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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한비교 간추린 사회교리

 

 

제10장 (451~487항) - 환경 보호

조회 수 1562 추천 수 0 2016.05.23 12:44:43

 

CHAPTER TEN

10

SAFEGUARDING THE ENVIRONMENT

환경 보호

 

I. BIBLICAL ASPECTS

I, 성경적 측면

451. The living experience of the divine presence in history is the foundation of the faith of the people of God: “We were Pharaoh's slaves in Egypt, and the Lord brought us out of Egypt with a mighty hand” (Deut 6:21). A look at history permits one to have an overview of the past and discover God at work from the very beginning: “A wandering Aramean was my father” (Deut 26:5); of his people God can say: “I took your father Abraham from beyond the river” (Josh 24:3). This reflection permits us to look to the future with hope, sustained by the promise and the covenant that God continually renews.

451.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생생한 체험은 하느님 백성의 신앙의 토대가 된다. “'우리는 집트에서 파라오의 종노릇을 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주님께서 강한 손으로 집트를 내려치시고 우리를 거기에서 이끌어 내셨다”(신명 6,21). 역사를 보면 과거가 한 눈에 보이고, 태초부터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다. “제 선조는 떠돌며 사는 아람인이었습니다”(신명 26,5). 당신 백성에 대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그 강 건너 저 편에서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데려갔다”(여호 24,3). 이를 생각할 때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 끊임없이 새롭게 하시는 약속과 계약이 희망을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The faith of Israel is lived out in the space and time of this world, perceived not as a hostile environment, nor as an evil from which one must be freed, but rather as the gift itself of God, as the place and plan that he entrusts to the responsible management and activity of man. Nature, the work of God's creative action, is not a dangerous adversary. It is God who made all things, and with regard to each created reality “God saw that it was good” (cf. Gen 1:4,10,12,18,21,25). At the summit of this creation, which “was very good” (Gen 1:31), God placed man. Only man and woman, among all creatures, were made by God “in his own image” (Gen 1,27). The Lord entrusted all of creation to their responsibility, charging them to care for its harmony and development (cf. Gen 1:26-30). This special bond with God explains the privileged position of the first human couple in the order of creation.

이스라엘의 믿음은 이 세상의 공간과 시간 안에서 실천된다. 이 세상은 적대적인 환경이거나 해방되어야 할 악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로, 또 하느님께서 인간의 책임 있는 관리와 활동에 맡기신 장소이자 계획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느님의 창조 활동에서 나온 작품인 자연은 위험한 적이 아니다. 만물을 만드신 분은 하느님이시고, 만드신 실체 하나 하나를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4.10.12.18.21.25 참조). “참 좋았던”(창세 1,31) 이 피조물의 정점에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세우셨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하느님의 모습대로”(창세 1,27) 지어졌다. 주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인간의 책임에 맡기시고, 인간에게 그것들을 조화롭게 발전시키며 돌볼 임무를 부여하셨다(창세 1,26-30 참조). 하느님과 맺은 이 특별한 유대는 창조 질서 안에서 최초의 인간 부부가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를 설명해 준다.

 

452. The relationship of man with the world is a constitutive part of his human identity. This relationship is in turn the result of another still deeper relationship between man and God. The Lord has made the human person to be a partner with him in dialogue. Only in dialogue with God does the human being find his truth, from which he draws inspiration and norms to make plans for the future of the world, which is the garden that God has given him to keep and till (cf. Gen 2: 15). Not even sin could remove this duty, although it weighed down this exalted work with pain and suffering (cf. Gen 3:17-19).

452. 인간과 세상의 관계는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이다. 이 관계는 또 다른 더욱 깊은 관계인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결과이다. 주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대화 상대자가 되게 하셨다.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만 인간은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미래 세계를 구상하기 위한 영감과 규범을 이끌어 낸다. 그 세계는 곧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지키고 돌보게 하신 동산이다(창세 2,15 참조). 그 의무가 이 고귀한 일을 고통과 괴로움으로 짓눌렀지만(창세 3,17-19 참조) 죄조차도 그 의무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었다.

 

Creation is always an object of praise in Israel's prayer: “O Lord, how manifold are your works! In wisdom have you made them all” (Ps 104:24). Salvation is perceived as a new creation that re-establishes that harmony and potential for growth that sin had compromised: “I create new heavens and a new earth” (Is 65:17) says the Lord in which “the wilderness becomes a fruitful field ... and righteousness [will] abide in the fruitful field ... My people will abide in a peaceful habitation” (Is 32:1518).

이스라엘 민족의 기도에서 피조물은 언제나 찬미의 대상이다. “주님이 하신 일이 많고도 많건마는, 그 모두를 지혜로써 이룩하시었으니, 온 땅에 당신 조물 가득 차있나이다”(시편 103[104],24). 구원은 죄로 손상된 조화와 성장 능력을 회복시켜 주는 새로운 창조로 인식되고 있다.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이사 65,17) 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 안에서 사막은 과수원이 되고 …… 과수원은 정의의 터전이 되리라. …… 나의 백성은 평화스런 보금자리에서 …… 살게 되리라”(이사 32,15-18).

 

453. The definitive salvation that God offers to all humanity through his own Son does not come about outside of this world. While wounded by sin, the world is destined to undergo a radical purification (cf. 2 Pet 3:10) that will make it a renewed world (cf. Is 65:17, 66:22; Rev 21:1), finally becoming the place where “righteousness dwells” (2 Pet 3:13).

453.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통하여 온 인류에게 가져다주시는 결정적인 구원은 이 세상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죄로 상처 입긴 했지만 세상은 철저한 정화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2베드 3,10 참조). 그러한 정화를 통하여 이 세상은 새로운 세상이 되고(이사 65,17; 66,22; 묵시 21,1 참조), 마침내 정의가 깃들여 있는”(1베르 3,13) 장소가 된다.

 

In his public ministry, Jesus makes use of natural elements. Not only is he a knowledgeable interpreter of nature, speaking of it in images and parables, but he also dominates it (cf. the episode of the calming of the storm in Mt 14:22-33; Mk 6:45-52; Lc 8:22-25; Jn 6:16-21). The Lord puts nature at the service of his plan of redemption. He asks his disciples to look at things, at the seasons and at people with the trust of children who know that they will never be abandoned by a provident Father (cf. Lk 11:11-13). Far from being enslaved by things, the disciple of Jesus must know how to use them in order to bring about sharing and brotherhood (cf. Lk 16:9-13).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에서 자연의 요소들을 이용하신다. 자연에 대하여 해박한 설명을 하시고 표상과 비유로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자연을 지배하기도 하신다(마태 14,22-23; 마르 6,45-52; 요한 6,16-21에 나오는 폭풍우를 잠재우는 이야기 참조). 주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계획에 자연을 이용하신다. 주님께서는, 섭리의 아버지께서 결코 자신들을 버리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아는 자식들이 갖는 신뢰의 마음으로 사물과 다양한 계절, 사람들을(루카 11,11-13 참조) 바라보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는 사물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사물을 이용하여 나눔과 형제애를 실천할 줄 알아야 한다(루카 16,9-13 참조).

 

454. The entrance of Jesus Christ into the history of the world reaches its culmination in the Paschal Mystery, where nature itself takes part in the drama of the rejection of the Son of God and in the victory of his Resurrection (cf. Mt 27:45,51, 28:2). Crossing through death and grafting onto it the new splendour of the Resurrection, Jesus inaugurates a new world in which everything is subjected to him (cf. 1 Cor 15:20-28) and he creates anew those relationships of order and harmony that sin had destroyed. Knowledge of the imbalances existing between man and nature should be accompanied by an awareness that in Jesus the reconciliation of man and the world with God such that every human being, aware of divine love, can find anew the peace that was lost has been brought about. “Therefore, if any one is in Christ, he is a new creation; the old has passed away, behold, the new has come” (2 Cor 5:17). Nature, which was created in the Word is, by the same Word made flesh, reconciled to God and given new peace (cf. Col 1:15-20).

