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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한비교 간추린 사회교리

 

 

 

 

 

 

 

PART THREE / 3

 

 

 

 

“As far as the Church is concerned, the social message

of the Gospel must not be considered a theory,

but above all else a basis and a motivation for action”.

(Centesimus Annus, 57)

 

 

 

교회는

복음의 사회적 메시지를

하나의 이론으로 보지 않고

무엇보다도 행동의 토대이며

동기 부여로 생각한다

(백주년, 57)

 

 

 

CHAPTER TWELVE / 12

 

SOCIAL DOCTRINE AND ECCLESIAL ACTION

사회 교리와 교회 활동

 

I. PASTORAL ACTION IN THE SOCIAL FIELD / 사회 분야의 사목 활동

 

a. Social doctrine and the inculturation of faith / 사회 교리와 신앙의 토착화

 

521. Aware of the power of Christianity to renew even cultural and social realities[1105], the Church offers the contribution of her teaching to the building up of the human community by bringing out the social significance of the Gospel[1106]. At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the Church's Magisterium systematically addressed the pressing social questions of the time, creating “a lasting paradigm for the Church. The Church, in fact, has something to say about specific human situations, individual, and communal, national and international. She formulates a genuine doctrine for these situations, a corpus which enables her to analyze social realities, to make judgments about them and to indicate directions to be taken for the just resolution of the problems involved”[1107]. The intervention of Pope Leo XIII in the social and political reality of his time with the Encyclical Rerum Novarum “gave the Church ‘citizenship status' as it were, amid the changing realities of public life, and this standing would be more fully confirmed later on”[1108].

521. 그리스도교가 사회적 문화적 실재까지 쇄신하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아는 교회는 교회의 가르침을 통하여 복음의 사회적 중요성을 드러냄으로써 인간 공동체 건설에 이바지한다. 19세기 말에 교회의 교도권은 당시의 절박한 사회 문제들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며, “교회를 위한 영속적 모범을 보여주었다. 교회는 사적, 공적, 국가적, 국제적으로 정해진 인간 조건들에 대하여 할 말이 있는데, 교회는 이러한 조건들에 대하여 진정한 교리, 즉 이 교리를 사용하여 사회 현실들을 분석하고, 그것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제기된 문제들의 올바른 해결을 위하여 취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교의체를 제시한다.”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로 당시의 사회 정치적 현실에 관하여 언급한 교황 레오 13세의 발언은 공공 생활의 가변적 실재들 가운데서 교회에 일종의 시민의 지위 부여하였으며, 이는 그 후에 더욱 강력하게 긍정되었다.”

 

522. In her social doctrine the Church offers above all an integral vision of man and a complete understanding of his personal and social dimensions. Christian anthropology reveals the inviolable dignity of every person and places the realities of work, economics and politics into an original perspective that sheds light on authentic human values while at the same time inspiring and sustaining the task of Christian witness in the varied areas of personal, cultural and social life. Thanks to the “first fruits of the Spirit” (Rom 8:23), Christians become “capable of discharging the new law of love (cf. Rom 8:1-11). Through this Spirit, who is ‘the pledge of our inheritance' (Eph 1:14), the whole man is renewed from within, even to the achievement of ‘the redemption of the body' (Rom 8:23)”.[1109] In this sense the Church's social doctrine shows how the moral basis of all social action consists in the human development of the person and identifies the norm for social action corresponding to humanity's true good and as efforts aimed at creating the conditions that will allow every person to satisfy his integral vocation.

522. 교회는 사회 교리를 통하여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통합적 시각을 제시하며, 인간의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보여 준다. 그리스도교의 인간학은 모든 인간의 침해할 수 없는 존엄을 드러내며, 노동, 경제, 정치적 현실들을 참된 인간 가치들에 빛을 비춰주는 독창적 시각 안에 두는 한편, 개인, 문화, 사회생활의 다양한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의 증언 임무를 고무하고 힘을 실어준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첫 선물로’(로마 8,23) 받아, 그 선물로써 사랑의 새 계명을 지킬 수 있게 된다(로마 8,1-11 참조). ‘상속의 보증’(에페 1,14)이신 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 몸이 해방될’(로마 8,23) 때까지 온 인간이 내적으로 쇄신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의 사회 교리는 모든 사회 활동의 도덕적 토대는 개인의 인간적 발전에 있음을 보여 주며, 인류의 참된 선에 부합하는 사회 활동 규범을 규정하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필수적 소명을 만족시키게 해 줄 조건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을 확인시켜 준다.

 

523. This Christian anthropology gives life to and supports the pastoral task of inculturation of the faith, which aims at an interior renewal, through the power of the Gospel, of modern man's criteria of judgment, the values underlying his decisions, the way he thinks and the models after which his life is patterned. “Through inculturation the Church, for her part, becomes a more intelligible sign of what she is and a more effective instrument of mission”[1110]. The contemporary world is marked by a rift between the Gospel and culture, by a secularized vision of salvation that tends to reduce even Christianity to “merely human wisdom, a pseudo- science of well-being”[1111]. The Church is aware that she must take “a giant step forward in her evangelization effort, and enter into a new stage of history in her missionary dynamism”[1112]. The Church's social doctrine is situated within this pastoral vision: “The ‘new evangelization', which the modern world urgently needs, ... must include among its essential elements a proclamation of the Church's social doctrine”[1113].

523. 이러한 그리스도교 인간학은 복음의 힘으로 현대인의 판단 기준, 그의 결정의 바탕이 되는 가치들, 그의 사고방식과 삶의 양식들을 내적으로 쇄신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신앙의 토착화라는 사목 임무에 활기를 주고, 버팀목이 되어 준다. “교회는 토착화를 통하여 교회 자신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표지가 되고 선교의 유효한 도구가 된다.” 현대 세계는 복음과 문화 간의 불화와 그리스도교를 순전한 인간적 지혜 내지 일종의 유쾌한 처세술로 격하시키려고 하는 세속화된 구원관에 젖어 있다. 교회는 오늘날 자신의 복음화 노력에서 대약진의 거보를 내디뎌야 하며, 자신의 선교 활력에서는 역사의 새 시대로 들어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교회의 사회 교리는 이러한 사목적 전망 안에 놓여 있다. “현대 세계가 긴급히 요청하는 새로운 복음화는 그 본질적 요소들 안에 교회의 사회 교리 선언을 포함하여야 한다.”

 

b. Social doctrine and social pastoral activity / 사회 교리와 사회 사목 활동

 

524. The Church's social teaching is the indispensable reference point that determines the nature, modality, articulation and development of pastoral activity in the social field. It is the expression of the ministry of social evangelization, aimed at enlightening, stimulating and supporting the integral promotion of the human person through the practice of Christian liberation in its earthly and transcendent dimension. The Church exists and is at work within history. She interacts with the society and culture of her time in order to fulfil her mission of announcing the newness of the Christian message to all people, in the concrete circumstances of their difficulties, struggles and challenges. She does so in such a way that faith enlightens them so that they can understand the truth that “true liberation consists in opening oneself to the love of Christ”[1114]. The Church's social pastoral ministry is the living and concrete expression of the full awareness of her evangelizing mission in the social, economic, cultural and political realities of the world.

524. 교회의 사회 교리는 사회 분야에서 사목 활동의 본질과 방식, 연결, 발전을 결정짓는 필수적인 준거이다. 교회의 사회 교리는 세속적 초월적 차원에서 그리스도교의 해방을 실천함으로써 인간의 전인적 발전을 도모하고 촉진하며 지원하기 위한 사회 복음화 사목을 표현한다. 교회는 역사 안에 존재하며 역사 안에서 활동한다. 교회는 그 시대의 사회와 문화와 교류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새로움을 알리는 사명을 수행하고, 구체적으로 여러 가지 힘든 상황 속에서 분투하며 도전한다. 교회는 사회와 문화가 참된 해방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자신을 개방하는 것 이라는 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사회와 문화에 신앙의 빛을 비추어 줌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다. 교회의 사회 사목은 교회가 세계의 사회, 경제, 문화, 정치 현실에서 자신의 복음화 사명을 온전히 깨닫고 있다는 생생하고 구체적인 표현이다.

 

525. The social message of the Gospel must guide the Church in her twofold pastoral activity: that of helping men and women to discover the truth and to choose the path that they will follow, and that of encouraging Christians to bear witness with a spirit of service to the Gospel in the field of social activity. “Today more than ever the Word of God will be unable to be proclaimed and heard unless it is accompanied by the witness of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working within the action of Christians in the service of their brothers and sisters, at the points in which their existence and their future are at stake”[1115]. The need for a new evangelization helps the Church to understand that “today more than ever ... her social message will gain credibility more immediately from the witness of action than as a result of its internal logic and consistency”[1116].

525. 복음의 사회적 메시지는 교회가 두 가지 사목 활동, 곧 인간이 진리를 깨닫고 따라야 할 길을 선택하도록 돕는 일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사회 활동 분야에서 복음의 봉사 정신을 증언하도록 격려하는 일을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형제자매들의 존재와 장래 운명이 흔들리고 있는 점에서, 그들에게 봉사하는 그리스도인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증거 없이는 하느님의 말씀이 전파되지도 못하고 받아들여지지도 못한다.” 새로운 복음화에 대한 요구는 교회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사회적 메시지가 그 내적 일관성과 논리보다는 업적의 증거에서 더욱 권위와 신뢰를 얻는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526. The Church's social doctrine provides the fundamental criteria for pastoral action in the area of social activity: proclaiming the Gospel; placing the Gospel message in the context of social realities; planning actions aimed at the renewal of these realities; and conforming them to the demands of Christian morality. A new evangelization of society requires first of all the proclamation of the Gospel: God saves every person and the whole person in Jesus Christ. It is this proclamation that reveals man to himself and that must become the principle for interpreting social realities. In proclaiming the Gospel, the social dimension is an essential and unavoidable but not the only dimension. It is a dimension that must reveal the unlimited possibilities of Christian salvation, even if it is not possible in time to conform social realities perfectly and definitively to the Gospel. No results attained, not even the most spectacular, can escape the limits of human freedom and the eschatological tension of every created reality[1117].

 

526. 교회의 사회 교리는 사회 활동 영역에서 사목 활동의 근본 기준을 제공한다. 곧 복음을 선포하기, 복음 메시지를 사회 현실의 배경 안에 놓기, 사회 현실의 쇄신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을 계획하기, 사회 현실을 그리스도교 도덕의 요구에 부합시키기 등이다. 사회의 새로운 복음화는 무엇보다도 복음 선포를 요구한다. 곧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인간과 인간 전체(全人)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선포할 것을 요구한다. 인간을 인간 자신에게 드러내 주는 바로 이러한 선포는 사회 현실을 해석하는 원리가 되어야 한다. 복음을 선포할 때 사회적 차원은 본질적이며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유일한 차원은 아니다. 사회적 차원이 비록 사회 현실과 복음을 제 때에 완벽하고 결정적으로 부합시킬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교 구원의 끝없는 가능성들을 드러내 주어야 한다. 어떤 결과에 도달하고 또 그 결과들이 아무리 눈부시더라도 인간 자유의 한계와 모든 창조된 실재의 종말론적 긴장을 벗어날 수는 없다.

 

527. Above all, the pastoral activity of the Church in the social sector must bear witness to the truth of the human person. Christian anthropology permits a discernment of social problems that will never find an adequate solution if the transcendent character of the human person, fully revealed in faith, is not safeguarded[1118]. The social action of Christians must be inspired by the fundamental principle of the centrality of the human person[1119]. The need to promote the integral identity of the human person prompts Christians to propose those eminent values that govern every well-ordered and productive human society: truth, justice, love and freedom[1120]. Pastoral activity in the social field must seek to ensure that the renewal of public life is linked to an effective respect for these values. In this way, the Church's multifaceted evangelical witness seeks to promote the awareness of the good of each person and of all people as an unlimited resource for the development of every aspect of life in society.

