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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한비교 간추린 사회교리

 

 

제7장 (323~376항) - 경제 생활

조회 수 2484 추천 수 0 2016.05.23 12:40:42

 

CHAPTER SEVEN / 7

ECONOMIC LIFE / 경제생활

 

 

I. BIBLICAL ASPECTS

I. 성경적 측면I

 

a. Man, poverty and riches

. 인간, 가난과 부

 

323. In the Old Testament a twofold attitude towards economic goods and riches is found. On one hand, an attitude of appreciation sees the availability of material goods as necessary for life. Abundance not wealth or luxury is sometimes seen as a blessing from God. In Wisdom Literature, poverty is described as a negative consequence of idleness and of a lack of industriousness (cf. Prov 10:4), but also as a natural fact (cf. Prov 22:2). On the other hand, economic goods and riches are not in themselves condemned so much as their misuse. The prophetic tradition condemns fraud, usury, exploitation and gross injustice, especially when directed against the poor (cf. Is 58:3-11; Jer 7:4-7; Hos 4:1-2; Am 2:6-7; Mic 2:1-2). This tradition, however, although looking upon the poverty of the oppressed, the weak and the indigent as an evil, also sees in the condition of poverty a symbol of the human situation before God, from whom comes every good as a gift to be administered and shared.

323. 구약에서 우리는 재화와 부에 대한 이중의 태도를 발견한다. 한편으로, 감사의 태도는 물질 재화를 삶에 필요한 것으로 본다. 부나 사치가 아닌 풍요는 때때로 하느님께서 주신 복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지혜서에서 가난은 게으름과 근면성 부족에서 오는 부정적인 결과로 묘사되지만(잠언 10,4 참조), 타고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잠언 22,2 참조). 다른 한편, 물질 재화와 경제적 부는 그 자체로 비난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못 사용했을 때 비난받는다. 예언서 전승은 특히 가난한 이들을 향한 사기와 고리대금업, 착취와 커다란 불의를 단죄한다(이사 58,3-11; 예레 7,4-7; 호세 4,1-2; 아모 2,6-7; 미카 2,1-2 참조). 그러나 이 전승은 억압받는 이들, 약한 이들, 궁핍한 이들의 가난을 악으로 보지만, 가난의 조건 안에서 하느님 앞에 놓인 인간 상황에 대한 상징을 발견하기도 한다. 모든 선은 하느님에게서 흘러나오는 하나의 선물로서 관리되고 공유된다.

 

324. Those who recognize their own poverty before God, regardless of their situation in life, receive particular attention from him: when the poor man seeks, the Lord answers; when he cries out, the Lord listens. The divine promises are addressed to the poor: they will be heirs to the Covenant between God and his people. God's saving intervention will come about through a new David (cf. Ezek 34:22-31), who like King David only more so will be defender of the poor and promoter of justice; he will establish a new covenant and will write a new law in the hearts of believers (cf. Jer 31:31-34).

324. 하느님 앞에 자신의 가난함을 깨닫는 사람들은, 어떠한 생활 상태에 있든, 하느님의 특별한 관심을 받는다. 가난한 사람들이 구할 때, 주님께서는 대답하신다. 그가 울부짖을 때, 주님께서 들어주신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그들은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의 계약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개입은 새로운 다윗을(에제 34,22-31 참조)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그는 다윗 왕처럼 가난한 이들의 수호자이며 정의의 증진자로서, 새로운 계약을 세우고 믿는 이들의 마음에 새로운 법을 새겨 줄 것이다(예레 31,31-34 참조).

 

When sought or accepted with a religious attitude, poverty opens one to recognizing and accepting the order of creation. In this perspective, the “rich man” is the one who places his trust in his possessions rather than in God, he is the man who makes himself strong by the works of his own hands and trusts only in his own strength. Poverty takes on the status of a moral value when it becomes an attitude of humble availability and openness to God, of trust in him. This attitude makes it possible for people to recognize the relativity of economic goods and to treat them as divine gifts to be administered and shared, because God is the first owner of all goods.

가난을 종교적 태도로 구하고 받아들일 때, 가난은 창조 질서를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부유한 사람은 하느님보다 자신의 소유에 신뢰를 두는 사람이며, 자기 손으로 한 일로 힘을 얻으며 자신의 힘에만 신뢰를 두는 사람이다. 겸손하게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고 마음을 열고 하느님을 신뢰하는 태도가 될 때, 가난은 도덕적 가치의 위치를 차지한다. 이러한 태도를 지닐 때 사람들은 경제적 재화의 상대성을 인식하고, 그것들을 하느님의 선물로 여기며 관리하고 공유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재화의 첫 번째 주인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325. Jesus takes up the entire Old Testament tradition even with regard to economic goods, wealth and poverty, and he gives them great clarity and fullness (cf. Mt 6:24, 13:22; Lk 6:20-24, 12:15-21; Rom 14:6-8; 1 Tim 4:4). Through the gift of his Spirit and the conversion of hearts, he comes to establish the “Kingdom of God”, so that a new manner of social life is made possible, in justice, brotherhood, solidarity and sharing. The Kingdom inaugurated by Christ perfects the original goodness of the created order and of human activity, which were compromised by sin. Freed from evil and being placed once more in communion with God, man is able to continue the work of Jesus, with the help of his Spirit. In this, man is called to render justice to the poor, releasing the oppressed, consoling the afflicted, actively seeking a new social order in which adequate solutions to material poverty are offered and in which the forces thwarting the attempts of the weakest to free themselves from conditions of misery and slavery are more effectively controlled. When this happens, the Kingdom of God is already present on this earth, although it is not of the earth. It is in this Kingdom that the promises of the Prophets find final fulfilment.

325. 예수님께서는 구약 전승 전체를 경제적 재화와 부, 가난과 관련하여 다루시며, 그러한 것들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시고 완성시키신다.(마태 6,24; 13,22; 루카 6,20-24; 12,15-21; 로마 14,6-8; 1디모 4,4 참조).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선물과 마음의 회개를 통하여, 정의와 형제애, 연대와 나눔 안에서 새로운 방식의 사회생활이 이루어질 수 있는 하느님 나라를 세우러 오신다. 그리스도께서 열어주신 나라는 죄로 타락한 원래의 선한 창조 질서와 인간 활동을 완성시켜 준다. 악에서 벗어나 하느님과 다시 한 번 친교를 이루게 된 인간은 성령의 도움으로 예수님의 일을 계속 해 나갈 수 있다. 그 안에서 인간은 가난한 이들에게 정의를 베풀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키며, 고통 받는 이들을 위로하고, 물질적 가난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가장 연약한 이들이 비참한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방해하는 세력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질서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도록 부름 받는다. 이럴 때,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 것이 아니라 해도 지상에 이미 존재하게 된다. 바로 이 나라 안에서 예언자들의 약속이 최종적으로 실현된다.

326. In the light of Revelation, economic activity is to be considered and undertaken as a grateful response to the vocation which God holds out for each person. Man is placed in the garden to till and keep it, making use of it within well specified limits (cf. Gen 2:16-17) with a commitment to perfecting it (cf. Gen 1:26-30, 2:15-16; Wis 9:2-3). Bearing witness to the grandeur and goodness of the Creator, he walks towards the fullness of freedom to which God calls him. Good administration of the gifts received, and of material goods also, is a work of justice towards oneself and towards others. What has been received should be used properly, preserved and increased, as suggested by the parable of the talents (cf. Mt 25:14-30; Lk 19:12-27).

326. 계시의 관점에서, 경제 활동은 하느님께서 각 인간에게 주시는 소명에 감사하며 응답하는 것이라 여기고 그렇게 수행하여야 한다. 인간은 동산에서, 정해진 한도 내에서 땅을 이용하면서(창세 2,16-17 참조) 갈고 지키며, 그 동산을 완전한 것이 되게 하려고 노력한다(창세 1,26-30; 2,15-16; 지혜 9,2-3 참조). 창조주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을 증언하면서 인간은 하느님께서 초대하시는 충만한 자유를 향하여 나아간다. 받은 선물과 물질 재화를 잘 관리하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향한 정의의 활동이다. 달란트의 비유에서처럼(마태 25,14-30; 루카 19,12-27 참조), 우리는 받은 것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간수하며 불려야 한다.

 

Economic activity and material progress must be placed at the service of man and society. If people dedicate themselves to these with the faith, hope and love of Christ's disciples, even the economy and progress can be transformed into places of salvation and sanctification. In these areas too it is possible to express a love and a solidarity that are more than human, and to contribute to the growth of a new humanity that anticipates the world to come.[683] Jesus sums up all of revelation in calling the believer to become rich before God (cf. Lk 12:21). The economy too is useful to this end, when its function as an instrument for the overall growth of man and society, of the human quality of life, is not betrayed.

경제 활동과 물질적 진보는 인간과 사회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지닌 믿음과 바람과 사랑으로 이러한 것들에 헌신한다면, 경제와 진보도 구원과 성화의 자리로 변할 수 있다. 이러한 영역에서도 인간적 차원을 뛰어넘는 사랑과 연대를 표현할 수 있으며 앞으로 올 세상을 앞당기는 새로운 인류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를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되도록 부르심으로써(루카 12,21 참조) 모든 계시를 요약하신다. 경제도 인간과 사회, 인간 삶의 질의 전반적인 성장을 위한 도구로서 그 기능을 저버리지 않을 때, 이러한 목적에 유용하다.

 

327. Faith in Jesus Christ makes it possible to have a correct understanding of social development, in the context of an integral and solidary humanism. In this regard, the contribution of theological reflection offered by the Church's social Magisterium is very useful: “Faith in Christ the Redeemer, while it illuminates from within the nature of development, also guides us in the task of collaboration. In the Letter of St. Paul to the Colossians, we read that Christ is ‘the firstborn of all creation,' and that ‘all things were created through him' and for him (Col 1:15-16). In fact, ‘all things hold together in him', since ‘in him all the fullness of God was pleased to dwell, and through him to reconcile to himself all things' (v. 20). A part of this divine plan, which begins from eternity in Christ, the perfect ‘image' of the Father, and which culminates in him, ‘the firstborn from the dead' (v. 15-18), in our own history, marked by our personal and collective effort to raise up the human condition and to overcome the obstacles which are continually arising along our way. It thus prepares us to share in the fullness which ‘dwells in the Lord' and which he communicates ‘to his body, which is the Church' (v. 18; cf. Eph 1:22-23). At the same time sin, which is always attempting to trap us and which jeopardizes our human achievements, is conquered and redeemed by the ‘reconciliation' accomplished by Christ (cf. Col 1:20)”.[684]

327.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은 통합적이고 연대적인 인도주의를 배경으로 사회 발전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와 관련하여, 교회의 사회교도권이 내 놓는 신학적 성찰은 매우 유용하다. “구원자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은 내면으로부터 발전의 본질을 설명해 주기도 하지만 협력의 과업에 있어서도 우리의 지침이 되어준다. 사도 바오로가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며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그리고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콜로1,15-16)라고 한다. 사실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하고있으니,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콜로 1,19-20) 하느님의 이 계획, 아버지의 완전한 모상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맏이’(콜로 1,18)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에 이르는 이 계획의 일부가 곧 우리의 역사이다. 인간 조건을 고양시키고자, 또 우리가 걷는 길에 부단히 솟아오르는 장애들을 극복하고자 하는 개인적 집단적 노력으로 점철된 역사이다. 이렇게 해서 역사는 우리를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는또 그분이 당신 몸인 교회에 전해 주시는(콜로 1,18; 에페 1,22-23 참조) 충만함에 참여하게 만든다. 동시에 죄는 언제나 우리를 덫으로 걸어 넘기려 하고 우리의 인간적 성취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화해에 의해서 정복되고 구제된다(골로 1,20 참조).”