454.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역사 안으로 들어오신 사건은 파스카 신비에서 절정에 이른다. 파스카 신비 안에서 자연은 하느님 아드님의 수난 비극과 부활의 승리에 참여하게 된다(마태 27,45.51; 28,2 참조). 죽음을 통과하시어 그 죽음을 부활의 새로운 광채로 빛나게 하신 예수님께서는 만물이 당신께 복종하게 되는 새 세상을 여시고(1코린 15,20-28 참조), 죄가 파괴해버린 질서와 조화의 관계를 회복시키신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불균형에 대한 이해와 함께,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과 세상이 하느님과 화해함으로써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아 잃어버린 평화를 재발견할 수 있다는 인식이 뒤따라야 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 사람이 됩니다.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것이 나타났습니다”(2코린 5,17). 말씀으로 창조된 자연은 사람이 되신 바로 그 말씀을 통하여 하느님과 화해하고, 새로운 평화를 얻게 된다(골로 1,15-20 참조).

 

455. Not only is the inner man made whole once more, but his entire nature as a corporeal being is touched by the redeeming power of Christ. The whole of creation participates in the renewal flowing from the Lord's Paschal Mystery, although it still awaits full liberation from corruption, groaning in travail (cf. Rom 8:19-23), in expectation of giving birth to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Rev 21:1) that are the gift of the end of time, the fulfilment of salvation. In the meantime, nothing stands outside this salvation. Whatever his condition of life may be, the Christian is called to serve Christ, to live according to his Spirit, guided by love, the principle of a new life, that brings the world and man back to their original destiny: “whether ... the world or life or death or the present or the future, all are yours; and you are Christ's, and Christ is God's” (1 Cor 3:22-23).

455. 인간은 내적으로 완전히 새로 태어날 뿐만 아니라 육체적 존재로서 인간의 본질 전체가 그리스도의 구원 능력의 영향을 받는다. 피조물 전체가 지금도 타락에서 완전히 해방되기를 기다리며 진통으로 신음하면서도(로마 8,19-23 참조) 구원의 완성인 종말이 가져다 줄 선물인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1)이 열리기를 기대하며 주님의 파스카 신비에서 흘러나오는 쇄신에 참여한다. 이 때 그 구원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생활 신분이 어떠하든 간에 그리스도를 섬기고, 새 삶의 원리인 사랑의 인도를 받아 그분의 성령을 따라 살도록 부름 받고 있다. 사랑은 세상과 인간이 그 본래의 운명으로 되돌아가게 해 준다. “이 세상도 생명도 죽음도 현재도 미래도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1코린 3,22-23).

 

 

II. MAN AND THE UNIVERSE OF CREATED THINGS

II. 인간과 피조물의 세계

 

456. The biblical vision inspires the behaviour of Christians in relation to their use of the earth, and also with regard to the advances of science and technology. The Second Vatican Council affirmed that man “judges rightly that by his intellect he surpasses the material universe, for he shares in the light of the divine mind”[946]. The Council Fathers recognized the progress made thanks to the tireless application of human genius down the centuries, whether in the empirical sciences, the technological disciplines or the liberal arts[947]. Today, “especially with the help of science and technology, man has extended his mastery over nearly the whole of nature and continues to do so”[948].

456. 대지의 사용, 그리고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관련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성경관의 영향을 받고 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의 지성의 빛을 나누어 받은 인간이 자기 지성으로 만물을 초월한다고 하는 것은 옳은 판단이다.”라고 단언하였다. 공의회 교부들은 인간이 수세기에 걸쳐 경험 과학, 기술 분야, 모든 기초 과목에 끊임없이 자신의 재능을 쏟아 부은 덕분에 진보를 이루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오늘날에는 특히 과학 기술의 도움으로 그 지배권을 거의 온 자연계로 확장하였고 또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다.”

 

For man, “created in God's image, received a mandate to subject to himself the earth and all that it contains, and to govern the world with justice and holiness, a mandate to relate himself and the totality of things to him who was to be acknowledged as the Lord and Creator of all. Thus, by the subjection of all things to man, the name of God would be wonderful in all the earth. [The Council teaches that] throughout the course of the centuries, men have laboured to better the circumstances of their lives through a monumental amount of individual and collective effort. To believers, this point is settled: considered in itself, this human activity accords with God's will”[949].

개인적 집단적 인간 활동, 곧 인간이 여러 세기를 거쳐 자신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려는 저 거대한 노력 그 자체가 하느님의 계획에 부합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은 믿는 이들에게는 분명한 일이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은 땅과 그 안에 담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세상을 정의와 성덕으로 다스리며, 하느님을 만물의 창조주로 알고 자기 자신과 모든 사물을 하느님께 다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간은 만물을 다스려 하느님의 이름이 온 땅에 빛나게 하여야 한다.”

 

457. The results of science and technology are, in themselves, positive. “Far from thinking that works produced by man's own talent and energy are in opposition to God's power, and that the rational creature exists as a kind of rival to the Creator, Christians are convinced that the triumphs of the human race are a sign of God's grace and the flowering of His own mysterious design”[950]. The Council Fathers also emphasize the fact that “the greater man's power becomes, the farther his individual and community responsibility extends”[951], and that every human activity is to correspond, according to the design and will of God, to humanity's true good[952]. In this regard, the Magisterium has repeatedly emphasized that the Catholic Church is in no way opposed to progress[953], rather she considers “science and technology are a wonderful product of a God-given human creativity, since they have provided us with wonderful possibilities, and we all gratefully benefit from them”[954]. For this reason, “as people who believe in God, who saw that nature which he had created was ‘good', we rejoice in the technological and economic progress which people, using their intelligence, have managed to make”[955].

457. 과학과 기술의 결과는 그 자체로 긍정적이다. 그리스도인은 인간이 자기 재능과 힘으로 만들어 낸 작품들을 하느님의 권능에 배치된다거나 이성적 피조물을 창조주의 경쟁자로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류의 승리는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는 징표이며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계획의 결실이라고 확신한다.” 공의회 교부들은 또한 인간의 능력이 커질수록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인간의 책임도 더욱 확대된다.”는 사실과, 인간의 모든 활동은 하느님의 계획과 뜻에 따라 인간의 참된 선에 부합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와 관련하여 교도권은 가톨릭 교회는 진보를 결코 반대하지 않으며 오히려 과학과 기술은 우리에게 놀라운 가능성을 제공해 주었고 우리 모두 감사히 그 혜택을 입고 있으므로 그것들을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의 놀라운 창조적 능력의 산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따라서 당신께서 만드신 자연을 훌륭하다고 보신 하느님을 믿는 백성인 우리는 인간이 그 지성을 사용하여 이룩해 온 기술적 경제적 진보에 기뻐한다.”

 

458. The Magisterium's considerations regarding science and technology in general can also be applied to the environment and agriculture. The Church appreciates “the advantages that result and can still result from the study and applications of molecular biology, supplemented by other disciplines such as genetics and its technological application in agriculture and industry”.[956] In fact, technology “could be a priceless tool in solving many serious problems, in the first place those of hunger and disease, through the production of more advanced and vigorous strains of plants, and through the production of valuable medicines”[957]. It is important, however, to repeat the concept of “proper application”, for “we know that this potential is not neutral: it can be used either for man's progress or for his degradation”[958]. For this reason, “it is necessary to maintain an attitude of prudence and attentively sift out the nature, end and means of the various forms of applied technology”.[959] Scientists, therefore, must “truly use their research and technical skill in the service of humanity”,[960] being able to subordinate them “to moral principles and values, which respect and realize in its fullness the dignity of man”[961].

