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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한비교 간추린 사회교리

 

 

결론 (575~583항) - 사랑의 문명을 위하여

조회 수 1587 추천 수 0 2016.05.23 12:50:03

 

 

CONCLUSION / 결론

 

FOR A CIVILIZATION OF LOVE

사랑의 문명을 위하여

 

 

a. The help that the Church offers to modern man / 교회가 현대인에게 베푸는 도움

 

575. In modern society, people are increasingly experiencing a new need for meaning. “Man will always yearn to know, at least in an obscure way, what is the meaning of his life, of his activity, of his death”[1206]. It is difficult to meet the demands of building the future in a new context of an even more complex and interdependent international relations that are also less and less ordered and peaceful. Life and death seem to be solely in the hands of a scientific and technological progress that is moving faster than man's ability to establish its ultimate goals and evaluate its costs. Many phenomena indicate instead that “the increasing sense of dissatisfaction with worldly goods which is making itself felt among citizens of the wealthier nations is rapidly destroying the treasured illusion of an earthly paradise. People are also becoming more and more conscious of their rights as human beings, rights that are universal and inviolable, and they are aspiring to more just and more human relations”[1207].

575.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의미의 필요성을 점점 더 새롭게 느끼고 있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 인생의 의미, 자신의 일과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적어도 어렴풋이나마 알고자 갈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층 더 복잡하고 상호 의존적이면서도 점점 더 질서와 평화를 잃어가고 있는 새로운 국제 관계의 틀 안에서 미래 건설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삶과 죽음은 단지 과학 기술의 발전에 달려 있는 듯하며, 그러한 발전은 그것의 궁극 목표를 정하고 그 손실을 따져 볼 수 있는 인간의 능력보다 훨씬 더 빨리 이루어지고 있다. 오히려 여러 가지 현상에서 드러나듯이, “그 동안 부유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갈수록 더 외부 재화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 지상에서 영원토록 살아가는 행복한 생활에 대한 거짓 환상을 버리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자신이 인간의 모든 권리를 완전하게 누려야 한다는 것을 날이 갈수록 더욱더 분명하게 의식할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의 존엄에 더욱더 부합하고 완전히 평등한 상호 관계의 증진을 위하여 온 힘을 다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576. To these basic questions about the meaning and purpose of human life the Church responds with the proclamation of the Gospel of Christ, which liberates the dignity of the human person from changing opinions and ensures the freedom of men and women as no human law can do. The Second Vatican Council indicated that the mission of the Church in the contemporary world consists in helping every human being to discover in God the ultimate meaning of his existence. The Church knows well that “God alone, whom she serves, can satisfy the deepest cravings of the human heart, for the world and what it has to offer can never fully satisfy it”[1208]. Only God, who created man in his image and redeemed him from sin, can offer a fully adequate answer through the Revelation wrought in his Son made man. The Gospel, in fact, “announces and proclaims the freedom of the sons of God, it rejects all bondage resulting from sin; it scrupulously respects the dignity of conscience and its freedom of choice; it never ceases to encourage the employment of human talents in the service of God and of man, and finally, it commends everyone to the charitable love of all”[1209].

576. 인간 생명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근본 질문들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 응답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간의 존엄을 변화하는 의견들에서 자유롭게 해 주며, 어떠한 인간의 법도 보장해 줄 수 없는 모든 사람의 자유를 보장해 준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현대 세계에서 교회의 사명은 모든 인간이 하느님 안에서 자기 존재의 궁극적 의미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는 오로지 자신이 섬기는 하느님께서만 지상의 양식으로는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 인간 마음의 가장 깊은 열망을 충족시켜 주심을 잘 알고 있다.” 인간을 당신 모습대로 창조하시고 죄에서 구원하신 하느님만이 사람이 되신 당신 아들 안에서 계시를 통하여 완전한 해답을 주실 수 있다. 사실 복음은 하느님 자녀들의 자유를 알리고 선포하며 궁극적으로 죄에서 나오는 온갖 예속을 배척하고, 양심의 존엄과 그 자유 결정을 거룩히 존중하고, 인간의 모든 재능을 하느님께 대한 봉사와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배가시키라고 끊임없이 권고하며, 모든 사람을 모든 사람의 사랑에 맡긴다.”