 

b. Wealth exists to be shared

. 공유되기 위하여 존재하는 부

 

328. Goods, even when legitimately owned, always have a universal destination; any type of improper accumulation is immoral, because it openly contradicts the universal destination assigned to all goods by the Creator. Christian salvation is an integral liberation of man, which means being freed not only from need but also in respect to possessions. “For the love of money is the root of all evils; it is through this craving that some have wandered away from the faith” (1 Tim 6:10). The Fathers of the Church insist more on the need for the conversion and transformation of the consciences of believers than on the need to change the social and political structures of their day. They call on those who work in the economic sphere and who possess goods to consider themselves administrators of the goods that God has entrusted to them.

328. 합법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재화라도 언제나 보편적 목적을 지닌다. 모든 형태의 부정 축재는, 창조주께서 모든 재화에 부여하신 보편적 목적에 공공연히 위배되므로 부도덕하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완전한 인간 해방이며, 이는 결핍뿐 아니라 소유에서도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길을 잃고 신앙을 떠나서 결국 격심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도 있습니다”(1디모 6,10). 교회 교부들은 그 시대의 사회 정치 구조를 바꿀 필요성보다 신자들의 마음의 회개와 변화를 더욱 강조하며, 경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재화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하느님께서 맡기신 재화의 관리자로 인식하도록 촉구한다.

 

329. Riches fulfil their function of service to man when they are destined to produce benefits for others and for society.[685] “How could we ever do good to our neighbour,” asks St. Clement of Alexandria, “if none of us possessed anything?”.[686] In the perspective of St. John Chrysostom, riches belong to some people so that they can gain merit by sharing them with others.[687] Wealth is a good that comes from God and is to be used by its owner and made to circulate so that even the needy may enjoy it. Evil is seen in the immoderate attachment to riches and the desire to hoard. St. Basil the Great invites the wealthy to open the doors of their storehouses and he exhorts them: “A great torrent rushes, in thousands of channels, through the fertile land: thus, by a thousand different paths, make your riches reach the homes of the poor”.[688] Wealth, explains Saint Basil, is like water that issues forth from the fountain: the greater the frequency with which it is drawn, the purer it is, while it becomes foul if the fountain remains unused.[689] The rich man Saint Gregory the Great will later say is only an administrator of what he possesses; giving what is required to the needy is a task that is to be performed with humility because the goods do not belong to the one who distributes them. He who retains riches only for himself is not innocent; giving to those in need means paying a debt.[690]

329. 부는 타인과 사회에 유익하게 쓰일 때 인간에게 봉사하는 기능을 이행한다. 알렉산드리아의 성 클레멘스는, “우리 가운데 누구도 어떤 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웃에게 선한 일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부가 일부인들에게 속한 것은 그들이 부를 다른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공을 쌓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본다. 부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선으로, 그것을 소유한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지만 가난한 이들도 누릴 수 있도록 돌고 돌아야 한다. 부에 대한 무절제한 집착과 부를 쌓아두려는 욕구에서 악이 드러난다. 대 바실리오 성인은 부자들에게 창고의 문을 열라고 권고하며 이렇게 훈계한다. “커다란 급류가 비옥한 땅을 타고 수천 갈래로 흘러들듯이, 여러분의 부도 다양한 여러 길을 통해 가난한 이들의 집에 흘러들어가도록 하시오.” 바실리오 성인은, 부는 샘에서 솟는 물과 같아서, 샘에서 물을 자주 길을수록 물은 더욱 깨끗해지며 샘을 사용하지 않으면 물은 썩게 된다고 말한다. 훗날 대 그레고리오 성인은, 부자는 자신이 소유한 것의 관리자일 뿐이며, 재화는 그것을 나누어주는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므로 가난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은 겸손하게 수행해야 할 임무라고 말한다. 자신을 위해서만 부를 소유하는 이는 죄를 짓는 것이며,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빚을 갚는 것과 같다.

 

 

 

II. MORALITY AND THE ECONOMY

II. 도덕성과 경제

 

330. The Church's social doctrine insists on the moral connotations of the economy. Pope Pius XI, in a passage from the Encyclical Quadragesimo Anno, speak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economy and morality. “Even though economics and moral science employs each its own principles in its own sphere, it is, nevertheless, an error to say that the economic and moral orders are so distinct from and alien to each other that the former depends in no way on the latter. Certainly the laws of economics, as they are termed, being based on the very nature of material things and on the capacities of the human body and mind, determine the limits of what productive human effort cannot, and of what it can attain in the economic field and by what means. Yet it is reason itself that clearly shows, on the basis of the individual and social nature of things and of men, the purpose which God ordained for all economic life. But it is only the moral law which, just as it commands us to seek our supreme and last end in the whole scheme of our activity, so likewise commands us to seek directly in each kind of activity those purposes which we know that nature, or rather God the Author of nature, established for that kind of action, and in orderly relationship to subordinate such immediate purposes to our supreme and last end”.[691]

330. 교회의 사회 교리는 경제의 도덕적 의미를 강조한다. 교황 비오 11세는 회칙 사십주년의 한 단락에서 경제와 도덕성의 관계를 논하고 있다. “경제 활동과 도덕률은 그 고유의 영역에서 각기 자체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경제 질서와 도덕 질서가 서로 다르고 이질적인 것이어서 전혀 무관하다는 주장은 그릇된 것이다. 지상 사물의 본성과 인간의 몸과 마음의 속성에서 파생되는 이른바 경제 법칙이라는 것은 경제 문제에서 도달할 수 있는 목표와 도달할 수 없는 목표, 그리고 그때에 필요한 수단이 무엇인지 결정한다. 그러나 사물의 본성과 인간의 개인적 사회적 특성으로부터 무엇이 창조주 하느님께서 설정하신 전체 경제 질서의 목적과 대상인지를 추론하는 것은 이성 자체이다. 도덕적 법칙은 우리의 모든 행위에서 최고 최종 목적을 찾도록 명령하고, 우리의 구체적인 행동에서는 특수 목적을 일반 목적에 제대로 충족시키면서, 자연법 또는 대자연의 창조주께서 설정하신 그 목적을 똑바로 추구하라고 명령한다.”

 

331. The relation between morality and economics is necessary, indeed intrinsic: economic activity and moral behaviour are intimately joined one to the other. The necessary distinction between morality and the economy does not entail the separation of these two spheres but, on the contrary, an important reciprocity. Just as in the area of morality one must take the reasons and requirements of the economy into account, so too in the area of the economy one must be open to the demands of morality: “In the economic and social realms, too, the dignity and complete vocation of the human person and the welfare of society as a whole are to be respected and promoted. For man is the source, the centre, and the purpose of all economic and social life”.[692] Giving the proper and due weight to the interests that belong specifically to the economy does not mean rejecting as irrational all considerations of a meta-economic order. This is so because the purpose of the economy is not found in the economy itself, but rather in its being destined to humanity and society.[693] The economy, in fact, whether on a scientific or practical level, has not been entrusted with the purpose of fulfilling man or of bringing about proper human coexistence. Its task, rather, is partial: the production, distribution and consumption of material goods and services.

331. 도덕성과 경제의 관계는 필수적이며, 사실상 본질적이다. 경제 활동과 도덕 행위는 서로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도덕성과 경제의 구분이 필요하다고 해서 이 두 영역을 분리할 필요는 없으며, 반대로 이 두 영역은 중요한 상호 관계에 있다. 도덕성 영역에서 경제 논리와 요구들을 고려해야 하듯이, 경제 영역도 도덕성의 요구에 열려 있어야 한다. “경제 사회 생활에서도 인간의 존엄성과 그 온전한 소명, 사회 전체의 선익은 존중되고 증진되어야 한다. 인간이 모든 경제 사회 생활의 주체이며 중심이고 목적이기 때문이다.” 경제 영역 고유의 관심사들을 적절하고 마땅하게 강조한다고 해서 메타 경제(meta-economic) 질서의 모든 사항을 부조리한 것으로 거부한다는 뜻은 아니다. 경제의 목표는 경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와 사회를 위한 그 목적성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학문적으로든 실제적으로든, 경제가 부여받은 목적은 인간을 완성하거나 올바른 인간 공존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경제의 임무는 부분적인 것으로서, 물질 재화와 용역의 생산과 분배와 소비이다.

 

332. The moral dimension of the economy shows that economic efficiency and the promotion of human development in solidarity are not two separate or alternative aims but one indivisible goal. Morality, which is a necessary part of economic life, is neither opposed to it nor neutral: if it is inspired by justice and solidarity, it represents a factor of social efficiency within the economy itself. The production of goods is a duty to be undertaken in an efficient manner, otherwise resources are wasted. On the other hand, it would not be acceptable to achieve economic growth at the expense of human beings, entire populations or social groups, condemning them to indigence. The growth of wealth, seen in the availability of goods and services, and the moral demands of an equitable distribution of these must inspire man and society as a whole to practise the essential virtue of solidarity,[694] in order to combat, in a spirit of justice and charity, those “structures of sin” [695] where ever they may be found and which generate and perpetuate poverty, underdevelopment and degradation. These structures are built and strengthened by numerous concrete acts of human selfishness.

332. 경제의 도덕적 차원은 경제의 효율성과 연대를 통한 인간 발전 증진이 둘로 분리되거나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목적이 아니라, 서로 나뉠 수 없는 하나의 목표임을 보여준다. 경제생활의 필수적인 부분인 도덕성은 경제에 대립되는 것도 중립적인 것도 아니다. 정의와 연대의 정신이 깃든 도덕성은 경제 자체 안에서 사회적 효율성의 한 요소가 된다. 재화의 생산은 자원 낭비를 막기 위하여 효율적으로 수행되어야 할 임무이다. 다른 한편, 전체 인류나 사회 집단 등을 빈곤으로 내몰면서 인간을 희생시켜 경제 성장을 이루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재화와 용역의 사용 가능성으로 드러나는 부의 성장, 그리고 이들의 공평한 분배에 대한 도덕적 요구는 인간과 사회 전체에 연대라는 근본 덕목을 실천하도록 고무하여야 한다. 정의와 사랑의 정신으로 빈곤과 저개발, 낙후를 낳고 영속시키는 죄의 구조가 발견되는 모든 곳에서 이를 물리치기 위해서이다. 인간의 갖가지 구체적인 이기적 행위들이 이러한 구조를 쌓아올리고 강화시킨다.

 

333. If economic activity is to have a moral character, it must be directed to all men and to all peoples. Everyone has the right to participate in economic life and the duty to contribute, each according to his own capacity, to the progress of his own country and to that of the entire human family.[696] If, to some degree, everyone is responsible for everyone else, then each person also has the duty to commit himself to the economic development of all.[697] This is a duty in solidarity and in justice, but it is also the best way to bring economic progress to all of humanity. When practised morally, economic activity is therefore service mutually rendered by the production of goods and services that are useful for the growth of each person, and it becomes an opportunity for every individual to embody solidarity and live the vocation of “communion with others for which God created him”.[698] The effort to create and carry out social and economic projects that are capable of encouraging a more equitable society and a more human world represents a difficult challenge, but also a stimulating duty for all who work in the economic sector and are involved with the economic sciences.[699]

333. 경제 활동이 도덕적 성격을 지니려면,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을 지향하여야 한다. 모든 사람이 경제 활동에 참여할 권리가 있고, 각자 자신의 능력에 따라 국가와 전체 인류 가족의 발전에 기여해야 할 의무가 있다. 모든 이가 다른 모든 이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책임을 지닌다면, 각자는 전체의 경제 발전에 투신할 의무도 있다. 이것은 연대와 정의에 대한 의무이지만, 인류 전체의 경제 발전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도덕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제 활동은 개인의 성장에 유용한 재화와 용역의 생산에서 오는 봉사이며, 모든 사람이 연대를 실현하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인 사람들과의 친교의 소명을 실천하는 기회가 된다. 더욱 공평한 사회, 더욱 인간다운 세상을 촉진할 수 있는 사회 경제 계획들을 세우고 수행하는 노력은 어려운 과제이지만, 경제 분야에서 일하거나 경제학에 몸담은 사람들을 자극하는 의무이기도 하다.

