과 고생 때문에 쉴 수 없는 형제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주일은 성찰과 침묵, 학습과 묵상을 통하여 그리스도인 생활의 내적 성장을 도모하기에 적절한 시간이다. 신자들은 집단 여가 활동에서 때때로 발생하는 폭식이나 폭음, 폭력을 피하면서 절제로써 남다른 모범을 보여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날을 언제나 해방의 날로 지냄으로써, “잔치와 또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교회”(히브 12,22-23 참조)에 참석하며 천상 영광 안에 거행될 결정적 과월절을 미리 맛본다.

 

286. Public authorities have the duty to ensure that, for reasons of economic productivity, citizens are not denied time for rest and divine worship. Employers have an analogous obligation regarding their employees.[616] Christians, in respect of religious freedom and of the common good of all, should seek to have Sundays and the Church's Holy Days recognized as legal holidays. “They have to give everyone a public example of prayer, respect and joy, and defend their traditions as a precious contribution to the spiritual life of society”.[617] “Every Christian should avoid making unnecessary demands on others that would hinder them from observing the Lord's Day”.[618]

286. 공공권위는 경제적 생산성을 이유로 시민들에게서 휴식과 하느님 예배를 위한 시간을 빼앗지 않도록 보장할 의무가 있다. 고용주들도 피고용인들에 대해서 같은 의무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교 자유와 모든 사람의 공동선을 존중하면서, 주일과 교회의 축일들이 법정 공휴일로 정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기도하고 존경하며 기뻐하는 모범을 모든 사람에게 공적으로 드러내 보여야 하며, 인간 사회의 영적 생활에 값진 기여를 하는 그들의 전통을 수호해야 한다.”각 그리스도인은 주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일을 쓸데없이 남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IV. THE RIGHT TO WORK

IV. 노동의 권리

 

a. Work is necessary

. 노동의 필요성

 

287. Work is a fundamental right and a good for mankind,[619] a useful good, worthy of man because it is an appropriate way for him to give expression to and enhance his human dignity. The Church teaches the value of work not only because it is always something that belongs to the person but also because of its nature as something necessary.[620] Work is needed to form and maintain a family,[621] to have a right to property,[622] to contribute to the common good of the human family.[623] In considering the moral implications that the question of work has for social life, the Church cannot fail to indicate unemployment as a “real social disaster”,[624] above all with regard to the younger generations.

287. 노동은 인간의 기본권이고 선이며, 인간에게 합당한 유용한 선이다. 노동은 인간이 인간 존엄을 표현하고 증진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노동의 가치를 가르치는 것은 노동이 언제나 인간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본질상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은 가정을 이루고 유지하기 위해서, 재산권을 갖기 위해서, 인류 가족의 공동선에 이바지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노동 문제가 사회생활에 미치는 도덕적 영향을 고려할 때, 교회는 실업이 무엇보다도 젊은 세대에게는 실제로 사회의 재앙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88. Work is a good belonging to all people and must be made available to all who are capable of engaging in it. “Full employment” therefore remains a mandatory objective for every economic system oriented towards justice and the common good. A society in which the right to work is thwarted or systematically denied, and in which economic policies do not allow workers to reach satisfactory levels of employment, “cannot be justified from an ethical point of view, nor can that society attain social peace”.[625] An important role and, consequently, a particular and grave responsibility in this area falls to “indirect employers”,[626] that is, those subjects persons or institutions of various types in a position to direct, at the national or international level, policies concerning labour and the economy.

288. 노동은 모든 사람에게 속한 선이며 노동에 참여할 능력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완전 고용은 정의와 공동선을 지향하는 모든 경제 체제에서 의무적인 목표이다. 노동권이 방해받거나 제도적으로 부인되는 사회, 노동자들에게 만족스러운 수준의 고용을 보장하지 못하는 경제 정책을 가지고 있는 사회는 윤리에 합당하다고 인정할 수 없으며 사회적 평화를 달성할 수도 없다.” 이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 따라서 특별하고 막중한 책임이 간접 고용주에게, 다시 말해 국가나 국제적 차원에서 노동 정책이나 경제 정책들을 지시하는 위치에 있는 주체들 - 개인이나 다양한 유형의 기관들 - 에게 돌아간다.

 

289. The planning capacity of a society oriented towards the common good and looking to the future is measured also and above all on the basis of the employment prospects that it is able to offer. The high level of unemployment, the presence of obsolete educational systems and of persistent difficulties in gaining access to professional formation and the job market represent, especially for many young people, a huge obstacle on the road to human and professional fulfilment. In fact, those who are unemployed or underemployed suffer the profound negative consequences that such a situation creates in a personality and they run the risk of being marginalized within society, of becoming victims of social exclusion.[627] In general, this is the drama that strikes not only young people, but also women, less specialized workers, the persons with disabilities, immigrants, ex-convicts, the illiterate, all those who face greater difficulties in the attempt to find their place in the world of employment.

289. 공동선을 지향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사회의 계획 능력은 무엇보다도 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고용 전망을 근거로 측정되어야 한다. 높은 실업률, 낡은 교육 제도, 직업 교육과 고용 시장의 높은 벽은 특히 많은 젊은이들이 인간적 직업적 성취에 이르는 길에 큰 방해가 된다. 실제로, 실업자나 비정규취업자는 그러한 상황 때문에 인격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며 사회에서 소외되고 사회적 배척의 희생자가 될 위험에 놓인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여성, 비숙련 노동자, 장애인, 이민, 전과자, 무학자, 취업 시장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타격을 주는 비극이다.

 

290. Maintaining employment depends more and more on one's professional capabilities.[628] Instructional and educational systems must not neglect human or technological formation, which are necessary for gainfully fulfilling one's responsibilities. The ever more widespread necessity of changing jobs many times in one's lifetime makes it imperative that the educational system encourage people to be open to on-going updating and re-training. Young people should be taught to act upon their own initiative, to accept the responsibility of facing with adequate competencies the risks connected with a fluid economic context that is often unpredictable in the way it evolves.[629] Equally indispensable is the task of offering suitable courses of formation for adults seeking re-training and for the unemployed. More generally, people need concrete forms of support as they journey in the world of work, starting precisely with formational systems, so that it will be less difficult to cope with periods of change, uncertainty and instability.

290. 고용 유지는 점점 더 개인의 전문 능력에 의존하고 있다. 교육 제도는 개인의 책임을 수행하면서 수입을 얻는 데에 필요한 인간적 기술적 교육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 어느 때보다 현대에 들어서는, 인생에서 직업을 여러 번 바꿀 필요성이 커졌으므로, 교육 제도는 사람들에게 평생교육과 재교육에 적극 참여하도록 격려하여야 한다. 젊은이들은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법과 흔히 발전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유동적인 경제 상황과 관련한 위험에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대처할 책임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재교육을 원하는 성인들과 실업자들을 위한 적절한 양성 과정을 제공할 의무도 마찬가지로 필수적이다. 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직업 세계를 헤쳐 나갈 때, 변화와 불확실, 불안정의 시기들에 대처하여 어려움을 덜 수 있도록 교육 체계를 비롯하여 구체적인 형태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

 

b. The role of the State and civil society in promoting the right to work

. 노동권 증진을 위한 국가와 시민 사회의 역할

 

291. Employment problems challenge the responsibility of the State, whose duty it is to promote active employment policies, that is, policies that will encourage the creation of employment opportunities within the national territory, providing the production sector with incentives to this end. The duty of the State does not consist so much in directly guaranteeing the right to work of every citizen, making the whole of economic life very rigid and restricting individual free initiative, as much as in the duty to “sustain business activities by creating conditions which will ensure job opportunities, by stimulating those activities where they are lacking or by supporting them in moments of crisis”.[630]

291. 고용 문제는 적극적인 고용 정책을 증진할 의무가 있는 국가의 책임을 요구한다. 적극적인 고용 정책이란, 영토 안에서 고용 기회의 창출을 촉진하면서, 생산 부문에 생산성 향상을 위한 동기를 부여하는 정책을 말한다. 국가의 의무는 경제생활 전반을 규제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제한하면서 모든 국민의 노동권을 직접 보장하는 데에 있기보다는, “기업 활동이 부족하면 자극을 주고, 많은 어려움으로 위협에 놓이면 지원을 해주며, 고용 기회들을 제공할 조건들을 만들어줌으로써 기업 활동들을 지원하는 데에 있다.

