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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한비교 간추린 사회교리

 

 

제11장 (488~520항) - 평화 증진

조회 수 1458 추천 수 0 2016.05.23 12:45:52

 

CHAPTER ELEVEN / 11

 

THE PROMOTION OF PEACE

평화 증진

 

 

I. BIBLICAL ASPECTS

I. 성경적 측면

 

488. Before being God's gift to man and a human project in conformity with the divine plan, peace is in the first place a basic attribute of God: “the Lord is peace” (Jdg 6:24). Creation, which is a reflection of the divine glory, aspires to peace. God created all that exists, and all of creation forms a harmonious whole that is good in its every part (cf. Gen 1:4,10,18,21,25,31). Peace is founded on the primary relationship that exists between every human being and God himself, a relationship marked by righteousness (cf. Gen 17:1). Following upon the voluntary act by which man altered the divine order, the world experienced the shedding of blood and division. Violence made its appearance in interpersonal relationships (cf. Gen 4:1-16) and in social relationships (cf. Gen 11:1-9). Peace and violence cannot dwell together, and where there is violence, God cannot be present (cf. 1 Chr 22:8-9).

488. 평화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며, 하느님의 계획에 부합하는 인간의 계획이기 이전에 먼저 하느님의 근본 속성이다. 주님은 평화이시다”(판관 6,24). 하느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피조물은 평화를 염원한다. 하느님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모든 피조물은 그 각 부분마다 훌륭하고 조화로운 전체를 이룬다(창세 1,4.10.18.21.25.31 참조). 평화는 모든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근본적인 관계, 곧 흠 없음을 특징으로 하는 관계(창세 17,1 참조)에 토대를 둔다. 하느님의 질서를 바꾼 인간의 자발적 행위에 따라 세상은 피 흘림과 분열을 겪었다. 인간 관계(창세 4,1-16 참조)와 사회 관계(창세 11,1-9 참조)에서는 폭력이 출현하였다. 평화와 폭력은 공존할 수 없으며, 폭력이 있는 곳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실 수 없다(1역대 22,8-9 참조).

 

489. In biblical revelation, peace is much more than the simple absence of war; it represents the fullness of life (cf. Mal 2:5). Far from being the work of human hands, it is one of the greatest gifts that God offers to all men and women, and it involves obedience to the divine plan. Peace is the effect of the blessing that God bestows upon his people: “The Lord lift up his countenance upon you, and give you peace” (Num 6:26). This peace produces fruitfulness (Is 48:19), well-being (cf. Is 48:18), prosperity (cf. Is 54:13), absence of fear (cf. Lev 26:6) and profound joy (cf. Pr 12:20).

489. 성경의 계시에서,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훨씬 넘어서서, 생명의 충만함을 나타낸다(말아 2,5 참조). 평화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의 하나이며, 하느님의 계획에 대한 순종을 내포한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는 축복의 결과이다. “주님께서 너희를 고이 보시어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민수 6,26). 이 평화는 풍요와(이사 48,19 참조) 안녕과(48,18 참조) 번영과(이사 54,13 참조) 마음의 안정(레위 26,6 참조) 그리고 충만한 기쁨(잠언 12,20 참조)을 낳는다.

 

490. Peace is the goal of life in society, as is made extraordinarily clear in the messianic vision of peace: when all peoples will go up to the Lord's house, and he will teach them his ways and they will walk along the ways of peace (cf. Is 2:2-5). A new world of peace that embraces all of nature is the promise of the messianic age (cf. Is 11:6-9), and the Messiah himself is called “Prince of peace” (Is 9:5). Wherever his peace reigns, wherever it is present even in part, no longer will anyone be able to make the people of God fearful (cf. Zeph 3:13). It is then that peace will be lasting, because when the king rules according to God's justice, righteousness flourishes and peace abounds “till the moon be no more” (Ps 72:7). God longs to give peace to his people: “he will speak of peace to his people, to his saints, to those who turn to him in their hearts” (Ps 85:9). Listening to what God has to say to his people about peace, the Psalmist hears these words: “Steadfast love and faithfulness will meet; righteousness and peace will kiss” (Ps 85:11).

490. 메시아의 평화관에 놀랍도록 명백히 드러나듯이, 평화는 사회생활의 목표이다. 모든 민족이 주님의 집에 올라가면, 주님께서 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쳐 주시고, 그들은 평화의 길을 따라 걷게 될 것이다(이사 2,2-5 참조). 천지만물을 포용하는 평화의 새 세상은 메시아 시대에 대한 약속이며(이사 11,6-9 참조), 메시아는 평화의 임금”(이사 9,5)이라 불린다. 그분의 평화가 다스리는 곳이면, 부분적으로라도 평화가 있는 곳이면, 그 누구도 더 이상 하느님 백성을 두렵게 하지 못할 것이며(스바 3,13 참조), 평화가 지속될 것이다. 임금이 하느님의 정의에 따라 다스릴 때에 의로움이 꽃피고 저 달이 다하도록”(시편 71[72],7) 평화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평화를 주시고 싶어 하신다. “주 하느님 말씀을 내 듣고 싶사오니, 정녕 평화를 말씀하시나이다. 주님의 백성과 성도들에게, 그 마음 주님께 돌아오는 이들에게”(시편 84[85],9).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평화에 대하여 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 시편 저자는 이러한 말씀을 듣는다. “자비와 충성이 마주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함께 입맞추리라.”(시편 84[85],151).

 

491. The promise of peace that runs through the entire Old Testament finds its fulfilment in the very person of Jesus. Peace, in fact, is the messianic attribute par excellence, in which all other beneficial effects of salvation are included. The Hebrew word “shalom” expresses this fullness of meaning in its etymological sense of “completeness” (cf. Is 9:5ff; Mic 5:1-4). The kingdom of the Messiah is precisely the kingdom of peace (cf. Job 25:2; Ps 29:11; 37:11; 72:3,7; 85:9,11; 119:165; 125:5, 128:6; 147:14; Song 8:10; Is 26:3,12; 32:17f.; 52:7; 54:10; 57:19; 60:17; 66:12; Hag 2:9; Zech 9:10; et al.). Jesus “is our peace” (Eph 2:14). He has broken down the dividing wall of hostility among people, reconciling them with God (cf. Eph 2:14-16). This is the very effective simplicity with which Saint Paul indicates the radical motivation spurring Christians to undertake a life and a mission of peace.

491. 구약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평화에 대한 약속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 평화는 사실 메시아의 탁월한 속성이며, 구원의 다른 모든 유익한 결과를 내포하고 있다. 히브리어의 살롬’(shalom)완성’(이사 9,5 이하; 미카 5,1-4 참조)의 어원적 의미를 충만히 나타낸다. 메시아의 나라는 바로 평화의 나라이다(25,2; 시편 28[29],11; 36[37],11; 71[72],3.7; 84[85],9.11; 118[119],165; 125[125],5; 127[128],6; 146[147],14; 아가 8,10; 이사 26,3.12; 32,17 이하; 52,7; 54.10; 57,19; 60,17; 66,12; 하깨 2,9; 즈가 9,10 등 참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평화”(에페 2,14)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 증오의 벽을 허무셨고, 그들을 하느님과 화해시키셨다(에페 2,14-16 참조). 바오로 성인은 이러한 매우 효과적인 단순성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평화의 삶과 사명을 시작하도록 부추기며 근본적인 동기를 부여해 준다.