458. 과학과 기술 전반에 관한 교도권의 견해는 환경과 농업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교회는 유전학과 같은 다른 학문들의 도움을 받아 분자 생물학을 연구하고 적용하며 그 기술을 농업과 산업에 적용하여 얻거나 또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높이 평가한다. 사실 기술은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들, 특히 기아나 질병과 같은 문제들을 더욱 향상되고 성장력 높은 품종의 식물들이나 유익한 약품의 생산을 통하여 해결하는 데에 대단히 귀중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올바른 적용의 개념을 되풀이하여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잠재력은 중립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인간의 발전에 이용될 수도 있고 인간의 타락에 이용될 수도 있다.” 따라서,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여러 형태의 적용된 기술의 성격목적, 수단을 면밀히 조사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 기술을 진정으로 인류를 위하여 사용 하여야 하며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고 충만히 실현하는 도덕 원칙과 가치들에 그 기술을 종속시킬 수 있어야 한다.

 

459. A central point of reference for every scientific and technological application is respect for men and women, which must also be accompanied by a necessary attitude of respect for other living creatures. Even when thought is given to making some change in them, “one must take into account the nature of each being and of its mutual connection in an ordered system”.[962] In this sense, the formidable possibilities of biological research raise grave concerns, in that “we are not yet in a position to assess the biological disturbance that could result from indiscriminate genetic manipulation and from the unscrupulous development of new forms of plant and animal life, to say nothing of unacceptable experimentation regarding the origins of human life itself”.[963] In fact, “it is now clear that the application of these discoveries in the fields of industry and agriculture have produced harmful long-term effects. This has led to the painful realization that we cannot interfere in one area of the ecosystem without paying due attention both to the consequences of such interference in other areas and to the well-being of future generations”.[964]

459. 모든 과학적 기술적 적용의 핵심이 되는 준거는 인간에 대한 존중이며, 이는 다른 모든 생물체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수반하여야 한다. 생물체들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키려는 생각을 할 때에도 각 사물의 본성과 질서 있는 체제 안에서 그것이 지니는 상호 연관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생물학 연구의 엄청난 가능성들은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우리는 아직 무분별한 유전자 조작이나 비도덕적인 새로운 형태의 동식물 생명의 개발로 야기될 수도 있는 생물학적 혼란을 평가할 만한 입장에 있지 않으며, 인간 생명 그 자체의 기원에 관한 용납될 수 없는 실험에 대해서도 아직 무엇을 얘기할 만한 처지에 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산업과 농업 분야에서 이러한 발견들의 적용이 오랜 기간 폐해를 미치는 결과를 불러일으켜 왔다는 사실은 이제 분명해지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생태계의 한 영역에 개입할 때에 그러한 개입이 다른 영역에 미치는 결과와 미래 세대의 행복에 대하여 모두 마땅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이르게 되었다.”

 

460. Man, then, must never forget that “his capacity to transform and in a certain sense create the world through his own work ... is always based on God's prior and original gift of the things that are”.[965] He must not “make arbitrary use of the earth, subjecting it without restraint to his will, as though it did not have its own requisites and a prior God-given purpose, which man can indeed develop but must not betray”.[966] When he acts in this way, “instead of carrying out his role as a co-operator with God in the work of creation, man sets himself up in place of God and thus ends up provoking a rebellion on the part of nature, which is more tyrannized than governed by him”.[967]

460. 그러므로 자신의 노동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은, 자신의 노동이 언제나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물들의 본래의 선물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마치 땅에는 그 자체의 필요 조건들이나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목적이 없는 것처럼, 인간이 발전시킬 수는 있어도 배반하면 안 되는 그 땅을 무제한 임의로 사용하고, 자신의 의지에 종속시켜서는 안 된다. 그런 식으로 행동할 때, “인간은 세계에서 하느님의 협조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대신, 부당하게 하느님의 자리에 자신을 올려놓음으로써 자연의 반항을 자극하고, 자연을 다스리기보다는 자연의 억압을 받는다.”

 

If man intervenes in nature without abusing it or damaging it, we can say that he “intervenes not in order to modify nature but to foster its development in its own life, that of the creation that God intended. While working in this obviously delicate area, the researcher adheres to the design of God. God willed that man be the king of creation”.[968] In the end, it is God himself who offers to men and women the honour of cooperating with the full force of their intelligence in the work of creation.

인간이 자연을 남용하거나 손상하지 않고 자연에 개입한다면, 인간은 자연을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의 고유한 생명을 지닌 자연의 발전, 곧 하느님께서 의도하신 창조물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하여 개입하는 것이다. 명백히 신중을 요하는 이러한 분야에서 일하는 연구가는 하느님의 계획을 고수하여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창조물의 왕이 되기를 바라셨다.” 결국 인간에게 충만한 지력으로 창조 활동에 협력할 영예를 부여하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다.

 

 

III. THE CRISIS IN THE RELATIONSHIP BETWEEN MAN AND THE ENVIRONMENT

III. 인간과 환경의 위기 관계

 

461. The biblical message and the Church's Magisterium represent the essential reference points for evaluating the problems found in the relationship between man and the environment.[969] The underlying cause of these problems can be seen in man's pretension of exercising unconditional dominion over things, heedless of any moral considerations which, on the contrary, must distinguish all human activity.

461. 성경 메시지와 교회의 교도권은 인간과 환경의 관계에서 발견되는 문제점들을 평가하는 데에 본질적인 준거가 된다. 이러한 문제점들의 근본 원인은, 모든 인간 활동의 두드러진 특징이 되어야 하는 도덕적 고찰을 무시하고 사물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배를 주장하는 인간의 오만함에서 찾아볼 수 있다.

 

The tendency towards an “ill-considered” [970] exploitation of the resources of creation is the result of a long historical and cultural process. “The modern era has witnessed man's growing capacity for transformative intervention. The aspect of the conquest and exploitation of resources has become predominant and invasive, and today it has even reached the point of threatening the environment's hospitable aspect: the environment as ‘resource' risks threatening the environment as ‘home'. Because of the powerful means of transformation offered by technological civilization, it sometimes seems that the balance between man and the environment has reached a critical point”.[971]

창조 자원의 무분별한 착취 풍조는 오랜 역사적 문화적 과정의 결과이다. “현대는 변화를 이룰 수 있는 인간의 개입 능력이 증대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자원에 대한 정복과 착취의 양상이 주를 이루며 번져가고 있고, 오늘날에는 환경의 호의적 측면을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자원으로서의 환경이 서식지로서의 환경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 문명이 제공하는 강력한 변화의 수단 때문에 때때로 인간과 환경 사이의 균형이 위험한 지경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462. Nature appears as an instrument in the hands of man, a reality that he must constantly manipulate, especially by means of technology. A reductionistic conception quickly spread, starting from the presupposition which was seen to be erroneous that an infinite quantity of energy and resources are available, that it is possible to renew them quickly, and that the negative effects of the exploitation of the natural order can be easily absorbed. This reductionistic conception views the natural world in mechanistic terms and sees development in terms of consumerism. Primacy is given to doing and having rather than to being, and this causes serious forms of human alienation.[972]

462. 자연은 인간의 손안에 있는 도구이며, 인간이 특히 기술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조종하여야 하는 실재인 것처럼 보인다. 무한한 양의 에너지와 자원을 이용할 수 있고, 그것들을 신속히 재생할 수 있으며, 자연 질서의 착취에서 오는 부정적인 결과는 쉽게 완화될 수 있다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 환원주의적 개념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환원주의적 개념은 자연계를 기계론적 관점에서 보고, 개발을 소비주의적인 면에서 보며, 존재보다는 행위와 소유에 우위를 둠으로써 심각한 인간 소외 양상을 빚고 있다.

 

Such attitudes do not arise from scientific and technological research but from scientism and technocratic ideologies that tend to condition such research. The advances of science and technology do not eliminate the need for transcendence and are not of themselves the cause of the exasperated secularization that leads to nihilism. With the progress of science and technology, questions as to their meaning increase and give rise to an ever greater need to respect the transcendent dimension of the human person and creation itself.