 

334. The economy has as its object the development of wealth and its progressive increase, not only in quantity but also in quality; this is morally correct if it is directed to man's overall development in solidarity and to that of the society in which people live and work. Development, in fact, cannot be reduced to a mere process of accumulating goods and services. On the contrary, accumulation by itself, even were it for the common good, is not a sufficient condition for bringing about authentic human happiness. In this sense, the Church's social Magisterium warns against the treachery hidden within a development that is only quantitative, for the “excessive availability of every kind of material goods for the benefit of certain social groups, easily makes people slaves of ‘possession' and of immediate gratification ... This is the so-called civilization of ‘consumption' or ‘consumerism' “.[700]

334. 경제는 부를 발전시키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도 이를 점차 증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이것이 연대를 통한 인간의 전체적인 발전과 사람들이 살아가고 일하는 사회의 발전을 지향한다면 도덕적으로 올바르다. 사실, 발전은 단순히 재화와 용역의 축적 과정으로만 격하될 수는 없다. 오히려, 축적 그 자체는 공동선을 위한 것이라 해도 참된 인간의 행복을 가져오기에 충분한 조건이 되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의 사회 교도권은 양적인 것만 추구하는 발전 뒤에 숨어 있는 위험을 경고한다. “일정한 사회 집단을 위하여 온갖 물질 재화를 지나칠 정도로 확보해 주는 것은 사람들을 자칫하면 소유의 노예, 즉각적인 충족의 노예로 만든다. …… 이것이 이른바 소비문화 또는 소비주의라고 하는 것이다.”

 

335. In the perspective of an integral and solidary development, it is possible to arrive at a proper appreciation of the moral evaluation that the Church's social doctrine offers in regard to the market economy or, more simply, of the free economy: “If by ‘capitalism' is meant an economic system which recognizes the fundamental and positive role of business, the market, private property and the resulting responsibility for the means of production, as well as free human creativity in the economic sector, then the answer is certainly in the affirmative, even though it would perhaps be more appropriate to speak of a ‘business economy', ‘market economy' or simply ‘free economy'. But if by ‘capitalism' is meant a system in which freedom in the economic sector is not circumscribed within a strong juridical framework which places it at the service of human freedom in its totality, and which sees it as a particular aspect of that freedom, the core of which is ethical and religious, then the reply is certainly negative”.[701] In this way a Christian perspective is defined regarding social and political conditions of economic activity, not only its rules but also its moral quality and its meaning.

335. 통합적이고 연대적인 발전의 관점에서 본다면, 교회의 사회 교리가 시장 경제, 또는 더 간단하게는 자유 경제에 대하여 내리는 도덕적 평가를 적절히 이해할 수 있다. “만일 자본주의가 기업과 시장, 사유 재산과 여기에 따르는 생산 수단에 대한 책임과 경제 분야에서 인간의 자유로운 창의력의 기본적이고 긍정적인 역할을 인정하는 경제 체제를 의미한다면, ‘기업 경제,’ ‘시장 경제또는 단순히 자유 경제를 논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겠지만, 대답은 분명히 긍정적이다. 그러나 만일 자본주의, 경제 영역의 자유를 전체적인 인간 자유의 봉사에 두고 이 자유를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것을 핵심으로 하는 자유의 특수한 차원으로 보는 확고부동한 형태의 정치 구조 안에 제한되지 않는 체제를 의미한다면, 대답은 부정적이다.” 경제 활동의 사회적 정치적 조건, 경제 활동의 규칙뿐만 아니라 도덕적 특성과 의미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관점은 이렇게 규정된다.

 

 

III. PRIVATE INITIATIVE AND BUSINESS INITIATIVE

III. 개인 주도와 기업 주도

 

336. The Church's social doctrine considers the freedom of the person in economic matters a fundamental value and an inalienable right to be promoted and defended. “Everyone has the right to economic initiative; everyone should make legitimate use of his talents to contribute to the abundance that will benefit all, and to harvest the just fruits of his labour”.[702] This teaching warns against the negative consequences that would arise from weakening or denying the right of economic initiative: “Experience shows us that the denial of this right, or its limitation in the name of an alleged ‘equality' of everyone in society, diminishes, or in practice absolutely destroys the spirit of initiative, that is to say the creative subjectivity of the citizen”.[703] From this perspective, free and responsible initiative in the economic sphere can also be defined as an act that reveals the humanity of men and women as creative and relational subjects. Such initiative, then, should be given ample leeway. The State has the moral obligation to enforce strict limitations only in cases of incompatibility between the pursuit of common good and the type of economic activity proposed or the way it is undertaken.[704]

336. 교회의 사회 교리는 경제 문제에서 개인의 자유를 근본적인 가치이자 양도할 수 없는 권리로서 이를 증진하고 수호하여야 한다고 본다. “누구나 경제적인 면에서 주도적으로 행동할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풍요로움을 제공하고, 자기 노력의 정당한 결실을 얻고자, 자신의 재능을 합당하게 사용해야 할 것이다. 각자는 공동선을 위해 합법적인 공권력이 정한 규칙을 따르도록 유의해야 한다.” 이러한 가르침은 경제적인 면에서 주도적으로 행동할 권리를 약화하거나 부인하는 데에 따르는 부정적 결과들에 대해서 경고한다. “경험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이 권리가 부정되거나 사회에서 모든 이의 평등이라는 명분으로 제한을 둘 경우에 창의의 정신, 말하자면 시민의 창조적 주체성이라는 것이 위축되거나 실제로 완전히 파괴되어 버린다.” 이러한 관점에서, 경제 분야에서 자유롭고 책임 있는 주도적 행동은 인간의 속성이 창조적이고 관계적인 주체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그러한 주도적 행동에는 충분한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국가는 제시된 경제 활동의 유형이나 그 수행 방식이 공동선의 추구와 양립할 수 없는 경우에만 엄격한 제한을 가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337. The creative dimension is an essential component of human activity, even in the area of business, and it is especially manifested in the areas of planning and innovation. “Organizing such a productive effort, planning its duration in time, making sure that it corresponds in a positive way to the demands which it must satisfy, and taking the necessary risks all this too is a source of wealth in today's society. In this way, the role of disciplined and creative human work and, as an essential part of that work, initiative and entrepreneurial ability becomes increasingly evident and decisive”.[705] At the basis of this teaching we can see the belief that “man's principal resource is man himself. His intelligence enables him to discover the earth's productive potential and the many different ways in which human needs can be satisfied”.[706]

337. 창조의 차원은 기업 영역에서도 필수적인 인간 활동의 요소이며, 이는 특히 계획과 혁신 분야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노력을 조직하고, 기간을 계획하며, 필요한 위험을 받아들이는 것 모두가 오늘의 사회 안에서 부의 결실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렇게 질서정연하고 생산적인 인간 노동의 역할, 그리고 인간 노동의 주요한 부분으로서 주도적 능력과 기업적 능력의 역할은 더욱 자명하고 결정적인 것이 된다.” 우리는 이러한 가르침의 바탕에서, “인간의 실제 중요한 재원은 인간 자신이며, 인간의 지성은 땅의 생산적 능력과 인간의 욕구가 충족될 수 있는 많은 형태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믿음을 볼 수 있다.

 

 

a. Business and its goals

. 기업과 그 목표

 

338. Businesses should be characterized by their capacity to serve the common good of society through the production of useful goods and services. In seeking to produce goods and services according to plans aimed at efficiency and at satisfying the interests of the different parties involved, businesses create wealth for all of society, not just for the owners but also for the other subjects involved in their activity. Besides this typically economic function, businesses also perform a social function, creating opportunities for meeting, cooperating and the enhancement of the abilities of the people involved. In a business undertaking, therefore, the economic dimension is the condition for attaining not only economic goals, but also social and moral goals, which are all pursued together.

338. 기업은 유용한 재화와 용역을 생산함으로써 사회의 공동선에 이바지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여러 관련 당사자들의 이해를 만족시키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계획들에 따라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고자 노력하면서, 기업들은 기업주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 곧 그들의 활동에 관련된 다른 모든 주체를 위해서 부를 창출한다. 이러한 전형적인 경제 기능 외에도, 기업들은 또한 만남과 협력, 관련자들의 능력 증진을 위한 기회를 만드는 사회적 기능도 수행한다. 그러므로 기업 활동에서 경제적 차원은 경제적 목표뿐만 아니라 사회적 도덕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조건이 되며, 이 목표들은 모두 함께 추구되어야 한다.

 

A business' objective must be met in economic terms and according to economic criteria, but the authentic values that bring about the concrete development of the person and society must not be neglected. In this personalistic and community vision, “a business cannot be considered only as a ‘society of capital goods'; it is also a ‘society of persons' in which people participate in different ways and with specific responsibilities, whether they supply the necessary capital for the company's activities or take part in such activities through their labour”.[707]

기업의 목표는 경제적 기준에 따라 경제적 차원에서 충족되어야 하지만, 개인과 사회의 구체적인 발전을 이루는 참된 가치들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개인적 공동체적 관점에서, “기업체를 자본의 사회로만 생각하면 안 되며, 기업체는 기업 활동을 위하여 다양한 방법과 고유한 책임을 가지고 필요한 자본을 공급하는 이들과 동시에 노동을 통하여 협조하는 이들이 참여하는 인간의 사회이기도 하다.”

 

339. All those involved in a business venture must be mindful that the community in which they work represents a good for everyone and not a structure that permits the satisfaction of someone's merely personal interests. This awareness alone makes it possible to build an economy that is truly at the service of mankind and to create programmes of real cooperation among the different partners in labour.

339. 기업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은 그들이 일하는 공동체가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여야 하며 일부 사람의 개인적인 이익만을 만족시키는 조직이 되어서는 안 됨을 명심하여야 한다. 이러한 인식이 있을 때에만, 참으로 인류에 봉사하는 경제를 세우고 다양한 노동 협력자들 사이에 실질적인 협력 계획을 마련할 수 있다.

 

A very important and significant example in this regard is found in the activity of so-called cooperative enterprises, small and medium-sized businesses, commercial undertakings featuring hand-made products and family-sized agricultural ventures. The Church's social doctrine has emphasized the contribution that such activities make to enhance the value of work, to the growth of a sense of personal and social responsibility, a democratic life and the human values that are i.mportant for the progress of the market and of society.[708]

이와 관련한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본보기로는, 이른바 협동조합, 중소기업, 수공예품 위주의 상업과 가족 규모의 기업농들의 활동을 들 수 있다. 교회의 사회 교리는 그러한 활동들이 노동의 가치를 증진하기 위하여 개인과 사회의 책임 의식과 민주적인 삶, 시장과 사회의 발전에 중요한 인간적 가치들을 증대시키는 데에 기여하는 바를 강조해 왔다.

 

340. The social doctrine of the Church recognizes the proper role of profit as the first indicator that a business is functioning well: “when a firm makes a profit, this means that productive factors have been properly employed”.[709] But this does not cloud her awareness of the fact that a business may show a profit while not properly serving society.[710] For example, “it is possible for the financial accounts to be in order, and yet for the people who make up the firm's most valuable asset to be humiliated and their dignity offended”.[711] This is what happens when businesses are part of social and cultural systems marked by the exploitation of people, tending to avoid the obligations of social justice and to violate the rights of workers.

340. 교회의 사회 교리는, 기업이 잘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첫 지표인 이윤의 고유한 역할을 인정한다. “하나의 기업체가 이윤을 남기면, 재화 생산 방법이 적합하게 사용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교회는 또한, 기업이 이윤을 남기면서도 사회에 적절하게 봉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재정 상태는 만족스러우면서 동시에 기업체의 가장 고귀한 자산인 사람들은 모욕을 받고 품위에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이런 일은 기업이 사회 정의의 의무를 회피하며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면서 사람들을 착취하는 사회 문화 체제에 속해 있을 때 일어난다.

 

It is essential that within a business the legitimate pursuit of profit should be in harmony with the irrenounceable protection of the dignity of the people who work at different levels in the same company. These two goals are not in the least contrary to one another, since, on the one hand, it would not be realistic to try to guarantee the firm's future without the production of useful goods and services and without making a profit, which is the fruit of the economic activity undertaken. On the other hand, allowing workers to develop themselves fosters increased productivity and efficiency in the very work undertaken. A business enterprise must be a community of solidarity,[712] that is not closed within its own company interests. It must move in the direction of a “social ecology” [713] of work and contribute to the common good also by protecting the natural environment.