527. 무엇보다도, 사회 영역에서 교회의 사목 활동은 인간의 진리를 증언하여야 한다. 그리스도교의 인간학은, 신앙 안에서 충만히 드러나는 인간의 초월성이 보호받지 못한다면 결코 적절한 해결책을 찾지 못할 사회 문제들을 식별하게 해 준다. 그리스도인의 사회 활동은 인간을 중심에 두는 기본 원리에서 영감을 받아야 한다. 인간의 완전한 정체성 증진에 대한 요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인간 사회가 질서 정연하고 생산적인 것이 되게 하는 탁월한 덕목들, 곧 진리, 정의, 사랑, 자유를 제시하도록 자극한다. 사회 영역의 사목 활동은 공생활의 쇄신이 이러한 가치들에 대한 실질적인 존중과 연결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그럴 때, 교회의 다양한 복음적 증언은 만인과 각 개인의 선이야말로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을 발전시키는 무한한 자원이라는 인식을 증대시키는 데에 기여하게 된다.

 

 

c. Social doctrine and formation / 사회 교리와 교육

 

528. The Church's social doctrine is an indispensable reference point for a totally integrated Christian formation. The insistence of the Magisterium in proposing this doctrine as a source of inspiration for the apostolate and for social action comes from the conviction that it constitutes an extraordinary resource for formation; “this is especially true for the lay faithful who have responsibilities in various fields of social and public life. Above all, it is indispensable that they have a more exact knowledge... of the Church's social doctrine”[1121]. This doctrinal patrimony is neither taught nor known sufficiently, which is part of the reason for its failure to be suitably reflected in concrete behaviour.

528. 교회의 사회 교리는 완전히 통합된 그리스도교 교육의 필수적인 지침이다. 교도권이 사회 교리를 사도직과 사회 활동을 위한 영감의 원천으로 제시하도록 주장하는 이유는 그것이 훌륭한 교육 자원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특별히 사회와 정치 활동에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책임을 맡고 있는 평신도들에게는 무엇보다도 교회의 사회 교리에 대한 더욱더 정확한 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교리의 유산이 충분히 교육되지도 알려지지도 않아서 그것들이 구체적인 행위에 적절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529. The formative value of the Church's social doctrine should receive more attention in catechesis.[1122] Catechesis is the systematic teaching of Christian doctrine in its entirety, with a view to initiating believers into the fullness of Gospel life.[1123] The ultimate aim of catechesis “is to put people not only in touch but in communion, in intimacy, with Jesus Christ”.[1124 ]

29. 교회의 사회 교리의 교육적 가치는 교리교육에서 더욱 주목을 받아야 한다. 교리교육은 신자들을 충만한 복음 생활로 인도할 목적으로 그리스도교 교리 전체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교리교육의 궁극 목적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만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분과 친교와 친밀을 갖도록 인도하는 데에 있다.”

 

In this way, it becomes possible to recognize the action of the Holy Spirit, from whom comes the gift of new life in Christ[1125]. Seen in this light, in its service of educating to the faith, the concern of catechesis must not fail “to clarify properly realities such as man's activity for his integral liberation, the search for a society with greater solidarity and fraternity, the fight for justice and the building of peace”[1126]. In order to do so, the fullness of the social Magisterium must be presented: its history, its content and its methodology. Direct contact with the texts of the social encyclicals, read within an ecclesial context, enriches its reception and application, thanks to the contribution of the different areas of competency and professions represented within the community.

그렇게 하여, 그리스도 안의 새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성령의 활동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볼 때, 곧 교리교육이 신앙 교육에 이바지한다고 볼 때, 교리교육에 대한 관심은 반드시 인간의 전인적(全人的) 해방을 위한 활동이나, 연대의식과 형제애가 더욱 군림하는 사회를 세우려는 노력이나, 정의를 위한 투쟁과 평화의 건설 같은 내용을 배제할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고유한 의의를 분명히 밝혀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사회 교리의 역사, 내용, 방법론을 온전히 제시하여야 한다. 사회 회칙들을 직접 접하고 교회의 배경 안에서 읽는다면, 공동체 안의 다양한 영역의 능력과 직업들의 기여로 그것들을 훨씬 더 풍부하게 받아들이고 적용할 수 있게 된다.

 

530. In the context of catechesis above all it is important that the teaching of the Church's social doctrine be directed towards motivating action for the evangelization and humanization of temporal realities. Through this doctrine, in fact, the Church expresses a theoretical and practical knowledge that gives support to the commitment of transforming social life, helping it to conform ever more fully to the divine plan. Social catechesis aims at the formation of men and women who, in their respect for the moral order, are lovers of true freedom, people who “will form their own judgments in the light of truth, direct their activities with a sense of responsibility, and strive for what is true and just in willing cooperation with others”.[1127] The witness of a Christian life has an extraordinary formative value: “In particular the life of holiness which is resplendent in so many members of the People of God, humble and often unseen, constitutes the simplest and most attractive way to perceive at once the beauty of truth, the liberating force of God's love, and the value of unconditional fidelity to all the demands of the Lord's law, even in the most difficult circumstances”[1128].

530. 교리교육의 맥락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사회 교리 교육이 현세 실재들의 복음화와 인간화를 위한 활동을 촉진하는 쪽으로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교회는 사회 교리를 통하여 사회생활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뒷받침해 주는 이론적 실천적 지식을 보여주고, 그것이 하느님의 계획에 한층 더 온전히 부합하도록 도와준다. 사회 교리교육은 도덕 질서를 존중하면서 진정으로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 자신의 생각으로 진리에 비추어 사물을 판단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며 바르고 옳은 것은 무엇이든 추구하도록 힘쓰며 다른 사람과 기꺼이 협력하는 사람들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스도인 생활의 증거는 엄청난 교육적 가치를 지닌다. 특히 겸손하고도 흔히는 드러나지 않은 하느님의 백성의 무수한 지체들 안에서 빛나는 성덕의 삶은 진리의 아름다움과, 하느님 사랑의 해방시키는 힘과 주님의 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에 대한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무조건적인 충실성의 가치를 받아들이게 하는 가장 소박하고도 가장 매력적인 길이 된다.”

 

531. The Church's social doctrine must be the basis of an intense and constant work of formation, especially of the lay faithful. Such a formation should take into account their obligations in civil society. “It belongs to the layman, without waiting passively for orders and directives, to take the initiative freely and to infuse a Christian spirit into the mentality, customs, laws and structures of the community in which they live”[1129]. The first level of the formation of lay Christians should be to help them to become capable of meeting their daily activities effectively in the cultural,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spheres and to develop in them a sense of duty that is at the service of the common good[1130]. A second level concerns the formation of a political conscience in order to prepare lay Christians to exercise political power. “Those with a talent for the difficult yet noble art of politics, or whose talents in this matter can be developed, should prepare themselves for it, and forgetting their own convenience and material interests, they should engage in political activity”[1131].

531. 교회의 사회 교리는 특히 집약적이고 지속적인 평신도 교육 활동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그러한 교육은 시민 사회에서 평신도들이 갖는 의무를 고려하여야 한다. 평신도들은 피동적으로 지침이나 명령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구상과 계획으로 사람들의 정신과 풍습, 사회 공동체의 법제와 조직을 그리스도화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생각해야 한다.” 평신도 그리스도인 교육의 첫 번째 단계는 그들이 문화, 사회, 경제, 정치 영역에서 자신들의 일상 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돕고, 또 그들 안에 공동선에 이바지할 의무감을 키워 주는 것이어야 한다. 두 번째 단계는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치의식을 심어 주어, 그들이 정치력을 행사하도록 준비시키는 것과 관계된다. “어려우면서도 매우 고귀한 정치 기술에 대한 적성이나 가능성을 지닌 사람은 스스로 준비를 갖추어, 자기 편의나 금전의 이익을 버리고 정치를 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532. Catholic educational institutions can and indeed must carry out a precious formative service, dedicating themselves in a particular way to the inculturation of the Christian message, that is to say, to the productive encounter between the Gospel and the various branches of knowledge. The Church's social doctrine is a necessary means for an efficacious Christian education towards love, justice and peace, as well as for a conscious maturation of moral and social duties in the various cultural and professional fields.

532. 가톨릭 교육 기관들은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토착화, 다시 말해 복음과 다양한 지식 사이의 생산적 만남에 특별히 전념함으로써 귀중한 교육적 봉사를 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봉사하여야 한다. 교회의 사회 교리는 사랑, 정의, 평화에 대한 효과적인 그리스도인 교육과, 다양한 문화와 직업 영역에서 도덕적 사회적 의무에 대한 의식을 성숙시키는 데에 필요한 수단이다.

 

The “Social Weeks” of Catholics that the Magisterium has always encouraged are important examples of formational opportunities. They represent privileged moments for the expression and growth of the lay faithful, who are then capable of making their specific high-level contribution to the temporal order. Various countries find that these Weeks are veritable cultural laboratories for the exchange of reflections and experiences, the study of emerging problems and the identification of new operative approaches.

교도권이 언제나 권장해 온 가톨릭 신자들의 사회 연구 주간은 교육 기회의 중요한 본보기이다. 이 주간은 현세 질서에 구체적으로 높이 이바지할 수 있는 평신도들의 자기 표현과 성장을 위한 특별한 시기이다. 여러 나라들이 이 주간을 사고와 경험의 교류, 현안 문제들에 대한 연구, 새로운 활동 방법의 규명을 위한 진정한 문화적 실험실로 본다.

 

533. No less important is the commitment to use the Church's social doctrine in the formation of priests and candidates to the priesthood who, in the context of their preparation for ministry, must develop a thorough knowledge of the Church's teaching and her pastoral concerns in the social sphere as well as a keen interest in the social issues of their day. The Congregation for Catholic Education has published a document, Guidelines for the Study and Teaching of the Church's Social Doctrine in the Formation of Priests[1132], which gives specific indications and recommendations for a correct and appropriate plan of studies for this teaching.

533. 교회의 사회 교리를 사제 교육과 사제직 지원자 양성에 이용하려는 노력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들은 직무를 준비하면서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철저한 지식과 사회 분야에 대한 교회의 사목적 관심, 그리고 그 시대의 사회 문제들에 대한 예리한 관심을 길러야 한다. 교황청 가톨릭교육성은 사제 양성과 교회의 사회 교리, 그 연구와 교육을 위한 기본 지침(Guidelines for the Study and Teaching of the Church's Social Doctrine in the Formation of Priests)라는 문서를 발표하였는데, 이 문서는 이러한 교육에 필요한 올바르고 적절한 연구 계획을 위한 구체적인 지침과 권고 사항을 제시한다.

 

d. Promoting dialogue / 대화 증진

 

534. The Church's social doctrine is a privileged instrument of dialogue between Christian communities and the civil and political community. It is an appropriate tool for promoting and cultivating attitudes of authentic and productive cooperation in ways adapted to the circumstances. The commitment of civil and political authorities, called to serve the personal and social vocation of mankind according to their own areas of competence and with the means available to them, can find in the social teaching of the Church an important support and a rich source of inspiration.

534. 교회의 사회 교리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들과 국가 정치 공동체 사이의 특별한 대화의 도구이며, 상황에 적합한 방식으로 진정하고 생산적인 협력의 태도를 증진하고 함양할 수 있는 적합한 도구이다. 자신의 고유한 권한 영역 안에서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인류의 개인적 사회적 소명에 봉사하도록 부름 받은 국가의 정치 권위들은 교회의 사회 교리에서 중요한 도움과 풍부한 영감의 원천을 발견할 수 있다.