 

On the eve of his death, Jesus speaks of his loving relation with the Father and the unifying power that this love bestows upon his disciples. It is a farewell discourse which reveals the profound meaning of his life and can be considered a summary of all his teaching. The gift of peace is the seal on his spiritual testament: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to you; not as the world gives do I give to you” (Jn 14:27). The words of the Risen Lord will not be any different; every time that he meets his disciples they receive from him the greeting and gift of peace: “Peace be with you” (Lk 24:36; Jn 20:19,21,26).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날 밤, 당신과 아버지의 사랑의 관계와 이 사랑이 당신 제자들에게 부여해 주는 일치의 힘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그것은 당신 삶의 깊은 의미를 드러내 주는 작별의 말이며, 당신의 모든 가르침을 요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평화의 선물은 그분이 영적으로 남기신 유언에 대한 보증이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요한 14,27).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도 조금도 다르지 않다. 제자들은 주님을 만날 때마다 주님에게서 평화의 인사와 선물을 받는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루카 24,36; 요한 20,19.21.26).

 

492. The peace of Christ is in the first place reconciliation with the Father, which is brought about by the ministry Jesus entrusted to his disciples and which begins with the proclamation of peace: “Whatever house you enter, first say, ‘Peace be to this house!”' (Lk 10:5; cf. Rom 1:7). Peace is then reconciliation with one's brothers and sisters, for in the prayer that Jesus taught us, the “Our Father”, the forgiveness that we ask of God is linked to the forgiveness that we grant to our brothers and sisters: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Mt 6:12). With this twofold reconciliation Christians can become peacemakers and therefore participate in the Kingdom of God, in accordance with what Jesus himself proclaims in the Beatitudes: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shall be called children of God” (Mt 5:9).

492. 그리스도의 평화는 가장 먼저 아버지와 화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맡기신 직무를 통하여 이루어지며, 평화의 선포로 시작된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댁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여라.”(루카 10,5; 로마 1,7 참조). 그러므로 평화는 자기 형제자매들과 화해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가 하느님께 청하는 용서는 우리가 형제자매들에게 베푸는 용서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마태 6,12). 이 이중의 화해로써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의 사도가 될 수 있으며 따라서 예수님께서 참 행복에서 선포하신 말씀처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마태 5,9).

 

493. Working for peace can never be separated from announcing the Gospel, which is in fact the “good news of peace” (Acts 10:36; cf. Eph 6:15) addressed to all men and women. At the centre of “the gospel of peace” (Eph 6:15) remains the mystery of the cross, because peace is born of Christ's sacrifice (cf. Is 53:5) “Upon him was the chastisement that made us whole, and with his stripes we were healed”. The crucified Jesus has overcome divisions, re-establishing peace and reconciliation, precisely through the cross, “thereby bringing the hostility to an end” (Eph 2:16) and bringing the salvation of the Resurrection to mankind.

493.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것은 사실 모든 사람에게 평화에 대한 기쁜 소식”(사도 10,36; 에페 6,15 참조)인 복음을 선포하는 일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평화의 복음’(에페 6,15)의 중심에는 십자가의 신비가 깃들어 있다. 평화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 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 주었구나”(이사 53,5).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십자가를 통하여 분열을 극복하시고 평화와 화해를 회복하심으로써 원수 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에페 2,16) 하시고, 인류에게 부활의 구원을 가져다 주셨다.

 

 

 

II. PEACE: FRUIT OF JUSTICE AND LOVE

II. 평화: 정의와 사랑의 열매

 

494. Peace is a value [1015] and a universal duty [1016] founded on a rational and moral order of society that has its roots in God himself, “the first source of being, the essential truth and the supreme good”.[1017] Peace is not merely the absence of war, nor can it be reduced solely to the maintenance of a balance of power between enemies.[1018] Rather it is founded on a correct understanding of the human person [1019] and requires the establishment of an order based on justice and charity.

494. 평화는 바로 하느님 안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회의 이성적 도덕적 질서 위에 세워진 가치이며 보편적 의무이다. 하느님은 존재의 일차적 근원이시며, 근본 진리이시고, 최고의 선이시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가 아니며, 적대 세력간의 균형 유지로 격하될 수도 없다. 그보다 평화는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하며, 정의와 사랑에 기초한 질서의 확립을 요구한다.

 

Peace is the fruit of justice,[1020] (cf. Is 32:17) understood in the broad sense as the respect for the equilibrium of every dimension of the human person. Peace is threatened when man is not given all that is due him as a human person, when his dignity is not respected and when civil life is not directed to the common good. The defence and promotion of human rights is essential for the building up of a peaceful society and the integral development of individuals, peoples and nations.[1021]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며(이사 32,17 참조), 넓은 의미에서는 인간의 모든 차원의 균형에 대한 존중으로 이해된다. 평화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모든 것을 받지 못할 때, 인간의 존엄이 존중받지 못하고 시민 생활이 공동선을 지향하지 않을 때 위협을 받는다. 인권 수호와 증진은 평화로운 사회 건설과 개인과 민족과 국가의 완전한 발전에 본질적인 것이다.

 

Peace is also the fruit of love. “True and lasting peace is more a matter of love than of justice, because the function of justice is merely to do away with obstacles to peace: the injury done or the damage caused. Peace itself, however, is an act and results only from love”.[1022]

평화는 또한 사랑의 열매이다. 참되고 지속적인 사랑은 정의의 열매라기보다는 사랑의 열매이다. 정의의 역할은 단지 모욕을 가하거나 손해를 입히는 것과 같은 평화의 장애물을 없애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 그 자체는 사랑의 행위이며 사랑에서만 나올 수 있다.”

 

495. Peace is built up day after day in the pursuit of an order willed by God[ 1023] and can flourish only when all recognize that everyone is responsible for promoting it.[1024] To prevent conflicts and violence, it is absolutely necessary that peace begin to take root as a value rooted deep within the heart of every person. In this way it can spread to families and to the different associations within society until the whole of the political community is involved.[1025] In a climate permeated with harmony and respect for justice, an authentic culture of peace [1026] can grow and can even pervade the entire international community. Peace is, consequently, the fruit of “that harmony structured into human society by its Divine Founder and which must be actualized by men as they aspire for ever greater justice”.[1027] Such an ideal of peace “cannot be obtained on earth unless the welfare of man is safeguarded and people freely and trustingly share with one another the riches of their minds and their talents”.[1028]

495. 평화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질서의 추구를 통해 날마다 조금씩 이룩되는 것이고, 모든 사람이 평화 증진에 대한 책임을 인식할 때에만 꽃필 수 있다. 분쟁과 폭력을 막으려면, 평화를 모든 사람의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가치로 뿌리 내리게 하는 일이 절대 필요하다. 그럴 때에 평화는 가정과 또 사회 내의 다양한 집단들로 확산되고 결국 정치 공동체 전체의 참여로 이어질 수 있다. 화합과 정의에 대한 존중이 배어 있는 분위기에서 참된 평화의 문화가 자라나고 국제 공동체 전체에 널리 퍼질 수 있다. 따라서 평화는 인간 사회의 창설자이신 하느님께서 심어 놓으신 그 질서의 열매, 또 언제나 더 완전한 정의를 갈망하는 인간들이 행동으로 실천하여야 할 사회 질서의 열매이다. 그러한 평화의 이상은 개인의 행복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사람들이 신뢰로써 정신과 재능의 자산을 서로 나누지 않는다면, 지상에서 얻을 수 없다.”