기업 안에서 합법적인 이윤 추구는 같은 회사 안의 여러 지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존엄을 보호하여야 할 포기할 수 없는 의무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두 가지 목표는 결코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유용한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고 경제 활동의 열매인 이윤을 내지 않으면서 회사의 미래를 보장하려는 것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들에게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노동 자체의 생산성과 효율성 증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기업은 자사의 이익에만 관심을 쏟지 않는 연대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기업은 노동의 사회 생태학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자연 환경을 보호함으로써 공동선에도 이바지하여야 한다.

 

341. Although the quest for equitable profit is acceptable in economic and financial activity, recourse to usury is to be morally condemned: “Those whose usurious and avaricious dealings lead to the hunger and death of their brethren in the human family indirectly commit homicide, which is imputable to them”.[714] This condemnation extends also to international economic relations, especially with regard to the situation in less advanced countries, which must never be made to suffer “abusive if not usurious financial systems”.[715] More recently, the Magisterium used strong and clear words against this practice, which is still tragically widespread, describing usury as “a scourge that is also a reality in our time and that has a stranglehold on many peoples' lives”.[716]

341. 경제 금융 활동에서 정당한 이윤 추구는 용납할 수 있지만, 고리대금업에 의존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한다. “폭리를 추구하며 탐욕스러운 행위로 인류 형제의 굶주림과 죽음을 유발시키는 상인들은 간접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며, 그 책임은 그들에게 돌아간다.” 특히 부당할 뿐 아니라 나아가 폭리를 추구하는 금융 제도로 고통 받아서는 안 되는 저개발국들의 상황과 관련한 국제 경제 관계에도 이러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더욱 최근에, 교도권은 고리대금업을 우리 시대에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으며 많은 민족들의 삶을 저해하는 재앙이라고 표현하면서, 아직도 널리 퍼져 있는 이러한 악습을 강력하고 분명한 어조로 비판하였다.

 

342. Businesses today move in economic contexts that are becoming ever broader and in which national States show limits in their capacity to govern the rapid processes of change that effect international economic and financial relations. This situation leads businesses to take on new and greater responsibilities with respect to the past. Never has their role been so decisive with regard to the authentic integral development of humanity in solidarity. Equally decisive in this sense is their level of awareness that “development either becomes shared in common by every part of the world or it undergoes a process of regression even in zones marked by constant progress. This tells us a great deal about the nature of authentic development: either all the nations of the world participate, or it will not be true development”.[717]

342. 오늘날 기업들은 점점 더 확대되어 가는 경제 환경 안에서 활동하며, 그러한 환경에서 국민 국가들은 국제 경제와 금융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빠른 변화 과정을 통제할 능력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기업들은 과거에 비해 새롭고 더욱 큰 책임을 맡게 된다. 연대를 통한 인류의 참된 전체적 발전과 관련하여 기업의 역할이 이토록 결정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개발이라는 것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공동으로 혜택을 나누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꾸준한 진보를 보이는 지역에서까지도 퇴보의 과정을 겪거나 둘 중의 하나임이 분명해진다. 이것은 진정한 개발의 성격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셈이다. 세계의 모든 국가가 참여를 하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참다운 개발이 아니라는 것이다.”라는 사실에 대한 기업의 인식 또한 결정적이다.

 

 

b. Role of business owners and management

. 기업주와 경영자의 역할

 

343. Economic initiative is an expression of human intelligence and of the necessity of responding to human needs in a creative and cooperative fashion. Creativity and cooperation are signs of the authentic concept of business competition: a “cumpetere”, that is, a seeking together of the most appropriate solutions for responding in the best way to needs as they emerge. The sense of responsibility that arises from free economic initiative takes not only the form of an individual virtue required for individual human growth, but also of a social virtue that is necessary for the development of a community in solidarity. “Important virtues are involved in this process, such as diligence, industriousness, prudence in undertaking reasonable risks, reliability and fidelity in interpersonal relationships, as well as courage in carrying out decisions which are difficult and painful but necessary, both for the overall working of a business and in meeting possible set-backs”.[718]

343. 경제 활동은 인간 지성의 표현이며 인간의 요구에 창의적이고 협력적으로 응답할 필요성을 드러낸다. 창의성과 협력은 진정한 의미의 기업 경쟁의 표징이다. 경쟁(cumpetere)은 곧 요구가 생기면 최선의 방식으로 그 요구에 응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경제 활동에서 비롯되는 책임 의식은 개인의 인간적 성장에 필요한 개인적 덕뿐만 아니라 연대를 통한 공동체의 발전에 필요한 사회적 덕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는 중요한 덕들이 포함되는데, 근면, 열의, 합리적인 위험을 받아들일 때의 조심성, 인간관계에서 권위와 충실성, 기업의 공동 노동을 위하여 그리고 상황이 역전될 수 있는 것에 대비하여, 어렵고 힘들기는 하지만 필요한 결정들을 수행하는 용기이다.”

 

344. The roles of business owners and management have a central importance from the viewpoint of society, because they are at the heart of that network of technical, commercial, financial and cultural bonds that characterizes the modern business reality. Due to the increasing complexity of business activities, decisions made by companies produce a number of very significant interrelated effects, both in the economic and social spheres. For this reason the exercise of responsibility by business owners and management requires in addition to specific updating that is

the object of continuous efforts constant reflection on the moral motivations that should guide the personal choices of those to whom these tasks fall.

344. 기업주와 경영자의 역할은 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현대 기업의 현실을 특징짓는 기술 상업 금융 문화적 유대의 조직망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기업 활동이 점점 복잡해지기 때문에, 회사들이 내리는 결정은 경제와 사회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수많은 관련 효과를 낳는다. 그러므로 기업주와 경영자들은 - 그 분야에서 시대에 뒤처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뿐만 아니라 - 그들의 개인적 선택을 이끌어 줄 도덕적 동기에 대해서 꾸준히 성찰하며 책임감을 발휘하여야 한다.

 

Business owners and management must not limit themselves to taking into account only the economic objectives of the company, the criteria for economic efficiency and the proper care of “capital” as the sum of the means of production. It is also their precise duty to respect concretely the human dignity of those who work within the company.[719] These workers constitute “the firm's most valuable asset” [720] and the decisive factor of production.[721] In important decisions concerning strategy and finances, in decisions to buy or sell, to resize, close or to merge a site, financial and commercial criteria must not be the only considerations made.

기업주와 경영자는 회사의 경제적 목표와 경제 효율성의 기준, 생산 수단의 총합인 자본의 적절한 관리에만 관심을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간 존엄을 구체적으로 존중하는 것도 바로 그들의 의무이다. 이들 노동자들은 기업체의 가장 고귀한 자산이며 생산의 주요인이다. 전략과 재정에 관련된 중요한 결정들과 구매와 판매, 규모 변경, 폐쇄, 부지 합병 결정에서 회계와 영업적 기준만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

 

345. The Church's social doctrine insists on the need for business owners and management to strive to structure work in such a way so as to promote the family, especially mothers, in the fulfilment of their duties; [722] to accede, in light of an integral vision of man and development, to the demand for the quality “of the goods to be produced and consumed, the quality of the services to be enjoyed, the quality of the environment and of life in general”; [723] to invest, when the necessary economic conditions and conditions of political stability are present, in those places and sectors of production that offer individuals and peoples “an opportunity to make good use of their own labour”.[724]

345. 교회의 사회교리는 기업주와 경영자들이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면서 가정, 특히 어머니들을 장려하는 방식으로 노동을 조직하고, 통합적 인간관과 발전관에 비추어 생산하고 소비할 물품들의 품질, 인간이 받아야 할 공공 봉사의 질, 환경과 일반적인 삶의 질에 대한 요구에 부응하며, 필요한 경제적 여건과 정치적 안정의 여건이 갖추어졌을 때 개인과 민족들에게 자신들의 노동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곳과 생산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IV. ECONOMIC INSTITUTIONS AT THE SERVICE OF MAN

IV.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경제 제도

 

346. One of the higher priority issues in economics is the utilization of resources,[725] that is, of all those goods and services to which economic subjects producers and consumers in the private and public spheres attribute value because of their inherent usefulness in the areas of production and consumption. Resources in nature are quantitatively scarce, which means that each individual economic subject, as well as each individual society, must necessarily come up with a plan for their utilization in the most rational way possible, following the logic dictated by the “principle of economizing”. Both the effective solution of the more general, and fundamental, economic problem of limited means with respect to individual and social private and public need, and the overall structural and functional efficiency of the entire economic system depend on this. This efficiency directly involves the responsibility and capacity of the various agents concerned, such as the market, the State and intermediate social bodies.

346.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자원의 이용이다. 다시 말해, 생산과 소비 분야에서 그 유용성 때문에 경제 주체들이 민간 부문과 공공 부문의 생산자와 소비자 - 가치를 부여하는 모든 재화와 용역의 이용이다. 자연 자원은 그 양이 부족하며, 이는 각 개별 경제 주체와 개별 사회가 경제 원리가 요구하는 논리에 따라 가능한 한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자원 이용 계획을 반드시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개인과 사회의 - 민간과 공공 - 요구에 비해 제한된 자원에서 비롯되는 더욱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경제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과, 전체 경제 제도의 전반적인 구조와 기능의 효율성이 여기에 달려 있다. 이 효율성은 시장과 국가, 중재 역할을 하는 사회 기구들과 같은 다양한 관련 주체의 책임과 능력에 직접 연관된다.

 

a. Role of the free market

. 자유 시장의 역할

 

347. The free market is an institution of social importance because of its capacity to guarantee effective results in the production of goods and services. Historically, it has shown itself able to initiate and sustain economic development over long periods. There are good reasons to hold that, in many circumstances, “the free market is the most efficient instrument for utilizing resources and effectively responding to needs”.[726] The Church's social doctrine appreciates the secure advantages that the mechanisms of the free market offer, making it possible as they do to utilize resources better and facilitating the exchange of products. These mechanisms “above all ... give central place to the person's desires and preferences, which, in a contract, meet the desires and preferences of another person”.[727]

347. 자유 시장은 재화와 용역의 생산에서 효과적인 결과를 보장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중요한 제도이다. 역사적으로, 이 제도는 오랜 기간에 걸쳐 경제 발전을 주도하고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많은 경우에, “자유 시장은 자원을 분배하고 효과적으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고 주장할 만한 충분한 이유들이 있다. 교회의 사회 교리는 자원의 활용도를 높이고 상품의 교환을 원활하게 하는 자유 시장 구조의 분명한 장점들을 인정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특히 계약으로 다른 사람의 원의와 선호를 만나는 개인의 원의와 선호가 중요시된다.”

A truly competitive market is an effective instrument for attaining important objectives of justice: moderating the excessive profits of individual businesses, responding to consumers' demands, bringing about a more efficient use and conservation of resources, rewarding entrepreneurship and innovation, making information available so that it is really possible to compare and purchase products in an atmosphere of healthy competition.

진정한 경쟁 시장은 정의가 추구하는 중요한 목표들에 이를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이다. 그 목표란, 개별 기업들의 과도한 이윤을 조절하고,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며, 자원을 더욱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보존하며, 기업가 정신과 혁신에는 상응하는 보상이 돌아가며, 건전한 경쟁 분위기에서 상품을 비교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정보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348. The free market cannot be judged apart from the ends that it seeks to accomplish and from the values that it transmits on a societal level. Indeed, the market cannot find in itself the principles for its legitimization; it belongs to the consciences of individuals and to public responsibility to establish a just relationship between means and ends.[728] The individual profit of an economic enterprise, although legitimate, must never become the sole objective. Together with this objective there is another, equally fundamental but of a higher order: social usefulness, which must be brought about not in contrast to but in keeping with the logic of the market. When the free market carries out the important functions mentioned above it becomes a service to the common good and to integral human development. The invers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means and ends, however, can make it degenerate into an inhuman and alienating institution, with uncontrollable repercussions.