그러한 태도는 과학 기술 연구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연구의 필요조건이 되기 쉬운 과학만능주의와 기술 중심주의 사상에서 생겨난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결코 초월성에 대한 요구를 없애지는 못하며, 그 자체가 허무주의에 이르게 하는 지나친 세속화의 원인은 아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그것들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 증대하고 있으며, 인간과 피조물 자체의 초월적 차원에 대한 존중의 필요성을 한층 더 높이고 있다.

 

463. A correct understanding of the environment prevents the utilitarian reduction of nature to a mere object to be manipulated and exploited. At the same time, it must not absolutize nature and place it above the dignity of the human person himself. In this latter case, one can go so far as to divinize nature or the earth, as can readily be seen in certain ecological movements that seek to gain an internationally guaranteed institutional status for their beliefs.[973]

463. 환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자연을 단지 조종하고 착취할 대상으로 격하시키는 공리주의적 시각을 막아준다. 그러나 한편 자연을 절대화하고 자연을 인간 자신의 존엄 위에 두는 태도도 삼가야 한다. 후자의 경우, 지나치면 자연이나 대지를 신격화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그러한 태도는 일부 환경 운동 단체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그들은 자기네 신념을 위하여 국제적으로 보장된 제도적 지위를 얻고자 애쓴다.

 

The Magisterium finds the motivation for its opposition to a concept of the environment based on ecocentrism and on biocentrism in the fact that “it is being proposed that the ontological and axiological difference between men and other living beings be eliminated, since the biosphere is considered a biotic unity of undifferentiated value. Thus man's superior responsibility can be eliminated in favour of an egalitarian consideration of the ‘dignity' of all living beings”.[974]

교도권이 생태중심주의와 생물중심주의에 입각한 환경 개념에 반대하는 이유는 생물권을 차별 없는 가치를 지닌 생물들의 통합체로 간주하여,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 사이의 존재론적이고 가치론적인 차이를 없애자는 제안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생명체의 동등한 존엄을 위하여 인간의 상위 책임이 배제될 수 있다.

 

464. A vision of man and things that is sundered from any reference to the transcendent has led to the rejection of the concept of creation and to the attribution of a completely independent existence to man and nature. The bonds that unite the world to God have thus been broken. This rupture has also resulted in separating man from the world and, more radically, has impoverished man's very identity. Human beings find themselves thinking that they are foreign to the environmental context in which they live. The consequences resulting from this are all too clear: “it is the relationship man has with God that determines his relationship with his fellow men and with his environment. This is why Christian culture has always recognized the creatures that surround man as also gifts of God to be nurtured and safeguarded with a sense of gratitude to the Creator. Benedictine and Franciscan spirituality in particular has witnessed to this sort of kinship of man with his creaturely environment, fostering in him an attitude of respect for every reality of the surrounding world”.[975] There is a need to place ever greater emphasis on the intimate connection between environmental ecology and “human ecology”.[976]

464. 인간과 사물을 초월적인 것과 관련짓지 않는 시각은 창조의 개념을 거부하게 하고 인간과 자연을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로 여기게 하였다. 그리하여 세상과 하느님을 일치시키는 유대가 끊어졌고, 그 결과 인간은 세상과 분리되었으며, 더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정체성 자체가 약화되었다. 인간은 스스로를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에 이질적인 존재로 느끼고 있다. 거기에서 파생되는 결과는 너무도 자명하다. “인간이 동료 인간이나 환경과 맺는 관계를 결정짓는 것은 바로 인간이 하느님과 맺는 관계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문화는 언제나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피조물을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로, 창조주께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기르고 보살펴야 할 존재로 인정해 왔다. 베네딕와 프란치스코 영성은 특히 인간이 피조물인 환경과 맺는 이러한 친밀한 관계를 증언해 왔으며, 인간에게 주변 세계의 모든 실재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길러 주었다.” 환경 생태학과 인간 생태학의 긴밀한 관계를 한층 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

 

465. The Magisterium underscores human responsibility for the preservation of a sound and healthy environment for all.[977] “If humanity today succeeds in combining the new scientific capacities with a strong ethical dimension, it will certainly be able to promote the environment as a home and a resource for man and for all men, and will be able to eliminate the causes of pollution and to guarantee adequate conditions of hygiene and health for small groups as well as for vast human settlements. Technology that pollutes can also cleanse, production that amasses can also distribute justly, on condition that the ethic of respect for life and human dignity, for the rights of today's generations and those to come, prevails”.[978]

465. 교도권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건전하고 건강한 환경을 보존할 인간의 책임을 강조한다. 오늘날의 인류가 새로운 과학 능력을 강력한 윤리적 차원에 성공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다면, 분명히 환경을 인간과 온 인류의 서식지이자 자원으로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며, 오염의 원인들을 없애고, 소규모 집단뿐만 아니라 방대한 인간 주거지를 위해서도 적절한 위생과 보건 상태를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생명과 인간 존엄, 오늘날의 세대만이 아니라 미래 세대들의 권리까지도 존중하는 윤리가 위세를 떨친다면, 오염의 원인인 기술은 청정의 도구가 될 수 있고, 축적된 생산품은 공평히 분배될 수 있을 것이다.”

 

 

IV. A COMMON RESPONSIBILITY

IV. 공동 책임

 

a. The environment, a collective good

. 집단의 선인 환경

 

466. Care for the environment represents a challenge for all of humanity. It is a matter of a common and universal duty, that of respecting a common good,[979] destined for all, by preventing anyone from using “with impunity the different categories of beings, whether living or inanimate animals, plants, the natural elements simply as one wishes, according to one's own economic needs”.[980] It is a responsibility that must mature on the basis of the global dimension of the present ecological crisis and the consequent necessity to meet it on a worldwide level, since all beings are interdependent in the universal order established by the Creator. “One must take into account the nature of each being and of its mutual connection in an ordered system, which is precisely the ‘cosmos' ”.[981]

466. 환경 보호는 온 인류의 과제이다. 그것은 공동의 보편적인 의무, 곧 공동선을 존중할 의무의 문제이다. 공동선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며, “생명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 동물, 식물, 자연 요소들 - 다양한 종류의 사물을 인간이 자기 원대로만, 자기의 경제적인 필요에만 의거하여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모든 존재는 창조주께서 세우신 우주의 질서 안에서 서로 의존하여 살아가므로, 세계적인 현재의 생태 위기의 근본 원인과 범세계적인 차원에서 그 위기에 대처할 당위성에 대하여 숙고하여야 할 책임이 있다. “각 사물의 본성과 그것이 질서 있는 체제, 정확하게 말해서 우주에서 차지하는 상호 연관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This perspective takes on a particular importance when one considers, in the context of the close relationships that bind the various parts of the ecosystem, the environmental value of biodiversity, which must be handled with a sense of responsibility and adequately protected, because it constitutes an extraordinary richness for all of humanity. In this regard, each person can easily recognize, for example, the importance of the Amazon, “one of the world's most precious natural regions because of its bio- diversity which makes it vital for the environmental balance of the entire planet”.[982] Forests help maintain the essential natural balance necessary for life.[983] Their destruction also through the inconsiderate and malicious setting of fires, accelerates the processes of desertification with risky consequences for water reserves and compromises the lives of many indigenous peoples and the well-being of future generations. All individuals as well as institutional subjects must feel the commitment to protect the heritage of forests and, where necessary, promote adequate programs of 이러한 전망은 생물 다양성이 지닌 환경적 가치를 생태계의 다양한 부분들 간의 긴밀한 관계 안에서 고려할 때 특별한 중요성을 띤다. 생물 다양성은 온 인류를 위한 놀라운 부요이므로, 책임감 있게 다루고 적절하게 보호하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예를 들면, “전 지구의 환경 균형에 매우 중요한 생물 다양성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자연 지역 가운데 하나인 아마존의 중요성을 누구나 쉽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삼림은 생명에 필요한 자연의 본질적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무분별하고 악랄한 산불 방화 행위를 통한 삼림의 파괴는 물 저장에 위태로운 결과를 가져오면서 사막화 과정을 가속화시키며, 수많은 토착민들의 생명과 미래 세대의 행복을 위협한다. 모든 개인과 제도권은 삼림 자산을 보호하고, 또 필요하면 적절한 재식림 계획을 추진하는 일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reforestation.