 

535. The social teaching of the Church is also fertile soil for dialogue and collaboration in the ecumenical sphere. This is already happening in various places on a broad scale concerning the defence of the dignity of the human person, the promotion of peace, the concrete and effective struggle against the miseries of today's world, such as hunger and poverty, illiteracy, the unequal distribution of the goods of the earth and the lack of housing. This multifaceted cooperation increases awareness that all are brothers and sisters in Christ, and makes the journey along the path of ecumenism easier.

535. 교회의 사회 교리는 또한 교회 일치 영역에서 대화와 협력을 위한 비옥한 토양이다. 이러한 대화와 협력은 인간의 존엄성 수호와 평화 증진과 관련하여, 그리고 기아와 빈곤, 문맹, 지상 재화의 불공평한 분배, 주거 부족과 같은 현대 세계의 비참한 상황에 맞선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투쟁과 관련하여 이미 여러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협력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라는 인식을 증대시키며, 교회 일치 여정을 더욱 쉽게 만든다.

536. In the common tradition of the Old Testament, the Catholic Church is able to engage in dialogue with her Jewish brothers and sisters, which she does also through her social doctrine, in order to build together a future of justice and peace for all people, as sons and daughters of the one God. This common spiritual heritage fosters mutual knowledge and reciprocal esteem[1133], on the basis of which broader agreement can be reached concerning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nd the defence of human dignity.

536. 구약성경의 공통된 전통 안에서 가톨릭 교회는 유교 형제자매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교회는 교회의 사회 교리를 통해서도 이 일을 수행하는데, 이는 한 분이신 하느님의 자녀인 모든 사람을 위하여 정의와 평화의 미래를 함께 건설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공동의 영적 유산은 상호 이해와 존중을 길러주며, 이를 바탕으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와 인간 존엄성 수호에 관하여 더욱 폭넓은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

 

537. The Church's social doctrine is also characterized by a constant call to dialogue among all members of the world's religions so that together they will be able to seek the most appropriate forms of cooperation. Religion has an important role to play in the pursuit of peace, which depends on a common commitment to the integral development of the human person[1134]. In the spirit of the meetings for prayer held in Assisi[1135], the Church continues to invite believers of other religions to dialogue and encourage everywhere effective witness to those values shared by the entire human family.

537. 교회의 사회 교리는 또한 가장 적합한 협력 형태를 모색할 수 있도록 전 세계 모든 종교인 사이의 대화를 끊임없이 요청하고 있다. 종교는 평화 추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평화는 인간의 통합적 발전에 대한 공동 노력에 달려 있다. 아시시에서 열린 기도 모임의 정신으로 교회는 다른 종교 신자들을 계속해서 대화에 초대하고, 인류 가족 전체가 공유하고 있는 가치들을 어디에서나 효과적으로 증언하도록 격려한다.

 

e. The subjects of social pastoral activity / 사회 사목 활동의 주체들

 

538. The entire people of God has a role to play as the Church fulfils her mission. In various ways and through every member according to the gifts and the manner of acting proper to each vocation, the people of God must respond to the duty to proclaim and bear witness to the Gospel (cf. 1 Cor 9:16), in the awareness that “missionary activity is a matter for all Christians”.[1136]

538. 하느님의 모든 백성은 교회의 사명 수행에서 맡은 역할이 있다. 하느님 백성의 모든 구성원은 선교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여, 각자가 받은 선물과 각 성소에 알맞은 행동 방식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증언할 의무에 부응하여야 한다(1코린 9,16 참조).

 

Pastoral work in the social sector is also meant for all Christians, who are called to become active subjects in bearing witness to this social doctrine and to be fully part of the solid tradition of the “fruitful activity of many millions of people, who, spurred on by the social Magisterium, have sought to make that teaching the inspiration for their involvement in the world”[1137]. Acting either as individuals or together with others in various groups, associations and organizations, Christians of today represent “a great movement for the defence of the human person and the safeguarding of human dignity”[1138].

사회 영역의 사목 활동은, 이러한 사회 교리를 증언하는 데에 적극적인 주체가 되고 사회 교도권의 격려를 받아 세상 안에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그 가르침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결실 풍부한 활동의 굳건한 전통에 온전히 속하도록 부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개인으로 행동하든 다양한 단체나 협회, 기구의 사람들과 함께 행동하든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인간과 인간 존엄성 수호를 위한 광범위한 운동을 대표한다.

 

539. In the particular Church, the primary responsibility for the pastoral commitment to evangelize social realities falls to the Bishop, assisted by priests, religious men and women, and the laity. With special reference to local realities, the Bishop is responsible for promoting the teaching and diffusion of the Church's social doctrine, which he should do through appropriate institutions.

539. 개별 교회에서, 사회적 실재들을 복음화할 사목적 노력에 대한 우선적 책임은 주교에게 있으며, 주교는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들의 보좌를 받는다. 특히 지역 실들과 관련하여, 주교는 적절한 기관들을 통하여 교회의 사회 교리를 널리 가르치고 전파할 책임이 있다.

 

The pastoral action of the Bishop is realized through the ministry of priests, who participate in the Bishop's mission of teaching, sanctifying and governing the Christian community. Through suitable formation programmes, the priest should make known the social teaching of the Church and foster in the members of his community an awareness of their right and duty to be active subjects of this doctrine. Through the celebration of the sacraments, especially Eucharist and Reconciliation, the priest helps the faithful to live their social commitment as a fruit of the mystery of salvation. He should animate pastoral action in the social field, giving particular attention to the formation and spiritual accompaniment of lay Christians engaged in social and political life. The priest who carries out pastoral service in various ecclesial associations, especially those dedicated to the social apostolate, has the duty to promote the growth of such groups through the proper teaching of social doctrine.

주교의 사목 활동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가르치고 거룩하게 하며 다스릴 자신의 사명에 참여하는 사제들의 직무를 통해서 실현된다. 사제는 알맞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교회의 사회 교리를 알리고, 자기 공동체 신자들에게 이 교리의 적극적 주체가 될 권리와 의무에 대한 인식을 키워나가야 한다. 성사 거행, 특히 성체성사와 고해성사 거행을 통하여 사제는 신자들이 구원의 신비의 결실로서 그들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도와준다. 사제는 사회 영역의 사목 활동을 활성화하고, 사회 정치 생활에 참여하고 있는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의 교육과 영적 동반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교회의 다양한 단체들, 특히 사회 사도직에 헌신하고 있는 단체들에서 사목 활동을 하는 사제는 적절한 사회 교리 교육을 통하여 그러한 단체들의 성장을 촉진할 의무가 있다.

 

540. This pastoral work in the social sector also includes the work of consecrated persons according to their particular charism. Their shining witness, especially in situations of great poverty, represents a reminder to all people of the values of holiness and generous service to one's neighbour. The total gift of self made by men and women religious is offered to the contemplation of everyone as an eloquent and prophetic sign of the Church's social doctrine. Placing themselves totally at the service of the mystery of Christ's love for mankind and the world, religious anticipate and show by their very lives some of the traits of the new humanity that this social doctrine seeks to encourage. In chastity, poverty and obedience, consecrated persons place themselves at the service of pastoral charity, especially by prayer, thanks to which they contemplate God's plan for the world and beg the Lord to open the heart of all persons to welcome within themselves the gift of a new humanity, the price of Christ's sacrifice.

540. 사회 영역의 사목 활동에는 자신들의 특별한 은사에 따른 봉헌생활자들의 활동도 포함된다. 특히 극심한 빈곤 상황에서 그들의 빛나는 증언은 모든 사람에게 성덕과 이웃에 대한 헌신적 봉사의 가치를 일깨워 준다. 모든 사람이 남녀 수도자들의 완전한 자기 증여를 교회의 사회 교리의 웅변적이고 예언적인 표지로 본다. 인류와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신비를 섬기는 일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는 수도자들은 그들 자신의 삶을 통해 교회의 사회 교리가 촉진하고자 하는 새 인류의 모습들을 앞당겨 보여 준다. 봉헌생활자들은 정결, 청빈, 순명을 통하여, 특히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관상할 수 있게 해 주는 기도를 통하여 목자의 사랑에 이바지하며, 그리스도의 희생의 대가인 새 인류라는 선물을 자신 안에 받아들일 수 있도록 모든 사람의 마음을 열어 주시도록 주님께 간청한다.

 

 

II. SOCIAL DOCTRINE AND THE COMMITMENT OF THE LAY FAITHFUL / 사회 교리와 평신도의 참여

 

a. The lay faithful / 평신도

 

541. The essential characteristic of the lay faithful who work in the Lord's vineyard (cf. Mt 20:1-16) is the secular nature of their Christian discipleship, which is carried out precisely in the world. “It belongs to the laity to seek the kingdom of God by engaging in temporal affairs and directing them according to God's will”[1139]. By Baptism, the laity are incorporated into Christ and are made participants in his life and mission according to their specific identity. “The term ‘laity' is here understood to mean all the faithful except those in Holy Orders and those who belong to a religious state approved by the Church. That is, the faithful who, by Baptism are incorporated into Christ, are placed in the People of God and in their own way share the priestly, prophetic and kingly office of Christ, and to the best of their ability carry on the mission of the whole Christian people in the Church and in the world”[1140].

541. 주님의 포도밭에서 일하는(마태 20,1-16 참조) 평신도의 근본 특성은 그들이 세상 안에서 구체적으로 이행하는 그리스도 제자 직분의 세속적 성격이다. 평신도들의 임무는 자기 소명에 따라 현세의 일을 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하며 하느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것이다.” 평신도는 세례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고, 자신들의 고유한 신분에 따라 그분의 삶과 사명에 참여하게 된다. “성품의 구성원과 교회가 인정한 수도 신분의 구성원이 아닌 모든 그리스도인이 평신도라는 이름으로 이해된다. 곧 세례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하느님 백성으로 구성되고,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과 왕직에 자기 나름대로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 그리스도교 백성 전체의 사명 가운데에서 자기 몫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한다.”

 

542. The identity of the lay faithful is born in and nourished by the sacraments of Baptism, Confirmation and the Eucharist. Baptism conforms the person to Christ, Son of the Father, first-born of every creature, sent to all as Teacher and Redeemer. Confirmation configures the individual to Christ, sent to give new life to creation and to every being through the outpouring of his Spirit. The Eucharist makes the believer a participant in the unique and perfect sacrifice that Christ offered to the Father, in his own flesh, for the salvation of the world.

542. 평신도의 신원은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성체성사에서 생겨나고 자란다. 세례성사는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시며 스승이고 구원자로서 모든 이에게 파견되신 성부의 아드님 그리스도께 일치시켜 준다. 견진성사는 당신 성령을 부어주심으로써 피조물과 만물에게 새 생명을 주도록 파견되신 그리스도를 닮게 한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께서 세상 구원을 위하여 당신의 살로써 성부께 바치신 유일하고 완벽한 희생 제사에 참여하게 한다.

 

Lay Catholics are disciples of Christ starting with the sacraments, that is, by virtue of what God has wrought in them, marking them with the very image of his Son Jesus Christ. It is from this divine gift of grace, and not from human concession, that is born the threefold “munus” (gift and duty) that characterizes the lay person as prophet, priest and king, according to his secular nature.

평신도 가톨릭 신자들은 성사들로 시작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다. 다시 말해, 그들 안에서 그들을 당신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닮게 하시는 하느님의 활동에 힘입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 인간의 특권이 아니라 이러한 하느님의 은총에서 세 가지 직무’(은총이며 의무), 곧 평신도의 세속적 성격에 따라 평신도에게 예언자, 사제, 임금의 특성을 부여하는 '직무'가 생겨나는 것이다.