 

496. Violence is never a proper response. With the conviction of her faith in Christ and with the awareness of her mission, the Church proclaims “that violence is evil, that violence is unacceptable as a solution to problems, that violence is unworthy of man. Violence is a lie, for it goes against the truth of our faith, the truth of our humanity. Violence destroys what it claims to defend: the dignity, the life, the freedom of human beings”.[1029]

496. 폭력은 결코 적절한 대응이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확신하고, 자신의 사명을 인식하여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폭력은 악이며, 폭력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고, 폭력은 인간에게 걸맞지 않는 것이다. 폭력은 우리가 믿는 진리, 우리 인간에 관한 진리와 상충되기 때문에 거짓이다. 폭력은 그것이 수호한다고 주장하는 것들, 곧 인간의 존엄과 생명, 자유를 파괴한다.”

 

The contemporary world too needs the witness of unarmed prophets, who are often the objects of ridicule.[1030] “Those who renounce violence and bloodshed and, in order to safeguard human rights, make use of those means of defence available to the weakest, bear witness to evangelical charity, provided they do so without harming the rights and obligations of other men and societies. They bear legitimate witness to the gravity of the physical and moral risk of recourse to violence, with all its destruction and death”.[1031]

현대 세계도 흔히 조소의 대상인 맨몸의 예언자들의 증언을 필요로 한다. 난폭하고 무자비한 행위를 포기하고, 인간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서 가장 약한 사람들이 취하는 방어 수단을 택하는 사람들은 복음의 사랑을 증언하는 이들이다. 여기에는 다만 타인과 사회의 권리와 의무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그 사람들은 폭력에 의지하는 것이 파괴와 죽음을 포함하여, 대단히 큰 물질적, 정신적 위험을 몰고 온다는 것을 정당하게 증언한다.”

 

 

 

III. THE FAILURE OF PEACE: WAR

III. 평화의 실패: 전쟁

 

497. The Magisterium condemns “the savagery of war” [1032] and asks that war be considered in a new way.[1033] In fact, “it is hardly possible to imagine that in an atomic era, war could be used as an instrument of justice”.[1034] War is a “scourge” [1035] and is never an appropriate way to resolve problems that arise between nations, “it has never been and it will never be”,[1036] because it creates new and still more complicated conflicts.[1037] When it erupts, war becomes an “unnecessary massacre”,[1038] an “adventure without return”[1039] that compromises humanity's present and threatens its future. “Nothing is lost by peace; everything may be lost by war”.[1040] The damage caused by an armed conflict is not only material but also moral.[1041] In the end, war is “the failure of all true humanism”,[1042] “it is always a defeat for humanity”: [1043] “never again some peoples against others, never again! ... no more war, no more war!” [1044]

497. 교도권은 전쟁의 야만성을 비난하며, 전쟁을 새롭게 여기도록 요구한다. 사실상, “원자핵 시대에 전쟁을 정의의 도구로 이용할 수 있다고는 거의 상상할 수 없다.” 전쟁은 재앙이고, 결코 국가 간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길이 아니며, “지금껏 한 번도 그러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결코 그러지 못할 것이다. 전쟁은 새롭고 더욱 복잡한 분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전쟁이 발발하면, 그것은 불필요한 대량 학살이 되고 되돌릴 수 없는 모험이 되어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위협한다. “평화로는 잃을 게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전쟁으로는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무력 전쟁으로 발생하는 피해는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도덕적인 것이기도 있다. 결국, 전쟁은 진정한 모든 인도주의의 실패이며, “언제나 인류에게 좌절을 안겨 주는 것이다. “결코 다시는 일부 민족들이 다른 민족들과 대적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 이상, 더 이상 전쟁은 없어야 한다.”

 

498. Seeking alternative solutions to war for resolving international conflicts has taken on tremendous urgency today, since “the terrifying power of the means of destruction to which even medium and small-sized countries have access and the ever closer links between the peoples of the whole world make it very difficult or practically impossible to limit the consequences of a conflict”.[1045] It is therefore essential to seek out the causes underlying bellicose conflicts, especially those connected with structural situations of injustice, poverty and exploitation, which require intervention so that they may be removed. “For this reason, another name for peace is development. Just as there is a collective responsibility for avoiding war, so too there is a collective responsibility for promoting development”.[1046]

498. 오늘날 국제적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쟁에 대한 대안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이 대단히 시급하다. 작은 나라들에게도 공급될 수 있는 파괴 수단의 가공할 위력과 전 세계 국민들 간의 더욱 밀접한 관계는 전쟁의 영향을 국한하는 것을 어렵게 하거나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 그러므로 호전적 전쟁, 특히 불의와 빈곤, 착취와 같은 구조적 상황과 관련되어 있고 그러한 상황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개입이 요구되는 전쟁들의 밑바닥에 깔린 원인들을 파헤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평화의 다른 이름은 발전이다. 전쟁을 방지하는 것이 모든 이의 책임이듯이, 발전을 촉진시키는 것도 모든 이의 책임이다.”

 

499. States do not always possess adequate means to provide effectively for their own defence, from this derives the need and importance of international and regional organizations, which should be in a position to work together to resolve conflicts and promote peace, re-establishing relationships of mutual trust that make recourse to war unthinkable.[1047] “There is reason to hope ... that by meeting and negotiating, men may come to discover better the bonds that unite them together, deriving from the human nature which they have in common; and that they may also come to discover that one of the most profound requirements of their common nature is this: that between them and their respective peoples it is not fear which should reign but love, a love which tends to express itself in a collaboration that is loyal, manifold in form and productive of many benefits”.[1048]

499. 국가들이 자기 방어를 위한 적절한 수단을 항상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분쟁 해결과 평화 증진을 위하여 협력하고, 전쟁에 대한 의존은 생각할 수도 없게 하는 상호 신뢰 관계를 재확립할 위치에 있어야 하는 국제 기구와 지역 기구가 필요하고 중요하다.따라서 인간들은 공통적 인간성에서 나오는 유대 관계를 더욱 잘 깨닫고, 인간의 공통적 본성의 가장 깊은 요구의 하나인, 민족과 개인 간의 관계가 공포가 아닌 사랑으로 다스려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희망하는 이유가 있다. 사랑은 많은 선익을 가져오며, 수많은 형태의 성실한 협조로 풍요로운 결실을 맺기 때문이다

 

 

a. Legitimate defence

. 정당방위

 