 

292. Given the quickly developing global dimensions of economic-financial relationships and of the labour market, there is a need to promote an effective international cooperation among States by means of treaties, agreements and common plans of action that safeguard the right to work, even in the most critical phases of the economic cycle, at the national and international levels. It is necessary to be aware of the fact that human work is a right upon which the promotion of social justice and civil peace directly depend. Important tasks in this regard fall to international organizations and to labour unions. Joining forces in the most suitable ways, they must strive first of all to create “an ever more tightly knit fabric of juridical norms that protect the work of men, women and youth, ensuring its proper remuneration”.[631]

292. 경제 금융 관계와 노동 시장이 급속하게 세계적 차원으로 발전해가는 것을 감안할 때, 국가들 사이에 효과적인 국제 협력을 증진할 필요가 있다. 이는 경기가 가장 불안한 시기에도 국가적 국제적 차원에서 노동권을 보장하는 조약이나 협약, 공동 행동 계획들을 마련함으로써 가능하다. 인간의 노동은 하나의 권리이며 거기에 사회 정의와 평화 증진이 직접적으로 달려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 한다. 국제기구들과 노동조합은 이에 대한 중요한 임무가 있다. 이들은 최선의 방식으로 힘을 모아 무엇보다도 적절한 보수를 보장하면서 남자와 여자, 젊은이들의 노동을 보호하는 그 어느 때보다 탄탄한 법규범 구조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293. To promote the right to work it is important today, as in the days of Rerum Novarum, that there be “an open process by which society organize[s] itself”.[632] Meaningful testimonies and examples of self-organization can be found in the numerous initiatives, business and social, characterized by forms of participation, cooperation and self-management that manifest the joining of energies in solidarity. These are offered to the market as a multifaceted sector of work activity whose mark of distinction is the special attention given to the relational components of the goods produced and of the services rendered in many areas: instruction, health care, basic social services and culture. The initiatives of this so-called “third sector” represent an ever more important opportunity for the development of labour and the economy.

293. 노동권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태가 나온 시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사회가 자율적으로 조직되는 열린 과정이 있어야 한다. 자율적 조직의 중요한 증거와 사례는 기업과 사회의 수많은 자발적인 활동에서 발견되는데, 이러한 활동들은 연대성 안에서 역량이 집결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참여와 협력, 자기 관리를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증거와 사례는 다양한 면모를 지닌 하나의 노동 활동 부문인 시장에 제공된다. 시장의 두드러진 특징은 교육, 보건, 기본적인 사회 복지,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생산된 상품과 공급된 용역의 상관 요소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러한 이른바 3부문의 활동은 노동과 경제 발전을 위한 중요한 기회가 된다.

 

c. The family and the right to work

. 가정과 노동의 권리

 

294. Work is “a foundation for the formation of family life, which is a natural right and something that man is called to”.[633] It ensures a means of subsistence and serves as a guarantee for raising children.[634] Family and work, so closely interdependent in the experience of the vast majority of people, deserve finally to be considered in a more realistic light, with an attention that seeks to understand them together, without the limits of a strictly private conception of the family or a strictly economic view of work. In this regard, it is necessary that businesses, professional organizations, labour unions and the State promote policies that, from an employment point of view, do not penalize but rather support the family nucleus. In fact, family life and work mutually affect one another in different ways. Travelling great distances to the workplace, working two jobs, physical and psychological fatigue all reduce the time devoted to the family.[635] Situations of unemployment have material and spiritual repercussions on families, just as tensions and family crises have negative influences on attitudes and productivity in the area of work.

294. 노동은 인간의 천부적인 권리이며 소명이기도 한 가정생활을 이루는 기본이다. 노동은 생계의 수단이 되며, 자녀 양육을 보장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듯, 가정과 노동은 매우 밀접하게 상호 의존하며, 가정을 엄격히 사적인 개념에 국한시키거나 노동을 엄격히 경제적인 관점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이 둘을 함께 이해하려는 관심을 기울이면서 더욱 실제적인 관점에서 고려할 가치가 있다. 이런 면에서, 기업과 전문가 단체, 노동조합과 국가는 고용의 관점에서 가정을 곤경에 빠뜨리기보다는 지원하는 정책들을 증진하여야 한다. 실제로, 가정생활과 노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영향을 미친다. 먼 직장까지의 출퇴근, 부업, 몸과 마음의 피로는 모두 가정에 쏟을 시간을 빼앗아간다. 긴장과 가정의 위기가 노동 분야에서의 태도와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업 상황은 가정에 물질적 정신적 영향을 미친다.

 

 

d. Women and the right to work

. 여성과 노동의 권리

 

295. The feminine genius is needed in all expressions in the life of society, therefore the presence of women in the workplace must also be guaranteed. The first indispensable step in this direction is the concrete possibility of access to professional formation. The recognition and defence of women's rights in the context of work generally depend on the organization of work, which must take into account the dignity and vocation of women, whose “true advancement ... requires that labour should be structured in such a way that women do not have to pay for their advancement by abandoning what is specific to them”.[636] This issue is the measure of the quality of society and its effective defence of women's right to work.

295. 여성의 특수한 재능은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요구되며, 따라서 여성의 직장 생활도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첫 걸음은 직업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가능성이다. 노동 영역에서 여성의 권리 인정과 보호는 일반적으로 여성의 존엄과 소명을 고려하여야 하는 노동 구조에 달려 있다. 여성의 참다운 지위 향상이 이루어지려면 그 지위 향상을 위해 여성 본래의 것을 포기하지 않도록 노동이 조직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사회의 질을 측정하고, 여성의 노동권이 실질적으로 보호받고 있는지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The persistence of many forms of discrimination offensive to the dignity and vocation of women in the area of work is due to a long series of conditioning that penalizes women, who have seen “their prerogatives misrepresented” and themselves “relegated to the margins of society and even reduced to servitude”.[637] These difficulties, unfortunately, have not been overcome, as is demonstrated wherever there are situations that demoralize women, making them objects of a very real exploitation. An urgent need to recognize effectively the rights of women in the workplace is seen especially under the aspects of pay, insurance and social security.[638]

노동 분야에 여성의 존엄과 소명을 침해하는 갖가지 형태의 차별이 존속하는 것은 여성에게 불리한 일련의 오랜 제약 때문이다. 여성의 요구는 왜곡되기도 하였고, 여성들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노예처럼 격하되기도 하였다.” 여성을 실질적인 착취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여성들의 사기를 꺾는 상황들이 존재하는 곳이면 어디서든 드러나듯이, 불행히도 이러한 장애는 극복되지 못하였다. 직장에서 여성들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인정할 시급한 필요성은 특히 임금과 보험, 사회보장의 측면에서 드러난다.