 

543. It is the proper duty of the lay faithful to proclaim the Gospel with an exemplary witness of life rooted in Christ and lived in temporal realities: the family; professional commitment in the world of work, culture, science and research; the exercise of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responsibilities. All secular human realities both personal and social, including various environments and historical situations, as well as structures and institutions are the context in which the lay Christian lives and works. These realities are places where God's love is received; the commitment of the lay faithful must correspond to this vision and is to be considered an expression of evangelical charity; “for the lay faithful to be present and active in the world is not only an anthropological and sociological reality, but in a specific way, a theological and ecclesiological reality as well”[1141].

543. 평신도는 그리스도 안에 뿌리박고 현세 실재들 안에서 실천하는 모범적인 삶의 증언으로 복음을 선포할 고유한 의무가 있다. 현세 실재들이란 가정, 노동 문화 과학 연구 분야에 대한 직업적 투신, 사회 경제 정치적 책임 행사를 말한다. 인간의 모든 세속적 실재들 다양한 환경과 역사적 상황, 조직과 기구들을 포함한 개인적 사회적 실재 은 평신도 그리스도인의 삶과 활동의 배경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장소이다. 평신도들의 투신은 이러한 시각과 일치하여야 하며, 복음적 사랑의 표현으로 여겨져야 한다. “세속에서 살아가는 평신도들의 존재와 활동은 비단 인간학적 사회학적 현실만이 아니라 또한 특별히 신학적 교회적 실재이다.”

 

544. The witness of the lay faithful is born from the gift of grace, recognized, nurtured and brought to maturity[1142]. This motivation makes their commitment in the world significant and is opposed to the characteristics of action that are proper to atheistic humanism, which lack an ultimate basis and are circumscribed within purely temporal limits. The eschatological perspective is the key that allows a correct understanding of human realities. From the standpoint of definitive goods, the lay faithful are able to engage in earthly activity according to the criteria of authenticity. Standards of living and greater economic productivity are not the only valid indicators for measuring the total fulfilment of the human person in this life, and they are of even less value when considering the life to come, “for man's horizons are not bounded only by the temporal order; living on the level of human history, he preserves the integrity of his eternal destiny”[1143].

544. 평신도의 증거는 은총의 선물에서 생겨나 인정받고 자라나며 성숙해진다. 세상 안에서 그들의 투신을 의미 있게 하이러한 동기는, 궁극적으로 토대가 결여되어 있고 완전히 세속적인 한계를 지닌 무신론적 인본주의의 고유한 행동 특성들과 대조를 이룬다. 종말론적 전망은 인간의 실재들을 올바로 이해하게 해 주는 열쇠이다. 한정적인 재화의 관점에서 볼 때, 평신도들은 진정성의 기준에 따라 지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삶의 수준과 경제적 생산성의 향상만이 지상 생활에서 인간의 완전한 성취를 가늠해 주는 유효한 지표는 아니며, 다가올 삶을 생각하면 한층 더 가치가 떨어지는 것들이다. “인간은 현세 질서에만 매여 있지 않고, 인간 역사 안에서 살아가며 영원한 자기 소명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b. Spirituality of the lay faithful / 평신도 영성

 

545. The lay faithful are called to cultivate an authentic lay spirituality by which they are reborn as new men and women, both sanctified and sanctifiers, immersed in the mystery of God and inserted in society. Such a spirituality will build up the world according to Jesus' Spirit. It will make people capable of looking beyond history, without separating themselves from it, of cultivating a passionate love for God without looking away from their bothers and sisters, whom they are able to see as the Lord sees them and love as the Lord loves them. This spirituality precludes both an intimist spiritualism and a social activism, expressing itself instead in a life- giving synthesis that bestows unity, meaning and hope on an existence that for so many different reasons is contradictory and fragmented. Prompted by such a spirituality, the lay faithful are able to contribute “to the sanctification of the world, as from within like leaven, by fulfilling their own particular duties. Thus, especially by the witness of their own life ... they must manifest Christ to others”[1144].

545. 평신도는, 성화되고 성화시키며 하느님의 신비에 빠져 있으면서 사회 안에 동화된 새로운 남자와 여자로 다시 태어나도록 해 줄 진정한 평신도 영성을 계발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그러한 영성은 예수님의 성령을 따라 세상을 건설하게 하며, 사람들이 역사와 떨어져 있지 않으면서도 역사를 초월해 볼 수 있게 하고, 자기 형제자매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하느님께 대한 열정적 사랑을 기르게 하며, 주님께서 그들을 바라보시듯 그들을 바라보고 주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듯 그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영성은 내면주의(intimist) 영성과 사회 활동주의를 차단하는 대신, 수많은 다양한 이유 때문에 모순적이고 단편적인 삶에 일치와 의미와 희망을 주는 종합적인 영성, 생명을 주는 영성으로 표출된다. 그러한 영성의 촉구를 받아 평신도들은 자기의 고유한 임무를 수행하며 복음 정신을 실천하고 누룩처럼 내부로부터 세상의 성화에 이바지하고, 또 그렇게 하여 무엇보다도 자기 삶의 증거로써 (……)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다.

 

546. The lay faithful must strengthen their spiritual and moral lives, becoming ever more competent in carrying out their social duties. A deepening of interior motivations and the acquisition of a style appropriate for their work in the social and political spheres are the results of a dynamic and ongoing formation directed above all to the attainment of harmony between life, in all its complexity, and faith. In the experience of believers, in fact, “there cannot be two parallel lives in their existence: on the one hand, the so-called ‘spiritual' life, with its values and demands; and on the other, the so-called ‘secular' life, that is, life in a family, at work, in social relationships, in the responsibilities of public life and in culture”[1145].

546. 평신도는 자신의 영성적 도덕적 생활을 튼튼히 하고, 사회적 의무를 더욱 유능하게 이행하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복잡한 삶과 신앙 사이에 조화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 역동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은 사회 정치 영역에서 활동하는 평신도들에게 내적 동기를 깊이 심어 주고 그 영역에서 활동하는 데에 적합한 방식을 획득하게 해 준다. 사실 신자들의 경험으로 볼 때 평신도의 실존에 두 가지 병립된 생활은 있을 수 없다. 한편으로는 그 가치와 요구를 지닌 이른바 영신생활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정 생활과 노동, 사회적 관계, 정치, 문화 생활 등 이른바 세속생활이 따로 있을 수는 없다.”

Bringing faith and life together requires following the path judiciously indicated by the characteristic elements of Christian living: the Word of God as a reference point; the liturgical celebration of the Christian Mystery; personal prayer; the authentic experience of Church enhanced by the particular formational services of discerning spiritual guides; the exercise of the social virtues and a persevering commitment to cultural and professional formation.

신앙과 삶을 결합시키려면 그리스도교 생활의 특징적 요소들이 일러주는 현명한 길을 따라야 한다. 그 길은 곧 준거인 하느님 말씀, 전례를 통한 그리스도교 신비의 거행, 개인기도, 영성 지도자 식별을 위한 특수 교육으로 심화되는 진정한 교회 경험, 사회적 미덕의 실천, 그리고 문화 교육과 직업 교육에 대한 지속적 노력 등이다.

 

 

c. Acting with prudence / 슬기롭게 행동하기

 

547. The lay faithful should act according to the dictates of prudence, the virtue that makes it possible to discern the true good in every circumstance and to choose the right means for achieving it. Thanks to this virtue, moral principles are applied correctly to particular cases. We can identify three distinct moments as prudence is exercised to clarify and evaluate situations, to inspire decisions and to prompt action. The first moment is seen in the reflection and consultation by which the question is studied and the necessary opinions sought. The second moment is that of evaluation, as the reality is analyzed and judged in the light of God's plan. The third moment, that of decision, is based on the preceding steps and makes it possible to choose between the different actions that may be taken.

547. 평신도는 예지의 덕이 일러주는 대로 행동하여야 한다. 예지는 모든 상황에서 참 선을 식별할 수 있게 해 주고, 선에 이르는 올바른 수단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준다. 예지의 덕 덕분에 도덕적 원리를 개별 사안들에 올바로 적용할 수 있다. 우리는, 상황을 식별하고 평가하며 결정에 영향을 주고 행동을 촉구하는 데에 예지가 행사되는 세 번의 명확한 시기를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문제를 연구하고 필요한 의견을 구하는 성찰과 의논의 시기이며, 두 번째 시기는 하느님의 계획에 비추어 현실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평가의 시기이다. 세 번째 시기는 앞 단계들에 기초한 결정의 시기로서, 취할 수 있는 여러 행동 가운데서 선택할 수 있게 해 준다.

 

548. Prudence makes it possible to make decisions that are consistent, and to make them with realism and a sense of responsibility for the consequences of one's action. The rather widespread opinion that equates prudence with shrewdness, with utilitarian calculations, with diffidence or with timidity or indecision, is far from the correct understanding of this virtue. It is a characteristic of practical reason and offers assistance in deciding with wisdom and courage the course of action that should be followed, becoming the measure of the other virtues. Prudence affirms the good as a duty and shows in what manner the person should accomplish it[1146]. In the final analysis, it is a virtue that requires the mature exercise of thought and responsibility in an objective understanding of a specific situation and in making decisions according to a correct will[1147].

548. 예지는 일관된 결정을 할 수 있게 해 주고, 자기 행동의 결과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책임감을 갖고 결정할 수 있게 해 준다. 예지를 약삭빠름이나 실리적 계산, 망설임 또는 소심함이나 우유부단과 동일시하는 상당히 광범위한 의견은 이 덕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는 거리가 멀다. 예지는 실천 이성의 한 특성이고, 따라야 할 행로를 지혜롭고 용기 있게 결정하도록 도와주며, 다른 덕들의 척도가 된다. 예지는 선을 의무라고 단언하고, 인간이 선을 어떤 식으로 달성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최종적으로 예지는 특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올바른 의지에 따라 결정을 내릴 때에 성숙한 사고와 책임을 행사하도록 요구한다.

 

d. Social doctrine and lay associations / 사회 교리와 평신도 단체들

 

549. The Church's social doctrine must become an integral part of the ongoing formation of the lay faithful. Experience shows that this formative work is usually possible within lay ecclesial associations that respond to precise “criteria of ecclesiality”.[1148] “Groups, associations and movements also have their place in the formation of the lay faithful. In fact they have the possibility, each with its own method, of offering a formation through a deeply shared experience in the apostolic life, as well as having the opportunity to integrate, to make concrete and specific the formation that their members receive from other persons and communities”.[1149] The Church's social doctrine sustains and sheds light on the role of associations, movements and lay groups that are committed to the Christian renewal of the various sectors of the temporal order[1150]. “Church communion, already present and at work in the activities of the individual, finds its specific expression in the lay faithful working together in groups, that is, in activities done with others in the course of their responsible participation in the life and mission of the Church”[1151].

549. 교회의 사회 교리는 평신도 계속 교육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어야 한다. 경험으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교육 활동은 대개 교회성의 기준에 정확히 부응하는 평신도 교회 단체들 안에서 가능하다. 단체와 협회 그리고 운동들 또한 평신도 교육의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그들은 각기 고유한 방법으로 사도직 생활의 깊은 체험 교환을 통하여 교육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구성원들이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들로부터 받는 교육을 통합하고 구체화하고 전문화할 수 있는 기회를 지니고 있다.” 교회의 사회 교리는 현세 질서의 다양한 영역들의 그리스도교적 쇄신에 헌신하는 협회와 운동 그리고 평신도 단체들의 역할에 힘을 보태주고 빛을 비추어 준다.교회의 친교, 이미 개인의 활동 안에 존재하고 또 거기서 이루어지는 교회적 친교는 평신도들이 함께 모여 이루는 단체 활동, 곧 교회의 생활과 사명에 대한 책임 있는 참여의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활동 안에서 그 구체적인 표현을 발견한다.”