500. A war of aggression is intrinsically immoral. In the tragic case where such a war breaks out, leaders of the State that has been attacked have the right and the duty to organize a defence even using the force of arms.[1049] To be licit, the use of force must correspond to certain strict conditions: “the damage inflicted by the aggressor on the nation or community of nations must be lasting, grave and certain; all other means of putting an end to it must have been shown to be impractical or ineffective; there must be serious prospects of success; the use of arms must not produce evils and disorders graver than the evil to be eliminated. The power of modern means of destruction weighs very heavily in evaluating this condition. These are the traditional elements enumerated in what is called the ‘just war' doctrine. The evaluation of these conditions for moral legitimacy belongs to the prudential judgment of those who have responsibility for the common good”.[1050 ]

500. 침략 전쟁은 본질적으로 비도덕적이다. 그러한 전쟁이 발발하는 비극적 경우에, 침략을 받은 국가 지도자들은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방어를 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무력 사용이 정당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엄격한 조건들에 부합하여야 한다. “공격자가 국가나 국제 공동체에 가한 피해가 계속적이고 심각하며 확실해야 한다. 이를 제지할 다른 모든 방법들이 실행 불가능하거나 효력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야 한다. 성공의 조건들이 수립되어야 한다. 제거되어야 할 악보다 더 큰 악과 폐해가 무력 사용으로 초래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 판단에서 현대 무기의 파괴력을 신중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이 조건들이 이른바 정당한 전쟁에 대한 교리에서 열거되는 전통적 요소들이다. 이 같은 도덕적 정당성의 조건들에 대한 평가는 공동선의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의 신중한 판단에 달렸다.”

 

If this responsibility justifies the possession of sufficient means to exercise this right to defence, States still have the obligation to do everything possible “to ensure that the conditions of peace exist, not only within their own territory but throughout the world”.[1051] It is important to remember that “it is one thing to wage a war of self-defence; it is quite another to seek to impose domination on another nation. The possession of war potential does not justify the use of force for political or military objectives. Nor does the mere fact that war has unfortunately broken out mean that all is fair between the warring parties”.[1052]

이러한 책임이 방위 권리를 행사할 충분한 수단의 소유를 정당화할 경우, 국가들은 국의 영토 안에서 뿐 아니라 전 세계 평화 유지를 위한 여건들을 보장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일 의무가 있다. 또한 다음의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을 정당하게 보호하려는 군사 행동과 타국을 정복하고자 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또한 전쟁 능력이 그 힘의 모든 군사적 정치적 사용을 정당화시키지 않는다. 불행히도 전쟁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전쟁 그 자체로 적대 편의 모든 행동이 허용되는 것도 아니다.”

 

501. The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born from the tragedy of the Second World War with the intention of preserving future generations from the scourge of war, is based on a generalized prohibition of a recourse to force to resolve disputes between States, with the exception of two cases: legitimate defence and measures taken by the Security Council within the area of its responsibilities for maintaining peace. In every case, exercising the right to self-defence must respect “the traditional limits of necessity and proportionality”.[1053]

501. 2차 세계대전의 비극 후 미래 세대들에게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게 하려는 의도에서 생겨난 국제연합 헌장은 국가 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무력에 의존하는 것을 전반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단 두 가지 경우는 예외이다. 곧 정당방위와, 평화 유지에 대한 책임 범위 안에서 안전보장이사회가 내리는 조치들이다. 어떤 경우이든 정당방위권을 행사할 때는 필요균형이라는 전통적인 한계를 존중하여야 한다.

 

Therefore, engaging in a preventive war without clear proof that an attack is imminent cannot fail to raise serious moral and juridical questions. International legitimacy for the use of armed force, on the basis of rigorous assessment and with well-founded motivations, can only be given by the decision of a competent body that identifies specific situations as threats to peace and authorizes an intrusion into the sphere of autonomy usually reserved to a State.

그러므로 공격이 임박하다는 명확한 증거 없이 방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도덕적 법률적으로 반드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무력 사용은 엄격한 평가를 토대로, 동기의 근거가 충분한 경우에만, 관할 기구의 결정을 통해서 국제적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 관할 기구는 특수한 상황을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여, 보통 어느 한 국가에 속하는 자율적 영역을 침범할 수 있도록 허가한다.

 

 

b. Defending peace

. 평화 수호

 

502. The requirements of legitimate defence justify the existence in States of armed forces, the activity of which should be at the service of peace. Those who defend the security and freedom of a country, in such a spirit, make an authentic contribution to peace.[1054] Everyone who serves in the armed forces is concretely called to defend good, truth and justice in the world. Many are those who, in such circumstances, have sacrificed their lives for these values and in defence of innocent lives. Very significant in this regard is the increasing number of military personnel serving in multinational forces on humanitarian or peace-keeping missions promoted by the United Nations.[1055]

502. 정당 방위의 요구는 국가들 안에 군대의 존재를 정당화한다. 군사 행위는 평화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한 정신으로 한 나라의 안전과 자유를 수호하는 사람들은 평화에 참된 기여를 하는 것이다. 군에서 복무하는 모든 사람은 전 세계의 선과 진리, 정의를 수호하도록 실제적으로 부름 받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가치들을 위하여 그리고 무고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기 생명을 희생해 왔다. 이런 점에서, 국제연합이 증진하는 인도주의적인 평화 유지 사명을 위하여 다국적군에 복무하는 군인들의 수가 점점 늘고 있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다.

 

503. Every member of the armed forces is morally obliged to resist orders that call for perpetrating crimes against the law of nations and the universal principles of this law.[1056] Military personnel remain fully responsible for the acts they commit in violation of the rights of individuals and peoples, or of the norms of 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 Such acts cannot be justified by claiming obedience to the orders of superiors.

503. 모든 군인은 도덕적으로 국제법과 이 법의 보편적 원리에 위배되는 범죄를 행하도록 요구하는 명령에 불복할 의무가 있다. 군인들은 개인과 민족의 권리나 국제 인도주의 법의 규범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하여 전적인 책임이 있다. 그러한 행위는 상급자의 명령에 복종한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정당화될 수 없다.

 

Conscientious objectors who, out of principle, refuse military service in those cases where it is obligatory because their conscience rejects any kind of recourse to the use of force or because they are opposed to the participation in a particular conflict, must be open to accepting alternative forms of service. “It seems just that laws should make humane provision for the case of conscientious objectors who refuse to carry arms, provided they accept some other form of community service”.[1057]

군복무가 의무인 경우에도 양심에 따라 모든 종류의 무력 사용을 거부하거나 특정한 전쟁에 참가하는 것에 반대하여 원칙적으로 군복무를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대안적 형태의 복무를 받아들여야 한다. 양심의 동기에서 무기 사용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위한 법률을 인간답게 마련하여, 인간 공동체에 대한 다른 형태의 봉사를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c. The duty to protect the innocent

. 무고한 생명을 보호할 의무

 

504. The right to use force for purposes of legitimate defence is associated with the duty to protect and help innocent victims who are not able to defend themselves from acts of aggression. In modern conflicts, which are often within a State, the precepts of 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 must be fully respected. Far too often, the civilian population is hit and at times even becomes a target of war. In some cases, they are brutally massacred or taken from their homes and land by forced transfers, under the guise of “ethnic cleansing”,[1058] which is always unacceptable. In such tragic circumstances, humanitarian aid must reach the civilian population and must never be used to influence those receiving it; the good of the human person must take precedence over the interests of the parties to the conflict.