 

467. Responsibility for the environment, the common heritage of mankind, extends not only to present needs but also to those of the future. “We have inherited from past generations, and we have benefited from the work of our contemporaries: for this reason we have obligations towards all, and we cannot refuse to interest ourselves in those who will come after us, to enlarge the human family”.[984] This is a responsibility that present generations have towards those of the future,[985] a responsibility that also concerns individual States an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467. 인류의 공동 유산인 환경에 대한 책임은 현재의 요구만이 아니라 미래의 요구로까지 확대된다. 우리는 전 세대의 계승자로서 동 세대 동료들의 협력으로 성과를 거두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은 뒤에 인류 가족을 계속 융성케 할 후대 사람들에게 무관심할 수는 없다.” 이것은 미래 세대에 대한 현 세대의 책임이며, 개별 국가만이 아니라 국제 공동체와도 관계되는 책임이다.

 

468. Responsibility for the environment should also find adequate expression on a juridical level. It is important that the international community draw up uniform rules that will allow States to exercise more effective control over the various activities that have negative effects on the environment and to protect ecosystems by preventing the risk of accidents. “The State should also actively endeavour within its own territory to prevent destruction of the atmosphere and biosphere, by carefully monitoring, among other things, the impact of new technological or scientific advances ... [and] ensuring that its citizens are not exposed to dangerous pollutants or toxic wastes”.[986]

468. 환경에 대한 책임은 법률적 차원에서도 적절히 표현되어야 한다. 국제 공동체가, 국가들이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활동에 더욱 효과적인 제재를 가하고 재해 방지를 통하여 생태계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해 줄 표준 규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각국은 또한 자국 영토 내에서 그 무엇보다도 과학 기술 발달의 영향에 대한 신중한 감시를 통하여 대기권과 생물권의 파괴를 막아내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각국 정부는 그 국민들이 위험한 오염 물질이나 유독성 폐기물에 노출되지 않도록 안전을 보장하여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The juridical content of “the right to a safe and healthy natural environment” [987] is gradually taking form, stimulated by the concern shown by public opinion to disciplining the use of created goods according to the demands of the common good and a common desire to punish those who pollute. But juridical measures by themselves are not sufficient.[988] They must be accompanied by a growing sense of responsibility as well as an effective change of mentality and lifestyle.

안전하고 건강한 자연 환경에 대한 권리와 관련한 법 규정이 공동선의 요구와 오염의 주범자들을 처벌하려는 공통된 바람에 따라 창조 재화의 사용을 규제하려는 여론의 관심에 자극을 받아 점차 모양을 갖추어 가고 있다. 그러나 법적 수단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거기에는 책임감의 증대와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의 실질적인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469. The authorities called to make decisions concerning health and environmental risks sometimes find themselves facing a situation in which available scientific data are contradictory or quantitatively scarce. It may then be appropriate to base evaluations on the “precautionary principle”, which does not mean applying rules but certain guidelines aimed at managing the situation of uncertainty. This shows the need for making temporary decisions that may be modified on the basis of new facts that eventually become known. Such decisions must be proportional with respect to provisions already taken for other risks. Prudent policies, based on the precautionary principle require that decisions be based on a comparison of the risks and benefits foreseen for the various possible alternatives, including the decision not to intervene. This precautionary approach is connected with the need to encourage every effort for acquiring more thorough knowledge, in the full awareness that science is not able to come to quick conclusions about the absence of risk. The circumstances of uncertainty and provisional solutions make it particularly important that the decision-making process be transparent.

469. 건강과 환경 위기에 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당국자들은 때때로 이용할 수 있는 과학적 자료가 모순되거나 양적으로 극히 빈약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전 예방 원칙에 기초하여 평가를 내리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사전 예방 원칙이란 규율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몇 가지 지침을 내리는 것이다. 이는 잠정적인 결정, 곧 언젠가는 알려지게 될 새로운 사실들에 근거하여 바뀔 수도 있는 결정을 내릴 필요성을 보여 주며, 그러한 결정은 다른 위험들에 대비하여 이미 만들어진 규정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사전 예방 원칙에 기초한 신중한 정책들은, 개입하지 않을 결정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가능한 대안들에서 예견되는 위험과 이득을 비교하여 결정을 내리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사전 예방적 접근과 관련하여 과학이 위험 부재에 관한 신속한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여 더욱 철저한 지식을 얻기 위한 모든 노력을 장려하여야 한다. 불확실한 상황과 잠정적인 해결책은 의사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특히 중요하게 한다.

 

470. Programs of economic development must carefully consider “the need to respect the integrity and the cycles of nature” [989] because natural resources are limited and some are not renewable. The present rhythm of exploitation is seriously compromising the availability of some natural resources for both the present and the future.[990] Solutions to the ecological problem require that economic activity respect the environment to a greater degree, reconciling the needs of economic development with those of environmental protection. Every economic activity making use of natural resources must also be concerned with safeguarding the environment and should foresee the costs involved, which are “an essential element of the actual cost of economic activity”.[991] In this context, one considers relations between human activity and climate change which, given their extreme complexity, must be opportunely and constantly monitored at the scientific, political and juridical, national and international levels. The climate is a good that must be protected and reminds consumers and those engaged in industrial activity to develop a greater sense of responsibility for their behaviour.[992]

470. 경제 발전 계획은 자연의 주기와 통일성을 존중하여야 할 필요성을 주의 깊게 고려하여야 한다. 자연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일부는 재생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발전 속도는 현재와 미래에 일부 자연 자원의 이용 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생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경제 발전에 대한 요구와 환경 보호에 대한 요구를 조화시키면서 환경을 더욱 존중하는 경제 활동을 요구한다. 자연 자원을 이용하는 모든 경제 활동은 환경 보호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경제 활동의 실제 비용 요소관련 손실들을 예상하여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 활동과 기후 변화의 관계가 고려된다. 기후 변화의 극단적 복합성을 감안하여, 과학 정치 법률 국가 국제적 차원에서 기후 변화를 제 때에 지속적으로 감시하여야 한다. 기후는 보호하여야 할 선익이며, 소비자와 산업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행위에 대하여 더욱 큰 책임 의식을 기르도록 일깨워 준다.

 

An economy respectful of the environment will not have the maximization of profits as its only objective, because environmental protection cannot be assured solely on the basis of financial calculations of costs and benefits. The environment is one of those goods that cannot be adequately safeguarded or promoted by market forces.[993] Every country, in particular developed countries, must be aware of the urgent obligation to reconsider the way that natural goods are being used. Seeking innovative ways to reduce the environmental impact of production and consumption of goods should be effectively encouraged.

환경을 존중하는 경제는 이익의 극대화를 그 유일한 목표로 삼지 않는다. 환경 보호는 오로지 금전적인 손익 계산에 기초해서는 보장될 수 없기 때문이다. 환경은 시장의 힘으로 적절하게 보호하거나 증진시킬 수 없는 재화 가운데 하나이다. 모든 나라, 특히 선진국들은 자연 재화의 사용 방식을 재고할 절박한 의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재화의 생산과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을 찾도록 실질적으로 권장하여야 한다.