348. 자유 시장은 그것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들과 사회적 차원에서 전달하는 가치들과 따로 떼어 놓고 판단할 수 없다. 사실, 시장의 정당화를 위한 원칙들은 시장 자체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양심에, 또 수단과 목적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세우기 위한 공적 책임에 속해 있다. 경제적 기업의 개별 이윤은 정당한 것이지만 유일한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목표와 더불어, 역시 근본적이지만 더욱 높은 위계에 속하는 사회적 유용성이라는 목표가 있으며, 이는 시장의 논리와 대립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시장 경제가 위에서 언급한 중요한 기능들을 수행할 때 공동선과 인류의 전체적 발전에 이바지하게 된다. 그러나 수단과 목적이 전도되면 시장 경제는 비인간적이고 소외를 낳는 제도로 타락하여 걷잡을 수 없는 영향을 미치게 된다.

 

349. The Church's social doctrine, while recognizing the market as an irreplaceable instrument for regulating the inner workings of the economic system, points out the need for it to be firmly rooted in its ethical objectives, which ensure and at the same time suitably circumscribe the space within which it can operate autonomously.[729] The idea that the market alone can be entrusted with the task of supplying every category of goods cannot be shared, because such an idea is based on a reductionist vision of the person and society.[730] Faced with the concrete “risk of an ‘idolatry' of the market”, the Church's social doctrine underlines its limits, which are easily seen in its proven inability to satisfy important human needs, which require goods that “by their nature are not and cannot be mere commodities”,[731] goods that cannot be bought and sold according to the rule of the “exchange of equivalents” and the logic of contracts, which are typical of the market.

349. 교회의 사회 교리는 시장을 경제 제도의 내부 작용을 통제하는 중요한 도구로 인정하는 한편, 시장이 자율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적절한 한계선을 정하고 이를 보장하는 윤리적 목표들에 굳게 뿌리박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시장만이 모든 종류의 상품을 공급할 임무를 맡을 수 있다는 생각은 개인과 사회에 대한 환원주의적 시각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실질적인 시장의 우상 숭배위험에 직면하여, 교회의 사회 교리는 시장의 한계를 강조한다. 그러한 한계는, “본질적으로 단순한 상품들이 아니며 또 될 수도 없는 재화들, 곧 시장의 전형적인 특징인 등가 교환법칙과 계약 논리에 따라 사고팔 수 있는 것이 아닌 재화를 필요로 하는 인간의 중요한 요구를 시장이 충족시키지 못하는 데에서 쉽게 드러난다.

 

350. The market takes on a significant social function in contemporary society, therefore it is important to identify its most positive potentials and to create the conditions that allow them to be put concretely into effect. Market operators must be effectively free to compare, evaluate and choose from among various options. Freedom in the economic sector, however, must be regulated by appropriate legal norms so that it will be placed at the service of integral human freedom. “Economic freedom is only one element of human freedom. When it becomes autonomous, when man is seen more as a producer or consumer of goods than as a subject who produces and consumes in order to live, then economic freedom loses its necessary relationship to the human person and ends up by alienating and oppressing him”.[732]

350. 시장은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맡고 있기 때문에, 시장이 지닌 가장 긍정적인 힘이 무엇인지 알아내어 그러한 잠재력을 구체적으로 실현시켜 주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 운영자는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자유롭게 비교하고 평가하며 그 가운데에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경제 분야의 자유는 적절한 법규로 규제되어, 전체적인 인간 자유에 이바지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적 자유는 다만 인간 자유의 한 부분이다. 경제적 자유가 자율적이 될 때, 인간이 살기 위하여 생산하고 소비하는 주체라기보다 재화의 생산자나 소비자로 여겨질 때, 이러한 경제적 자유는 인간에 대한 필연적인 관계를 상실하며 결국 인간을 소외시키고 억압하게 된다.”

 

 

b. Action of the State

. 국가의 활동

 

351. The action of the State and of other public authorities must be consistent with the principle of subsidiarity and create situations favourable to the free exercise of economic activity. It must also be inspired by the principle of solidarity and establish limits for the autonomy of the parties in order to defend those who are weaker.[733] Solidarity without subsidiarity, in fact, can easily degenerate into a “Welfare State”, while subsidiarity without solidarity runs the risk of encouraging forms of self-centred localism. In order to respect both of these fundamental principles, the State's intervention in the economic environment must be neither invasive nor absent, but commensurate with society's real needs. “The State has a duty to sustain business activities by creating conditions which will ensure job opportunities, by stimulating those activities where they are lacking or by supporting them in moments of crisis. The State has the further right to intervene when particular monopolies create delays or obstacles to development. In addition to the tasks of harmonizing and guiding development, in exceptional circumstances the State can also exercise a substitute function”.[734]

351. 국가와 다른 여러 공공 당국의 활동은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야 하며, 자유로운 경제 활동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여야 한다. 또한 연대성의 원리로 충만하여야 하며, 약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당사자들의 자율성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 실제로, 보조성이 결여된 연대는 복지 국가로 쉽게 변질될 위험이 있는 한편, 연대가 결여된 보조성은 이기적인 지역주의 형태들을 부추길 위험이 있다. 이 두 가지 근본 원리를 모두 존중하려면, 경제 환경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지나쳐서도 없어서도 안 되며, 사회의 실제 요구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국가는 고용 기회들을 제공할 조건들을 만들어 주고 기업 활동이 부족하면 기업 활동을 자극하고 어려운 시기에는 이를 지원함으로써 기업 활동을 유지하여야 한다. 국가는 독점 상황이 발전을 지연시키거나 장애를 가져올 때 개입할 권리도 있다. 국가는 발전을 조화시키고 이끌어나갈 역할 외에 특별한 상황에서는 대리 기능도 수행할 수 있다.”

 

352. The fundamental task of the State in economic matters is that of determining an appropriate juridical framework for regulating economic affairs, in order to safeguard “the prerequisites of a free economy, which presumes a certain equality between the parties, such that one party would not be so powerful as practically to reduce the other to subservience”.[735] Economic activity, above all in a free market context, cannot be conducted in an institutional, juridical or political vacuum. “On the contrary, it presupposes sure guarantees of individual freedom and private property, as well as a stable currency and efficient public services”.[736] To fulfil this task, the State must adopt suitable legislation but at the same time it must direct economic and social policies in such a way that it does not become abusively involved in the various market activities, the carrying out of which is and must remain free of authoritarian or worse, totalitarian superstructures and constraints.

352. 경제 문제에서 국가의 근본적인 의무는 경제 문제를 조절하기 위한 적절한 법적 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실질적인 종속 상태로 만들 만큼 강력해지지 않도록 쌍방 간의 일정한 평등을 요구하는 경제 자유의 기본 조건을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무엇보다도 자유 시장 환경에서 경제 활동은 제도와 법, 정치의 공백 상태에서는 수행될 수 없다. “이와는 반대로, 경제 활동은 통화 안정과 효과적인 공공 서비스 외에도 개인의 자유와 사유 재산에 대한 보증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국가는 적절한 법을 채택하는 동시에, 국가가 다양한 시장 활동에 함부로 연루되지 않는 방향으로 경제 정책들과 사회 정책들을 이끌어야 한다. 그러한 시장 활동들은 권위주의적인 - 더 나쁘게는 전체주의적인 - 상부 구조와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수행되며, 또 그래야 한다.

 

353. It is necessary for the market and the State to act in concert, one with the other, and to complement each other mutually. In fact, the free market can have a beneficial influence on the general public only when the State is organized in such a manner that it defines and gives direction to economic development, promoting the observation of fair and transparent rules,

and making direct interventions only for the length of time strictly necessary [737] when the market is not able to obtain the desired efficiency and when it is a question of putting the principle of redistribution into effect. There exist certain sectors in which the market, making use of the mechanisms at its disposal, is not able to guarantee an equitable distribution of the goods and services that are essential for the human growth of citizens. In such cases the complementarities of State and market are needed more than ever.

353. 시장과 국가는 서로를 보완하며 조화롭게 활동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자유 시장은, 국가가 경제 발전의 윤곽을 정하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체계를 갖출 때에만 전체 국민에게 유익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가는 공정하고 투명한 법규의 준수를 장려하고, 시장이 목적한 효율성을 이룰 수 없을 경우와 재분배 원칙의 실천과 관련된 경우에, 정말 필요한 기간 동안만 직접 개입한다. 시장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을 다 동원해서도, 국민들의 인간적 성장에 필수적인 재화와 용역이 공정하게 분배되도록 보장할 수 없는 분야가 있다. 그러한 경우, 국가와 시장의 상호 보완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354. The State can encourage citizens and businesses to promote the common good by enacting an economic policy that fosters the participation of all citizens in the activities of production. Respect of the principle of subsidiarity must prompt public authorities to seek conditions that encourage the development of individual capacities of initiative, autonomy and personal responsibility in citizens, avoiding any interference which would unduly condition business forces.

354. 국가는 모든 국민의 생산 활동 참여를 촉진하는 경제 정책들을 시행함으로써 국민과 기업들에게 공동선을 증진하도록 장려할 수 있다. 보조성의 원리를 존중하기 위하여, 공공 당국들은 기업에 부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간섭을 피하면서 국민 개개인의 주도적 역량과 자율성, 책임감을 발전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는 여건을 모색하여야 한다.

 

With a view to the common good, it is necessary to pursue always and with untiring determination the goal of a proper equilibrium between private freedom and public action, understood both as direct intervention in economic matters and as activity supportive of economic development. In any case, public intervention must be carried out with equity, rationality and effectiveness, and without replacing the action of individuals, which would be contrary to their right to the free exercise of economic initiative. In such cases, the State becomes detrimental to society: a direct intervention that is too extensive ends up depriving citizens of responsibility and creates excessive growth in public agencies guided more by bureaucratic logic than by the goal of satisfying the needs of the person.[738]

공동선을 위하여, 경제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이자 경제 발전을 지원하는 활동으로 이해되는 공적 활동과 개인의 자유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이룰 목표를 언제나 단호하게 꾸준히 추구하여야 한다. 어떤 경우든, 공공의 개입은 공평하고 합리적이며 효율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며, 경제적 주도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를 거스르지 않도록 개인의 활동을 대신하지 않아야 한다. 그럴 경우, 국가는 사회에 해를 끼치게 된다. 지나치게 광범위한 직접적 개입은 국민들이 책임감을 잃게 하고 개인의 요구를 충족시킬 목적보다는 관료주의의 논리를 더욱 따르는 공공 기관들의 과도한 성장을 낳는다.

 

355. Tax revenues and public spending take on crucial economic importance for every civil and political community. The goal to be sought is public financing that is itself capable of becoming an instrument of development and solidarity. Just, efficient and effective public financing will have very positive effects on the economy, because it will encourage employment growth and sustain business and non-profit activities and help to increase the credibility of the State as the guarantor of systems of social insurance and protection that are designed above all to protect the weakest members of society.

355. 세수(稅收)와 공공 지출은 모든 시민 정치 공동체에서 매우 큰 경제적 중요성을 지닌다. 그것이 추구하는 목표는 공공 재정이 그 자체로 발전과 연대의 도구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공정하고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공공 재정은 경제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공공 재정은 고용 성장을 촉진하고, 기업 활동과 비영리 활동을 지원하며, 무엇보다도 사회의 가장 취약한 구성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 보장 보호 제도를 보장하는 국가의 신뢰성을 증대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Public spending is directed to the common good when certain fundamental principles are observed: the payment of taxes [739] as part of the duty of solidarity; a reasonable and fair application of taxes;[740] precision and integrity in administering and distributing public resources.[741] In the redistribution of resources, public spending must observe the principles of solidarity, equality and making use of talents. It must also pay greater attention to families, designating an adequate amount of resources for this purpose.[742]

공공 지출은, 연대 의무에 속하는 납세의 의무, 합리적이고 공정한 조세 부과, 공공 자원의 정확하고 정직한 관리와 분배 등 몇몇 근본 원칙들을 준수할 때 공동선을 지향한다. 자원을 재분배할 때, 공공 지출은 연대와 공평, 재능 활용의 원리를 준수하여야 한다. 또한 가정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위하여 충분한 자원을 할당하여야 한다.