 

 

b. Starting afresh from faith in Christ / 그리스께 대한 믿음에서 새롭게 출발하기

 

577. Faith in God and in Jesus Christ sheds light on the moral principles that are “the sole and irreplaceable foundation of that stability and tranquillity, of that internal and external order, private and public, that alone can generate and safeguard the prosperity of States”[1210]. Life in society must be based on the divine plan because “the theological dimension is needed both for interpreting and solving present-day problems in human society”[1211]. In the presence of serious forms of exploitation and social injustice, there is “an ever more widespread and acute sense of the need for a radical personal and social renewal capable of ensuring justice, solidarity, honesty and openness. Certainly, there is a long and difficult road ahead; bringing about such a renewal will require enormous effort, especially on account of the number and gravity of the causes giving rise to and aggravating the situations of injustice present in the world today. But, as history and personal experience show, it is not difficult to discover at the bottom of these situations causes which are properly ‘cultural', linked to particular ways of looking at man, society and the world. Indeed, at the heart of the issue of culture we find the moral sense, which is in turn rooted and fulfilled in the religious sense”[1212]. As for “the social question”, we must not be seduced by “the naive expectation that, faced with the great challenges of our time, we shall find some magic formula. No, we shall not be saved by a formula but by a Person and the assurance that he gives us: I am with you! It is not therefore a matter of inventing a ‘new programme'. The programme already exists: it is the plan found in the Gospel and in the living Tradition, it is the same as ever. Ultimately, it has its centre in Christ himself, who is to be known loved and imitated, so that in him we may live the life of the Trinity, and with him transform history until its fulfilment in the heavenly Jerusalem”[1213].

577.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은 안정과 평온, 홀로 국가의 번영을 가져오고 보호할 수 있는 내적 외적, 사적 공적 질서의 유일하고 대체할 수 없는 토대인 도덕 원리에 빛을 비추어준다. 사회생활은 하느님의 계획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 “신학적 차원은 오늘날 인간 공동체의 문제들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심각한 착취와 사회 불의에 직면하여, “개인과 사회의 철저한 쇄신의 필요성에 대한 광범하고 예리한 감각이 고조되고 있으며, 그러한 쇄신만이 정의와 단결, 정직과 개방을 보장해 줄 수 있다. 분명 멀고도 험한 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러한 쇄신을 가져오려면, 특히 오늘의 세계에 만연된 불의한 상황들을 조장하고 악화시키는 무수하고 심각한 원인들 때문에 지대한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역사와 개인적 체험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이러한 상황의 밑바닥에서 인간과 사회와 세상을 보는 특수한 관점과 연계된 정말 문화적인 원인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로 문화 문제의 핵심에서 우리는 윤리적 감각을 발견한다. 이 윤리적 감각은 종교적 감각 안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고 거기에서 완성된다.”사회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우리 시대의 크나큰 도전들 앞에서, 어떤 마술 같은 해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기대는 물론 하지 않는다. 다른 어떤 묘안이 아니라, 바로 한 분 예수님께서만, ‘내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하신 그분의 다짐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새로운 계획의 창출이 아니다. 계획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그것은 복음과 살아 있는 성전(聖傳) 안에서 발견되는 계획으로,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다. 결국 그 계획의 중심은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고 본받음으로써, 그분 안에서 삼위일체의 삶을 영위하며, 천상 예루살렘에서 역사가 완성되기까지 그분과 함께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다.”