504. 정당 방위의 목적으로 무력을 사용할 권리는 침략 행위에서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무고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도와줄 의무와 연관되어 있다. 흔히 한 국가 내에서 발생하는 현대적 전쟁에서는 국제 인도주의 법의 규범이 온전히 존중되어야 한다. 민간인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빈번하며, 때로는 이들이 전쟁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어떤 경우, 민간인들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인종 청소의 구실 아래 자기 집이나 땅에서 강제 이동되거나 잔인하게 학살되기도 한다. 그러한 비극적 상황에서는, 민간인들에게 인도주의적 도움의 손길이 미쳐야 하지만 그러한 도움이 결코 그 수혜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선익은 전쟁 당사자들의 이익에 우선하여야 한다.

 

505. The principle of humanity inscribed in the conscience of every person and all peoples includes the obligation to protect civil populations from the effects of war. “That minimum protection of the dignity of every person, guaranteed by 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 is all too often violated in the name of military or political demands which should never prevail over the value of the human person. Today we are aware of the need to find a new consensus on humanitarian principles and to reinforce their foundation to prevent the recurrence of atrocities and abuse”.[1059]

505.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의 양심에 새겨진 박애의 원칙에는 민간인을 전쟁의 영향에서 보호할 의무가 포함되어 있다. 국제 인도주의 법으로 보장된, 모든 인간의 존엄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조차도 군사적 정치적 요구의 명목으로 빈번히 침해받고 있다. 그러한 요구들이 결코 인간의 가치에 우선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우리는 인도주의 원칙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내고, 잔학 행위와 학대의 재발을 막고자 원칙의 토대를 강화하여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A particular category of war victim is formed by refugees, forced by combat to flee the places where they habitually live and to seek refuge in foreign countries. The Church is close to them not only with her pastoral presence and material support, but also with her commitment to defend their human dignity: “Concern for refugees must lead us to reaffirm and highlight universally recognized human rights, and to ask that the effective recognition of these rights be guaranteed to refugees”.[1060]

특수한 범주의 전쟁 희생자는 난민들이다. 이들은 전쟁 때문에 자기들이 살던 곳에서 도망쳐 외국에서 피난처를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다. 교회는 사목적 현존과 물질적 지원만이 아니라 그들의 인간 존엄을 수호하려는 노력을 통하여 그들과 가까이 있다. “우리가 난민들에게 관심을 갖는다면, 보편적으로 인정된 인권들을 재천명하고 강조하여야 하며, 인권 존중이 난민들에게도 실제적으로 보장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506. Attempts to eliminate entire national, ethnic, religious or linguistic groups are crimes against God and humanity itself, and those responsible for such crimes must answer for them before justice.[1061] The twentieth century bears the tragic mark of different genocides: from that of the Armenians to that of the Ukrainians, from that of the Cambodians to those perpetrated in Africa and in the Balkans. Among these, the Holocaust of the Jewish people, the Shoah, stands out: “the days of the Shoah marked a true night of history, with unimaginable crimes against God and humanity”.[1062]

506. 민족, 인종, 종교 또는 언어 집단 전체를 말살하려는 시도는 하느님과 인류 전체에 대한 범죄이며, 그러한 범죄의 책임자들은 정의 앞에서 그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한다.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대학살에서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대학살에 이르기까지, 캄보디아인들에 대한 대학살에서 아프리카와 발칸 반도에서 자행된 대학살에 이르기까지 20세기는 갖가지 대학살의 비극적 흔적을 지니고 있다. 이 가운데, 인 대학살(Shoah)은 특히 두드러진다. “인 대학살 기간은 하느님과 인류에 대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범죄로 얼룩진 참으로 어두운 역사의 밤이었다.”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s a whole has the moral obligation to intervene on behalf of those groups whose very survival is threatened or whose basic human rights are seriously violated. As members of an international community, States cannot remain indifferent; on the contrary, if all other available means should prove ineffective, it is “legitimate and even obligatory to take concrete measures to disarm the aggressor”.[1063] The principle of national sovereignty cannot be claimed as a motive for preventing an intervention in defence of innocent victims.[1064] The measures adopted must be carried out in full respect of international law and the fundamental principle of equality among States.

국제 공동체 전체는 생존 자체를 위협받거나 인간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받는 집단들을 위하여 개입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국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각국은 무관심하게 있어서는 안 되며, 반대로 이용 가능한 다른 모든 수단이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침략자를 무장 해제 시키고자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정당하며, 나아가 이는 의무이기도 하다.” 국가의 주권 원칙이 무고한 희생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개입을 저지하는 동기로 주장되어서는 안 된다. 채택된 조치는 국제법과 국가간의 기본적인 동등 원칙을 온전히 존중하며 실행되어야 한다.

 

There is also present with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n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to punish those responsible for particularly serious acts such as genocide, crimes against humanity, war crimes and crimes of aggression. The Magisterium has not failed to encourage this initiative time and again.[1065]

또한 국제 공동체 내에는 대학살, 인류에 대한 범죄, 전쟁 범죄, 침략 행위와 같은 특히 중대한 범죄 행위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한 국제 형사 법원이 존재한다. 교도권은 이러한 활동을 거듭 권장해 왔다.

 

 

d. Measures against those who threaten peace

. 평화를 위협하는 사람들에 대한 제재 조치

 

507. Sanctions, in the forms prescribed by the contemporary international order, seek to correct the behaviour of the government of a country that violates the rules of peaceful and ordered international coexistence or that practises serious forms of oppression with regard to its population. The purpose of these sanctions must be clearly defined and the measures adopted must from time to time be objectively evaluated by the competent bodies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s to their effectiveness and their real impact on the civilian population. The true objective of such measures is open to the way to negotiation and dialogue. Sanctions must never be used as a means for the direct punishment of an entire population: it is not licit that entire populations, and above all their most vulnerable members, be made to suffer because of such sanctions. Economic sanctions in particular are an instrument to be used with great discernment and must be subjected to strict legal and ethical criteria.[1066] An economic embargo must be of limited duration and cannot be justified when the resulting effects are indiscriminate.

507. 오늘날의 국제 질서가 규정한 형태의 제재는 평화와 질서 위에 세워진 국제 공존의 규칙을 침해하거나 자기 국민을 심각하게 억압하는 국가 정부의 행위를 바로잡아 주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제의 목적이 명확히 규정되어야 하며, 국제 공동체의 관할 기구들은 때때로 채택된 조치들의 효율성과 그 조치들이 민간인들에게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여야 한다. 그러한 조치들의 참된 목적은 협상과 대화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제재가 결코 국민 전체에 대한 직접적 처벌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 전체, 특히 그 가장 취약한 구성원들이 그러한 제재로 고통 받게 되는 것은 정당한 일이 아니다. 특히 경제적 제재는 지극히 신중하게 사용되어야 하는 수단이며, 엄격한 합법적 윤리적 기준을 따라야 한다. 경제 봉쇄는 기간이 한정적이어야 하며, 그에 따른 효과가 뚜렷하지 않을 때는 정당화될 수 없다.