 

e. Child labour

. 어린이 노동

 

296. Child labour, in its intolerable forms, constitutes a kind of violence that is less obvious than others but it is not for this reason any less terrible.[639] This is a violence that, beyond all political, economic and legal implications, remains essentially a moral problem. Pope Leo XIII issued the warning: “in regard to children, great care should be taken not to place them in workshops and factories until their bodies and minds are sufficiently developed. For, just as very rough weather destroys the buds of spring, so does too early an experience of life's hard toil blight the young promise of a child's faculties, and render any true education impossible”.[640] After more than a hundred years, the blight of child labour has not yet been overcome.

296. 용납할 수 없는 형태의 어린이 노동은 다른 폭력에 비해 뚜렷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어느 것 못지않게 심각한 일종의 폭력이다. 이러한 폭력은 모든 정치적 경제적 법률적인 의미를 넘어서 본질적으로 도덕적인 문제이다. 교황 레오 13세는 이렇게 경고하였다. “연소자들이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충분한 힘을 기르기까지는 공장에서 일을 하지 못하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사춘기에 발산하는 힘은 한창 자라나는 풀과 같아서 조속히 발육시켜 버리면 그 힘이 빨리 소모되며 나아가 연소자에 대한 교육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어린이 노동의 병폐는 아직 극복되지 못하였다.

 

Even with the knowledge that, at least for now, in certain countries the contribution made by child labour to family income and the national economy is indispensable, and that in any event certain forms of part-time work can prove beneficial for children themselves, the Church's social doctrine condemns the increase in “the exploitation of children in the workplace in conditions of veritable slavery”.[641] This exploitation represents a serious violation of human dignity, with which every person, “no matter how small or how seemingly unimportant in utilitarian terms”,[642] is endowed.

적어도 현재로서는 어린이 노동이 가정 수입과 국가 경제에 절대 필요한 기여를 하는 몇몇 나라들이 있고, 특정 형태의 시간제 노동은 어린이들에게도 유익한 것으로 증명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교회의 사회 교리는 일터에서 어린이들을 노예처럼 착취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음을 단죄한다. 이러한 착취는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아무리 미소하거나 피상적으로 하찮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는 인간 존엄에 대한 심각한 침해이다.

 

f. Immigration and work

. 이민과 노동

 

297. Immigration can be a resource for development rather than an obstacle to it. In the modern world, where there are still grave inequalities between rich countries and poor countries, and where advances in communications quickly reduce distances, the immigration of people looking for a better life is on the increase. These people come from less privileged areas of the earth and their arrival in developed countries is often perceived as a threat to the high levels of well-being achieved thanks to decades of economic growth. In most cases, however, immigrants fill a labour need which would otherwise remain unfilled in sectors and territories where the local workforce is insufficient or unwilling to engage in the work in question.

297. 이민은 발전에 장애가 되기보다는 발전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에 심각한 불균형이 존재하며 커뮤니케이션의 발전으로 거리가 급격히 가까워진 현대 세계에서, 더 나은 삶을 찾는 이민이 점점 늘고 있다. 이민은 지구상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역 출신들이며, 이들의 선진국 유입은 흔히 수십 년 동안의 경제 성장으로 얻어진 질 높은 행복한 삶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민은 현지의 노동력이 부족하거나 현지인들이 기피하는 업종이나 영역에서 노동 수요를 채워줌으로써 일자리의 공백을 막아준다.

 

298. Institutions in host countries must keep careful watch to prevent the spread of the temptation to exploit foreign labourers, denying them the same rights enjoyed by nationals, rights that are to be guaranteed to all without discrimination. Regulating immigration according to criteria of equity and balance [643] is one of the indispensable conditions for ensuring that immigrants are integrated into society with the guarantees required by recognition of their human dignity. Immigrants are to be received as persons and helped, together with their families, to become a part of societal life.[644] In this context, the right of reuniting families should be respected and promoted.[645] At the same time, conditions that foster increased work opportunities in people's place of origin are to be promoted as much as possible.[646]

298. 이민을 받아들이는 나라들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보장되어야 할 권리들을 자국인과 동등하게 누리도록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외국인 노동자들을 착취하려는 생각이 확산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신중하게 감시하여야 한다. 평등과 공평의 기준에 따른 이민 규제는 이민이 그들의 인간 존엄을 인정받으면서 사회에 통합될 수 있게 보장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조건이다. 이민들은 인간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며 그들의 가족과 함께 사회생활의 일원이 될 수 있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민 가정들이 재결합할 권리가 존중되고 증진되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가능한 한 본국에서 일할 기회를 증대시키기 위한 조건들을 촉진하여야 한다.

 

g. The world of agriculture and the right to work

. 농업계와 노동의 권리

 

299. Agricultural labour merits special attention, given the important social, cultural and economic role that it continues to play in the economic systems of many countries, and also considering the many problems that need to be met in the context of an ever more globalized economy as well as its growing significance in safeguarding the natural environment. “Radical and urgent changes are therefore needed in order to restore to agriculture and to rural people their just value as the basis for a healthy economy, within the social community's development as a whole”.[647]

299. 여러 나라의 경제 체계에서 농업이 담당해 왔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역할의 중요성, 점점 더 세계화되어가는 경제 상황에서 해결되어야 할 여러 가지 문제점들, 그리고 자연 환경 보호의 중요성 증대를 고려할 때, 농업 노동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일 가치가 있다. “농업 - 그리고 농촌 사람들 - 의 가치를 사회 공동체 전체의 발전 안에서 건전한 경제의 근간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근본적이고도 긴급한 변혁이 요구된다.”

 

The profound and radical changes underway at the social and cultural levels also in agriculture and in the more expansive rural world urgently call for a thorough examination of the meaning of agricultural work in its many different dimensions. This is a challenge of great importance that must be met with agricultural and environmental policies that are capable of overcoming a concept of welfare continuing from the past and of developing new perspectives for modern agriculture that is in a position to play a significant role in social and economic life.

농업과 더욱 광범위하게는 농촌 사회에서 진행 중인 사회적 문화적 차원의 깊고 근본적인 변화들은 여러 다양한 차원에서 농업의 의미를 전면 검토할 것을 시급히 요청하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로서 과거로부터 이어오는 복지의 개념을 극복하고 사회생활과 경제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위치에 있는 현대 농업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키울 수 있는 농업 환경 정책들로 대처해야 한다.