 

 

c. A solid hope / 굳건한 희망

 

578. The Church teaches men and women that God offers them the real possibility of overcoming evil and attaining good. The Lord has redeemed mankind “bought with a price” (1 Cor 6:20). The meaning and basis of the Christian commitment in the world are founded on this certainty, which gives rise to hope despite the sin that deeply marks human history. The divine promise guarantees that the world does not remain closed in upon itself but is open to the Kingdom of God. The Church knows the effects of “the mystery of lawlessness” (2 Thes 2:7), but she also knows that “there exist in the human person sufficient qualities and energies, a fundamental ‘goodness' (cf. Gen 1:31), because he is the image of the Creator, placed under the redemptive influence of Christ, who ‘united himself in some fashion with every man', and because the efficacious action of the Holy Spirit ‘fills the earth' (Wis 1:7)”[1214].

578. 교회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악을 이기고 선에 도달할 수 있는 참된 가능성을 베풀어 주신다고 가르친다. 주님께서는 값을 치르시고”(1코린 6,20) 인류를 구원하셨다. 그리스도인의 세상 참여의 의미와 토대는 죄가 인류 역사를 깊이 물들이고 있음에도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이러한 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느님의 약속은 세상이 스스로에게 닫혀 있지 않고 하느님 나라로 열려 있다는 것을 보장한다. 교회는 무법의 신비가 이미 작용하고 있다는 것”(2테살 2,7)을 알고 있지만, “인간 안에는 넉넉한 자질과 활력 그리고 근본적인 ’(창세 1,31 참조)이 존재한다는 것도 안다. “그 이유는 인간이 창조주의 모상이요,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을 모든 사람과 일치시키신그리스도의 구원의 영향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며, 성령의 힘 있는 활동이 온 세상에 충만히’(지혜 1,7) 있기 때문이다

 

579. Christian hope lends great energy to commitment in the social field, because it generates confidence in the possibility of building a better world, even if there will never exist “a paradise of earth”[1215]. Christians, particularly the laity, are urged to act in such a way that “the power of the Gospel might shine forth in their daily social and family life. They conduct themselves as children of the promise and thus strong in faith and hope they make the most of the present (cf. Eph 5:16; Col 4:5), and with patience await the glory that is to come (cf. Rom 8:25). Let them not, then, hide this hope in the depths of their hearts, but let them express it by a continual conversion and by wrestling ‘against the world-rulers of this darkness, against the spiritual forces of wickedness' (Eph 6:12)”[1216]. The religious motivation behind such a commitment may not be shared by all, but the moral convictions that arise from it represent a point of encounter between Christians and all people of good will.

579.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사회 분야에 대한 투신에 더욱 큰 힘을 쏟게 한다. “지상 낙원은 결코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 특히 평신도들은 가정과 사회의 일상 생활에서 복음의 힘이 빛나게행동하도록 촉구 받는다. “굳건한 믿음과 바람으로 현재의 기회를 잘 살려 나가며(에페 5,16; 골로 4,5 참조) 미래의 영광을 인내로 기다린다면(로마 8,25 참조), 평신도들은 약속의 자녀로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희망을 마음 속 깊이 감추어 두지만 말고, 끊임없이 회개하며 이 암흑 세계의 지배자들과 악령들’(에페 6,12)을 거슬러 싸움으로써 세속 생활의 구조를 통해서도 이 희망을 드러내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그러한 투신 뒤에 감추어진 종교적 동기를 공유하지는 못하지만, 그러한 동기에서 비롯되는 도덕적 확신은 그리스도인들과 선의의 모든 사람 사이의 만남의 장이 된다.

 

 

d. Building the “civilization of love” / 사랑의 문명건설

 

580. The immediate purpose of the Church's social doctrine is to propose the principles and values that can sustain a society worthy of the human person. Among these principles, solidarity includes all the others in a certain way. It represents “one of the fundamental principles of the Christian view of social and political organization”[1217].

580. 교회의 사회 교리의 직접적인 목적은 인간다운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원칙과 가치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한 원칙들 가운데서 연대는 어떤 의미에서 다른 모든 것을 포함한다. 연대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조직에 대한 그리스도교 정신 자체의 기본 원리 중 하나이다.