 

 

e. Disarmament

. 군비 축소

 

508. The Church's social teaching proposes the goal of “general, balanced and controlled disarmament”.[1067] The enormous increase in arms represents a grave threat to stability and peace. The principle of sufficiency, by virtue of which each State may possess only the means necessary for its legitimate defence, must be applied both by States that buy arms and by those that produce and furnish them.[1068] Any excessive stockpiling or indiscriminate trading in arms cannot be morally justified. Such phenomena must also be evaluated in light of international norms regarding the non-proliferation, production, trade and use of different types of arms. Arms can never be treated like other goods exchanged on international or domestic markets.[1069]

508. 교회의 사회 교리는 균형 있고 절도 있는 전반적인 군비 축소를 목표로 제시한다. 엄청난 양의 무기 증가는 안전과 평화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각국이 정당방위에 필요한 수단만을 소유할 수 있게 하는 필요충족의 원칙은 무기 구매국들뿐만 아니라 무기 생산국들과 판매국들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지나친 무기 비축이나 무분별한 무기 거래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한 현상은 갖가지 형태의 무기 생산과 거래, 사용 그리고 확산 방지에 관한 국제 규범에 비추어 평가되어야 한다. 무기는 결코 국제 시장이나 국내 시장에서 교류되는 다른 재화들과 똑같이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Moreover, the Magisterium has made a moral evaluation of the phenomenon of deterrence. “The accumulation of arms strikes many as a paradoxically suitable way of deterring potential adversaries from war. They see it as the most effective means of ensuring peace among nations. This method of deterrence gives rise to strong moral reservations. The arms race does not ensure peace. Far from eliminating the causes of war, it risks aggravating them”.[1070] Policies of nuclear deterrence, typical of the Cold War period, must be replaced with concrete measures of disarmament based on dialogue and multilateral negotiations.

또한 교도권은 전쟁 억지 현상에 대하여 도덕적 평가를 해 왔다. “많은 사람들은 무기 비축을 가상의 적에게 전쟁을 단념하도록 하는 역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것을 국가 간의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가장 유효한 것으로 여긴다. 그렇지만 그 같은 전쟁 억제 수단과 관련하여 막중한 도덕적 제약이 가해지고 있다. 군비 경쟁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며,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보다는 오히려 증대시킬 위험이 있다.” 냉전 기간의 전형적인 핵 억지 정책은 대화와 다자간 협상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군비 축소 조치로 대체되어야 한다.

 

509. Arms of mass destruction whether biological, chemical or nuclear represent a particularly serious threat. Those who possess them have an enormous responsibility before God and all of humanity.[1071] The principle of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arms, together with measures of nuclear disarmament and the prohibition of nuclear tests, are intimately interconnected objectives that must be met as soon as possible by means of effective controls at the international level.[1072] The ban on the development, production, stockpiling and use of chemical and biological weapons as well as the provisions that require their destruction, complete the international regulatory norms aimed at banning such baleful weapons,[1073] the use of which is explicitly condemned by the Magisterium: “Any act of war aimed indiscriminately at the destruction of entire cities or extensive areas along with their population is a crime against God and man himself. It merits unequivocal and unhesitating condemnation”.[1074]

509. 대량 살상 무기 - 생화학 무기나 핵무기 - 는 특히 심각한 위협이 된다. 그러한 무기들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은 하느님과 온 인류에게 엄청난 책임이 있다. 핵무기 확산 방지 원칙과 핵군축, 핵실험 금지 조치의 목적은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며, 국제적 차원의 효율적인 통제로써 가능한 한 신속히 이러한 목적이 달성되어야 한다. 생화학 무기의 개발과 생산과 비축에 대한 금지령과 그것들의 파괴를 요구하는 규정들은, 교도권이 사용을 명백히 단죄하는 살상 무기들의 금지를 위한 국제 규약과 규범들을 완전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도시 전체나 광범한 지역과 그 주민들에게 무차별 파괴를 자행하는 모든 전쟁 행위는 하느님을 거스르고 인간 자신을 거스르는 범죄이다. 이는 확고히 또 단호히 단죄 받아야 한다.”

 

510. Disarmament must include the banning of weapons that inflict excessively traumatic injury or that strike indiscriminately. This includes anti- personnel landmines, a type of small arm that is inhumanly insidious because it continues to cause harm even long after the cessation of hostilities. States that produce them, sell them and continue to use them are responsible for seriously delaying the total elimination of these death-dealing weapons.[1075] The international community must continue its committed efforts aimed at mine-clearance, fostering effective cooperation including education and technical training with those countries that do not have adequate means to clear their territory of mines with all due urgency and that are not able to offer the necessary assistance to victims of mines.

510. 군축에는, 지나치게 심각한 외상을 입히는 무기나 무차별적인 공격 무기들에 대한 금지가 포함되어야 한다. 여기에 포함되는 것은 대인 지뢰와 전쟁이 끝난 오랜 뒤에도 잠복성 질병을 유발하는 비인간적인 소형 무기 등이다. 그러한 무기들을 생산하고 판매하며 계속해서 사용하는 국가들은 이러한 살상 무기들의 완전한 폐기를 심각하게 지연시키는 데에 대한 책임이 있다. 국제 공동체는 지뢰 제거를 위한 헌신적인 노력을 계속하여야 하며, 자기네 영토 내에서 시급히 지뢰를 제거할 마땅한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며 지뢰 희생자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능력도 없는 나라들과 교육과 기술 훈련을 포함하여 효과적인 협력을 촉진하여야 한다.

 

511. Appropriate measures are needed to control the production, sale, importation and exportation of small arms and light weapons, armaments that facilitate many outbreaks of violence to occur. The sale and trafficking of such weapons constitute a serious threat to peace: these arms kill and are used for the most part in internal and regional conflicts; their ready availability increases both the risk of new conflicts and the intensity of those already underway. The position of States that apply severe controls on the international transfer of heavy arms while they never, or only very rarely, restrict the sale and trafficking of small arms and light weapons is an unacceptable contradiction. It is indispensable and urgent that Governments adopt appropriate measures to control the production, stockpiling, sale and trafficking of such arms [1076] in order to stop their growing proliferation, in large part among groups of combatants that are not part of the military forces of a State.

511. 폭력의 빈번한 발생을 조장하는 소형 무기와 경무기, 중무기들의 생산과 판매, 수입과 수출을 통제할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한 무기들의 판매와 거래는 평화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이 무기들은 대부분 내란과 지역 분쟁에서 살상용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의 즉각적인 효용성은 새로운 분쟁 위험을 증가시킬 뿐더러 이미 진행되고 있는 분쟁들을 더욱 악화시킨다. 국제간의 중무기 이동에 대해서는 엄격한 통제를 적용하면서도 자신들은 소형무기와 경무기의 판매와 거래를 제한하는 일이 없거나 극히 드문 경우에만 제한하는 국가들의 입장은 용납될 수 없는 모순이다. 각국 정부는 그러한 무기들의 생산과 비축, 판매와 거래를 통제하기 위한 적절한 법안을 채택하여, 일국의 군대에 소속되지 않은 비정규 전투원 집단 사이에 그러한 무기들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가고 있는 것을 반드시 또 시급히 막아야 한다.