 

300. In some countries a redistribution of land as part of sound policies of agrarian reform is indispensable, in order to overcome the obstacles that an unproductive system of latifundium condemned by the Church's social doctrine [648] places on the path of genuine economic development. “Developing countries can effectively counter the present process under which land ownership is being concentrated in a few hands if they face up to certain situations that constitute real structural problems, for example legislative deficiencies and delays regarding both recognition of land titles and in relation to the credit market, a lack of concern over agricultural research and training, and neglect of social services and infrastructures in rural areas”.[649] Agrarian reform therefore becomes a moral obligation more than a political necessity, since the failure to enact such reform is a hindrance in these countries to the benefits arising from the opening of markets and, generally, from the abundant growth opportunities offered by the current process of globalization.[650]

300. 일부 국가에서는, 교회의 사회교리가 단죄하는 비생산적인 대지주제가 참된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건전한 농지 개혁 정책의 일환인 토지 재분배가 불가피하다. 개발도상국들이 구조적인 문제의 핵심을 이루는 일부 상황들, 예를 들면 토지 재산 소유권의 인정과 신용 시장과 관련된 법률적 결함과 지연, 그리고 농업 연구와 교육, 농촌 지역의 서비스와 기간 시설에 대한 관심 부족 등에 정면으로 맞선다면, 토지 소유권이 소수인의 손에 집중되는 현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농지 개혁은 정치적 요구라기보다는 도덕적 의무이다. 그러한 개혁을 시행하지 않는 것은 이들 국가들이 시장 개방과 더욱 일반적으로는 현재의 세계화 과정이 제공하는 풍부한 성장 기회들에서 비롯되는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V. THE RIGHTS OF WORKERS

V. 노동자의 권리

 

a. The dignity of workers and the respect for their rights

. 노동자의 존엄과 권리 존중

 

301. The rights of workers, like all other rights, are based on the nature of the human person and on his transcendent dignity. The Church's social Magisterium has seen fit to list some of these rights, in the hope that they will be recognized in juridical systems: the right to a just wage; [651] the right to rest; [652] the right “to a working environment and to manufacturing processes which are not harmful to the workers' physical health or to their moral integrity”; [653] the right that one's personality in the workplace should be safeguarded “without suffering any affront to one's conscience or personal dignity”; [654] the right to appropriate subsidies that are necessary for the subsistence of unemployed workers and their families; [655] the right to a pension and to insurance for old age, sickness, and in case of work-related accidents; [656] the right to social security connected with maternity; [657] the right to assemble and form associations.[658] These rights are often infringed, as is confirmed by the sad fact of workers who are underpaid and without protection or adequate representation. It often happens that work conditions for men, women and children, especially in developing countries, are so inhumane that they are an offence to their dignity and compromise their health.

301. 노동자의 권리는 다른 모든 권리와 마찬가지로 인간 본성과 탁월한 인간 존엄에 바탕을 둔다. 교회의 사회 교도권은 이 권리들이 법체계 안에서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중 몇 가지 권리를 열거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아 왔다. 그것은 곧 정당한 임금에 대한 권리, 휴식의 권리,노동자들의 신체적인 건강이나 정신적인 건강에 손상을 끼치지 않는 노동 환경과 작업 과정에 대한 권리,”자신의 양심과 존엄성이 모독을 받지 않고 일터에서 자신의 인격을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 실직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생계에 필요한 적절한 보조금에 대한 권리, 연금에 대한 권리와 노후, 질병, 직업 관련 사고에 대비한 보험에 대한 권리, 출산과 관련된 사회 보장에 대한 권리, 집회 결사의 권리 등이 있다. 보호받고 적절히 대변되지 못하는 저소득 노동자들의 슬픈 현실이 확인해 주듯이, 이러한 권리들은 흔히 침해되고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남자와 여자, 어린이들의 노동 조건이 매우 비인간적이어서 그들의 존엄과 건강을 해치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

 

b. The right to fair remuneration and income distribution

. 정당한 보수와 수입의 분배에 대한 권리

 

302. Remuneration is the most important means for achieving justice in work relationships.[659] The “just wage is the legitimate fruit of work”.[660]

 

They commit grave injustice who refuse to pay a just wage or who do not give it in due time and in proportion to the work done (cf. Lv 19:13; Dt 24:14-15; Jas 5:4). A salary is the instrument that permits the labourer to gain access to the goods of the earth. “Remuneration for labour is to be such that man may be furnished the means to cultivate worthily his own material, social, cultural, and spiritual life and that of his dependents, in view of the function and productiveness of each one, the conditions of the factory or workshop, and the common good”.[661] The simple agreement between employee and employer with regard to the amount of pay to be received is not sufficient for the agreed-upon salary to qualify as a “just wage”, because a just wage “must not be below the level of subsistence”[662] of the worker: natural justice precedes and is above the freedom of the contract.

302. 보수는 노동관계에서 정의를 달성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적정한 임금은 노동의 정당한 결실이다.” 적정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사람들, 한 일에 비례한 임금을 제때에 지불하지 않는 사람들은 심각한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다(레위 19,13; 신명 24,14-15; 야고 5,4 참조). 임금은 노동자가 지상의 재화를 얻을 수 있는 도구이다. “노동의 보수는 각자의 임무와 생산성은 물론 노동 조건과 공동선을 고려하여 본인과 그 가족의 물질적 사회적 문화적 정신적 생활을 품위 있게 영위할 수 있도록 제공되어야 한다.” 임금 수준에 대한 피고용인과 고용주의 단순한 계약만으로는 합의된 임금을 적정 임금이라고 보기에 부족하다. 적정 임금은 노동자가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 미흡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본질적 정의가 계약의 자유에 우선하며 우위에 있다.

 

303. The economic well-being of a country is not measured exclusively by the quantity of goods it produces but also by taking into account the manner in which they are produced and the level of equity in the distribution of income, which should allow everyone access to what is necessary for their personal development and perfection. An equitable distribution of income is to be sought on the basis of criteria not merely of commutative justice but also of social justice that is, considering, beyond the objective value of the work rendered, the human dignity of the subjects who perform it. Authentic economic well-being is pursued also by means of suitable social policies for the redistribution of income which, taking general conditions into account, look at merit as well as at the need of each citizen.

303. 한 국가의 경제적 행복은 생산되는 재화의 양으로만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 방식과 소득 분배의 공평성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발전과 완성에 필요한 것을 얻게 해 주어야 할 공평한 소득 분배는, 교환 정의뿐 아니라 노동의 객관적 가치를 뛰어넘어 노동 주체의 인간 존엄까지 고려하는 사회 정의의 기준에 따라 추구되어야 한다. 참된 경제적 행복은 또한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하면서 국민 개개인의 공로와 요구를 살피는 소득 재분배를 위한 적절한 사회 정책들로 추구된다.

 

 

c. The right to strike

. 파업권

 

304. The Church's social doctrine recognizes the legitimacy of striking “when it cannot be avoided, or at least when it is necessary to obtain a proportionate benefit”,[663] when every other method for the resolution of disputes has been ineffectual.[664] Striking, one of the most difficult victories won by labour union associations, may be defined as the collective and concerted refusal on the part of workers to continue rendering their services, for the purpose of obtaining by means of such pressure exerted on their employers, the State or on public opinion either better working conditions or an improvement in their social status. Striking “as a kind of ultimatum” [665] must always be a peaceful method for making demands and fighting for one's rights; it becomes “morally unacceptable when accompanied by violence, or when objectives are included that are not directly linked to working conditions or are contrary to the common good”.[666]

304. 교회의 사회 교리는 파업이 적정한 이익을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어쩌면 필수적인 수단으로 나타날 때,” 분쟁 해결을 위한 다른 모든 방법이 아무 효과가 없을 때에는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한다. 노동조합이 이룬 가장 힘든 승리 가운데 하나인 파업은, 노동자들이 고용주나 국가, 여론에 압력을 가함으로써 더 나은 노동 조건이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얻기 위하여 집단으로 결속하여 용역을 제공하기를 계속해서 거부하는 것이다. “일종의 최후 수단인 파업은 언제나 자신의 요구를 제시하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평화로운 수단이 되어야 한다. 파업이 폭력을 수반하거나, 근로 조건과 직접 관련되지 않는 목적 또는 공동선에 어긋나는 목적을 내걸었다면, 그것은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게 된다.”