 

 

c. Role of intermediate bodies

. 중간 단체들의 역할

 

356. The social-economic system must be marked by the twofold presence of public and private activity, including private non-profit activity. In this way sundry decision-making and activity-planning centres come to take shape. The use of certain categories of goods, collective goods and goods meant for common utilization, cannot be dependent on mechanisms of the market,[743] nor does their use fall under the exclusive competence of the State. The State's task relative to these goods is that of making use of all social and economic initiatives promoted by intermediate bodies that produce public effects. Civil society, organized into its intermediate groups, is capable of contributing to the attainment of the common good by placing itself in a relationship of collaboration and effective complementarities with respect to the State and the market. It thus encourages the development of a fitting economic democracy. In this context, State intervention should be characterized by a genuine solidarity, which as such must never be separated from subsidiarity.

356. 사회 경제 제도에는 공공 활동과 비영리 민간 활동을 포함한 민간 활동이 모두 존재하여야 한다. 그럴 때에, 갖가지 의사 결정과 활동 계획의 중심이 형성된다. 특정 범주의 재화와 집합재, 공공 사용을 위한 재화들은 시장의 구조에 좌우되어서는 안 되며, 그 사용도 국가의 권한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재화에 대한 국가의 임무는 공공 효과를 내는 중간 단체들이 추진하는 모든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활용하는 것이다. 중간 단체들로 조직되는 시민 사회는 국가와 시장에 대하여 협력과 효과적인 보완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공동선을 달성하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적절한 경제 민주주의의 발전을 촉진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가의 개입은 참된 연대를 특징으로 하여야 하며, 이는 보조성의 원리와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357. Private non-profit organizations have their own specific role to play in the economic sphere. These organizations are marked by the fearless attempt to unite efficiency in production with solidarity. In general, they are built on agreements of association and manifest a common way of thinking in the members who choose to join. The State is called to respect the nature of these organizations and to make proper use of their various features, putting into practice the fundamental principle of subsidiarity, which requires that the dignity and autonomous responsibility of the “subsidiary” subject be respected and promoted.

357. 비영리 민간단체는 경제 분야에서 특별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단체들은 연대를 통하여 효율적 생산을 이루려는 대담한 노력을 보이는 특징이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단체들은 결성의 계약을 토대로 설립되며, 가입한 회원들 사이에 공통된 사고방식을 드러낸다. 국가는 이들 단체들의 본성을 존중하고, 그 다양한 특성들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보조적인주체의 존엄과 자율적 책임을 존중하고 증진하도록 요구하는 보조성의 근본 원리를 실천하여야 한다. 이러한 기구들의 본질을 존중하고 이들의 다양한 기능을 적절히 활용할 것이 요구된다.

 

 

d. Savings and consumer goods

. 저축과 소비재

 

358. Consumers, who in many cases have a broad range of buying power well above the mere subsistence level, exercise significant influence over economic realities by their free decisions regarding whether to put their money into consumer goods or savings. In fact, the possibility to influence the choices made within the economic sector is in the hands of those who must decide where to place their financial resources. Today more than in the past it is possible to evaluate the available options not only on the basis of the expected return and the relative risk but also by making a value judgment of the investment projects that those resources would finance, in the awareness that “the decision to invest in one place rather than another, in one productive sector rather than another, is always a moral and cultural choice”.[744]

358. 대체로 단순한 생계유지 차원을 넘어서 광범한 구매력을 지닌 소비자들은 소비재와 저축 중 어디에 돈을 쓸 것인지 자유롭게 결정함으로써 경제 현실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실제로, 경제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선택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은 자신들의 자산을 어디에 쓸지 결정해야 하는 사람들의 손에 달려있다. 과거보다도 오늘날에는 더욱더, “저 곳보다는 이 곳에, 저 분야보다는 생산적인 이 분야에 투자하려는 결정은 언제나 윤리적이고 문화적인 선택이라는 것을 인식하며, 예상 수익과 상대적 위험에 근거해서만이 아니라, 그러한 자원들을 조달하는 투자 계획들에 대한 가치 판단을 통해서 주어진 선택들을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359. Purchasing power must be used in the context of the moral demands of justice and solidarity, and in that of precise social responsibilities. One must never forget “the duty of charity ..., that is, the duty to give from one's ‘abundance', and sometimes even out of one's needs, in order to provide what is essential for the life of a poor person”.[745] This responsibility gives to consumers the possibility, thanks to the wider circulation of information, of directing the behaviour of producers, through preferences individual and collective given to the products of certain companies rather than to those of others, taking into account not only the price and quality of what is being purchased but also the presence of correct working conditions in the company as well as the level of protection of the natural environment in which it operates.

359. 구매력은 정의와 연대의 도덕적 요구, 그리고 알맞은 사회적 책임을 바탕으로 발휘되어야 한다. “가난한 이들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제공하기 위해서 나온 사랑의 의무, 남는 것으로 도와줄 의무와 때로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으로도 도와야 할 의무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의무는 소비자들에게, 광범한 정보의 유통전달 덕분에, 구매품의 가격과 품질뿐만 아니라 생산 회사의 노동 조건과 자연환경 보호 차원까지 고려하면서, 개인으로든 단체로든 어떤 회사의 상품들을 다른 회사의 상품들보다 더욱 선호함으로써 생산자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한다.

 

360. The phenomenon of consumerism maintains a persistent orientation towards “having” rather than “being”. This confuses the “criteria for correctly distinguishing new and higher forms of satisfying human needs from artificial new needs which hinder the formation of a mature personality”.[746] To counteract this phenomenon it is necessary to create “life- styles in which the quest for truth, beauty, goodness and communion with others for the sake of common growth are the factors which determine consumer choices, savings and investments”.[747] It is undeniable that ways of life are significantly influenced by different social contexts, for this reason the cultural challenge that consumerism poses today must be met with greater resolve, above all in consideration of future generations, who risk having to live in a natural environment that has been pillaged by an excessive and disordered consumerism.[748]

360. 소비주의 현상은 존재보다는 소유를 꾸준히 지향하게 한다. 이러한 현상은새롭고 더욱 고차원적인 형태의 인간 욕구와, 성숙한 인격 형성을 방해하는 인위적으로 조장된 새로운 욕구들을 올바로 구별하는 기준을 흐린다. 이러한 현상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진선미의 추구와 공동 발전을 위한 다른 사람들과의 친교가 소비의 선택과 절약 그리고 투자를 결정하는 요인이 되는 생활양식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생활양식은 다양한 사회적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오늘날 소비주의가 제기하는 문화적 도전에 더욱 결연히 맞서야 하며, 무엇보다도 과도하고 무질서한 소비주의에 짓밟힌 자연 환경에서 살아야 할 위험에 놓인 미래 세대를 고려하여야 한다.

 

 

 

V. THE “NEW THINGS” IN THE ECONOMIC SECTOR

V. 경제 분야의 새로운 변화

 

a. Globalization: opportunities and risks

. 세계화: 기회와 위험

 

361. Our modern era is marked by the complex phenomenon of economic and financial globalization, a process that progressively integrates national economies at the level of the exchange of goods and services and of financial transactions. In this process, an ever growing number of those involved in the economic sector is prompted to adopt a more global perspective concerning the choices that they must make with regard to future growth and profits. The new perspective of global society does not simply consist in the presence of economic and financial bonds between national forces at work in different countries, which have moreover always been present, but in the pervasiveness and the absolutely unprecedented nature of the system of relations that is developing. The role of financial markets is becoming ever more decisive and central. Following the liberalization of capital exchange and circulation, these market dimensions have increased enormously and with incredible speed, to the point that agents can “in real time”, transfer large quantities of capital from one part of the globe to another. This is a multifaceted reality that is difficult to decipher, since it expands at different levels and is in continuous evolution along paths that cannot easily be predicted.

361. 현대 세계는 경제와 금융의 복잡한 세계화 현상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재화와 용역의 교환과 금융 거래의 차원에서 국가 경제들을 점진적으로 통합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경제 분야에 몸담고 있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은 더욱 포괄적인 전망을 받아들여 미래의 성장과 이익에 관한 결정을 내리도록 촉구받고 있다. 세계 사회에 대한 새로운 전망은, 단지 서로 다른 나라 안에서 활동하는 국가 세력들 간에 항상 존재해 왔던 경제적 금융적 유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하며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새롭게 발전하는 관계 체계 안에 있다. 금융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결정적이고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자본의 교환과 유통의 자유화에 따라 이러한 시장의 차원들은 엄청나게 또 놀라운 속도로 증가되어 왔고, 중개인들은 세계의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대량의 자본을 실시간이동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현실은 다양한 차원으로 확대되고 쉽게 예측할 수 없는 행로로 계속하여 발전하기 때문에 분석하기 어려운 다양한 면을 지니고 있다.

 

362. Globalization gives rise to new hopes while at the same time it poses troubling questions.[749] Globalization is able to produce potentially beneficial effects for the whole of humanity. In the wake of dizzying developments in the field of telecommunications, the growth of the system of economic and financial relations has brought about simultaneously a significant reduction in the costs of communications and new communication technologies, and has accelerated the process by which commercial trade and financial transactions are expanding worldwide. In other words, the two phenomena of economic-financial globalization and technological progress have mutually strengthened each other, making the whole process of this present phase of transition extremely rapid.

362. 세계화는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까다로운 문제들을 제기한다. 세계화는 잠재적으로 인류 전체에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원거리 통신 분야의 눈부신 발전에 따른 경제와 금융 관계 체계의 성장은 통신비용을 상당히 감소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통신 기술을 발전시켰으며 상업 무역과 금융 거래가 전 세계로 확대되는 과정을 가속화하였다. 다시 말해, 경제 금융의 세계화와 기술 진보의 두 현상은 서로를 강화시켜 왔으며, 현재의 이러한 변천 과정을 매우 빠르게 진행시킨다.

 

In analyzing the present context, besides identifying the opportunities now opening up in the era of the global economy, one also comes to see the risks connected with the new dimensions of commercial and financial relations. In fact, there are indications aplenty that point to a trend of increasing inequalities, both between advanced countries and developing countries, and within industrialized countries. The growing economic wealth made possible by the processes described above is accompanied by an increase in relative poverty.

현재의 환경을 분석해 보면, 세계 경제 분야의 새로운 기회들을 확인하는 것과 더불어 상업과 금융 관계의 새로운 차원들과 관련된 위험을 보게 된다. 실제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선진국들 사이에서도 불평등이 심화되는 경향을 드러내는 수많은 징후들이 있다. 위에서 설명한 과정 덕분에 가능해진 경제적 부의 증대에는 상대적 빈곤의 증대도 따른다.

 

363. Looking after the common good means making use of the new opportunities for the redistribution of wealth among the different areas of the planet, to the benefit of the underprivileged that until now have been excluded or cast to the sidelines of social and economic progress.[750] “The challenge, in short, is to ensure a globalization in solidarity, a globalization without marginalization”.[751] This technological progress itself risks being unfairly distributed among countries. In fact, technological innovations can penetrate and spread within a specific community only if the potential beneficiaries have a minimum level of knowledge and financial resources. It is evident that, because of the great disparities between countries regarding access to technical and scientific knowledge and to the most recent products of technology, the process of globalization ends up increasing rather than decreasing the inequalities between countries in terms of economic and social development. Given the nature of the current dynamics, the free circulation of capital is not of itself sufficient to close the gap between developing countries and the more advanced countries.

363. 공동선의 추구란, 사회적 경제적 진보에서 지금까지 소외되어 왔거나 가장자리에 밀려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던 이들을 위하여 지구상의 여러 지역 사이에 부를 재분배하기 위한 새로운 기회들을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간단히 말하자면, 연대를 통한 세계화, 소외 없는 세계화를 보장하는 것이 과제이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 자체가 국가들 사이에 불공평하게 분배될 위험이 있다. 실제로, 잠재적 수혜자들이 최소한의 지식과 재정 자원만 가지고 있다면 기술 혁신은 특정 공동체 안에 파고 들어가 보급될 수 있다. 과학기술 지식과 가장 최신 기술 제품들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에 관련한 국가 간의 심각한 불균형 때문에, 세계화 과정은 경제 사회 발전의 측면에서 국가들 사이의 불균형을 감소시키기보다는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현재 자본의 역동성의 본질을 고려해 보면, 자본의 자유로운 유통 그 자체로는 개발도상국들과 선진국들 사이의 격차를 좁히기에는 역부족이다.