 

Particular attention will have to be reserved for the complex issues surrounding energy resources.[994] Non-renewable resources, which highly-industrialized and recently-industrialized countries draw from, must be put at the service of all humanity. From a moral perspective based on equity and intergenerational solidarity, it will also be necessary to continue, through the contribution of the scientific community, to identify new sources of energy, develop alternative sources and increase the security levels of nuclear energy.[995] The use of energy, in the context of its relationship to development and the environment, calls for the political responsibility of States,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nd economic actors. Such responsibility must be illuminated and guided by continual reference to the universal common good.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복잡한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선진 산업국들과 근래에 산업화된 나라들이 캐내는 비재생 자원들은 온 인류를 위하여 쓰여야 한다. 형평성과 세대간 연대에 기초한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과학 공동체의 기여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아내고, 대체 에너지원을 개발하며, 핵에너지의 보안 차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개발과 환경이라는 맥락 안에서 에너지를 사용하려면 각국과 국제 공동체, 경제 주역들의 정치적 책임이 요청된다. 보편적 공동선을 끊임없이 준거로 삼아 그러한 책임을 깨우치고 이끌어나가야 한다.

 

 

471. The relationship of indigenous peoples to their lands and resources deserves particular attention, since it is a fundamental expression of their identity.[996] Due to powerful agro-industrial interests or the powerful processes of assimilation and urbanization, many of these peoples have already lost or risk losing the lands on which they live,[997] lands tied to the very meaning of their existence.[998] The rights of indigenous peoples must be appropriately protected.[999] These peoples offer an example of a life lived in harmony with the environment that they have come to know well and to preserve.[1000] Their extraordinary experience, which is an irreplaceable resource for all humanity, runs the risk of being lost together with the environment from which they originate.

471. 토착민들이 그들의 땅이나 자원과 맺고 있는 관계에 특별한 관심을 쏟을 필요가 있다. 그러한 관계는 그들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강력한 농업 관련 산업의 세력 또는 동화와 도시화 과정 때문에, 많은 토착민들이 이미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을 잃어버렸거나 잃을 위험에 있다. 땅은 그들 존재의 의미 자체와 결부되어 있다. 토착민들의 권리는 적절히 보호받아야 한다. 이들 토착민들은 그들이 잘 알고 보존해 온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삶의 전형을 보여 준다. 온 인류의 대체할 수 없는 자원인 그들의 놀라운 경험이 그들의 근원인 환경과 함께 소멸될 위기에 있다.

 

 

b. The use of biotechnology

. 생명공학의 이용

 

472. In recent years pressing questions have been raised with regard to the use of new forms of biotechnology in the areas of agriculture, animal farming, medicine and environmental protection. The new possibilities offered by current biological and biogenetic techniques are a source of hope and enthusiasm on the one hand, and of alarm and hostility on the other. The application of various types of biotechnology, their acceptability from a moral point of view, their consequences for human health and their impact on the environment and the economy are the subject of thorough study and heated debate. These are controversial questions that involve scientists and researchers, politicians and legislators, economists and environmentalists, as well as producers and consumers. Christians are not indifferent to these problems, for they are aware of the importance of the values at stake.[1001]

472. 최근 들어 농업과 축산, 의학, 환경 보호 영역에서 새로운 형태의 생명 공학의 이용과 관련하여 절박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의 생물학과 생명 유전학 기술들이 제공하는 새로운 가능성들이 한편으로는 희망과 열의를 가져다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계와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생명 공학의 적용과 도덕적 관점의 수용, 그것들이 인간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환경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은 철저한 연구와 뜨거운 토론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한 문제들은 과학자, 연구가, 정치인, 법률가, 경제인, 환경론자, 생산자, 소비자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관련된 뜨거운 논쟁거리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이 문제들에 무관심하지 않다. 중요한 가치들이 위험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473. The Christian vision of creation makes a positive judgment on the acceptability of human intervention in nature, which also includes other living beings, and at the same time makes a strong appeal for responsibility.[1002] In effect, nature is not a sacred or divine reality that man must leave alone. Rather, it is a gift offered by the Creator to the human community, entrusted to the intelligence and moral responsibility of men and women. For this reason the human person does not commit an illicit act when, out of respect for the order, beauty and usefulness of individual living beings and their function in the ecosystem, he intervenes by modifying some of their characteristics or properties. Human interventions that damage living beings or the natural environment deserve condemnation, while those that improve them are praiseworthy. The acceptability of the use of biological and biogenetic techniques is only one part of the ethical problem: as with every human behaviour, it is also necessary to evaluate accurately the real benefits as well as the possible consequences in terms of risks. In the realm of technological-scientific interventions that have forceful and widespread impact on living organisms, with the possibility of significant long-term repercussions, it is unacceptable to act lightly or irresponsibly.

473. 그리스도교의 창조관은, 인간이 다른 생명체도 포함하고 있는 자연에 개입하는 것에 긍정적인 판단을 내리는 동시에 책임을 강하게 호소하고 있다. 사실, 자연은 인간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신성하거나 거룩한 실재이기보다는 창조주께서 인간 공동체에 주시고 인간의 지혜와 도덕적 책무에 맡기신 선물이다. 따라서 인간이 질서와 아름다움, 개별 생명체의 유용성, 생태계 내에서 그것들의 역할을 존중하면서 그것들에 개입하여 그 고유한 특성이나 성질의 일부를 바꾸는 것은 부당한 행위가 아니다. 생명체나 자연 환경을 훼손하는 인간의 개입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증진하는 행위는 칭찬받아야 한다. 생물학과 생명 유전학 기술의 이용을 허용하는 것은 윤리 문제의 일부분일 따름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 행위와 마찬가지로, 실질적 이익과 위험 가능한 결과를 정확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유기체에 강력하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며 장기간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기술적 과학적 개입 영역에서 가볍고 무책임한 행동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474. Modern biotechnologies have powerful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impact locally, nationally and internationally. They need to be evaluated according to the ethical criteria that must always guide human activities and relations in the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spheres.[1003] Above all the criteria of justice and solidarity must be taken into account. Individuals and groups who engage in research and the commercialization of the field of biotechnology must especially abide by these criteria. In any event, one must avoid falling into the error of believing that only the spreading of the benefits connected with the new techniques of biotechnology can solve the urgent problems of poverty and underdevelopment that still afflict so many countries on the planet.

474. 현대의 생명공학은 지역, 국가, 국제적으로 강력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영향을 미친다. 생명공학은, 사회 경제 정치 영역에서 언제나 인간 활동과 인간관계의 지침이 되어야 하는 윤리 기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의와 연대의 기준을 고려하여야 한다. 생명 공학 분야의 연구와 상업화에 관여하는 개인과 단체는 특히 이러한 기준을 지켜야 한다. 어떤 경우든, 새로운 생명 공학 기술과 연계된 이익을 확대하는 것만이 지구상의 수많은 나라들을 괴롭히는 빈곤과 저개발이라는 시급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 잘못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475. In a spirit of international solidarity, various measures can be taken in relation to the use of new biotechnologies. In the first place, equitable commercial exchange, without the burden of unjust stipulations, is to be facilitated. Promoting the development of the most disadvantaged peoples, however, will not be authentic or effective if it is reduced to the simple exchange of products. It is indispensable to foster the development of a necessary scientific and technological autonomy on the part of these same peoples, promoting the exchange of scientific and technological knowledge and the transfer of technologies to developing countries.

475. 국제적 연대의 정신에서, 새로운 생명 공학 기술의 이용과 관련하여 다양한 조처를 내려야 한다. 먼저, 부당한 규정을 지우지 말고 공평한 무역을 촉진하여야 한다. 그러나 가장 혜택 받지 못한 민족들의 발전을 증진하는 일이 단순히 생산물 교환에 그친다면 그러한 발전은 참되거나 실질적인 것이 되지 못할 것이다. 과학적 기술적 지식의 교류와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기술 이전을 촉진하여, 그러한 민족들에게 필요한 과학적 기술적 자율성을 신장키는 일이 필수적이다.