 

 

VI. SOLIDARITY AMONG WORKERS

VI. 노동자들의 연대성

 

a. The importance of unions

. 노동조합의 중요성

 

305. The Magisterium recognizes the fundamental role played by labour unions, whose existence is connected with the right to form associations or unions to defend the vital interests of workers employed in the various professions. Unions “grew up from the struggle of the workers workers in general but especially the industrial workers to protect their just rights vis-à-vis the entrepreneurs and the owners of the means of production”.[667] Such organizations, while pursuing their specific purpose with regard to the common good, are a positive influence for social order and solidarity, and are therefore an indispensable element of social life. The recognition of workers' rights has always been a difficult problem to resolve because this recognition takes place within complex historical and institutional processes, and still today it remains incomplete. This makes the practice of authentic solidarity among workers more fitting and necessary than ever.

305. 교도권은 다양한 직종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결사나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와 관련하여 존재하는 노동조합의 근본적인 역할을 인정한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 일반 노동자들 그러나 특히 산업 노동자들이 - 기업가들이나 생산 수단을 소유한 사람들과 맞서서 그들의 정당한 권리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과정에서 성장해 왔다.” 그러한 조직들은 공동선과 관련된 구체적인 목표를 추구하면서 사회 질서와 연대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므로 사회생활의 필요 불가결한 요소이다. 노동자들의 권리 인정은 복잡한 역사적 제도적 변천 과정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언제나 풀기 어려운 문제였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완전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 간의 참된 연대의 실천은 그 어느 때보다 적절하고 필요하다.

 

306. The Church's social doctrine teaches that relations within the world of work must be marked by cooperation: hatred and attempts to eliminate the other are completely unacceptable. This is also the case because in every social system both “labour” and “capital” represent indispensable components of the process of production. In light of this understanding, the Church's social doctrine “does not hold that unions are no more than a reflection of the ‘class' structure of society and that they are a mouthpiece for a class struggle which inevitably governs social life”.[668] Properly speaking, unions are promoters of the struggle for social justice, for the rights of workers in their particular professions: “This struggle should be seen as a normal endeavour ‘for' the just good ... not a struggle ‘against' others”.[669] Being first of all instruments of solidarity and justice, unions may not misuse the tools of contention; because of what they are called to do, they must overcome the temptation of believing that all workers should be union-members, they must be capable of self-regulation and be able to evaluate the consequences that their decisions will have on the common good.[670]

306. 교회의 사회 교리는 노동계 내부의 관계는 협력을 특징으로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증오나 상대를 제거하려는 시도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 모든 사회 체제에서 노동자본은 생산 과정의 필수불가결한 구성 요소이기 때문에 그러하기도 하다. 이러한 이해에 비추어, 교회의 사회 교리는 노동조합들이 단지 사회의 계급구조를 반영하는 것이라거나 불가피하게 사회생활을 지배하는 계급투쟁을 대변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노동조합은 특정 직종에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증진하고,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을 촉진한다. 어떻든 이 투쟁은 …… 다른 사람들에게 대항하는투쟁이어서는 안 되며 …… 정의로운 선을 위한정당한 노력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연대와 정의의 도구인 노동조합은 투쟁의 도구를 남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존재 이유 때문에, 노동조합은 모든 노동자가 조합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며, 자율성을 갖추고, 조합의 결정이 공동선에 미칠 영향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307. Beyond their function of defending and vindicating, unions have the duty of acting as representatives working for “the proper arrangement of economic life” and of educating the social consciences of workers so that they will feel that they have an active role, according to their proper capacities and aptitudes, in the whole task of economic and social development and in the attainment of the universal common good.[671] Unions and other forms of labour associations are to work in cooperation with other social entities and are to take an interest in the management of public matters. Union organizations have the duty to exercise influence in the political arena, making it duly sensitive to labour problems and helping it to work so that workers' rights are respected. Unions do not, however, have the character of “political parties” struggling for power, and they should not be forced to submit to the decisions of political parties nor be too closely linked to them. “In such a situation they easily lose contact with their specific role, which is to secure the just rights of workers within the framework of the common good of the whole of society; instead they become an instrument used for other purposes”.[672]

307. 노동조합은 권리를 수호하고 주장하는 역할 외에도, “경제생활의 올바른 질서를 위하여 일하는 노동자들의 대표로서 노동자들에게 사회의식을 길러줄 의무가 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고유한 능력과 적성에 따라 경제와 사회를 발전시키고 보편적 공동선을 달성하는 일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노동조합과 다른 형태의 노동단체들은 다른 사회단체들과 협력하여 일해야 하며 공공 문제 처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노동조합 기구들은 정치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정치가 노동 문제에 마땅한 관심을 기울이고 노동자 권리 존중의 노력을 펼치도록 도울 의무가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권력을 위하여 투쟁하는 정당의 성격을 지니지는 않으며, 정당의 결정에 예속되거나 정당과 지나치게 밀접하게 유착되어서도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동조합이 그 고유한 역할, 곧 사회 전체의 공동선이라는 틀 안에서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역할을 쉽게 상실하고, 그 대신에 다른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하나의 도구가 된다.”

 

 

b. New forms of solidarity

. 새로운 형태의 연대

 

308. The modern socio-economic context, characterized by ever more rapid processes of economic and financial globalization, prompts unions to engage in renewal. Today, unions are called to act in new ways,[673] widening the scope of their activity of solidarity so that protection is afforded not only to the traditional categories of workers, but also to workers with non- standard or limited-time contracts, employees whose jobs are threatened by business mergers that occur with ever increasing frequency, even at the international level; to those who do not have a job, to immigrants, seasonal workers and those who, because they have not had professional updating, have been dismissed from the labour market and cannot be re- admitted without proper re-training.

308. 경제와 금융의 매우 급격한 세계화 과정으로 특징지어지는 현대의 사회 경제적 상황은 노동조합이 쇄신을 꾀하도록 촉구한다. 오늘날, 노동조합은 새로운 방식으로 활동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연대 활동의 범위를 확장함으로써 전통적 의미의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또는 계약직 노동자들, 국제적 차원에서도 점점 더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기업 합병으로 일자리에 위협을 받는 이들, 일자리가 없는 이들, 이민들, 계절노동자들, 시대에 발맞춘 직업 교육을 받지 못해 노동 시장에서 쫓겨나 적절한 재교육 없이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이들까지 보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Given the changes that have taken place in the world of work, solidarity can be recovered, and perhaps with a firmer foundation in respect to the past, if the effort is made to rediscover the subjective value of work: “there must be continued study of the subject of work and of the subject's living conditions”. For this reason, “there is a need for ever new movements of solidarity of the workers and with the workers”.[674]

노동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생각할 때, 노동의 주관적 가치를 재발견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진다면 연대는 회복될 수 있으며 과거에 비해 더욱 견고한 토대를 쌓게 될 수도 있다. 노동의 주체와 그 주체의 생활 조건에 대한 연구가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의,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항상 새로운 결속 운동이 필요하다.”

 

309. Pursuing “new forms of solidarity”,[675] workers' associations must focus their efforts on the acceptance of greater responsibilities not only in relation to the traditional mechanisms for redistribution but also in relation to the production of wealth and the creation of social, political and cultural conditions which will permit all who are able and willing to work to exercise their right to work in full respect for their dignity as workers. The gradual obsolescence of organizational models based on salaried workers in big business makes it fitting to update the norms and systems of social security that have traditionally protected workers and guaranteed their fundamental rights.

309. 새로운 형태의 연대를 추구하는 노동자 단체는, 전통적인 재분배 구조뿐만 아니라 부의 생산, 그리고 노동할 수 있고 그럴 의지가 있는 모든 사람이 노동자로서 자신의 존엄을 온전히 존중받으며 노동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해 줄 사회 정치 문화적 환경의 조성과 관련해서도, 더욱 큰 책임을 받아들이는 데에 노력을 집중하여야 한다. 대기업 임금 노동자들을 토대로 한 조직 모형이 점차 사라짐에 따라 전통적으로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근본 권리를 보장해 온 사회보장의 제도와 규범들을 쇄신하는 것이 적절하게 되었다.