 

512. The use of children and adolescents as soldiers in armed conflicts despite the fact that their young age should bar them from being recruited must be condemned. Obliged by force to take part in combat or choosing to do so on their own initiative without being fully aware of the consequences, these children are not only deprived of an education and a normal childhood, they are also trained to kill. This constitutes an intolerable crime. The use of child soldiers in combat forces of any kind must be stopped and, at the same time, every possible assistance must be given to the care, education and rehabilitation of those children who have been involved in combat[1077].

512. 미성년자의 징병을 금지하고 있음에도 무력 전쟁에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군인으로 이용하는 일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강제로 전투에 참가하는 어린이든 아니면 결과에 대한 충분한 인식 없이 자진하여 전투에 참가하는 어린이든, 이들 어린이들은 교육의 기회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어린 시절을 보낼 기회도 빼앗기고, 단지 죽이는 훈련만 받는다. 이것은 용납할 수 없는 범죄이다. 어떤 종류의 전투이든 어린이를 전투에 이용하는 일은 중단되어야 하며, 동시에 이미 전투에 참가한 적이 있는 어린이들의 보호와 교육, 재활에 가능한 한 모든 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

 

 

f. The condemnation of terrorism

. 테러리즘의 단죄

 

513. Terrorism is one of the most brutal forms of violence traumatizing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oday; it sows hatred, death, and an urge for revenge and reprisal.[1078] From being a subversive strategy typical of certain extremist organizations, aimed at the destruction of material goods or the killing of people, terrorism has now become a shadowy network of political collusion. It can also make use of sophisticated technology, often has immense financial resources at its disposal and is involved in large- scale planning, striking completely innocent people who become chance victims of terrorist actions.[1079] The targets of terrorist attacks are generally places of daily life and not military objectives in the context of a declared war. Terrorism acts and strikes under the veil of darkness, with no regard for any of the rules by which men have always sought to set limits to conflicts, for example through 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 “in many cases, terrorist methods are regarded as new strategies of war”[1080]. Nor must we overlook the causes that can lead to such unacceptable forms of making demands. The fight against terrorism presupposes the moral duty to help create those conditions that will prevent it from arising or developing.

513. 테러리즘은 오늘날의 국제 공동체에 깊은 충격을 주는 가장 잔인한 형태의 폭력 가운데 하나이다. 테러리즘은 증오와 죽음의 씨를 뿌리고, 복수와 보복을 부른다. 재산의 파괴나 살인을 목표로 하는 일부 극단주의 조직들의 전형적인 파괴 전략인 테러리즘은 이제 정치적 공모의 검은 고리가 되었다. 테러리즘은 또한 최첨단 기술을 이용하고, 흔히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고 있으며, 운 나쁘게 테러 행위의 희생자가 되는 전적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공격하는 대규모 계획과 관련되어 있다. 테러 공격의 목표는 선전 포고된 전쟁에서 군사 시설이 아니라, 대체로 일상적인 삶의 장소들이다. 테러리즘은 어둠의 그늘에 숨어 행동하고 공격하며, 국제 인도주의 법과 같이 전쟁 제한을 추구해 온 모든 법규들을 무시한다. “여러 경우에 테러리즘 수단의 사용이 마치 새로운 전쟁 방법인 양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 우리는 그러한 용납할 수 없는 형태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행위의 원인들을 간과하여서는 안 된다. 테러리즘에 대한 싸움은 테러리즘이 발생하거나 발전하지 못하게 할 조건들을 만들어 줄 도덕적 의무를 전제로 한다.

 

514. Terrorism is to be condemned in the most absolute terms. It shows complete contempt for human life and can never be justified, since the human person is always an end and never a means. Acts of terrorism strike at the heart of human dignity and are an offence against all humanity; “there exists, therefore, a right to defend oneself from terrorism”.[1081] However, this right cannot be exercised in the absence of moral and legal norms, because the struggle against terrorists must be carried out with respect for human rights and for the principles of a State ruled by law.[1082] The identification of the guilty party must be duly proven, because criminal responsibility is always personal, and therefore cannot be extended to the religions, nations or ethnic groups to which the terrorists belong. International cooperation in the fight against terrorist activity “cannot be limited solely to repressive and punitive operations. It is essential that the use of force, even when necessary, be accompanied by a courageous and lucid analysis of the reasons behind terrorist attacks”.[1083] Also needed is a particular commitment on the “political and educational levels” [1084] in order to resolve, with courage and determination, the problems that in certain dramatic circumstances can foster terrorism: “the recruitment of terrorists in fact is easier in situations where rights are trampled and injustices are tolerated over a long period of time”[1085].

514. 테러리즘은 단호히 단죄되어야 한다. 그것은 철저한 인명 무시를 보여주므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인간은 언제나 목적이지 결코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테러리즘은 인간 존엄을 철저히 파괴하는 전 인류에 대한 범죄이다. “그러므로 테러리즘에서 자신을 지킬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는 도덕적 법률적 규범이 없이 행사되어서는 안 된다. 테러와의 싸움은 인권과 법치 국가의 원리를 존중하며 실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범죄 집단의 정체는 충분히 입증되어야 한다. 범죄의 책임은 언제나 개인에게 있으므로 테러범들이 속해 있는 종교나 국가 또는 인종 집단으로 그 책임이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 테러리즘 퇴치를 위한 국제적 협력이 단순히 억압과 징벌을 위한 군사 행동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무력 사용이 필요한 경우라도 테러 공격의 이면에 숨은 이유를 용기 있고 명확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일부 비극적인 상황에서 테러리즘을 더욱 부추길 수 있는 문제들을 용기 있고 결단력 있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교육적 차원에서 특별한 노력이 요구된다. “사실 오랜 기간 동안 권리가 짓밟히고 불의가 묵인되는 상황에서는 테러범들을 모집하기가 더욱 쉽다.”

 

515. It is a profanation and a blasphemy to declare oneself a terrorist in God's name.[1086] In such cases, God, and not only man, is exploited by a person who claims to possess the totality of God's truth rather than one who seeks to be possessed by the truth. To define as “martyrs” those who die while carrying out terrorist attacks distorts the concept of martyrdom, which is the witness of a person who gives himself up to death rather than deny God and his love. Martyrdom cannot be the act of a person who kills in the name of God.

515.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신을 테러범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모독이며 불경이다. 그러한 경우에는, 진리가 자신을 소유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진리를 전부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이름이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테러 공격을 자행하다가 죽는 사람들을 순교자라고 정의하는 것은,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랑을 부인하기보다는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의 증언인 순교의 개념을 왜곡하는 것이다. 순교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살인을 하는 사람의 행위가 될 수 없다.

 

No religion may tolerate terrorism and much less preach it.[1087] Rather, religions must work together to remove the causes of terrorism and promote friendship among peoples[1088].

어떤 종교도 테러리즘을 용인하지 않으며, 그것을 전파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오히려 종교들은 테러리즘의 원인을 제거하고 민족들 간에 우애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력하여야 한다.