 

476. Solidarity also means appealing to the responsibility of developing countries, and in particular of their political leaders, for promoting trade policies that are favourable to their peoples and the exchange of technology that can improve the conditions of their food supply and health. In such countries, there must be an increase in research investment, with special attention to the particular characteristics and needs of their territory and population, above all by bearing in mind that some research in the area of biotechnology, which may be potentially beneficial, requires relatively modest investments. To this end it would be useful to establish national agencies responsible for protecting the common good by means of careful risk management.

476. 연대는 또한 개발도상국 국민들에게 유리한 무역 정책을 장려하고 그들의 식량 공급과 보건 상태를 개선할 수 있는 기술 교류를 증진하기 위하여 개발도상국들, 특히 그 국가의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에 호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 나라에서는 특히 잠재적 이익을 낼 수 있는 생명 공학 분야의 일부 연구가 비교적 저렴한 투자를 요구한다는 것에 유념하여, 그들 영토와 국민의 특성과 요구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 투자를 늘려야 한다. 그러려면 세심한 위험 관리를 통하여 공동선을 보호하기 위한 책임 있는 국가 기관들을 설립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477. Scientists and technicians involved in the field of biotechnology are called to work intelligently and with perseverance in seeking the best solutions to the serious and urgent problems of food supply and health care. They must not forget that their activity concerns material both living and inanimate that belongs to the patrimony of humanity and is destined also to future generations. For believers, it is a question of a gift received from the Creator and entrusted to human intelligence and freedom, which are themselves also gifts from heaven. It is hoped that scientists employ their energies and abilities in research characterized by enthusiasm and guided by a clear and honest conscience.[1004]

477. 생명 공학 분야에 관여하고 있는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식량 공급이나 보건과 같은 심각하고 절박한 문제들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을 찾는 일에 지혜롭고 끈기 있게 협력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활동이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인류의 유산에 속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한 요소와 관계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앙인들에게 그것은 창조주에게 받았고 그 자체가 천상의 선물이기도 한 인간의 지혜와 자유에 맡겨진 선물의 문제이다. 과학자들은 그들의 힘과 능력을 열정이 깃들고 깨끗하고 정직한 양심이 이끄는 연구에 쏟아 부을 것을 요구받고 있다.

 

478. Entrepreneurs and directors of public agencies involved in the research, production and selling of products derived from new biotechnologies must take into account not only legitimate profit but also the common good. This principle, which holds true for every type of economic activity, becomes particularly important for activities that deal with the food supply, medicine, health care and the environment. By their decisions, entrepreneurs and public agency directors involved in this sector can guide developments in the area of biotechnologies towards very promising ends as far as concerns the fight against hunger, especially in poorer countries, the fight against disease and the fight to safeguard the ecosystem, the common patrimony of all.

478. 새로운 생명 공학과 관련된 연구와 생산, 상품 판매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가들과 공공 기관 책임자들은 정당한 이익뿐만 아니라 공동선도 고려하여야 한다. 모든 형태의 경제 활동에 적용되는 이러한 원칙은 식량 공급, 의학, 보건, 환경 관련 활동에서 특히 중요해지고 있다. 이 분야에 관여하고 있는 기업가들과 공공 기관 책임자들은 그들의 결정으로써 특히 빈곤국들의 기아 퇴치와 질병 퇴치, 인류의 공동 유산인 생태계 보호 운동과 관련하여 생명 공학의 발전을 매우 낙관적인 결과로 이끌 수 있다.

 

479. Politicians, legislators and public administrators are responsible for evaluating the potentials benefits and possible risks connected with the use of biotechnologies. It is not desirable for their decisions, at the national or international level, to be dictated by pressure from special interest groups. Public authorities must also encourage a correctly informed public opinion and make decisions that are best-suited to the common good.

479. 정치인, 법률가, 행정가들은 생명 공학의 활용과 관계된 잠재적 이익과 위험 가능성을 판단할 책임이 있다. 그들의 결정이 국가적 또는 국제적 차원에서 특정 이익 집단의 압력을 받아 이루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공 당국자들은 정확한 정보에 입각한 여론을 조성하여야 하며, 공동선에 가장 적합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480. Leaders in the information sector also have an important task, which must be undertaken with prudence and objectivity. Society expects information that is complete and objective, which helps citizens to form a correct opinion concerning biotechnological products, above all because this is something that directly concerns them as possible consumers. The temptation to fall into superficial information, fuelled by over enthusiasm or unjustified alarmism, must be avoided.

480. 정보 분야의 지도자들도 신중하고 객관적으로 수행하여야 할 중요한 임무가 있다. 사회는 완전하고 객관적인 정보, 국민들이 생명 공학 제품과 관련하여 올바른 판단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보를 기대한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잠재적 소비자인 그들과 직접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열의나 부당한 기우에서 제공되는 피상적인 정보에 빠질 유혹을 회피하여야 한다.

 

c. The environment and the sharing of goods

. 환경과 재화의 분배

 

481. As regards the ecological question, the social doctrine of the Church reminds us that the goods of the earth were created by God to be used wisely by all. They must be shared equitably, in accordance with justice and charity. This is essentially a question of preventing the injustice of hoarding resources: greediness, be it individual or collective, is contrary to the order of creation.[1005] Modern ecological problems are of a planetary dimension and can be effectively resolved only through international cooperation capable of guaranteeing greater coordination in the use of the earth's resources.

481. 환경 문제와 관련하여 교회의 사회 교리는, 지상의 재화는 하느님께서 모든 이가 현명하게 사용하도록 창조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지상의 재화는 정의와 사랑에 입각하여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이는 본질적으로 자원의 부당한 축적을 예방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이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탐욕은 창조 질서에 위배된다. 현대의 환경 문제는 전 지구적 차원이며, 지상 자원의 사용에서 더욱 대등한 관계를 보장할 수 있는 국제 협력을 통해서만 효과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482. The environmental crisis and poverty are connected by a complex and dramatic set of causes that can be resolved by the principle of the 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which offers a fundamental moral and cultural orientation. The present environmental crisis affects those who are poorest in a particular way, whether they live in those lands subject to erosion and desertification, are involved in armed conflicts or subject to forced immigration, or because they do not have the economic and technological means to protect themselves from other calamities.

482. 환경 위기와 빈곤은 복잡하고 비극적인 일련의 원인들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한 원인들은 도덕적 문화적으로 근본적인 방향을 제공해 주는 재화의 보편적 목적이라는 원칙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 현재의 환경 위기는 특히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침식과 사막화를 겪고 있는 땅에 살고 있거나, 무력 충돌에 휘말려 있거나 강제 이민을 당하거나, 또는 다른 재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경제적 기술적 수단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Countless numbers of these poor people live in polluted suburbs of large cities, in make-shift residences or in huge complexes of crumbling and unsafe houses (slums, bidonvilles, barrios, favelas). In cases where it is necessary to relocate them, in order not to heap suffering upon suffering, adequate information needs to be given beforehand, with choices of decent housing offered, and the people directly involved must be part of the process.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 가난한 사람들이 대도시 근교의 오염 지역이나 임시 주거지 또는 허물어져가는 위태로운 집들이 모여 있는 대단위 밀집 지역(빈민굴, 변두리 판자촌, 히스패닉계 주거 지역, 브라질의 빈민가)에 살고 있다. 고통이 가중되지 않도록 그들을 다른 곳으로 이전시켜야 할 경우에는 사전에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여 알맞은 주거지를 선택할 수 있게 하여야 하며, 직접적인 관련자들을 그 과정에 참여시켜야 한다.

 

It is moreover necessary to keep in mind the situation of those countries that are penalized by unfair international trade regulations and countries with a scarcity of capital goods, often aggravated by the burden of the foreign debt. In such cases hunger and poverty make it virtually impossible to avoid an intense and excessive exploitation of the environment.