 

364. Trade represents a fundamental component of international economic relations, making a decisive contribution to the specialization in certain types of production and to the economic growth of different countries. Today more than ever, international trade if properly oriented promotes development and can create new employment possibilities and provide useful resources. The Church's social doctrine has time and again called attention to aberrations in the system of international trade,[752] which often, owing to protectionist policies, discriminates against products coming from poorer countries and hinders the growth of industrial activity in and the transfer of technology to these countries.[753] The continuing deterioration in terms of the exchange of raw materials and the widening of the gap between rich and poor countries has prompted the social Magisterium to point out the importance of ethical criteria that should form the basis of international economic relations: the pursuit of the common good and the 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equity in trade relationships; and attention to the rights and needs of the poor in policies concerning trade and international cooperation. Otherwise, “the poor nations remain ever poor while the rich ones become still richer”.[754]

364. 무역은 국제 경제 관계의 근본 요소로서, 특정한 유형의 생산을 전문화하고 여러 나라의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과거보다 오늘날에는 더욱, 국제 무역이 올바른 방향을 지향하기만 한다면 발전을 촉진하고 새로운 고용 기회를 창출하며 유익한 자원들을 제공할 수 있다. 교회의 사회 교리는 국제 무역 제도의 불균형에 거듭 관심을 촉구해 왔다. 이는 흔히 보호주의 정책 때문에 가난한 나라들에서 들어오는 상품들을 차별하고, 이런 나라들의 산업 활동의 성장이나 기술 이전을 방해한다. 원자재의 교환 조건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빈국과 부국의 격차가 확대됨에 따라, 사회 교리는 국제 경제 관계의 근간을 이루어야 할 윤리 기준들, 곧 공동선 추구와 재화의 보편적 목적, 무역 관계의 균형, 무역과 국제 협력 정책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와 요구에 대한 관심의 중요성을 지적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빈곤한 민족은 날로 더욱 빈곤해지고 부유한 민족은 날로 더욱 부유해지게 된다.”

 

365. An adequate solidarity in the era of globalization requires that human rights be defended. In this regard, the Magisterium points out that not only the “vision of an effective international public authority at the service of human rights, freedom and peace has not yet been entirely achieved, but there is still in fact much hesitation 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bout the obligation to respect and implement human rights. This duty touches all fundamental rights, excluding that arbitrary picking and choosing which can lead to rationalizing forms of discrimination and injustice. Likewise, we are witnessing the emergence of an alarming gap between a series of new ‘rights' being promoted in advanced societies the result of new prosperity and new technologies and other more basic human rights still not being met, especially in situations of underdevelopment. I am thinking here for example about the right to food and drinkable water, to housing and security, to self-determination and independence which are still far from being guaranteed and realized”.[755]

365. 세계화 시대에 적절히 연대를 이루려면 인권을 수호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교도권은 이렇게 지적한다. “인권과 자유와 평화에 이바지하는 실질적인 국제적 공적 권위에 대한 전망이 아직 완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할 뿐만 아니라, 국제 공동체는 여전히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여야 할 의무에 대하여 많이 주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의무는, 갖가지 형태의 차별과 불의를 합리화할 수 있는 독단적인 선택을 제외한 모든 근본 권리에 영향을 미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새로운 번영과 새로운 기술의 결과로 선진 사회에서 증진되고 있는 일련의 새로운 권리들과, 특히 저개발 상황에서는 아직도 충족되지 못하고 있는 다른 더욱 기본적인 인권들 사이에 심각한 격차가 벌어지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식량과 식수, 주택과 안전, 민족 자결과 독립에 대한 권리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보장받고 실현되려면 아직도 멀었다.”

 

366. As globalization spreads it must be accompanied by an ever more mature awareness on the part of different organizations of civil society of the new tasks to which they are called on a worldwide level. Thanks also to resolute action taken by these organizations, it will be possible to place the present process of economic and financial growth taking place on a global scale within a framework that guarantees an effective respect of human rights and of the rights of peoples, as well as an equitable distribution of resources within every country and between different countries: “freedom of trade is fair only when it is in accord with the demands of justice”.[756]

366. 세계화가 확대됨에 따라, 시민 사회의 여러 기구들은 그들이 세계적 차원에서 요구받고 있는 새로운 임무들에 대해 더욱 성숙한 인식을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기구들의 단호한 행동 덕분에, 세계적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의 경제 금융 성장 과정은 인권과 민족들의 권리를 실제적으로 존중하며 국가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자원의 공평한 분배를 보장하는 틀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자유 무역은 사회 정의가 요구하는 원칙을 따라 행해져야만 비로소 공정한 것이 된다.”

 

Special attention must be given to specific local features and the cultural differences that are threatened by the economic and financial process currently underway: “Globalization must not be a new version of colonialism. It must respect the diversity of cultures which, within the universal harmony of peoples, are life's interpretive keys. In particular, it must not deprive the poor of what remains most precious to them, including their religious beliefs and practices, since genuine religious convictions are the clearest manifestation of human freedom”.[757]

현재 진행 중인 경제 금융 과정 때문에 위협받는 특수한 지역적 특성들과 문화적 차이들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세계화는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민족들의 전체적 조화 안에서 삶을 해석하는 열쇠가 되는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여야 한다. 특히, 종교적 신앙과 관습을 포함하여 가난한 이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그들에게서 빼앗아서는 안 된다. 참된 종교적 확신은 인간 자유의 가장 분명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367. In the era of globalization solidarity between generations must be forcefully emphasized: “Formerly, in many places, solidarity between generations was a natural family attitude; it also became a duty of the community”.[758] It is good that such solidarity continue to be pursued within national political communities, but today the problem exists also for the global political community, in order that globalization will not occur at the expense of the neediest and the weakest. Solidarity between generations requires that global planning take place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the 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which makes it morally illicit and economically counterproductive to burden future generations with the costs involved: morally illicit because it would mean avoiding one's own responsibilities; economically counterproductive because correcting failures is more expensive than preventing them. This principle is to be applied above all although not only to the earth's resources and to safeguarding creation, the latter of which becomes a particularly delicate issue because of globalization, involving as it does the entire planet understood as a single ecosystem.[759]

367. 세계화 시대에 세대 간의 연대를 강력히 강조하여야 한다. “예전에는 많은 지역에서, 세대 간 연대는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길러지는 태도였으며 공동체의 의무였다.” 그러한 연대가 국가 정치 공동체 안에서 계속 추구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오늘날 세계화가 가장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희생시키며 이루어지지 않으려면 세계 정치 공동체도 이 문제에 대처하여야 한다. 세대간 연대를 위해서, 세계 차원의 계획은 재화의 보편적 목적의 원리에 따라야 한다. 이 원리에 따르면, 미래 세대에게 관련 비용을 부담지우는 것은 도덕적으로 부당하며 경제적으로 비생산적이다. 도덕적으로 부당한 까닭은 그것이 책임 회피이기 때문이며, 경제적으로 비생산적인 까닭은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 예방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무엇보다도 -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지만 - 지구 자원과 피조물의 보호에 적용되어야 한다. 세계화는 하나의 생태계로 이해되는 전체 지구에 관련된 문제이므로, 피조물의 보호 문제는 특히 세계화 때문에 까다로운 문제가 되고 있다.

 

 

b. The international financial system

. 국제 금융 체제

 

368. Financial markets are certainly not an innovation of our day: for a long time now, in different forms, they have been seeking to meet the financial needs of the productivity sector. The experience of history teaches that without adequate financial systems, economic growth would not have taken place. Large-scale investments typical of modern market economies would have been impossible without the fundamental role of mediation played by financial markets, which among other things brought about an appreciation of the positive functions of savings in the overall development of the economic and social system. If the creation of what is called the “global capital market” has brought benefits, thanks to the fact that the greater mobility of capital allows the productivity sector easier access to resources, on the other hand it has also increased the risk of financial crises. The financial sector, which has seen the volume of financial transactions far surpass that of real transactions, runs the risk of developing according to a mentality that has only itself as a point of reference, without being connected to the real foundations of the economy.

368. 금융 시장은 확실히 우리 시대에 새로운 것은 아니다. 금융 시장은 오랫동안, 여러 형태로, 생산성 부문의 금융 관련 요구들을 충족시키고자 노력해 왔다. 역사의 경험은 적절한 금융 체제 없이는 경제 성장이 있을 수 없음을 가르쳐준다. 현대 시장 경제의 전형적인 대규모 투자는 금융 시장의 중요한 중재 역할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금융 시장은 특히, 경제 사회 제도의 전반적 발전에서 저축의 긍정적 역할을 높이 평가하게 해 주었다. 이른바 세계 자본 시장의 조성은, 자본의 유동성 증가로 생산성 부문의 자원 접근성을 높였기 때문에 유익하였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 위기의 위험을 증대시키기도 하였다. 금융 거래량이 실물 거래량을 훨씬 능가한 지금, 금융 부문은 경제의 실질적 토대를 무시하고 자신만을 발전의 준거로 삼을 위험이 있다.

 

369. A financial economy that is an end unto itself is destined to contradict its goals, since it is no longer in touch with its roots and has lost sight of its constitutive purpose. In other words, it has abandoned its original and essential role of serving the real economy and, ultimately, of contributing to the development of people and the human community. In light of the extreme imbalance that characterizes the international financial system, the overall picture appears more disconcerting still: the processes of deregulation of financial markets and innovation tend to be consolidated only in certain parts of the world. This is a source of serious ethical concern, since the countries excluded from these processes do not enjoy the benefits brought about but are still exposed to the eventual negative consequences that financial instability can cause for their real economic systems, above all if they are weak or suffering from delayed development.[760 ]

369. 그 자체가 하나의 목적인 금융 경제는 뿌리를 잃은 채 근본 목적을 상실하기 때문에 그 목표들과 상충되게 된다. 다시 말해, 금융 경제는 실물 경제에 도움을 주고 궁극적으로는 민족과 인류 공동체의 발전에 이바지하여야 할 본래의 근본적인 역할을 포기한 것이다. 국제 금융 체제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극심한 불균형에 비추어 볼 때, 전체적인 양상은 더욱 혼란스러워 보인다. 금융 시장의 규제 철폐와 쇄신 과정은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만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배제된 나라들, 특히 약소국이나 발전이 지연된 나라들은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금융 불안이 실제 경제 체제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들에 여전히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윤리적으로 심각한 걱정거리가 된다.

 

The sudden acceleration of these processes, such as the enormous increase in the value of the administrative portfolios of financial institutions and the rapid proliferation of new and sophisticated financial instruments, makes it more urgent than ever to find institutional solutions capable of effectively fostering the stability of the system without reducing its potential and efficiency. It is therefore indispensable to introduce a normative and regulatory framework that will protect the stability of the system in all its intricate expressions, foster competition among intermediaries and ensure the greatest transparency to the benefit of investors.

이러한 과정이 갑자기 가속화되면, 예를 들어 금융 기관들의 경영 포트폴리오의 가치가 크게 증가하고 새로운 최첨단 금융 수단들이 급속히 확산되면, 잠재력과 효율성을 감소시키지 않고 제도의 안정성을 효과적으로 증진할 수 있는 제도적 해결책을 찾는 일이 더욱 시급해진다. 그러므로 복잡한 제도의 안정성을 보호하고, 중개자들 사이의 경쟁을 촉진하며, 투자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투명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규범적 법적 틀을 도입하는 일이 반드시 요구된다.