 

550. The Church's social doctrine is extremely important for ecclesial associations that have pastoral action within society as their objective. These associations represent a privileged point of reference in that their presence in the life of society is characterized by their nature as ecclesial bodies; this shows the importance and value of prayer, reflection and dialogue for addressing and improving social realities. One must keep in mind the distinction, in each case, “between the activities of Christians, acting individually or collectively in their own name as citizens guided by the dictates of a Christian conscience, and their activity acting along with their pastors in the name of the Church”[1152].

550. 교회의 사회 교리는 사회 내의 사목 활동을 목표로 삼고 있는 교회 단체들에게 극히 중요하다. 이들 단체들은, 사회생활에서 그들의 존재가 교회 기구라는 성격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준거가 되며, 이는 사회적 실재들의 향상을 위한 기도와 성찰, 대화의 중요성과 가치를 보여 준다. 각각의 경우에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이든 단체든, 국민으로서 자기 이름으로 그리스도인의 양심에 따라 하는 일과 교회의 이름으로 그 목자들과 함께 행동하는 일을 구분하도록 명심하여야 한다.

 

The various specialized associations that gather people together in the name of their Christian vocation and mission within a particular professional or cultural field have a precious role to play in forming mature Christians. For example, a Catholic association of doctors forms those who belong to it through the exercise of discernment with regard to the many problems that medical science, biology and other sciences place before the professional competence of doctors, as well as before their personal conscience and faith. The same could be also said of Catholic associations of teachers, legal professionals, businessmen and women, workers, as well as Catholic sports associations and ecological associations and so forth. In this context, the Church's social doctrine shows that it is an effective means for forming individual consciences and a country's culture.

그리스도인의 성소와 사명의 이름으로 특수한 직업 분야나 문화 분야의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다양한 전문 단체들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양성하는 데에 소중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가톨릭 의사 협회는, 의학과 생물, 기타 과학들이 의사들의 전문적 능력과 개인적 양심과 신앙에 맡기는 많은 문제들과 관련하여 식별 훈련을 통해서 협회 소속 의사들을 양성한다. 가톨릭 교사 협회, 변호사 협회, 사업가 협회, 노동자 협회, 가톨릭 운동가 협회, 환경 단체 등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의 사회 교리는 개인의 양심과 국가의 문화를 형성하는 효과적인 도구임을 보여 준다.

 

e. Service in the various sectors of social life / 다양한 영역의 사회생활에 대한 봉사

 

551. The presence of the laity in social life is characterized by service, the sign and expression of love, which is seen in the areas of the family, culture, work, economics and politics according to specific aspects. Complying with the different demands of their particular area of work, lay men and women express the truth of their faith and, at the same time, the truth of the Church's social doctrine, which fully becomes a reality when it is lived concretely in order to resolve social problems. In fact, the credibility of this social doctrine comes more immediately from the witness of action than from its internal consistency or logic[1153].

551. 사회생활에서 평신도의 존재는 사랑의 표지이며 표현인 봉사를 특징으로 하며, 이는 가정, 문화, , 특수한 측면의 정치 경제 영역에서 드러난다. 남녀 평신도들은 특수한 활동 영역의 각기 다른 요구에 응하면서 자신들의 신앙의 진리를 드러내는 동시에 교회의 사회 교리의 진리를 드러낸다. 교회의 사회 교리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하여 구체적으로 실천될 때 온전히 현실이 된다. 사실, 이러한 사회 교리의 신뢰성은 그것의 내적 일관성이나 논리보다는 행위의 증거에서 더욱 직접적으로 기인한다.

 

Having entered into The Third Millennium of the Christian era, the lay faithful will open themselves, through their witness, to all people with whom they will take on the burden of the most pressing calls of our time. “Drawn from the treasures of the teaching of the Church, the proposals of this Council are intended for all men, whether they believe in God or whether they do not explicitly acknowledge him; they are intended to help them to a keener awareness of their own destiny, to make the work conform better to the surpassing dignity of man, to strive for a more deeply rooted sense of universal brotherhood and to meet the pressing appeals of our times with a generous and common effort of love”[1154].

그리스도교 제삼천년기에 들어서면서 평신도들은 우리 시대의 가장 절박한 요구들에서 오는 짐을 나누어지게 될 모든 사람에게 자신들의 증거를 통하여 솔직히 다가가게 될 것이다. 이 거룩한 공의회는 교회의 가르침의 보고에서 몇 가지를 꺼내어, 하느님을 믿든 하느님을 명백히 인정하지 않든 현대의 모든 사람을 도와주고자 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온전한 사명을 더 분명히 깨달아, 세계를 인간의 고귀한 존엄성에 더욱 부합시키고, 보편적이고 더 근본적인 형제애를 추구하며, 사랑의 충동을 받아 아낌없는 공동 노력으로 현대의 긴급한 요청에 부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이다.”

 

1. Service to the human person / 인간에 대한 봉사

 

552. Among the areas of the social commitment of the laity, service to the human person emerges as a priority. Promoting the dignity of every person, the most precious possession of men and women, is the “essential task, in a certain sense, the central and unifying task of the service which the Church, and the lay faithful in her, are called to render to the human family”[1155].

552. 평신도의 사회 참여 영역 가운데 가장 먼저 부각되는 것은 인간에 대한 봉사이다. 인간에게 가장 귀중한 것인 모든 사람의 존엄을 증진하는 일은 교회와 그 안에 사는 평신도들이 인류 가족을 섬기도록 부름 받은 봉사의 근본 임무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핵심적이고도 통합적인 임무이다.”

 

The first form in which this task is undertaken consists in the commitment and efforts to renew oneself interiorly, because human history is not governed by an impersonal determinism but by a plurality of subjects whose free acts shape the social order. Social institutions do not of themselves guarantee, as if automatically, the common good; the internal “renewal of the Christian spirit” [1156] must precede the commitment to improve society “according to the mind of the Church on the firmly established basis of social justice and social charity”[1157].

인간에 대한 봉사 임무가 수행되는 첫 번째 형태는 내적인 자기 쇄신을 위한 투신과 노력이다. 이는 인류 역사가 비인격적인 결정론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 행위로 사회 질서를 형성하는 다수의 주체들에게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사회 제도들은 그 자체로는 공동선을 보장하지 못한다. 내적인 그리스도교 정신의 쇄신사회 정의와 사회 애덕의 확고한 기반 위에서 교회 정신에 따라 사회를 개선하려는 노력에 선행되어야 한다.

 

It is from the conversion of hearts that there arises concern for others, loved as brothers or sisters. This concern helps us to understand the obligation and commitment to heal institutions, structures and conditions of life that are contrary to human dignity. The laity must therefore work at the same time for the conversion of hearts and the improvement of structures, taking historical situations into account and using legitimate means so that the dignity of every man and woman will be truly respected and promoted within institutions.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 곧 그들을 형제자매처럼 사랑하는 마음은 마음의 회개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관심은 우리가 인간 존엄을 거스르는 제도와 조직, 삶의 조건들을 개선하려는 노력과 의무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평신도는 마음의 회개를 위하여 노력하는 한편,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고 정당한 수단을 사용하여 모든 사람의 존엄이 제도 안에서 참으로 존중받고 증진되도록 구조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하여야 한다.

 

553. Promoting human dignity implies above all affirming the inviolability of the right to life, from conception to natural death, the first among all rights and the condition for all other rights of the person[1158]. Respect for personal dignity requires, moreover, that the religious dimension of the person be recognized. “This is not simply a requirement ‘concerning matters of faith', but a requirement that finds itself inextricably bound up with the very reality of the individual”.[1159] The effective recognition of the right to freedom of conscience and religious freedom is one of the highest goods and one of the most serious duties of every people that truly wishes to ensure the good of the individual and of society[1160]. In the present cultural context, there is a particularly urgent need to defend marriage and the family, which can be adequately met only if one is convinced of the unique and singular value of these two realities for an authentic development of human society[1161].

553. 인간 존엄의 증진은 무엇보다도 임신受精에서부터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침해할 수 없는 생명에 대한 권리를 확언하는 것이며, 이는 인간의 모든 권리 가운데 으뜸가는 권리이고 다른 모든 권리를 위한 조건이다. 또한 인간 존엄에 대한 존중은 인간의 종교적 차원을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단지 신앙 문제에 관한요구가 아니라 바로 인간 실재에 불멸의 뿌리를 박고 있는 요구이다.”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최상의 선 가운데 하나이며, 개인과 사회의 선을 진정으로 보장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가장 중대한 의무 가운데 하나이다. 현재의 문화적 배경에서는 혼인과 가정을 수호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요구이며, 이러한 요구는 인간 사회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 이 두 가지 실재의 유일하고 뛰어난 가치를 확신하는 경우에만 적절히 충족될 수 있다.

 

2. Service in culture / 문화에 대한 봉사

 

554. Culture must represent a privileged area for the presence and commitment of the Church and individual Christians. The Second Vatican Council sees the separation of Christian faith and daily life as one of the most serious errors of our day[1162]. Without a metaphysical perspective, the loss of a longing for God in self-serving narcissism and the varied means found in a consumeristic lifestyle; the primacy given to technology and scientific research as ends in themselves; the emphasis placed on appearance, the quest for an image, communication techniques: all of these phenomena must be understood in their cultural aspects and placed in relation to the central issue of the human person, of integral human growth, of the human capacity to communicate and relate with other people, and of the constant human search for an answer to the great questions that run throughout life. It must be kept in mind that “culture is that through which man, as man, becomes more man, ‘is' more, has more access to ‘being'”[1163].

554. 문화는 교회와 개별 그리스도인의 현존과 참여를 위한 특별한 영역이 되어야 한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일상 생활의 분리를 우리 시대의 가장 중대한 잘못 가운데 하나로 보았다. 형이상학적인 관점도 없이, 이기적인 자기 도취와 또 소비적인 생활 방식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수단들 안에서 하느님에 대한 갈망을 상실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인 과학 기술 연구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 외양을 중시하고, 커뮤니케이션 기술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것, 이러한 모든 현상은 그것들의 문화적 측면에서 이해하여야 하며, 인간과 인간의 전인적 성장,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인간의 능력, 그리고 삶 전체에 걸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는 끊임없는 추구와 같은 핵심적 문제들과 관련하여 보아야 한다. “문화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더욱 인간다워지고, 더욱 참되며’, ‘존재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게 하는 것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555. Fostering a social and political culture inspired by the Gospel must be an area of particular importance for the lay faithful. Recent history has shown the weakness and radical failure of commonly held cultural perspectives that prevailed for a long time, especially on the social and political levels. In this area, particularly in the decades following the Second World War, Catholics in different countries have been involved at high levels, which shows with ever greater clarity today the consistency of their inspiration and of their heritage of values. The social and political involvement of Catholics, in fact, has never been limited to the mere transformation of structures, because this involvement takes place at the foundations of a culture that receives and listens to the reasoning made by faith and morality, including them as the basis and goal of concrete planning. When this awareness is lacking, Catholics themselves are condemned to cultural dispersion and their proposals are rendered insufficient and limited. An urgent priority today is also found in the need to present the patrimony of Catholic tradition, its values and content, and the entire spiritual, intellectual and moral heritage of Catholicism, in culturally up-to-date terms. Faith in Jesus Christ, who described himself as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Jn 14:6), prompts Christians to commit themselves with firm and ever new resolve to building a social and political culture inspired by the Gospel[1164].