또한 불공정한 국제 무역 규정으로 궁지에 몰려 있는 나라들과 흔히 외채 부담의 악화로 자본 부족을 겪고 있는 나라들의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한 경우에 기아와 빈곤은 사실상 집중적이고 무절제한 환경 착취를 피할 수 없게 만든다.

 

483. The close link that exists between the development of the poorest countries, demographic changes and a sustainable use of the environment must not become a pretext for political and economic choices that are at variance with the dignity of the human person. In developed countries there is a “drop in the birth-rates, with repercussions on the aging of the population, unable even to renew itself biologically”.[1006] The situation is different in the developing countries where demographic changes are increasing. Although it is true that an uneven distribution of the population and of available resources creates obstacles to development and a sustainable use of the environment, it must nonetheless be recognized that demographic growth is fully compatible with an integral and shared development.[1007] “There is widespread agreement that a population policy is only one part of an overall development strategy. Accordingly, it is important that any discussion of population policies should keep in mind the actual and projected development of nations and regions. At the same time, it is impossible to leave out of account the very nature of what is meant by the term ‘development'. All development worthy of the name must be integral, that is, it must be directed to the true good of every person and of the whole person”.[1008]

483. 최빈국들의 개발, 인구 변화 그리고 환경의 지속 가능한 이용 사이의 밀접한 관계가 인간 존엄에 위배되는 정치적 경제적 선택의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선진국들에서는 출생률의 저하와 그것이 인구의 노령화라는 파급 효과를 내고 생물학상으로 이를 회복시키기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인구 변화가 빨라지고 있는 개발도상국들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인구와 이용 가능한 자원의 불균등한 분배가 개발과 환경의 지속 가능한 이용에 장애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구 성장과 통합적이고 공평한 개발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인구 정책은 종합적인 개발 전략의 일부분일 따름이라는 데에 폭넓은 동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모든 인구 정책 토론에서는 각 국가와 지역의 현실적이고 계획된 개발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개발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의 성격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다. 이름에 걸맞은 모든 개발은 통합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과 인간 전체(全人)의 참된 선을 지향하여야 한다.”

 

484. The principle of the 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also applies naturally to water, considered in the Sacred Scriptures as a symbol of purification (cf. Ps 51:4; Jn 13:8) and of life (cf. Jn 3:5; Gal 3:27). “As a gift from God, water is a vital element essential to survival; thus, everyone has a right to it”.[1009] Satisfying the needs of all, especially of those who live in poverty, must guide the use of water and the services connected with it. Inadequate access to safe drinking water affects the well-being of a huge number of people and is often the cause of disease, suffering, conflicts, poverty and even death. For a suitable solution to this problem, it “must be set in context in order to establish moral criteria based precisely on the value of life and the respect for the rights and dignity of all human beings”.[1010]

484. 재화의 보편적 목적이라는 원리는 성경에서 정화(시편 50[51],4; 요한 13,8)와 생명(요한 3,5; 갈라 3,27)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는 물에도 당연히 적용된다.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인 물은 생존에 필수적인 활력소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물에 대한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물 사용과 물 관련 시설 이용의 지침이 되어야 한다. 안전한 식수를 충분히 마실 수 없다는 것은 무수한 사람들의 복지에 영향을 미치며, 흔히 질병과 고통, 분쟁, 빈곤, 심지어는 죽음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 문제의 적절한 해결책을 위해서는 이 문제를 생명의 가치와 모든 인간의 권리와 존엄에 대한 존중에 토대를 둔 도덕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맥락 안에 두어야 한다.”

 

485. By its very nature water cannot be treated as just another commodity among many, and it must be used rationally and in solidarity with others. The distribution of water is traditionally among the responsibilities that fall to public agencies, since water is considered a public good. If water distribution is entrusted to the private sector it should still be considered a public good. The right to water,[1011] as all human rights, finds its basis in human dignity and not in any kind of merely quantitative assessment that considers water as a merely economic good. Without water, life is threatened. Therefore, the right to safe drinking water is a universal and inalienable right.

485. 본성상 물은 다른 많은 필수품 가운데 하나로 취급받아서는 안 되며, 합리적으로 또 다른 사람들과 공동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물은 공공의 선으로 여겨지므로 물 분배는 전통적으로 공공 기관의 책임에 속한다. 물 분배를 민간 영역에 맡기더라도 물은 계속해서 공공의 선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물에 대한 권리는 모든 인간 권리와 마찬가지로 인간 존엄에 그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지. 물을 경제적 효용 가치로만 여기는 단순한 양적 평가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이 없으면 생명은 위협을 받는다. 그러므로 안전한 식수에 대한 권리는 보편적이며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다.

 

d. New lifestyles

. 새로운 생활양식

 

486. Serious ecological problems call for an effective change of mentality leading to the adoption of new lifestyles,[1012] “in which the quest for truth, beauty, goodness and communion with others for the sake of the common good are the factors that determine consumer choices, savings and investments”.[1013] These lifestyles should be inspired by sobriety, temperance, and self-discipline at both the individual and social levels. There is a need to break with the logic of mere consumption and promote forms of agricultural and industrial production that respect the order of creation and satisfy the basic human needs of all. These attitudes, sustained by a renewed awareness of the interdependence of all the inhabitants of the earth, will contribute to eliminating the numerous causes of ecological disasters as well as guaranteeing the ability to respond quickly when such disasters strike peoples and territories.[1014] The ecological question must not be faced solely because of the frightening prospects that environmental destruction represents; rather it must above all become a strong motivation for an authentic solidarity of worldwide dimensions.

486. 심각한 환경 문제들은 진리와 미와 선의 추구와 공동선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과 맺는 친교가 소비, 절약 그리고 투자의 선택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채택하도록 이끄는 사고방식의 실질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이러한 생활양식은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검약, 절제, 자제로 생겨나야 한다. 단순한 소비 논리를 깨야 하며, 창조 질서를 존중하고 모든 인간의 기본 요구를 충족시키는 농산품과 공산품을 장려하여야 한다. 지상의 모든 사람은 상호 의존한다는 것을 새로이 깨우침으로써 오는 이러한 태도는 수많은 생태계 재난의 원인을 근절하고, 그러한 재난이 인간과 영토를 덮칠 때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보장해 줄 것이다. 환경 문제에 대처하는 이유가 오로지 환경 파괴가 가져오는 무서운 전망 때문이어는 안 된다. 환경 문제는 무엇보다도 범세계적 차원의 참된 연대를 촉구하는 강력한 동기가 되어야 한다.

 

487. The attitude that must characterize the way man acts in relation to creation is essentially one of gratitude and appreciation; the world, in fact, reveals the mystery of God who created and sustains it. If the relationship with God is placed aside, nature is stripped of its profound meaning and impoverished. If on the other hand, nature is rediscovered in its creaturely dimension, channels of communication with it can be established, its rich and symbolic meaning can be understood, allowing us to enter into its realm of mystery. This realm opens the path of man to God, Creator of heaven and earth. The world presents itself before man's eyes as evidence of God, the place where his creative, providential and redemptive power unfolds.

487. 감사와 존중의 태도는 본질적으로 피조물에 대한 인간의 행동 양식이 되어야 한다. 사실 세상은 그 세상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는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낸다. 하느님과 이루는 관계가 고려되지 않을 때 자연은 그 깊은 의미를 잃어버리고 황폐해진다. 반면에, 자연을 피조물의 차원에서 재발견한다면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 수 있으며, 자연의 풍요롭고 상징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자연의 신비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 영역은 인간이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열어준다. 하느님의 창조적 섭리적 구속적 권능이 펼쳐지는 곳, 인간의 눈앞에 있는 세상은 그 자체로 하느님에 대한 증거이다.

 

 

  영한편집 작업 : 김수진(아나스타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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