 

 

VII. THE “NEW THINGS” OF THE WORLD OF WORK

VII. 노동계의 새로운 변화

 

a. An epoch-making phase of transition

. 획기적 변화의 단계

 

310. The phenomenon of globalization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causes of the current change in the organization of work. This phenomenon brings about new forms of production where plants are located away from where strategies are decided and far from the markets where the goods are consumed. There are two primary factors driving this phenomenon: the extraordinary speed of communication no longer limited by space or time, and the relative ease with which merchandise and people are transported from one part of the world to another. This entails a fundamental consequence for processes of production, as property is ever further removed and often indifferent to the social effects of the decisions made. On the other hand, if it is true that globalization is neither good nor bad in itself, but depends on how it is used,[676] it must be affirmed that a globalization of safeguards, minimum essential rights and equity is necessary.

310. 세계화 현상은 현재의 노동 구조에 변화를 일으킨 가장 중요한 원인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 현상은 생산 형태에 변화를 가져와, 전략을 수립하는 곳이나 상품이 소비되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생산 공장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야기한 두 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다. 정보 전달이 놀라울 정도로 빨라져 더 이상 시공의 제약을 받지 않게 된 점과 상품과 사람들의 해외 이동이 비교적 쉬워졌다는 점이다. 이는 재산에 관한 결정이 사회적 결과를 거의 고려하지 않거나 그러한 결과에 흔히 무관심함에 따라, 생산 과정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른 한편, 세계화는 그 자체로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그것이 어떻게 이용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보호책과 최소한의 기본권, 공평의 세계화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단언하여야 한다.

 

311. One of the most significant characteristics of the new organization of work is the physical fragmentation of the cycle of production, promoted in order to obtain greater efficiency and greater profits. In this perspective, the traditional space-time coordinates within which the cycle of production formerly took place undergoes an unprecedented transformation that determines a change in the structure of work itself. All of this has significant consequences for the life of individuals and communities subjected to radical changes both on the level of material conditions and of culture and values. On the worldwide and local levels, this phenomenon presently involves millions of people, independently of their profession, social standing or cultural preparation. The reorganization of time, its standardization and the changes currently underway in the use of space comparable in extent to the first Industrial Revolution insofar as they involve every sector of production, on every continent, independent of their level of development are therefore to be considered a crucial challenge, also at the level of ethics and culture, in the area of defining a renewed system for the defence of work.

311. 새로운 노동 구조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효율성과 수익의 증대를 위하여 촉진되는 생산 주기의 물리적 분화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전에 생산 주기의 바탕이 된 전통적인 시공간 좌표는 유례없는 변화를 겪으며 노동 구조 자체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물질적인 조건이나 문화와 가치 차원에서 모두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개인과 공동체의 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전 세계와 지역 차원에서 이러한 현상은 직업과 사회적 지위, 문화적 소양에 상관없이 현재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므로 시간의 재구성과 표준화, 공간 사용에서 현재 일어나는 변화들은, 발전 수준에 상관없이 모든 대륙에서 모든 생산 분야를 포함하는 만큼 최초의 산업혁명에 비견할 만하므로, 새로운 노동 보호 체계를 결정하는 분야에서 윤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매우 중대한 하나의 도전으로 여겨져야 한다.

 

312. The globalization of the economy, with the liberalization of markets, the stiffening of competition, the increase of specialized businesses in providing goods and services, requires greater flexibility in the labour market and in organizing and managing production processes. In making an evaluation in this delicate area, it seems appropriate to lend greater moral, cultural and planning attention to giving direction to social and political activity concerning issues connected with the identity and content of new work, in a market and an economy that are themselves new. In fact, the changes in the labour market are often an effect of the change to which work has been subjected, and not one of its causes.

312. 시장의 자유화, 경쟁의 심화, 재화와 용역을 제공하는 전문 기업들의 증가를 가져온 경제의 세계화는 더욱 탄력적인 노동 시장과 생산 과정의 조직과 운영을 요구한다. 이 미묘한 분야에서 평가를 내릴 때에는, 새로운 시장과 경제 안에서 새로운 노동의 본질과 내용에 관련된 문제들에 관한 사회적 정치적 활동에 방향을 제시하는 일에 더욱 큰 도덕적 문화적 계획적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실제로, 노동 시장의 변화는 흔히 변화의 원인이 아니라 노동에 미친 변화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313. Work, above all within the economic systems of the more developed countries, is going through a phase that marks the passage from an industrial-type economy to an economy essentially built on services and technological innovations. In other words, what is happening is that services and activities with a predominant informational content show a much greater rapidity of growth than traditional primary and secondary sectors. This entails far-ranging consequences for organizing the production and exchange of goods, defining job requirements and providing effective social protection.

313. 특히 더욱 발전한 국가들의 경제 체제에서, 노동은 산업형 경제에서 본질적으로 서비스와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하는 경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 다시 말해, 뛰어난 정보량을 지닌 서비스와 활동들이 전통적인 1,2차 산업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재화를 생산하고 교환하며, 업무 요건을 규정하고, 사회를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데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Thanks to technological innovations, the world of work is being enriched with new professions while others are disappearing. In fact, in the present phase of transition there is a continuous movement of workers from the industrial sector to that of services. As the economic and social models connected with big factories and with a homogenous working class lose ground, the employment prospects in the third sector improve. In particular, there is an increase in job activity in the area of personal services, in part-time, temporary and “non-traditional” employment, that is, work that does not fit into a category that would classify the job-holder either as an employee or as self-employed.

기술 혁신 덕분에, 노동계에서는 새로운 직업들이 생겨나는 한편 사라져가는 직업들도 있다. 실제로, 현재의 과도기에서는 공업 부문에서 서비스 부문으로 옮겨가는 노동자들의 이동이 계속되고 있다. 대규모 공장들이나 동종 노동 계층과 연계된 경제 사회 모델은 설 곳을 잃으면서, 3차 산업의 고용 전망은 개선되고 있다. 특히, 개인 서비스 분야와 비전통적인시간제 임시직의 업무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그 종사자가 피고용인으로도, 자영업자로도 분류되지 않는 범주의 노동이다.

 

314. The transition currently underway signals the move from dependent work with no prescribed time limit, understood as a stable job, to a series of jobs characterized by many kinds of work activities, from a world of a unified, definite and recognized concept of work to a universe of jobs where there is great variety, fluidity and a wealth of promises. There are also many questions of concern, especially with regard to the growing uncertainty of work, the persistent presence of structural unemployment and the inadequacy of current systems of social security. The demands of competition, technological innovation and the complexities of financial fluxes must be brought into harmony with the defence of workers and their rights.

314.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정년이 보장된 안정된 직장으로 여겨지는 고용 노동에서 다양한 유형의 노동 활동의 특성을 가진 일련의 직업들로, , 단일하고 최종적이며 공인된 개념의 노동 세계에서, 지극히 다양하고 유동적이며 가능성이 풍부한 여러 직업의 세계로 옮겨가고 있음을 뜻한다. 또한 고용 불안 증대, 구조적 실업의 지속, 현재의 미진한 사회 보장 제도와 관련된 여러 가지 우려되는 문제들도 있다. 경쟁과 기술 혁신에 대한 요구와 복잡한 금융의 흐름은 노동자들과 그들의 권리 옹호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This uncertainty and instability involve not only the labour conditions of workers in more developed countries but affect also, and above all, the less advanced economic realities in developing countries and countries with economies in transition. This latter category, besides the complicated problems associated with changing models of the economy and of production, must deal daily with the difficult adjustment required by the current phenomenon of globalization. The situation is particularly dramatic for the world of work, affected by vast and radical cultural and structural changes in contexts that are often without legislative support and lack programmes of professional training and social assistance.