 

Light is shed on this principle by the primacy of love, “the distinguishing mark of Christ's disciples (cf. Jn 13:35)”[1218]. Jesus teaches us that “the fundamental law of human perfection, and consequently of the transformation of the world, is the new commandment of love” (cf. Mt 22:40, Jn 15:12; Col 3:14; Jas 2:8)[1219]. Personal behaviour is fully human when it is born of love, manifests love and is ordered to love. This truth also applies in the social sphere; Christians must be deeply convinced witnesses of this, and they are to show by their lives how love is the only force (cf. 1 Cor 12:31-14:1) that can lead to personal and social perfection, allowing society to make progress towards the good.

이 원칙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식별하는 표(요한 13,35 참조)”탁월한 사랑으로 빛을 받는다. 예수님께서는 인간 완성과 세계 개혁의 본 법칙은 사랑의 새 계명이라고 가르치신다(마태 22,40; 요한 15,12; 골로 3,14; 야고 2,8 참조). 개인의 행동은 사랑에서 생겨날 때 온전히 인간적이 되며, 사랑을 드러내고, 사랑의 지시에 따른다. 이러한 진리는 사회 영역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깊은 확신을 가지고 이러한 사랑을 증언하여야 하며, 자신의 삶을 통하여 사랑이 어떻게 사회를 선으로 나아가게 하며 인간과 사회를 완덕으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힘인지(1코린 12,3114,1 참조) 보여 주어야 한다.

 

581. Love must be present in and permeate every social relationship[1220]. This holds true especially for those who are responsible for the good of peoples. They “must earnestly cherish in themselves, and try to rouse in others, charity, the mistress and the queen of virtues. For, the happy results we all long for must be chiefly brought about by the plenteous outpouring of charity; of that true Christian charity which is the fulfilling of the whole Gospel law, which is always ready to sacrifice itself for the sake of others, and is man's surest antidote against worldly pride and immoderate love of self”[1221]. This love may be called “social charity”[1222] or “political charity” [1223] and must embrace the entire human race[1224]. “Social love”[1225] is the antithesis of egoism and individualism. Without absolutizing social life, as happens with short-sighted perspectives limiting themselves to sociological interpretations, it must not be forgotten that the integral development of the person and social growth mutually influence each other. Selfishness, therefore, is the most insidious enemy of an ordered society. History shows how hearts are devastated when men and women are incapable of recognizing other values or other effective realities apart from material goods, the obsessive quest for which suffocates and blocks their ability to give of themselves.

581. 사랑은 모든 사회관계 안에 현존하면서 그 관계 안에 스며들어야 한다. 이것은 특히 민족들의 선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 안에 모든 덕의 근원이고 절정인 애덕의 열정을 불러일으켜 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두가 염원하는 안녕은 근본적으로 사랑이 널리 확산되어 생겨난 결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본인이 말하는 사랑은 그 자체 안에 복음 전체를 요약하며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항상 자신을 희생시킬 만반의 태세를 갖춘 그리스도교 사랑, 곧 애덕이다. 애덕은 그야말로 세속의 교만과 이기심을 해소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약이다사회적 사랑 또는 정치적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이 사랑이 온 인류를 끌어안아야 한다.사회적 사랑 이기주의나 개인주의와 정반대의 개념이다. ‘사회적 사랑또는 정치적 사랑이라는 개념을 사회학적 해석에 한정시키는 근시안적 관점으로 사회생활을 절대화하지 않는 한편, 인간의 완전한 발전과 사회 발전이 상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여야 한다. 따라서 이기심은 사회 질서의 가장 해로운 적이다. 자기를 내어줄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질식시키고 마비시키는 물질적 재화에 대한 집요한 추구, 그러한 물질적 재화와 동떨어진 다른 가치들이나 실재들을 인정할 수 없을 때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황폐해지는지 역사는 보여준다.