555. 복음에서 영감을 받는 사회 정치 문화를 육성하는 일은 평신도에게 특히 중요한 영역이어여 한다. 최근의 역사는, 특히 사회 정치적 차원에서 오랫동안 영향을 미쳐왔던 보편적인 문화적 관점이 약화되고 근본적으로 쇠퇴해지는 것을 보여 준. 각국의 가톨릭 신자들은 특히 제2차 세계대전에 이은 수십 년 동안 이 영역에 수준 높이 참여해 왔으며, 이는 오늘날 그들의 영감과 가치 유산의 견고성을 한층 더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톨릭 신자들의 사회 정치 참여는, 신앙과 도덕을 구체적 계획의 원칙과 목표로 삼아 그것들의 논리를 받아들이고 그 논리에 귀 기울이는 문화의 토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단순한 구조 변화에 국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러한 의식이 결여될 때, 가톨릭 신자들은 문화적 분권화에 대한 비난을 받게 되며, 그들의 제안은 불충분하고 한정된 것이 되고 만다. 오늘날 우선되어야 할 시급한 것은 가톨릭 전통의 유산과 그 가치들과 내용, 가톨릭의 모든 영적 지적 도덕적 유산을 현대의 문화적 조건 안에 현존시키는 것이다. 당신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은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새롭고 확고한 결의로 복음의 영감을 받는 사회 정치 문화를 건설하는 데에 투신하도록 촉구한다.

 

556. The integral perfection of the person and the good of the whole of society are the essential ends of culture[1165]; the ethical dimension of culture is therefore a priority in the social action of the laity. Failure to pay attention to this dimension easily transforms culture into an instrument that impoverishes humanity. A culture can become sterile and headed for decadence when it “becomes inward looking, and tries to perpetuate obsolete ways of living by rejecting any exchange or debate with regard to the truth about man”[1166]. The formation of a culture capable of enriching men and women requires on the contrary the involvement of the whole person, who, in the cultural sphere, expresses his creativity, his intelligence, his knowledge of the world and of human persons; someone moreover who puts to good use his capacity for self-control, personal sacrifice, solidarity and readiness to promote the common good[1167].

556. 인간의 전인적 완성과 사회 전체의 선은 문화의 근본 목표이다. 그러므로 문화의 윤리적 차원은 평신도의 사회 활동에서 우선적인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문화는 인간성을 메마르게 하는 도구로 변기 쉽다. 문화가 인간의 진리에 대한 모든 교류나 토의를 거절하면서 폐쇄적이 되거나 낡은 삶의 방식을 반복하려고 할 때 문화는 메마르고 퇴폐하기 시작한다. 반대로, 인간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문화를 형성하려면, 문화 영역에서 자신의 창의력과 지능, 세상과 인간에 대한 지식을 표현하는 개인 전체와 나아가 공동선의 증진을 위한 극기, 개인적 희생, 연대, 준비를 위하여 자신의 능력을 올바로 활용하는 사람의 참여가 요구된다.

 

557. The social and political involvement of the lay faithful in the area of culture moves today in specific directions. The first is that of seeking to guarantee the right of each person to a human and civil culture “in harmony with the dignity of the human person, without distinction of race, sex, nation, religion, or social circumstances”[1168]. This right implies the right of families and persons to free and open schools; freedom of access to the means of social communication together with the avoidance of all forms of monopolies and ideological control of this field; freedom of research, sharing one's thoughts, debate and discussion. At the root of the poverty of so many peoples are also various forms of cultural deprivation and the failure to recognize cultural rights. The commitment to the education and formation of the person has always represented the first concern of Christian social action.

557. 문화 분야에서 평신도의 사회적 정치적 참여는 오늘날 구체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첫 번째는 인종, 성별, 국적, 종교나 사회적 신분의 차별 없이, 인간 존엄에 부합하는 인간적인 시민 문화에 대한 모든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이 권리에는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학교에 다닐 가정과 개인의 권리,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을 이용할 자유와 이 분야에서 모든 형태의 독점과 사상 통제를 막을 자유, 연구의 자유와 자신의 생각과 논쟁, 토론의 나눔이 포함. 수많은 사람들의 빈곤의 근원에는 다양한 형태의 문화적 박탈과 문화적 권리에 대한 인식의 결여가 자리 잡고 있다. 개인의 교육과 양성에 대한 노력은 언제나 그리스도인의 사회 활동에서 첫 번째 관심사였다.

 

558. The second challenge for Christian commitment concerns the content of culture, that is, truth. The question of truth is essential for culture because “it remains each man's duty to retain an understanding of the whole human person in which the values of intellect, will, conscience and fraternity are pre-eminent”.[1169] A correct anthropology is the criterion for shedding light on and verifying every historical form of culture. The Christian commitment in the field of culture is opposed to all reductionistic and ideological perspectives of man and life. The dynamism of openness to the truth is guaranteed above all by the fact that “different cultures are basically different ways of facing the question of the meaning of personal existence”[1170].

558. 그리스도인의 두 번째 참여 과제는 문화의 내용, 곧 진리와 관련된다. 진리의 문제는 문화에 본질적인 것이다. “지성, 의지, 양심, 형제애의 고상한 가치를 지닌 전인격의 균형을 유지할 의무는 모든 사람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인간학은 모든 역사적 형태의 문화에 빛을 비추고 이를 검증하기 위한 기준이다. 문화 분야에서 그리스도인의 노력은 인간과 삶에 대한 모든 환원주의적이고 이념적인 시각과 대립된다. 진리에 열려 있는 역동성은 무엇보다도 모든 나라의 인간 문화의 형태들은 결국 각 사람의 실존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는 것만큼 여러 가지라는 사실로 보장된다.

 

559. Christians must work so that the full value of the religious dimension of culture is seen. This is a very important and urgent task for the quality of human life, at both the individual and social levels. The question arising from the mystery of life and referring to the greater mystery of God is in fact at the centre of every culture; when it is eliminated, culture and the moral life of nations are corrupted[1171]. The authentic religious dimension is an essential part of man and allows him to open his diverse activities to the horizon in which they find meaning and direction. Human religiosity or spirituality is manifested in the forms taken on by a culture, to which it gives vitality and inspiration. The countless works of art of every period bear witness to this. When the religious dimension of the person or of a people is denied, culture itself starts to die off, sometimes disappearing completely.

559. 그리스도인들은 문화의 종교적 차원의 가치가 온전히 드러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이는 개인적 차원에서든 사회적 차원에서든 인간 삶의 질을 위하여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이다. 생명의 신비에서 제기되고 하느님의 위대한 신비와 관련된 문제는 사실 모든 문화의 핵심이다. 이러한 문제가 배재될 때, 민족들의 문화와 도덕 생활은 부패한다. 진정한 종교적 차원은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이며, 인간의 다양한 활동들이 의미와 방향을 찾는 지평으로 열려 있게 해 준다. 인간의 종교성이나 영성은 여러 가지 문화적 형태로 드러나 문화에 활력과 영감을 준다. 모든 시기의 무수한 예술 작품들이 이를 증언한다. 개인이나 한 민족의 종교적 차원이 부정될 때, 문화 자체는 소멸되기 시작하며 때로는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

 

560. In the promotion of an authentic culture, the laity will place great importance on mass media, examining above all the contents of the countless choices that people make. These choices, while varying from group to group and from individual to individual, all have a moral weight and should be evaluated in this light. In order to choose correctly, one must know the norms of the moral order and apply them faithfully.[1172] The Church offers a long tradition of wisdom, rooted in divine Revelation and human reflection,[1173] the theological orientation of which provides an important corrective function to both “the ‘atheistic' solution which deprives man of one of his basic dimensions, namely the spiritual one, and to permissive and consumerist solutions, which under various pretexts seek to convince man that he is free from every law and from God himself”[1174]. Rather than judging the means of social communication, this tradition is placed at their service: “The Church's culture of wisdom can save the media culture of information from becoming a meaningless accumulation of facts”[1175].

560. 참 문화의 증진에서, 평신도는 대중 매체에 큰 중요성을 부여해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인간의 무수한 선택의 내용들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선택들은 단체에 따라 또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모든 선택이 도덕적 무게를 지니며, 또 그것에 비추어 평가되어야 한다.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는 도덕적 질서의 규범을 알아야 하며, 그것들을 충실히 적용하여야 한다. 교회는 하느님의 계시와 인간의 성찰에 뿌리박은 지혜의 오랜 전통을 제시하며, 그 신학적 방향은 인간에게서 그의 주요 차원의 하나인 정신적 차원을 제거하는 무신론적해결책과, 다양한 핑계를 내세워 인간이 법과 하느님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설득시키려는 지극히 방임적이고 소비적인 해결책을 바로잡는 중요한 교정 역할을 한다.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을 비판하기보다는 그것들에 봉사하는 데에 이 전통을 이용한다. “교회의 지혜 문화는 매체의 정보 문화가 의미 없는 사실들의 축적이 되지 않도록 하며, 매체는 교회의 지혜가 최근의 새로운 지식들에 눈 떠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561. The lay faithful will look upon the media as possible and powerful instruments of solidarity: “Solidarity is a consequence of genuine and right communication and the free circulation of ideas that further knowledge and respect for others”[1176]. This is not the case if the media are used to build and sustain economic systems that serve greed and covetousness. Faced with grave injustices, the decision to ignore completely certain aspects of human suffering reflects an indefensible selectivity[1177]. Communication structures and policies, and the distribution of technology are factors that help to make some people “information rich” and others “information poor” at a time when prosperity, and even survival, depend on information. In this way, the media often contribute to the injustices and imbalances that give rise to the very suffering that they report. Communications and information technology, along with training in its use, must aim at eliminating such injustices and imbalances.

561. 평신도는 매체를 강력한 연대의 도구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연대 의식은 참되고 올바른 전달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증진하는 의견들의 자유로운 소통의 결과로서 나타난다.” 매체가, 욕심과 탐욕을 부추기는 경제 체제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에 이용된다면 그러한 경우라고 할 수 없다. 심각한 불의 앞에서 인간 고통의 일부 측면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결정은 용납할 수 없는 선택임을 반영한다. 커뮤니케이션 조직과 정책들, 그리고 기술 분배는 번영과 생존이 정보에 달려 있는 때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보의 풍요를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보의 빈곤을 안겨 주는 데 기여하는 요인들이다. 이처럼 매체는 흔히 그것들이 전하는 고통 자체의 원인이 되는 불의와 불균형에 이바지하기도 한다. 커뮤니케이션과 정보 기술, 그리고 그 이용에 대한 훈련은 그러한 불의와 불균형을 없애는 데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562. Professionals in the field of media are not the only people with ethical duties. Those who make use of the media also have obligations. Media operators who try to meet their responsibilities deserve audiences who are aware of their own responsibilities. The first duty of media users is to be discerning and selective. Parents, families and the Church have precise responsibilities they cannot renounce. For those who work, in various capacities, in the area of social communications, the warning of St. Paul rings out loud and clear: “Therefore, putting away falsehood, let every one speak the truth with his neighbour, for we are members one of another ... Let no evil talk come out of your mouths, but only such as is good for edifying, as fits the occasion, that it may impart grace to those who hear” (Eph 4:25, 29). Serving the human person through the building up of a human community based on solidarity, justice and love, and spreading the truth about human life and its final fulfilment in God remain at the heart of ethics in the media[1178]. In the light of faith, human communication can be seen as a journey from Babel to Pentecost, or rather, as the personal and social commitment to overcome the collapse of communication (cf. Gen 11:4-8), opening people to the gift of tongues (cf. Acts 2:5-11), to communication as restored by the power of the Spirit sent by the Son.