 

 

 

IV. THE CONTRIBUTION OF THE CHURCH TO PEACE

IV. 평화에 대한 교회의 기여

 

516. The promotion of peace in the world is an integral part of the Church's mission of continuing Christ's work of redemption on earth. In fact, the Church is, in Christ, a “ ‘sacrament' or sign and instrument of peace in the world and for the world”.[1089] The promotion of true peace is an expression of Christian faith in the love that God has for every human being. From a liberating faith in God's love there arises a new vision of the world and a new way of approaching others, whether the other is an individual or an entire people. It is a faith that transforms and renews life, inspired by the peace that Christ left to his disciples (cf. Jn 14:27). Moved solely by this faith, the Church intends to promote the unity of Christians and a fruitful cooperation with believers of other religions. Differences of religion must not be a cause of conflict; the shared quest for peace on the part of all believers is a vital source of unity among peoples.[1090] The Church calls on individuals, peoples, States and nations to share her concern for re-establishing and consolidating peace, placing particular emphasis on the important role of international law[1091].

516. 세계 평화의 증진은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을 계속해 나가는 교회 사명의 필수적인 한 부분이다. 사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이며, 세상 안에서 세상을 위한 평화의 표지이며 도구이다. 참 평화의 증진은 모든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표현이다. 해방을 주는, 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에서 새로운 세계관이 생겨나며, 개인과 민족을 불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린다. 신앙은 삶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며, 그리스도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남겨 주신 평화로 채워 준다(요한 14,27 참조). 오로지 이러한 믿음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증진하고 타종교 신자들과 결실 있는 협력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종교의 차이가 분쟁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신자의 공통된 평화 추구는 민족들 간의 일치를 가져다주는 중요한 원천이다. 교회는 개인과 민족, 국가와 국민들에게 평화를 재확립하고 공고히 하는 일에 대한 교회의 관심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며, 국제법의 중요한 역할을 특별히 강조한다.

 

517. The Church teaches that true peace is made possible only through forgiveness and reconciliation.[1092] It is not easy to forgive when faced with the consequences of war and conflict because violence, especially when it leads “to the very depths of inhumanity and suffering”,[1093] leaves behind a heavy burden of pain. This pain can only be eased by a deep, faithful and courageous reflection on the part of all parties, a reflection capable of facing present difficulties with an attitude that has been purified by repentance. The weight of the past, which cannot be forgotten, can be accepted only when mutual forgiveness is offered and received; this is a long and difficult process, but one that is not impossible[1094].

517. 교회는, 참 평화는 오로지 용서와 화해를 통해서만 가능해진다고 가르친다. 전쟁과 분쟁의 참혹한 결과를 마주할 때 용서하기가 쉽지 않다. 폭력은, 특히 그것이 잔인성과 고통의 가장 밑바닥에 이를 때, 고통의 무거운 짐을 지우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통은 전쟁 당사자 모두의 깊고 진실하며 용기 있는 반성, 참회로 깨끗해진 마음가짐으로 현재의 어려움에 맞설 수 있는 반성을 통해서만 없어질 수 있다. 용서받을 수 없는 과거의 짐은 오직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을 때에만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은 길고 힘든 과정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518. Mutual forgiveness must not eliminate the need for justice and still less does it block the path that leads to truth. On the contrary, justice and truth represent the concrete requisites for reconciliation. Initiatives aimed at establishing international judicial bodies are therefore appropriate. In virtue of the principle of universal jurisdiction and guided by suitable procedural norms that respect the rights of the accused and of the victims, such bodies are able to ascertain the truth about crimes perpetrated during armed conflicts.[1095] However, in order to re-establish relationships of mutual acceptance between divided peoples in the name of reconciliation, it is necessary to go beyond the determination of criminal behaviour, both of commission and omission, and the procedures for seeking reparation.[1096] It is necessary, moreover, to promote respect for the right to peace. This right “encourages the building of a society in which structures of power give way to structures of cooperation, with a view to the common good”[1097].

518. 상호 용서가 정의에 대한 요구를 묵살해서는 안 되며, 진실에 이르는 길을 막아서는 더더욱 안 된다. 그와 반대로, 정의와 진실은 화해에 필요한 실질적 조건들이다. 따라서 국제 사법 기구들의 설립을 위한 활동은 적절한 것이다. 그러한 기구들은, 보편적 사법권의 원칙과 피고희생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적절한 소송 규범에 따라, 무력 충돌 기간에 자행된 범죄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 그러나 화해의 이름으로 분열된 민족간의 상호 수용 관계를 재확립하려면, 부작위이든 작위든 범죄 행위에 대한 결정과 배상 절차를 해결하여야 한다. 또한 평화에 대한 권리를 더욱 존중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권리는 힘의 구조가 공동선을 위하여 협력의 구조에 양보하는 사회를 건설하도록 장려하기 때문이다.”

 

519. It is through prayer that the Church engages in the battle for peace. Prayer opens the heart not only to a deep relationship with God but also to an encounter with others marked by respect, understanding, esteem and love.[1098] Prayer instils courage and lends support to all “true friends of peace”,[1099] those who love peace and strive to promote it in the various circumstances in which they live. Liturgical prayer is “the summit towards which the action of the Church tends and, at the same time, the source from which she draws her strength”.[1100] In particular, the Eucharistic celebration, “the source and summit of the Christian life”[1101], is a limitless wellspring for all authentic Christian commitment to peace[1102].

519. 교회는 기도를 통하여 평화를 위한 투쟁에 참여한다. 기도는 마음을 열어 하느님과 깊은 관계를 맺게 할 뿐만 아니라, 존중과 이해, 존경과 사랑의 태도로 다른 이들을 만나게 해 준다. 기도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모든 평화의 참된 친구들”, 곧 평화를 사랑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다양한 환경에서 평화를 증진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준다. 전례 기도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특히, “그리스도교 생활의 원천이며 정점인 성찬례는 평화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모든 참된 투신을 위한 마르지 않는 샘이다.

 

520. The World Days of Peace are particularly intense moments of prayer for peace and for the commitment to build a world of peace. Pope Paul VI instituted these Days to dedicate to “thoughts and resolutions of Peace a special observance on the first day of the civil year”.[1103] The Papal Messages on these annual occasions represent a rich source for the renewal and development of the Church's social doctrine and show the Church's constant pastoral activity aimed at the promotion of peace. “Peace expresses itself only in peace, a peace which is not separate from the demands of justice, but which is fostered by personal sacrifice, clemency, mercy and love”[1104].

520. 세계 평화의 날은 특히 평화와 평화로운 세상 건설에 대한 투신을 위한 기도를 집중적으로 하는 날이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일반력으로 새해 첫날인이 날을 평화에 대한 생각과 결심에 바치기로 제정하셨다. 매년 평화의 날 교황 담화는 교회의 사회 교리를 쇄신하고 발전시키는 풍부한 원천이며, 평화 증진을 위한 교회의 지속적인 사목 활동을 보여 준다. “평화는 평화 안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평화는 정의의 요구와 분리되지 않지만 개인적 희생과 관대, 자비, 사랑으로 자라난다.”

 

 

  영한편집 작업 : 안유현(리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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