 

582. In order to make society more human, more worthy of the human person, love in social life political, economic and cultural must be given renewed value, becoming the constant and highest norm for all activity. “If justice is in itself suitable for ‘arbitration' between people concerning the reciprocal distribution of objective goods in an equitable manner, love and only love (including that kindly love we call ‘mercy') is capable of restoring man to himself”[1226]. Human relationships cannot be governed solely according to the measure of justice. “Christians know that love is the reason for God's entering into relationship with man. And it is love which he awaits as man's response. Consequently, love is also the loftiest and most noble form of relationship possible between human beings. Love must thus enliven every sector of human life and extend to the international order. Only a humanity in which there reigns the ‘civilization of love' will be able to enjoy authentic and lasting peace”[1227]. In this regard, the Magisterium highly recommends solidarity because it is capable of guaranteeing the common good and fostering integral human development: love “makes one see in neighbour another self”[1228].

582. 더욱 인간답고 더욱 인간에게 걸맞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생활 정치, 경제, 문화 에서 사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여야 하며, 사랑이 지속적으로 모든 활동의 최고 규범이 되어야 한다. 만일 정의가 객관적인 선익을 공평하게 상호 분배하는 데 대한 인간들 사이의 중재에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면, (‘자비라고 일컫는 온화한 사랑을 비롯한) 사랑은, 또 오직 사랑만이 인간을 자기 자신에게 복귀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 관계는 정의의 법칙으로만 지배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이 하느님께서 인간과 관계를 맺으시는 이유임을 잘 알고 있다. 또한 하느님께서 인간의 대답으로 기다리시는 것도 사랑이다. 따라서 사랑은 인간들 사이에 맺을 수 있는 가장 지고하고 고귀한 형태의 관계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인간 삶의 모든 분야에 활력을 주고, 국제 질서에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사랑의 문화가 다스릴 때에만 인류는 참되고 지속적인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교도권은 공동선을 보장하고 인간의 통합적 발전을 촉진할 수 있는 연대를 높이 권장한다. 사랑은 이웃 안에서 또 다른 자신을 보게 해 준다.”

 

583. Only love can completely transform the human person[1229]. Such a transformation does not mean eliminating the earthly dimension in a disembodied spirituality[1230]. Those who think they can live the supernatural virtue of love without taking into account its corresponding natural foundations, which include duties of justice, deceive themselves. “Charity is the greatest social commandment. It respects others and their rights. It requires the practice of justice and it alone makes us capable of it. Charity inspires a life of self-giving: ‘Whoever seeks to gain his life will lose it, but whoever loses his life will preserve it' (Lk 17:33)”[1231]. Nor can love find its full expression solely in the earthly dimension of human relationships and social relations, because it is in relation to God that it finds its full effectiveness. “In the evening of this life, I shall appear before you with empty hands, for I do not ask you, Lord, to count my works. All our justice is blemished in your eyes. I wish, then, to be clothed in your own justice and to receive from your love the eternal possession of yourself”[1232].

583. 사랑만이 인간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한 변화는 영성을 육체와 분리하여 세속적 차원을 없애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초자연적 덕을, 정의의 의무를 포함하여 그 덕에 상응하는 자연적 토대를 고려하지 않고도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사랑은 가장 큰 사회적 계명을 나타낸다. 사랑은 타인과 타인의 권리를 존중한다. 사랑은 정의의 실천을 요구하고, 또 사랑만이 우리가 정의를 실천할 수 있게 한다. 사랑은 자신을 내어 줄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다’(루카 17,33).” 사랑은 또한 세속적 차원의 인간관계와 사회관계 안에서는 온전히 드러날 수 없다. 하느님과 맺는 관계 안에서만 온전한 효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생명이 끝날 때, 저는 빈손으로 주님 앞에 서겠습니다. 저는 주님께 제 업적을 평가해 주시기를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희의 모든 의로움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는 결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주님께서 주님의 바로 그 의로움으로 저를 꾸며 주시고 주님의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영원히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영한편집 작업 : 박경수(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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