562. 매체 분야 전문가들만이 윤리적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매체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의무가 있다. 자신의 고유한 책임을 인식하고 있는 시청자들 못지않게 매체 운영자들도 자기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하여야 한다. 매체 이용자들의 첫째 의무는 식별력과 선정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부모와 가정, 교회는 포기할 수 없는 엄격한 책임이 있다. 다양한 능력을 지니고 사회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바오로 성인의 경고를 가슴깊이 명심하여야 한다. “거짓말을 하지 말고 이웃에게 진실을 말하십시오. 우리는 서로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 …… 남을 해치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마십시오. 오히려 기회 있는 대로 남에게 이로운 말을 하여 도움을 주고 듣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도록 하십시오.”(에페 4,25.29). 연대, 정의, 사랑에 기반을 둔 인간 공동체를 세움으로써 인간에게 이바지하고, 하느님 안에서 최종 실현될 인간 생명에 관한 진리를 전하는 것은 변함없는 매체 윤리의 핵심이다. 신앙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바벨에서 오순절까지의 여정으로 볼 수 있으며, 더 정확히 말하면, 의사소통의 붕괴를 극복하고(창세 11,4-8 참조) 사람들을 혀의 선물(사도 2,5-11 참조), 곧 성자께서 보내신 성령의 힘으로 회복된 커뮤니케이션에 눈 뜨게 하는 개인적 사회적 참여로 볼 수 있다.

 

3. Service in the economy / 경제에 대한 봉사

 

563. Faced with the complexity of today's economic context, the laity will be guided in their action by the principles of the social Magisterium. It is necessary that these principles be known and accepted in the area of economic activity itself; when they are ignored, above all the principle of the centrality of the human person, the quality of this activity is compromised[1179].

563. 오늘날의 복잡한 경제 상황 앞에서 평신도는 사회 교리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여야 한다. 이 원칙들을 알리고 그것들이 경제 활동 분야에서 받아들여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 원칙들, 특히 인간 중심의 원칙을 무시할 때, 경제 활동의 질은 훼손된다.

 

The commitment of Christians will also be translated into an effort of cultural reflection aimed at a discernment of the current models of economic and social development. Reducing the question of development to an exclusively technical problem would deprive it of its true content, which instead concerns “the dignity of individuals and peoples”[1180].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참여는 현재의 경제적 사회적 발전 모델을 식별하기 위한 문화적 성찰 노력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발전 문제를 오로지 기술 문제로 격하한다면 개인과 민족의 존엄과 관련된 발전 문제의 실체를 제거하는 게 될 것이다.

 

564. Economists, those working in this field and political leaders must sense the urgency of rethinking the economy, considering, on the one hand, the dramatic material poverty of billions of people and, on the other, the fact that “present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structures are ill-equipped to meet the demands of genuine development”[1181]. The legitimate requirements of economic efficiency need to be better harmonized with those of political participation and social justice. Concretely, this means that solidarity must be made an integral part of the networks of economic, political and social interdependence that the current process of globalization tends to consolidate.[1182] In this effort of rethinking, well organized and destined to have an effect on the way economic realities are seen, associations of a Christian inspiration active in the economic field

organizations of workers, business leaders and economists have a precious role to play.

564. 경제학자들과 경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정치 지도자들은, 한편으로는 수십억 인구의 비참한 물질적 빈곤을 고려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경제 사회 문화 구조가 참된 발전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에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서, 경제 문제를 재고해야 할 필요를 느껴야 한다. 경제적 효율성에 대한 정당한 요구는 정치 참여와 사회 정의의 요구와 더욱 잘 부합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이 말은, 현재의 세계화 과정으로 심화되고 있는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상호 의존 체제에서 연대가 필수적인 부분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경제적 실재들을 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올바른 사고의 전환 노력에서, 경제 분야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교 단체들 노동자, 기업가, 경제전문가 단체들 은 귀중한 역할을 담당한다.

 

4. Service in politics / 정치에 대한 봉사

 

565. For the lay faithful, political involvement is a worthy and demanding expression of the Christian commitment of service to others[1183]. The pursuit of the common good in a spirit of service, the development of justice with particular attention to situations of poverty and suffering, respect for the autonomy of earthly realities, the principle of subsidiarity, the promotion of dialogue and peace in the context of solidarity: these are the criteria that must inspire the Christian laity in their political activity. All believers, insofar as they possess rights and duties as citizens, are obligated to respect these guiding principles. Special attention must be paid to their observance by those who occupy institutional positions dealing with the complex problems of the public domain, whether in local administrations or national and international institutions.

565. 평신도의 정치 참여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봉사 의무의 한 표현으로서, 이는 가치 있으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섬김의 정신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선의 추구, 빈곤과 고통 상황에 특별히 주목하면서 이루어지는 정의의 발전, 지상 실재들의 자율성 존중, 보조성의 원칙, 연대를 통한 대화와 평화 증진, 이러한 것들은 그리스도인 평신도의 정치 활동에 영향을 주어야 하는 기준들이다. 국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지니는 모든 신자는 이러한 지도 원칙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 지역 행정기관에서든 국가 기관이나 국제기구들에서든, 공공 분야의 복잡한 문제들을 다루는 제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러한 원칙들을 준수하는지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한다.

 

566. The tasks accompanying responsibilities in social and political institutions demand a strict and articulated commitment that is able to demonstrate clearly the absolute necessity of the moral dimension in social and political life through thoughtful contributions to the political debate, planning and the chosen actions. Inadequate attention to the moral dimension leads to the dehumanization of life in society and of social and political institutions, thereby consolidating “structures of sin”[1184]: “Living and acting in conformity with one's own conscience on questions of politics is not slavish acceptance of positions alien to politics or some kind of confessionalism, but rather the way in which Christians offer their concrete contribution so that, through political life, society will become more just and more consistent with the dignity of the human person”[1185].

566. 사회 정치 제도에서 책임에 수반되는 의무에 요구되는 것은, 정치 토론과 입안, 의정 활동에 대한 의미 있는 기여를 통하여 사회 정치 생활에서 도덕적 차원의 절대적 필요성을 명확히 보여 줄 수 있는 진정하고 분명한 참여이다. 도덕적 차원에 대한 관심 부족은 사회생활과 사회 정치 제도의 비인간화로 이어지고, 그에 따라 죄의 구조를 견고히 하게 된다.정치 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양심에 따라 생활하고 행동하는 것은 정치와 동떨어진 견해나 일종의 신조주의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정치 활동을 통하여 더욱 정의롭고 인간 존엄과 더욱 일치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에 구체적으로 이바지하는 길이다.”

 

567. In the context of the laity's political commitment, particular attention must be given to preparing believers to exercise the power that will be theirs, especially when they are entrusted with such duties by their fellow citizens in accordance with democratic rules. They must show appreciation for the democratic system “inasmuch as it ensures the participation of citizens in making political choices, guarantees to the governed the possibility both of electing and holding accountable those who govern them, and of replacing them through peaceful means when appropriate”[1186]. They must also reject all secret organizations that seek to influence or subvert the functioning of legitimate institutions. The exercise of authority must take on the character of service to be carried out always in the context of moral law for the attainment of the common good[1187]. Those who exercise political authority must see to it that the energies of all citizens are directed towards the common good; and they are to do so not in an authoritarian style but by making use of moral power sustained in freedom.

567. 평신도의 정치 참여 분야에서는, 신자들이 특히 민주주의 법칙에 따라 국민에게 속한 권한 행사의 의무를 부여받을 때 그들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신자들을 준비시키는 데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들은 민주주의 제도가 국민들에게 정치적 결정에 참여할 중요한 권한을 부여하며, 피지배자들에게는 지배자들을 선택하거나 통제하거나 필요한 경우에는 평화적으로 대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장해 주는 한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존중을 보여 주어야 한다. 신자들은 또한 합법적 제도들의 기능에 영향을 미치거나 이를 전복하려고 하는 모든 비밀 조직들을 거부하여야 한다. 권한의 행사는 언제나 봉사의 성격을 띠어야 하며, 봉사는 공동선의 달성을 위하여 도덕의 배경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적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권위적인 방식으로가 아니라 자유 안에서 길러지는 도덕적 힘을 이용하여 전 국민의 힘이 공동선을 지향하도록 하여야 한다.

 

568. The lay faithful are called to identify steps that can be taken in concrete political situations in order to put into practice the principles and values proper to life in society. This calls for a method of discernment[1188], at both the personal and community levels, structured around certain key elements: knowledge of the situations, analyzed with the help of the social sciences and other appropriate tools; systematic reflection on these realities in the light of the unchanging message of the Gospel and the Church's social teaching; identification of choices aimed at assuring that the situation will evolve positively. When reality is the subject of careful attention and proper interpretation, concrete and effective choices can be made. However, an absolute value must never be attributed to these choices because no problem can be solved once and for all. “Christian faith has never presumed to impose a rigid framework on social and political questions, conscious that the historical dimension requires men and women to live in imperfect situations, which are also susceptible to rapid change”[1189].

568. 평신도는 실제 정치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을 식별하여, 사회생활에 적합한 원칙과 가치들을 실천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개인적 공동체적 차원의 식별 방법에 대한 이러한 요구 몇 가지 핵심 요소들을 중심으로 체계화한다. , 사회 과학과 기타 적절한 도구들의 도움으로 분석한 상황에 대한 지식, 불변의 메시지와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비추어 본 이러한 현실에 대한 체계적인 성찰, 상황이 긍정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려는 선택들에 대한 판별 등이다. 주의 깊은 관심과 올바른 해석으로 실재를 대할 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문제도 단 한 번에 영원히 해결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러한 선택들에 결코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역사적 차원에서 사람들이 불완전하고 급격한 변화를 겪기 쉬운 상황 속에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식하여,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에 엄격한 틀을 강요하고자 한 적이 없다.”

 

569. A characteristic context for the exercise of discernment can be found in the functioning of the democratic system, understood by many today in agnostic and relativistic terms that lead to the belief that truth is something determined by the majority and conditioned by political considerations[1190]. In such circumstances, discernment is particularly demanding when it is exercised with regard to the objectivity and accuracy of information, scientific research and economic decisions that affect the life of the poorest people. It is likewise demanding when dealing with realities that involve fundamental and unavoidable moral duties, such as the sacredness of life, the indissolubility of marriage, the promotion of the family founded on marriage between a man and a woman.

569. 식별력 행사를 위한 특징적 상황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불가지론적이고 상대주의적인 용어로 이해하는 민주주의 제도의 운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용어들은 진리를 다수가 결정하고 정치적 고려에 좌우되는 것으로 믿게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결정들과 정보와 과학 연구의 객관성이나 정확성과 관련하여 식별력을 행사하기가 특히 어렵다. 생명의 신성함, 혼인의 불가해소성, 남녀의 혼인에 기초한 가정의 증진과 같은 근본적이고 불가피한 도덕적 의무들을 내포한 실재들을 다룰 때도 마찬가지이다.

 

In such situations certain fundamental criteria are useful: the distinction and, simultaneously, the connection between the legal order and the moral order; fidelity to one's own identity and, at the same time, the willingness to engage in dialogue with all people; the need, in the social judgment and activity of Christians, to refer to the observance of three inseparable values natural values, with respect for the legitimate autonomy of temporal realities; moral values, promoting an awareness of the intrinsic ethical dimension of every social and political issue; supernatural values, in order to fulfil one's duty in the spirit of the Gospel of Jesus Christ.

그러한 상황에서는 몇 가지 근본 기준들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곧 법적 질서와 도덕적 질서 사이의 차이와 연관성;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에 충실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사람과 대화를 나누려는 의지;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판단과 행동에서 세 가지 불가분의 가치를 준수하도록 언급할 필요성이다. 여기서 세 가지 가치란, 현세 실재들의 합법적 자율성을 존중하는 자연적 가치; 모든 사회 정치 문제의 본질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에 대한 인식을 촉진하는 도덕적 가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으로 자신의 의무를 완수하기 위한 초자연적 가치이다.