 

 

c. Role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in an era of a global economy

. 세계 경제 시대에 국제 공동체의 역할

 

370. The loss of centrality on the part of States must coincide with a greater commitment on the part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o exercise a strong guiding role. In fact, an important consequence of the process of globalization consists in the gradual loss of effectiveness of nation-states in directing the dynamics of national economic-financial systems. The governments of individual countries find their actions in the economic and social spheres ever more strongly conditioned by the expectations of international capital markets and by the ever more pressing requests for credibility coming from the financial world. Because of the new bonds of interdependence among global operators, the traditional defensive measures of States appear to be destined to failure and, in the presence of new areas of competition, the very notion of a national market recedes into the background.

370. 국가들이 중심적 역할을 잃으면 국제 공동체가 강력한 지도 역할을 수행할 더 큰 임무를 맡아야 한다. 실제로 세계화 과정이 가져온 중요한 결과 중 하나는, 국가 경제 금융 제도의 역동성을 이끄는 국가들의 효율성이 점점 감소한다는 것이다. 경제 사회 영역에서 개별 국가 정부의 활동은, 국제 자본 시장의 기대와 국가 신뢰도에 대한 금융계의 더욱 강력한 요구에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한 영향을 받는다. 다국적 자본 운용가들끼리 상호 의존하는 새로운 유대가 결성됨에 따라, 국가들의 전통적인 보호 수단은 무력해 보이며, 새로운 경쟁 분야에서 국내 시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뒤로 밀려나고 있다.

 

371. The more the worldwide economic-financial system reaches high levels of organizational and functional complexity, all the more priority must be given to the task of regulating these processes, directing them towards the goal of attaining the common good of the human family. There is the clear need not just for States but for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o take on this delicate chore with adequate and effective political and juridical instruments.

371. 전 세계의 경제 금융 제도가 구조적 기능적으로 더욱 복잡해질수록, 이러한 과정을 규제하고 인류 가족의 공동선을 이룰 목표로 이끌 임무를 더욱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국가뿐 아니라 국제 공동체는 적절하고 효과적인 정치적 법적 도구를 통하여 이러한 어려운 과제를 맡도록 명백히 요구받고 있다.

 

It is therefore indispensable that international economic and financial institutions should be able to identify the most appropriate institutional solutions and formulate the most suitable plans of action aimed at bringing about a change that, if it were to be passively accepted and simply left to itself, would otherwise produce a dramatic situation detrimental above all to the weakest and defenceless classes of the world's population.

그러므로 국제 경제 금융 기관들은 가장 적절한 제도적 해결책을 찾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행동 계획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를 소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방치한다면, 무엇보다도 세계 인구 중에서 가장 약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In international agencies it is necessary that the interests of the whole human family be equally represented. It is necessary moreover that “in evaluating the consequences of their decisions, these agencies always give sufficient consideration to peoples and countries which have little weight in the international market, but which are burdened by the most acute and desperate needs, and are thus more dependent on support for their development”.[761]

국제기구들은 온 인류 가족의 이해를 평등하게 대변하여야 한다. 또한 이 기구들은 자신들의 결정에서 나올 결과를 평가하면서, 국제 시장에서 거의 무시되지만 심각하고 절망적인 궁핍에 허덕이고 있어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민족들과 국가들이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372. The sphere of politics too, just like that of the economy, must be in a position to extend its range of action beyond national boundaries, quickly taking on an operative worldwide dimension which alone will permit it to direct the processes now underway not only according to economic parameters but also according to moral criteria. The basic goal is to guide economic processes by ensuring that the dignity of man and his complete development as a person are respected, in the context of the common good.[762] Taking on this task entails the responsibility of accelerating the consolidation of existing institutions and the creation of new entities responsible for this.[763] Economic development, in fact, will be lasting only to the extent that it takes place within a clear and defined normative context and within a broad plan for the moral, civil and cultural growth of the entire human family.

372. 정치 분야도 경제 분야와 마찬가지로 행동반경을 국가의 경계 너머까지 확대하여 신속히 전 세계적으로 효과를 미칠 수 있는 차원을 띠어야 한다. 그래야만 현재 진행 중인 과정들을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윤리적 기준에 따라 선도할 수 있다. 기본 목표는, 공동선의 맥락 안에서 인간 존엄과 인간의 전인적 발전이 존중받도록 보장하면서 경제 과정들을 이끄는 것이다. 이러한 임무에는, 기존 기관들의 공고화를 촉진하고 이를 책임질 새로운 기구들을 만들 책임이 따른다. 실제로, 경제 발전은 분명하고 명확한 규범의 맥락 안에서, 전체 인류 가족의 도덕적 시민적 문화적 성장을 위한 폭넓은 계획에 따라 이루어질 때에만 지속될 것이다.

 

 

d. An integral development in solidarity

. 연대를 통한 전체적 발전

 

373. One of the fundamental tasks of those actively involved in international economic matters is to achieve for mankind an integral development in solidarity, that is to say, “it has to promote the good of every person and of the whole person”.[764] To achieve this task requires a vision of the economy that, on the international level, guarantees an equitable distribution of resources and that is responsive to awareness of the interdependence economic, political and cultural that today unites people definitively among themselves and makes them feel linked by a sole destiny.[765] Social problems increasingly take on a global dimension. No State can face these alone and find a solution. The present generations have direct experience of the need for solidarity and are concretely aware of the necessity to move beyond an individualistic culture.[766] There is an ever wider awareness of the need for models of development that seek to take on the task not only “of raising all peoples to the level currently enjoyed by the richest countries, but rather of building up a more decent life through united labour, of concretely enhancing every individual's dignity and creativity, as well as his capacity to respond to his personal vocation, and thus to God's call”.[767]

373. 국제 경제 문제에 적극 개입하고 있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임무 가운데 하나는 연대를 통한 인류의 전체적 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말하자면, “() 인간과 인류 전체의 발전을 증진하여야 한다.” 이러한 임무를 성취하려면, 국제적으로 자원의 고른 분배를 보장하며, 오늘날 민족들을 결정적으로 결합시키고 그들이 하나의 운명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상호의존 인식에 부응할 수 있는 경제관이 요구된다. 사회 문제는 점점 더 전 세계적 차원을 띠고 있다. 어떤 국가도 이러한 문제들에 홀로 맞서 직면하여 해결책을 찾아낼 수 없다. 현 세대는 연대의 필요성을 몸소 체험하며, 개인주의적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야 할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 가장 부유한 나라들이 향유하는 번영의 수준에 모든 민족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연대 노동을 통하여 더욱 품위 있는 삶이 이룩되고, 각 개인의 존엄과 창조력이 실제로 향상되며, 자신의 소명에 응답하고 따라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개인의 능력을 증가시킬 발전 모델들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더욱 확산되었다.

 

374. A more human development in solidarity will also bring benefit to the richer countries themselves. In these countries “one frequently observes a sort of existential confusion, an inability to live and to experience properly the meaning of life, even though surrounded by an abundance of material possessions. A sense of alienation and loss of their own humanity has made people feel reduced to the role of cogs in the machinery of production and consumption and they find no way to affirm their own dignity as persons made in the image and likeness of God”.[768] Rich countries have shown the ability to create material well-being, but often at the expense of man and the weaker social classes. “One cannot ignore the fact that the frontiers of wealth and poverty intersect within societies themselves, whether developed or developing. In fact, just as social inequalities even to the point of lives of misery and poverty exist in rich countries, so, in parallel fashion, in the less developed countries one often sees manifestations of selfishness and a flaunting of wealth which is as disconcerting as it is scandalous”.[769]

374. 연대를 통한 더욱 인간적인 발전은 더욱 부유한 나라들에게도 유익할 것이다. 이러한 나라들에서는 풍부한 물질 재화에 파묻혀서도 삶에 관하여 일종의 혼란을 겪고 삶의 의미를 올바르게 경험하며 살지 못하는 모습들이 흔히 목격된다. 소외감과 인간성 상실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생산과 소비라는 기계의 한 톱니바퀴로 축소된 듯이 느끼게 되었으며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엄을 확인할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부유한 나라들은 물질적 행복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지만, 이는 흔히 다른 인간과 더 약한 사회 계층을 희생해서 이루어졌다. “실상 부유와 빈곤의 경계는 선진 사회든 개발도상국 사회든 동일한 사회 속에도 엄연히 가로지르고 있는 현상이다. 사실 빈곤의 수준에 이르는 사회적 불평등은 부강국에도 존재하고 있듯이 이와 병행되는 현상으로 저개발 국가에서도 이기심의 발로와 부의 허세가 당혹할 정도로 노골적이어서 가히 스캔들이 될 정도이다.”

 

e. Need for more educational and cultural formation

. 더욱 교육적이고 문화적인 양성의 필요성

 

375. For the Church's social doctrine, the economy “is only one aspect and one dimension of the whole of human activity. If economic life is absolutized, if the production and consumption of goods become the centre of social life and society's only value, not subject to any other value, the reason is to be found not so much in the economic system itself as in the fact that the entire socio-cultural system, by ignoring the ethical and religious dimension, has been weakened, and ends up limiting itself to the production of goods and services alone”.[770] The life of man, just like the social life of the community, must not be reduced to its materialistic dimension, even if material goods are extremely necessary both for mere survival and for improving the quality of life. “An increased sense of God and increased self-awareness are fundamental to any full development of human society”.[771]

375. 교회의 사회 교리에서, 경제는 여러 인간 활동의 한 가지 양상이며 차원이다. 만일 경제생활이 절대시되고, 상품의 생산과 소비가 사회생활의 중심이 되어 다른 어느 가치에도 종속되지 않는 사회의 유일한 가치가 된다면, 그 이유가 경제 제도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 종교적인 차원을 무시하는 사회 문화 체계가 약화되어 재화와 용역의 생산에만 힘을 기울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물질 재화가 단순한 생존이나 삶의 질 향상에 매우 필요하다고 해도, 인간의 삶은 공동체의 사회생활과 마찬가지로 유물론적인 차원으로 격하되어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 대한 의식과 자신에 대한 인식이 증대하는 것은 인간 사회가 온전하게 발전하는 데 기초가 된다.”

 

376. Faced with the rapid advancement of technological and economic progress, and with the equally rapid transformation of the processes of production and consumption, the Magisterium senses the need to propose a great deal of educational and cultural formation, for the Church is aware that “to call for an existence which is qualitatively more satisfying is of itself legitimate, but one cannot fail to draw attention to the new responsibilities and dangers connected with this phase of history ... In singling out new needs and new means to meet them, one must be guided by a comprehensive picture of man which respects all the dimensions of his being and which subordinates his material and instinctive dimensions to his interior and spiritual ones ... Of itself, an economic system does not possess criteria for correctly distinguishing new and higher forms of satisfying human needs from artificial new needs which hinder the formation of a mature personality. Thus a great deal of educational and cultural work is urgently needed, including the education of consumers in the responsible use of their power of choice, the formation of a strong sense of responsibility among producers and among people in the mass media in particular, as well as the necessary intervention by public authorities”.[772]

376. 급속한 기술 진보와 경제 발전, 생산과 소비 과정의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여, 교도권은 상당한 교육적 문화적 활동을 제공할 필요성을 느낀다. 교회는 다음과 같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질적으로 더욱 만족스러운 삶에 대한 요구 자체는 정당하지만, 이 역사적 단계와 결부된 새로운 책임과 위험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 새로운 요구들과 이것들을 충족시킬 새로운 방법을 파악하려면, 인간의 모든 차원을 존중하고 인간의 물질적 본능적인 차원을 내적 정신적인 차원에 종속시키는 포괄적인 인간관이 지배하여야 한다. …… 경제 체제는 그 자체로는 새롭고 더 고차적인 인간의 욕구와 성숙한 인격 형성을 저해하는 인위적인 새로운 욕구들을 올바로 구별할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소비자가 자신의 선택 능력을 책임 있게 사용하도록 하는 교육, 생산자들 간의 그리고 특히 대중 매체 종사자들 간의 강한 책임 의식에 대한 교육, 공권력 개입의 필요성에 대한 교육을 포함하여, 상당한 교육적 문화적인 활동이 절실히 요청된다.”

 

 

  영한편집 작업 : 김수진(아나스타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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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론 (575~583항) - 사랑의 문명을 위하여 박경수 2016-05-23 1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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