이러한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은 선진국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개발도상국과 과도기 경제에 있는 국가들의 미성숙한 경제 현실에도 영향을 미친다. 후자의 경우, 변화하는 경제 모형과 생산 모형에 관련된 복잡한 문제들 말고도, 현재의 세계화 현상이 요구하는 어려운 적응 문제에 날마다 대처하여야 한다. 특히 법적 지원도 없고 직업 훈련이나 사회 보조 계획이 미비한 상황에서 광범위하고 급속한 문화적 구조적 변화의 영향을 받는 노동계의 상황은 특히 심각하다.

 

315. The decentralization of production, which assigns to smaller companies several tasks previously undertaken by larger production interests, gives vitality and new energy to the area of small and medium-sized businesses. In this way, alongside traditional artisans there emerge new businesses characterized by small production interests at work in modern production sectors or in decentralized activities of larger companies. Many activities that yesterday required the hiring of employees are today carried out in new ways that encourage independent labour and are therefore marked by higher risk and greater responsibility.

315. 이전에는 대기업들에서 맡던 여러 생산 작업들을 소규모 업체들에 나누어주는 생산의 탈집중화는 중소기업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이렇게 하여, 전통적인 장인들과 나란히, 현대적 생산 부문이나 대기업의 탈집중화된 활동 안에서 일하는 소규모 생산 업체의 특징을 지니는 새로운 기업들이 등장한다. 노동자를 고용하여 행한 이전의 여러 활동들이 오늘날에는 자영업자에 의해 더 높은 위험과 책임이 따르는 새로운 방식으로 수행된다.

 

Work in small and medium-sized businesses, the work of artisans and independent work can represent an occasion to make the actual work experience more human, both in terms of the possibility of establishing positive personal relationships in smaller-sized communities and in terms of the opportunities for greater initiative and industriousness. In these sectors, however, there are more than just a few cases of unjust treatment, of poorly paid and, above all, uncertain work.

중소기업의 노동, 장인 노동과 자영업은 실제의 노동 체험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소규모 공동체 안에서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고, 진취성과 근면성을 더욱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면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부문들에는 부당한 대우와 박한 임금,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안정한 일자리 문제가 노동의 사례가 드물지 않다.

 

316. In developing countries, moreover, there has been an expansion in recent years of “informal” and “hidden” economic activities. This represents a promising sign of economic growth and development, but it raises many ethical and legal problems. In fact, the significant increase in job opportunities in the context of such activities is owed to the lack of specialization in a large segment of the local work force and to disorderly growth in formal economic sectors. Large numbers of people are thus forced to work under seriously distressing conditions and in situations that lack the rules necessary for safeguarding workers' dignity. Levels of productivity, income and living standards are extremely low and often inadequate for guaranteeing to workers and their families the minimum level of subsistence.

316. 또한 개발도상국에서는 근래에 들어, ‘드러나지 않는’ ‘비공식경제 활동들이 확대되어 왔다. 이는 경제 성장과 발전에 대한 희망적인 징표이지만, 여러 가지 윤리적 법적 문제들을 제기한다. 실제로, 그러한 활동들이 이루어지는 환경에서 고용 기회가 상당히 증가하는 것은 지역 노동력의 다수가 전문성이 부족하고 공식 경제 부문이 체계 없이 성장한 데에 기인한다. 이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매우 비참한 노동 조건에서, 노동자의 존엄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규범들이 미비한 가운데 일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생산과 임금 수준, 생활수준이 매우 낮으며 노동자와 그 가족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도 보장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b. Social doctrine and the “new things”

. 사회교리와 새로운 변화

 

317. Given these impressive “new things” in the world of work, the Church's social doctrine recommends first of all to avoid the error of insisting that the current changes take place in a deterministic manner. The decisive factor and “referee” of this complex phase of change is once more the human person, who must remain the true protagonist of his work. He can and must take on in a creative and responsible fashion the present innovations and re-organizations, so that they lead to the growth of the person, the family, society and the entire human family.[677] Enlightenment for all can be found in the appeal of the subjective dimension of work, which according to the teaching of the Church's social doctrine must be given due priority, because human work “proceeds directly from persons created in the image of God and called to prolong the work of creation by subduing the earth”.[678]

317. 노동계에서 이렇듯 놀라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남에 따라, 교회의 사회교리는 우선 현재의 변화들이 결정론적인 방식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오류를 피하도록 권고한다. 이러한 복잡한 변화 단계의 결정 요인과 심판역시 인간이다. 인간이 언제나 노동의 참된 주역이 되어야 한다. 인간은 개인과 가정, 사회와 전체 인류 가족의 성장을 이끌기 위해서, 현재의 혁신과 재편을 창의적이고 책임 있는 방식으로 해 나갈 수 있으며, 또 그래야 한다. 노동의 주관적 차원에 입각하여 모든 사람에게 주는 가르침을 발견할 수 있다. 교회의 사회교리는, 인간의 노동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어 땅을 지배함으로써 창조 사업을 계속하라는 요청을 받은 사람들이 직접 하는 것이기 때문에, 노동의 주관적 차원을 마땅히 우선순위에 놓여야놓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318. Mechanistic and economistic interpretations of the activity of production, however prevalent and influential they may be, have been outdated by scientific analysis of the problems connected with work. More today than in the past, these conceptions are seen to be completely inadequate for interpreting the facts, which everyday demonstrate more and more the meaning of work as a free and creative activity of the human person. Concrete findings should also provide the impetus for the immediate dismissal of theoretical perspectives and restrictive, insufficient operative criteria concerning the present dynamics. These prove to be intrinsically incapable of identifying the broad spectrum of concrete and urgent human needs that go well beyond merely economic categories. The Church is well aware and has always taught that men and women, unlike every other living being, have certain needs that are not restricted merely to “having”,[679] because their nature and vocation are inextricably linked with the Transcendent One. The human person faces the adventure of the transformation of things through work in order to satisfy requirements and needs that are first of all material, but he does so in obedience to an impulse that pushes him ever further beyond the results obtained, to the quest of what will correspond most intimately to his vital inner needs.

318. 생산 활동에 대한 기계론적 경제학적 해석들은, 아무리 우세하고 영향력 있다 하더라도, 노동 관련 문제들의 과학적 분석들에 뒤처져 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 오늘날에는 더욱, 노동이 인간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활동임을 날마다 입증하는 사실들을 이해하는 데에 이러한 개념들은 매우 부적절해 보인다. 구체적인 결과들을 촉매로 삼아, 현재의 노동 역학 관계에 관한 이론적인 관점들과 제한적이고 불충분한 운영 기준을 즉각 폐기하여야 한다. 이러한 관점들과 기준들은 단순한 경제적 범주를 초월하는 구체적이고 긴급한 광범위한 인간의 요구들을 밝히기에는 본질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 증명된다. 교회는, 다른 모든 생물과 달리 인간은 그 고유한 본성과 소명이 초월자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단지 소유에 한정되지 않은 일정한 요구들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언제나 그렇게 가르쳐 왔다. 인간은 우선 물질적인 조건과 요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노동을 통하여 사물을 변화시키는 모험을 감행하지만, 이는 기존의 성과를 훨씬 더 뛰어넘도록 자극하는 추진력에 따르는 것이고, 자신의 내적 생명의 요구에 가장 깊이 부합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319. The historical forms in which human work is expressed change, but not its permanent requirements, which are summed up in the respect of the inalienable human rights of workers. Faced with the risk of denying these rights, new forms of solidarity must be envisioned and brought about, taking into account the interdependence that unites workers among themselves. The more substantial the changes are, the more decisive the commitment of intellect and will to defend the dignity of work needs to be, in order to strengthen, at different levels, the institutions involved. This perspective makes it possible to orient the current transformations for the best, in the direction so necessary of complementarities between the local and the global economic dimensions, the “old” and the “new” economy, technological innovation and the need to safeguard human work, as well as economic growth and development compatible with the environment.