 

570. When concerning areas or realities that involve fundamental ethical duties legislative or political choices contrary to Christian principles and values are proposed or made, the Magisterium teaches that “a well-formed Christian conscience does not permit one to vote for a political programme or an individual law which contradicts the fundamental contents of faith and morals”[1191]. In cases where it is not possible to avoid the implementation of such political programmes or to block or abrogate such laws, the Magisterium teaches that a parliamentary representative, whose personal absolute opposition to these programmes or laws is clear and known to all, may legitimately support proposals aimed at limiting the damage caused by such programmes or laws and at diminishing their negative effects on the level of culture and public morality. In this regard, a typical example of such a case would be a law permitting abortion[1192]. The representative's vote, in any case, cannot be interpreted as support of an unjust law but only as a contribution to reducing the negative consequences of a legislative provision, the responsibility for which lies entirely with those who have brought it into being.

570. 근본적인 윤리 의무들을 내포한 영역이나 실재들과 관련하여, 그리스도교 원칙과 가치들에 위배되는 법률적 정치적 선택들이 제안되거나 이루어질 때, 교도권은 올바른 양심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신앙과 도덕의 근본 내용에 위배되는 정책이나 개별법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그러한 정책들의 이행을 무효화하거나 그러한 법률들을 저지하거나 폐기하기가 불가능할 때, 교도권은 그러한 계획이나 법률을 개인적으로 절대 반대하는 것이 분명하거나 그렇다고 알려져 있는 국회의원들이 그러한 계획이나 법률로 발생될 폐해를 제한하고 그것들이 문화와 정치 윤리 차원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고자 제안된 안들을 합법적으로 지지할 것을 가르친다. 이와 관련하여, 그런 경우의 전형적인 예가 낙태 허용 법일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국회의원의 의결권은 부당한 법을 지지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며, 오로지 법 규정의 부정적 결과를 줄이는 데에 기여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법 규정의 부정적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그것을 만든 사람들에게 있다.

 

Faced with the many situations involving fundamental and indispensable moral duties, it must be remembered that Christian witness is to be considered a fundamental obligation that can even lead to the sacrificing of one's life, to martyrdom in the name of love and human dignity[1193]. The history of the past twenty centuries, as well as that of the last century, is filled with martyrs for Christian truth, witnesses to the faith, hope and love founded on the Gospel. Martyrdom is the witness of one who has been personally conformed to Jesus crucified, expressed in the supreme form of shedding one's blood according to the teaching of the Gospel: if “a grain of wheat falls into the earth and dies ... it bears much fruit” (Jn 12:24).

근본적이고 필요 불가결한 도덕적 의무를 내포하는 여러 상황에 직면하여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의 증거를 인간 존엄과 사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희생하고 순교에까지 이를 수 있는 근본 의무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2000년 역사와 지난 세기의 역사는 그리스도교 진리를 위하여 순교한 사람들, 곧 복음에 토대를 둔 믿음, 바람, 사랑을 증언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순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일치한 사람의 증언이며,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는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피를 흘리는 최상의 형태로 표현된다.

 

571. The political commitment of Catholics is often placed in the context of the “autonomy” of the State, that is, the distinction between the political and religious spheres[1194]. This distinction “is a value that has been attained and recognized by the Catholic Church and belongs to the inheritance of contemporary civilization”[1195]. Catholic moral doctrine, however, clearly rejects the prospects of an autonomy that is understood as independence from the moral law: “Such ‘autonomy' refers first of all to the attitude of the person who respects the truths that derive from natural knowledge regarding man's life in society, even if such truths may also be taught by a specific religion, because truth is one”[1196]. A sincere quest for the truth, using legitimate means to promote and defend the moral truths concerning social life justice, freedom, respect for life and for other human rights is a right and duty of all members of a social and political community.

571. 가톨릭 신자들의 정치 참여는 흔히 국가의 자율성이라는 맥락에서, 다시 말해, 정치 영역과 종교 영역 사이의 구분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구분은 가톨릭 교회가 달성해 왔고 인정해 온 가치이며, 현대 문명의 유산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의 도덕적 가르침은 자율성을 도덕률과 별개의 것으로 이해하는 시각을 명백히 거부한다. “그러한 자율성은 무엇보다 인간의 사회생활에 관한 자연스러운 지식에서 얻는 진리들을 존중하는 사람의 태도를 말한다. 가톨릭 신자들이 정치 생활에서 실천하는 고유한 자율성을 교회의 도덕적 사회적 가르침에서 벗어난 원칙의 주장과 혼동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회생활과 관련된 도덕적 진리들 정의, 자유, 생명 존중, 타인의 권리 존중 을 증진하고 수호하기 위한 합법적 수단을 이용한 진리에 대한 진지한 탐구는 사회 정치 공동체 모든 구성원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When the Church's Magisterium intervenes in issues concerning social and political life, it does not fail to observe the requirements of a correctly understood autonomy, for “the Church's Magisterium does not wish to exercise political power or eliminate the freedom of opinion of Catholics regarding contingent questions. Instead, it intends as is its proper function to instruct and illuminate the consciences of the faithful, particularly those involved in political life, so that their actions may always serve the integral promotion of the human person and the common good. The social doctrine of the Church is not an intrusion into the government of individual countries. It is a question of the lay Catholic's duty to be morally coherent, found within one's conscience, which is one and indivisible”[1197].

교회의 교도권이 사회 정치 생활 문제에 개입할 때는 올바로 이해된 자율권의 요구를 반드시 준수한다. “교회의 교도권은 이 영역에 개입하여 정치력을 행사하거나, 있을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하여 가톨릭 신자들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말살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보다, 교회는 그 고유한 임무에 따라, 신자들 특히 정치 생활에 참여하는 신자들의 양심을 가르치고 밝혀 주어 그들의 활동이 언제나 인간의 완전한 발전과 공동선에 이바지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교회의 사회 교리는 개별 국가들의 정부에 대한 간섭이 아니라, 가톨릭 평신도들이 하나이며 분리될 수 없는 자기의 양심 안에서 도덕적으로 일관성을 지녀야 할 의무와 관련된 것이다.”

 

572. The principle of autonomy involves respect for every religious confession on the part of the State, which “assures the free exercise of ritual, spiritual, cultural and charitable activities by communities of believers. In a pluralistic society, secularity is a place for communication between the different spiritual traditions and the nation”.[1198] Unfortunately, even in democratic societies, there still remain expressions of secular intolerance that are hostile to granting any kind of political or cultural relevance to religious faiths. Such intolerance seeks to exclude the activity of Christians from the social and political spheres because Christians strive to uphold the truths taught by the Church and are obedient to the moral duty to act in accordance with their conscience. These attitudes even go so far, and radically so, as to deny the basis of a natural morality. This denial, which is the harbinger of a moral anarchy with the obvious consequence of the stronger prevailing over the weaker, cannot be accepted in any form by legitimate pluralism, since it undermines the very foundations of human society. In the light of this state of affairs, “the marginalization of Christianity ... would not bode well for the future of society or for consensus among peoples; indeed, it would threaten the very spiritual and cultural foundations of civilization”[1199].

572. 자율성의 원리에는 모든 신앙 고백에 대한 국가의 존중이 포함된다. 국가는 신자 공동체들의 예식, 영성, 문화, 자선 활동의 자유로운 실천을 보장한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세속성은 서로 다른 영성 전통들과 국가를 이어주는 자리이다.” 불행히도, 민주주의 사회에는 아직도 종교적 믿음에 대한 모든 종류의 정치적 문화적 타당성을 보장하는 데에 냉담한 세속적 불용의 표현이 남아 있다. 그러한 불용은 사회 정치 영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의 활동을 배척하려고 한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교회가 가르치는 진리들을 지지하고 양심에 따라 행동할 도덕적 의무에 복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용의 태도가 너무 지나쳐 근본적으로는 자연 도덕의 토대를 부인하기까지 한다. 명백히 약자에 대한 강자의 우위를 초래하면서 도덕적 무질서를 예고하는 이러한 부인은 인간 사회의 근본 자체를 무너뜨리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로든 합법적 다원주의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에 비추어 볼 때, “그리스도교의 주변화는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나 민족 간의 일치를 위해서도 좋은 징조가 아니다. 사실, 그것은 문명의 정신적 문화적 토대 자체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573. A particular area for discernment on the part of the lay faithful concerns the choice of political instruments, that is, membership in a party or in other types of political participation. A choice must be made that is consistent with values, taking into account actual circumstances. In every case, whatever choice is made must be rooted in charity and tend towards the attainment of the common good[1200]. It is difficult for the concerns of the Christian faith to be adequately met in one sole political entity; to claim that one party or political coalition responds completely to the demands of faith or of Christian life would give rise to dangerous errors. Christians cannot find one party that fully corresponds to the ethical demands arising from faith and from membership in the Church. Their adherence to a political alliance will never be ideological but always critical; in this way the party and its political platform will be prompted to be ever more conscientious in attaining the true common good, including the spiritual end of the human person[1201].

573. 평신도의 식별을 위한 특별 영역은 정치적 도구의 선택, 다시 말해 정당 가입이나 다른 정치 참여 형태의 가입과 관계된다. 선택은 현 상황을 고려하면서 가치들과 일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어떠한 선택을 하든 모든 경우에 그 선택은 사랑 안에 뿌리박아야 하며, 공동선의 달성을 지향하여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관심사가 하나의 유일한 정치 단체 안에서 충족되기란 어렵다. 어떤 한 정당이나 정치 연합이 그리스도교 신앙이나 그리스도교 생활의 요구에 완전히 부응한다고 주장다면 위험한 실수를 하는 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신앙과 교회 구성원의 윤리적 요구에 완전히 부합하는 정당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떤 한 정치 연합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지지는 결코 이념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되며 언제나 비판적인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정당과 그 정당의 정강이 인간의 영적 목표를 포함하여 참된 공동선 달성에 더욱 성실하도록 촉구하여야 할 것이다.

 

574. The distinction that must be made on the one hand between the demands of faith and socio-political options, and on the other hand between the choices made by individual Christians and the Christian community as such, means that membership in a party or in a political alliance should be considered a personal decision, legitimate at least within the limits of those parties and positions that are not incompatible with Christian faith and values[1202]. However, the choice of a party, a political alliance, the persons to whom public life is to be entrusted, while involving the conscience of each person, can never be an exclusively individual choice. “It is up to the Christian community to analyze with objectivity the situation which is proper to their own country, to shed on it the light of the Gospel's inalterable words and to draw principles of reflection, norms of judgment and directives for action from the social teaching of the Church”[1203]. In any case, “no one is permitted to identify the authority of the Church exclusively with his own opinion”[1204]; believers should rather “try to guide each other by sincere dialogue in a spirit of mutual charity and with anxious interest above all in the common good”[1205].

574. 신앙의 요구와 사회 정치적 선택, 또 개별 그리스도인의 선택과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선택이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은, 곧 한 정당이나 정치 연합에 가입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결정이며 그러한 결정은 적어도 그 정당들과 강령들이 그리스도인 신앙이나 가치들과 양립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정당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당이나 정치 연립, 공직 는 없다. “각 지역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영원불변한 복음의 말씀으로 비추어주고, 사회 문제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에서 반성 원리와 판단 기준과 행동 지침을 발견하는 일은 각 지역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책임인 것이다.” 어쨌든, “어느 누구도 그러한 사건에서 자기 의견을 위하여 배타적으로 교회의 권위를 주장할 수 없다.” 그보다 신자들은 언제나 진지한 대화를 통하여 서로 빛을 비추어 주도록 노력하며 서로 사랑을 간직하고 무엇보다도 공동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영한편집 작업 : 김수진(아나스타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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