319. 인간의 노동이 표현되는 역사적 형태는 변화하지만, 노동자들의 양도할 수 없는 인권에 대한 존중으로 요약되는 노동의 조건은 영구불변이다. 이러한 권리가 부인될 위험에 직면하여, 노동자들을 결속시키는 상호의존을 고려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연대를 계획하고 이루어야 한다. 그 변화가 실질적인 것일수록, 다양한 차원에서 관련 제도들을 강화할 수 있도록 노동의 존엄을 수호하기 위한 지혜와 의지를 더욱 확고하게 모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현재의 변화가 지역 경제와 세계 경제 차원, ‘경제와 경제, 기술 혁신과 인간 노동을 보호할 필요성, 경제 성장과 환경의 조화를 이루는 발전 등이 서로 보완을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 이는 매우 절실하다. - 최선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이끌 수 있다.

 

320. Men and women of science and culture are called to make their particular contribution to solving the vast and complex problems connected with work, which in some areas take on dramatic proportions. This contribution is very important for coming up with the proper solutions. This is a responsibility that requires that they identify the occasions and risks present in the changes taking place, and above all that they suggest lines of action for guiding change in a way that will be most beneficial to the development of the entire human family. To these men and women falls the important task of reading and interpreting the social phenomena with wisdom and with love of truth, leaving behind concerns imposed by special or personal interests. Their contribution, precisely because it is of a theoretical nature, becomes an essential point of reference for the concrete action prescribed by economic policies.[680]

320. 학자들과 문화계 인사들은 노동과 관련된 광범하고 복잡하며, 몇몇 분야에서는 비극적인 양상을 띠기까지 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그들 나름의 고유한 기여를 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그들의 이러한 기여는 적절한 해답을 찾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변화의 기회와 그에 따른 위험이 무엇인지 규명하며, 무엇보다도 전체 인류 가족의 발전에 가장 유익한 방식으로 변화를 이끌 행동 지침을 제시할 책임을 요구받는다. 그들은 특수하고 개인적인 이해에 따른 관심사들은 제쳐두고, 지혜와 진리에 대한 사랑으로 사회 현상을 읽고 해석할 중요한 임무를 맡는다. 그들의 기여는 이론적 성격의 것이기 때문에, 경제 정책이 규정하는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중요한 준거점이 된다.

 

321. The present scenarios of profound transformation of human work call even more urgently for an authentically global development in solidarity that is capable of involving every region of the world including those less advantaged. Regarding these less advantaged regions, the start of a process of wide-ranging development in solidarity not only represents a concrete possibility for creating new job opportunities, but is also seen as a genuine condition for the survival of entire peoples. “Solidarity too must become globalized”.[681]

321. 인간 노동의 심오한 변화에 대한 현재의 전망을 살펴볼 때, 발전이 덜 된 지역을 포함한 세계 모든 지역을 아우를 수 있는 연대를 통한 참된 세계적 발전이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발전이 덜 된 이런 지역들과 관련하여, 연대를 통한 광범한 발전 과정의 시작은 새로운 고용 기회를 창출할 구체적인 가능성일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의 생존을 위한 진정한 조건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연대 또한 세계화되어야 한다.”

 

Economic and social imbalances in the world of work must be addressed by restoring a just hierarchy of values and placing the human dignity of workers before all else. “The new realities that are having such a powerful impact on the productive process, such as the globalization of finance, economics, trade and labour, must never violate the dignity and centrality of the human person, nor the freedom and democracy of peoples. If solidarity, participation and the possibility to govern these radical changes are not the solution, they are certainly the necessary ethical guarantee so that individuals and peoples do not become tools but the protagonists of their future. All this can be achieved and, since it is possible, it becomes a duty”.[682]

노동계의 경제적 사회적 불균형을 대처하려면, 올바른 가치체계를 다시 세우고 노동자들의 인간 존엄을 무엇보다 우선하여야 한다. 생산 과정에 참으로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실재들, 곧 금융과 경제, 무역과 노동의 세계화는 인간의 존엄과 인간 중심성을 결코 침해해서는 안 되며, 민족들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해쳐서도 안 된다. 연대와 참여, 그리고 이러한 급격한 변화를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비록 해답은 아니라도, 그것들은 분명 개인과 민족들을 도구가 아닌 미래의 주역으로 만드는 데에 필요한 윤리적 보장이다. 이 모든 것은 이룰 수 있는 일들이며, 가능한 일인 만큼 하나의 의무이다.”

 

322. There is an ever greater need for a careful consideration of the new situation of work in the present-day context of globalization, in a perspective that values people's natural tendency to establish relationships. In this regard it must be affirmed that universality is a dimension of human beings, not of things. Technology may be the instrumental cause of globalization, but the universality of the human family is its ultimate cause. For this reason, work too has a universal dimension, insofar as it is based on the relational nature of human beings. Technology, especially electronics, has allowed the relational aspect of work to spread throughout the world, giving to globalization a particularly rapid rhythm. The ultimate foundation of this dynamism is the working person, who is always the subjective and never the objective element. Therefore, globalized work too originates in the anthropological foundation of the inherent relational dimension of work. The negative aspects of the globalization of work must not damage the possibility opening up for all people: that of giving expression to a humanism of work on a planetary scale, to solidarity in the world of work on this same level, so that working in similar contexts, spread throughout the world and interconnected, people will understand ever better their one, shared vocation.

322. 현재의 세계화의 맥락에서, 관계를 지향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경향을 존중하는 관점 안에서 노동의 새로운 상황을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한층 더 커졌다. 이와 관련하여, 보편성은 사물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차원임을 확인하여야 한다. 기술은 세계화의 수단이며 명분일지는 모르나, 세계화의 궁극적 목적은 인류 가족의 보편성이다. 그러므로 노동도 인간의 관계적 본성에 근거하고 있는 만큼, 보편적 차원을 지니고 있다. 기술, 특히 전자공학은 노동의 관계적 측면을 전 세계로 확대시키면서 세계화를 가속화시켰다. 이러한 역동성의 궁극적 토대는 노동하는 인간이며, 인간은 결코 객관적 요소가 될 수 없는 주관적 요소이다. 그러므로 세계화된 노동 또한 노동의 고유한 관계적 차원의 인간학적 토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노동의 세계화가 지니는 부정적인 측면들이 모든 사람에게 열린 가능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곧, 사람들이 전 세계적이고 서로 연결된 유사한 환경에서 일하면서 그들이 공통으로 지닌 하나의 소명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세계적인 차원에서 노동의 인도주의를 표현하고 이러한 차원에서 노동계의 연대를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영한편집 작업 : 오정화(도미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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